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이준석 "영구제명" 절차돌입..해결사 이양희 윤리위원장 추가징계 불가피
   

   
           https://www.youtube.com/watch?v=Y2Mu_0h9xhA
위영상에대한 댓글
1.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으나 비난하는 것은 반대하며 당헌당규를 위반한 이준석퇴출을 환영합니다

2.이준석씨  빨리정리하고국힘은 윤석열대통령 국정운영에
전력을다해서  힘을보태야할텐데 말입니다,

3.너무  늦었지만  지금 이라도 제명처분하고 정치계에 발 붙치지 못하게  감옥으로  보내야된다

4.이양희 화이팅!!
윤리위원장 이 인간을 다시 정치계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해야합니다
이 인간은 국민의힘도 이 나라도 망하는길로 이끄는 인간입니다

5.이양희 위원장 판단이 옳다. 이준석이 현재 하고있는  해당행위는 당연히   영구제명 하는게 맞다

                   

이양희님의 부친 이철승님
한국 정치사의 큰 획을 남기신  7선의 국회의원이신 이철승님 출생과 가계

역대 선거 결과[편집]

실시년도선거대수직책선거구정당득표수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48년총선1대국회의원전북 전주부무소속8,126표
 24.33%
2위낙선 
1950년총선2대국회의원전북 전주시무소속4,630표
 16.9%
3위낙선 
1954년총선3대국회의원전북 전주시무소속21,229표
 53.89%
1위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초선
1958년총선4대국회의원전북 전주시 을민주당20,028표
 63.75%
1위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재선
1960년총선5대국회의원전북 전주시 을민주당19,598표
 62.63%
1위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3선
1971년총선8대국회의원전북 전주시신민당64,496표
 71.98%
1위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4선
1973년총선9대국회의원전북 전주시·완주군신민당73,803표
 49.6%
1위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5선
1978년총선10대국회의원전북 전주시·완주군신민당100,404표
 52.01%
1위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6선
1985년총선12대국회의원전북 전주시·완주군신한민주당125,023표
 48.19%
1위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7선
1988년총선13대국회의원전북 전주시 을신한민주당9,918표
 9.73%
3위낙선



이철승(李哲承, 1922년 5월 15일 ~ 2016년 2월 27일)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정치인, 시민사회기관단체인이다.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경성부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전라북도 완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전라북도 전주부에서 성장하였다.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전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징집반대 등으로 일제의 감시를 받았고, 백부 이석주의 권고로 인하여 인촌 김성수를 찾아갔다. 그 뒤 보성전문학교 내 반일 학생이며 강제 징집 거부 등으로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다가 1944년 1월 학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끌려갔다. 그 뒤 오사카의 병참부대에 배속되어 1945년 8월 자살특공대로 차출당했다가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일본군에서 탈출했다
.

광복 직후에는 학병 동맹의 결성에 참여하였다는 말이 있으나, 그의 성향을 봤을 때 좌파 단체인 학병동맹에 실질적으로 참여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이후 군정기 때는 우익 학생 운동과, 신탁통치 반대 시위 당시 김구김성수 등을 도와 학생 반탁 집회를 주관하였고,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는 제헌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 친일 경찰 채용 등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6·25 전쟁 중에는 학생들을 모아 전국학련 학도의용군을 편성, 낙동강전선과 대구에서 참전하였다. 1951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국민방위군들 병사들에게 전달해야할 50여억 환의 자금과 재물을 착복한 것을 국회에서 폭로하게 하였다. 제1공화국 기간 중 자유당에 반대하여 야당 정치인으로서 활동했다. 초대 제헌의원 선거에는 낙선하였으나, 3대, 4대, 5대, 8대, 9대, 10대, 12대 국회의원을 지낸 7선 의원이었다.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박정희의 회유를 거부하고 반 군정 운동을 하였다. 1970년대 김영삼김대중윤보선유진산 등과 신민당의 당권을 놓고 경쟁관계에 있었으며, 중도화합론을 주장했다 하여 '사쿠라'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정계 은퇴, 우익 시민사회단체를 지도하였다.

야당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김영삼김대중김종필장면윤보선 등과 함께 제3공화국·제4공화국 시절 박정희의 경쟁자이자 잠재적인 대안자의 한사람이었다. 정치적 계보로는 민주당 신파 출신으로 훗날 한때는 1987년 김영삼과 결별할때까지 상도동계의 중진이었다. 호는 소석(素石).


출생과 가계[편집]

소석 이철승은 1922년 5월 15일 경성부 종로방 수표동(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동)에서 이석규(李錫圭)의 2남 5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고 본적지인 전라북도 전주부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아버지 이석규는 일제 식민 통치에 항거하여 3.1 만세 운동에 동참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불의를 참지 못하던 성격이었다. 그의 둘째 큰아버지는 훗날 제헌국회의원을 지낸 이석주(李錫柱)였다.

그의 집안은 양반가문 출신으로 형조정랑을 지내고 사후  병조참판에 추증된 이직간(李直幹)의 18대손으로, 선조 영의정을 지낸 이탁(李鐸)은 15대 방조였고, 숙종 때 우의정과 판중추부사를 지낸 충정공 만암 이상진(李尙眞)은 그의 10대 방계 선조였다.[1]

13대조 이정란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창의해서 전주성을 지키는데 참여한 전주부윤 겸 삼도 소모사를 지냈다. 11대조 이영선은 지역의 명망있던 인사로 사후 반곡서원에 배향되었다. 10대 방조 이상진은 서인 중진으로 우의정과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 등을 지냈지만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될 때 소론이 되었다. 이상진의 동생인 이상민의 5대손이자 이철승의 6대조인 이진희(李鎭熙)는 정조 때에 생원시와 진사시 양시에 합격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본적지는 전라북도 전주부 서신동 290번지였는데, 17대조 때 완주군 구이면 장판리 모악산아래에 정착하였고, 그 뒤 아버지의 대에 경성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유년기[편집]


소년 시절

그는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하였는데 할아버지 이시형은 전주지방의 3대 거유(巨儒)중 한 사람인 저명한 유학자였다.
아버지 가석 이석규는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 3학년에 재학 중 3∙1운동에 가담, 제적당한 후 형 이석주와 더불어 항일 독립운동에 나섰으며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절하며 일제에 항거하였다.

아버지 이석규는 후일 6·25 전쟁때 퇴각하는 남로당 공비들에 살해되었다.
중부인 우농 이석주는 후일 제헌국회의원을 지내는데 그를 인촌 김성수에게 찾아가게 한 사람이 이석주였다. 그에게는 1명의 남동생과 5명의 자매가 있었다.

중부 우농 이석주는 여수에 큰 광산을 갖고 있어서 밖으로는 비밀리에 상하이임시정부와 연계하고, 국내에서는 고하 송진우인촌 김성수 등과 연대하며 지하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2

 

탁통치 반대 운동[편집]


이화장에서 이승만프란체스카 도너와 함께 촬영 (1948년)
<nowiki /> 반탁학련신탁통치 반대 운동 및 미소공동위원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후 우파인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의 학생조직을 맡다가, 우익학생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김구김성수의 주도로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벌어지자 이에 적극 가담하였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미영소중 4개국이 5년 동안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하겠다는 결정이 났다. 이철승은 당장 학생들을 모아 반탁학련을 조직했다.[4] 그는 특별히 경교장에 호출되었다. 백범 김구는 '반탁승리'라는 휘호를 써주며 그를 격려했다.[4]

1946년 1월 2일 경성부 종로구의 한청빌딩에서 반탁한국학생 총연맹 결성준비대회를 주관[2] 하였다. 1월 7일, 우익을 대표하는 학생들의 총연합체로서 결성된 '반탁전국학생연맹'의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이후 반탁전국학생총연맹이 전국학생총연맹으로 개편될때도 중앙위원장으로 재추대되면서 계속 이 단체를 이끌어갔다.
 

그는 꼭두새벽이면 일어나 김성수 댁을 시작으로 전용순 댁에서 활동지원금을 받았고, 김구의 경교장신익희와 조소앙 등이 묵고 있는 한미호텔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5][6] 당시 인촌(김성수)의 주머니가 곧 이철승의 주머니라는 말이 있었다고도 한다.[7]

1946년 1월 18일 이철승이 이끄는 반탁학련이 참여한 반탁 대회가 인민당 본부 습격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좌우익간의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제헌국회의원 낙선[편집]

방북 직전 38선에서 선 김구
<nowiki /> 남북협상 및 5·10 총선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후 1948년 1월 김구가 남북협상에 참여하면서 여러 번 그에게 북행을 만류했으나 듣지 않자 멀어졌다. 4월 김구가 북행을 결행하였다. 이철승을 비롯한 전국학련 일행들은 '이승만 박사와 노선이 분열되면 안 된다'며 경교장에 드러누워 김구의 북행을 저지했다.[8]

못 가십니다. 가시려면 우리의 배를 지프차로 넘고 가십시오.

그러나 김구는 자신이 체포되어 법정에 섰을 때는 도와주지 않고 이제와서 북행길은 반대하느냐며 학생들을 향해 실랑이를 벌였다. 그 뒤 경교장에서 사람이 나와 김구는 북행을 하지 않을 것이라 설명했고 그는 청년들을 데리고 해산했다. 그러나 김구 일행은 결국 담벼락을 넘어 경교장을 나갔다.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구 일행은 남북협상에 참여하러 북한으로 갔다.
 

그는 5.10 제헌 국회의원 총선거를 지지, 5월 10일의 제헌국회의원 후보로 전주 제1선거구에 출마하였다. 그는 '나간다! 젊은 일꾼 이철승[2]' 등의 구호로 선거유세를 하였다. 이승만의 전폭적 지지를 받던 배은희 목사와 와세다 대학 출신으로 전남 곡성군 곡성면장을 지내고 건준에 참여하였다가 한독당으로 건너온 신성균, 정진희, 박완동 등이 출마하였다. 이철승이 출마하겠다고 나서자 아버지는 "공부하다 말고 학생이 무슨 소 리냐. 정 네가 나가겠다면 내가 절로 들어가 버리겠다.[2]"하고 완강히 반대하였으나 학련인사들이 집요하고 간곡하게 설득하여 허락을 받아냈다.[2] 우파 후보자들의 난립으로 후보단일화를 하지 못하면서 낙선하였다.[9]

7월 20일 이승만이 국회에서 간접 선거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갖춰졌다. 열렬한 지지를 업고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그는 건국 세력을 배제하고 친일 인사를 기용해 건국 공신들과 갈등을 빚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일 경찰들을 타도하는데 나섰던 이철승이 친일파들의 음모로 정부 요인 암살자로 몰리기까지 했다. 이 문제는 이승만 대통령을 국회에 출석시킬 정도로 파급이 컸다. 무죄로 풀려난 뒤 이 대통령과 재회하는 자리, 그를 보고 반가워하는 이승만에게 이철승은 ‘친일경찰들로 내각을 구성하면 안 된다’며 일침을 놓는다.[8]

 

5.16 군사 정변 직후[편집]

5·16 군사정변 직후, 5월 16일 오전 8~9시 경 중앙청 앞에서 소장 박정희와 이낙선 소령, 박종규 소령
<nowiki /> 5·16 군사 정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16 군사 정변 직후 박정희는 사람을 보내 야당인사들을 회유하려 했고 이때 이철승에게도 사람을 보내 회유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도와달라던 박정희의 회유를 거절하였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군사 정변의 부당성을 주장하였다.

이어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대학원 국제정치학과에 진학, 1962년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경록강문봉전규홍, 이철승, 양일동 및 전 주미 대사관 참사관 부인들은 1963년 3월 21일, 미국 대통령 관저 앞에서 "군대는 정치에 간섭하지 말라", "박정희 군사독재타도", "한국인은 군부정치를 원치 않는다", "한국인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박정희 장군의 군정연장제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15] 이어 군사 정권에서 사람을 보내자 그는 군사정권의 무력 대응에 맞서 이들을 지켜내기도 했다. 그는 1964년 미국에서 귀국하게 된다


이철승님은 김대중 김영삼 두분 보다 정치선배임


[맺음]
이철승님 당신에 딸이신 이양희님이 어지럽게 얼킨 정치판을 쾌도난마(快刀亂麻)로 정리하시는 군요 ,,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감사합니다 이철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