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대전 후
인류의 놀라운 인구 증가율,
풍부한 유동성을 제공하는 신용화폐 달러가 주도하는
정치ㆍ경제의 변화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문명의 기반인 에너지 소비량의 글로벌 추이.

정치를 부분적으로 정의 한다면
남의 돈을 가지고 꼴리는 데로(?)
'폼 나게(?)' 마구 쓰는 것!
인간의 속성(기대심리)이 인플레적인지,
경제의 속성이 인플레적인지,
가치라는 것이 인플레(?)적인지,
문명의 발전이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닉슨의 닉슨독트린,닉슨쇼크,핑퐁외교는 대단한 것!
1973.10.6 4차중동전쟁 여파로 공급감소가 발생
1차 오일쇼크(73~74)가 발생한다.
페트로 달러가 신용화폐가 되면서
돈값이 싸지고(화폐가치 하락)
상대적으로 실물가격이 비싸지는데,
위의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 추세를 나타내는
막대그래프에서 보듯이
당시 소비량의 상승추세가 평평해진다.
전체 50년간 긴 상승추세를 감안한다면
세계사에 엄청난 응축(충격)을 주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달러인덱스도
69년 121.74, 73년 102.39, 74년 97.29로 떨어진다.
(그래도 역시 믿을 건 달러지!)

사실
이 그래프 하나면 아프게 입을 털 필요가 없지! ( 그래프 존멋!)
남조선인의 인생의 (물질적) 가치는 원화로 측정되고
세계인의 삶의 애환은 저 달러인덱스에 따라 춤춘다.
달러인덱스 그래프의 등락에 따라
미국인들 일부가 고통받고
몇몇 나라가 망가지고,
피바다 아니면 고난과 눈물의 골짜기를 헤매게 된다.
그것이 세계사적,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는지,
오로지 자신의 문제인지는 과학적 논리로 논할 능력이......
'장꿰특색' 음모론적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지!
나름 주목할 점이 있는지 몰라도,
그러나 그건 사실의 단편만 바라보는
바보같은 짓이라는 것은 안다.
세계의 고민을 제국의 고민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제국을 유지할 수 있고, 그 때 비로소
제국의 고민이 인류의 고민이 될 수도 있다.
1편에서 이야기 했듯이
질서는 물론 억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그 내밀한 진실은 신만이 알 것이다.
(인간은 다만 능력범위 내에서 최선을......)
혓바닥이 좀(?) 길었네!
75년~77년 달러인덱스는 대체로 95~105사이에서 움직인다.
(한국은 1977년 7월1일 소비세를 통합 부가가치세법을 시행한다.)
그러다 78년 12월 이란 호메이니 시아파 혁명이 발생하고
79년 중동의 시아파-수니파의 충돌,
80년 9월의 이라크-이란 전쟁으로 이어진다.
2차 오일쇼크(79~81)! 전 세계에 곡소리가 난다.
■당시 세계의 국제정치 동향
스탈린 사후 중ㆍ소 수중주의 논쟁,
체코의 '프라하의 봄'을 탱크로 갈아버린 것을 정당화 하는
68년 11월 브레즈네프 독트린(일명 제한 주권론).
64년 10월 중공 원자폭탄실험,
64년~69년 소ㆍ중 국경충돌, 공산세계의 분열, 제3세계의 약진,
66 중국의 광란의 십년-문화대혁명,
67년 6월 중공 수소폭탄 실험, 67년(~75년) 캄보디아 내전,
71년 4월 미ㆍ중 핑퐁외교 ,1971년 10월 25일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solution 2758)로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의 중화민국의 유엔상임이사국의 지위를 계승.
(인도차이나 반도와 한반도 문제등 담보물이 없는, 처음의 큰 거래는
꽤나 복잡했겠지!)
72년 7.4남북 공동성명,
73년 베트남전 종결(파리평화?협정)과 75년4월 월남패망.
한국도 물가상승률이 18%,
(비교, 만약 은행금리가 갑자기 18%오른다면?
그런데, 밥은 먹어야 살아남지....)
중복 과잉투자된 중화학공업 부문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다.
경제는 난관에 봉착하고,
부ㆍ마사태(은밀하고 무자비하게 진압당한다-아! 앵삼!)의
혼란을 틈타
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비서실장 김계원,
참모총장 정승화가 관계된
박정희대통령 암살사건이 발생한다.
이어서, 12.12
다음 해, 80년
총을 들고 교도소를 습격하는
5.18의 자랑스런 광주민주화 운동(아! 뒈중)을 겪는다.
세계적 경제 위기를
한국은 민주화의 뜨거운 열기로 극복한다.(설마!)
참으로 존경스러운 진성 씹선비의 후예들이다.

1958년의 베를린 위기,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로
미ㆍ소는 핵전쟁 직전까지 갔지만,
69년 4월 전략무기 제한 협정을 시작으로
79년까지 데탕트(긴장완화)가 이어진다.

1850년대 중반 크림전쟁,
1870년대 말 베를린회의,
1885년3월말 제정 러시아와 영제국의 판데(Panjdeh) 충돌
(영국은 거문도 점령으로
극동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는 것으로 응수한다.),
1900년대 중반 러ㆍ일전쟁
이후
단독으로 시도하여 실패한 남하정책을
1979년 소비에트연방이 다시 시도한다.
정세가 불안한 중동에 소련의 영향력이 증대하는 것을,
1차 오일쇼크를 호되게 치른
서방은 결코 용인할 수 없었다.
아니, 소련이 아닌 그 누군라도
중동의 에너지를 독식한다면
끔직한 전세계적 재앙이 될 것을 예감한다.

79년 12월 24일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국제정치는 다시 냉전 분위기로 전환(신냉전)하고
고르바초프가 등장하는 85년까지 이어진다.
70년대 당시의 세계는
강대국간의 정치는 온탕(?), 약소국은 극도의 긴장,
경제는 신용화폐 달러와
고유가 시대로 볼수 있겠다.
닉슨쇼크의 스태그플래이션에서
인플레이션으로 막을 내리는....
70년대 말 두 강대국의 신냉전은
80년대 격변의 시대를 예고하며 막을 내린다.
당시 서방의 좌파 지식인들은
경제발전에 있어
소련이 미국을 앞서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태의 책임은 서방,
특히 미국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인간에 대한 자신들의 시각과 가치(질서 또는 윤리)에
회의를 품지 않는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유구한 씹선비의 전통이 있는 것이다.
오일쇼크 당시 어떤 유명 씹선비 클럽은
40년 후 2000년대 세계의 석유자원은 고갈될 것이라고
선무당질을 시전한다.
그 이전에도
그런 용기있고(?) 정직한(?) 씹선비가 있었고,
현재에도 천연 자원의 고갈,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기상이변 등을
온 몸을 던져 경고하는 씹선비님들이 계시다.
참! 존나! 열라! 개씁! 고마워 해야하나?
아니!
조선씹선비의 후예들이 국토기맥론을 믿듯이,
가이아 이론을 믿는다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