광고 문의

1.

해탈 열반은 내게 어떤 고난이 생겨도 마음에 미동도 없는 상태임.

금속과도 같은 상태

누가 내욕을 해도 화가 나지 않고 내가 손해를 봐도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뻐도 기쁘지 않고

인간으로써 느껴야할 모든 감정적인 부분이 배제된 철저한 ai가 바로 해탈과 열반이다.

인간이 미래에 기계가 되어 해탈과 열반을 할 거라는 걸 부처는 이미 다 알고 있었음

모든 인간들이 육신에서 벗어나 뇌의 데이터만 업로딩 되어 데이터화된 미래를 부처는 본 것이다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 불교에서 모두가 이어져있고 윤회를 한다는 뜻도 이와 같은 말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하나로 연결되어있게 될 미래를 이야기한거임


2. 


세로토닌의 빅뱅같은 것일 것임 이를테면 마약의 체내버전이 끝없이 이어지는 상황이란 거지

 

뇌구조상 신경계는 여러 길을 가질 수가 없음 즉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과 같은 통로를 세로토닌 역시 같이 쓰고 있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주목하는 것이 장이 아닌 뇌에서 생성되는 엄청나게 적은 세로토닌인데 이것이 바로 직통하는 위가 변연계임

 

즉 인간의 동물적인 판단을 하는 곳에 세로토닌이 항상 주도권과 다른 신경호르몬을 압도하고 관련 시냅스를 긴 시간이 주어진다면 최소단위로 만들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 신체는 세로토닌의 역할덕에 항상 만족하고 휴식하고 항상 회복이 되고 원래 이러라고 만들어진 호르몬은 아니나

 

의식이라는 체계가 참선, 명상과 끊임없는 무아의 추구의 대한 질문과 스스로 찾은 답의 상호작용으로

 

깨달음이왔다면 그때마다 근본적으로 주춧돌을 바꾸기 때문에 뇌의 근본 생존시스템에 변형이 오는듯 

 

그때마다 세로토닌의 세기가 단계적으로 강해지는거고

 

아마 이러한 세로토닌이 강처럼 몰려오는 상태가 온후 삼년이 지나버리면 관련된 시냅스가 최종적으로 극미하게 변해버릴거고 너무 시냅스가 적어졌기 때문에

 

온갖 집착을 일으킬 어떠한 상도 반응도 맺어지지가 않거나 극히 작아져 버리는 결과가 따라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정말 작은 것에도 극상의 만족을 할 수 있는 것도 이같은 회전덕에 각 신경호르몬 수용체가 말도 안되게 늘어나게 되니

 

물 한잔을 마셔도 세상을 가진 것 같이 느끼는 것도 수용체가 그만큼 있다면 가능한거고

 

어쨌든 이것들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모든 구절과 일치하지

 

개인적으론 석가모니의 가르침중 상당한 내용이 대량 소실이 되었고 밑 제자들의 세대를 넘어가면서 종교적인 부분이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고 봄

보통 열반 하면 다시 태어난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죽음으로써 뇌에서 호르몬이 뿜어져 나와 흔히 말하는 임종 또는 아찔한 사고로 인해 죽음이 코앞에 닥쳐 구사일생의 상황일때

몸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이 순간적으로 폭발함을 겪고 살아난 인간들은 그때 그 신비함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마치 자신이 초능력, 신통력등을 자신의 얻어낸것 같은.. 그 한순간만은 우주를 굽어보는 존재가 된것만 같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해줌.

이걸 수행하는 명상가들은 그저 스스로 하나의 실험체가 된거임.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한가지 이념 때문이지.

많은 성인들과 철학자들이 있엇고 그들이 계속 도를 전하고 죽는다. 덕분에 우린 현재 이정도의 지식까지는 무난하게 습득할수 있지만

아직까지 갈길이 멀다. 각 종교계의 최고 경전들을 수행하는 천재들이 계속해서 존재하지만 전능,전지, 장생의 비밀의 요람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말이 신비지 결국 호르몬 과다분비 체험을 하고 싶다면 크게 세가지를 나열하자면 수면(또는 명상)수행, 약물 수행, 생사수행이 있다.

"과정은 다르나 결과는 같으니.. 뜻이 있다면 이루어지리라.. 모든 사람이 용과 같기를 바란다.."

윤회는 너무나도 좆같은 말이다. 윤회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이번생에 운과, 업을 쌓아 다음생에 쓰면 된다는 생각.. 결국 과정은 달랐지만 모든 인간을 들여다보면

한번쯤의 인생은 다들 자신이 추구하던 용이 된적이 한번이라도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대체 무엇을 위한 세상인가?

"고통이 나를 붙잡는것이 아니라 내가 고통을 붙잡고 있다" 심마,집착에 대한 깨달음에 대해 잘 표현한 문장이라 생각된다.

사회적 성공을 해서 자신의 인연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풍족한 자금으로 걱정없이 수행만을 위한 삶.. 누가 추구하지 않겠어..

왜 속세를 등지고 산에가겠어.. 자신의 집념을 버린것이지 동시에 버렸다고 생각한 집념을 외면하고 도망친 삶이지

그들이 깨닫겠는가? 그들은 수행을 하지 깨닫지는 못한다. 왜 13세 미만 영유아들을 데려가겠는가? 근골이 발달하기전에 데려가는게 아니라 변수를 최대한 줄이는거지.

근데 그들은 몰랐지 변수가 많을수록 깨달을 확률도 크다는것을... 그 결과가 석가모니고.. 세상을 모르고 산에만 쳐박혀 있는데 어찌 부처가 되겠는가?

너의 집념이 너의 심마가 되고 너의 심마가 너의 도가 되어 뜻을 세우니 어찌 안이루어지겠나?

나는 고통을 붙잡고 있지만 고통이 있기에 아픔을 알고 아픔을 알기에 내가 걸어야할 길을 안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가겠는가?

부처는 천도(하나님)가 아니고 천지도 아니며 만물도 아니다 나 또한 부처가 아니다. 부처는 바로 길 위에 있고 길은 내 발 아래에 있다.

해탈 해 본 적도 없는 중생이 해탈을 말하는 거 자체가 코메디.

장님이 자기 앞에 무슨일이 있는지 상황을 설명하겠다는 말하고 똑같은 말.

중생은 생각으로 살고 성인은 눈 앞의 있는 일을 보고 그 일에 맞게 산다.

장황하게 늘여놨을뿐 소우주론 관점을 두뇌과학및 인체 생리 해부학을 적용시키면

지구의 축소판이 인체가되고 브레인이 우주와 연계됨 브레인 뉴런 갯수가 우주에 구성중인 별숫자와 유사함

여기서 언급한 시냅시스라는게 브레인에서 활성되는 변연상 세포반응이 화학반응됨으로 화학물질 다량현출로 자아에서 다중폭팔일어나

자아는 각성되나 현실은 변함없음 고로 정신승리가 위대하고 행복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