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반드시 미국 남부의 복음주의교회가 한국 땅에 개척한 복음주의 교회를 이끄는 아주 머리 나쁘고 고지식한 한국의 기독교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나타나는 反 페미니즘의 전부인양 알 것이다. 그것이 미국사회에 퍼진 한국에서 나타나는 반 페미니즘의 이미지일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학’의 석사학위 정도로는 알 수 없는 디테일이 숨어 있다. 페미니즘 반대여론의 중심에는 일간베스트저장소 정치게시판 외 몇몇 대한민국 우파 커뮤니티 게시판이 있다. 그곳의 반대의 핵심은 미국 우파(트럼프세력)과 연결된 反페미니즘과는 전혀 다른 뿌리를 갖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의적 정치’와 ‘권위주의’를 부정하며 모든 형태의 권력집중을 부정한다. 자의정치 반대는 곧 평등권 문제다. ‘젠더 이퀄러티’를 받아들인 권력을 쟁취한 귀족가문의 자의적 번역에 기초한, 일반인들의 ‘자의적 차별’ 호소 피해 호소다.
서방 세계의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중국의 제자백가사상을 받아들인 영역에서 기독교는 미국 복음주의 유형을 받아들였어도, 귀족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일반인 신앙이다.
한국 페미니즘의 뿌리는 1920년대 조선공산당 운동과 연결된 신간회운동 부설의 ‘근우회’다. 그리고, 신간회운동은 구한말 생긴 ‘동학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생긴 ‘후천개벽 신앙’과 연결돼 있다. ‘후천개벽신앙’은 중국의 ‘태평천국교’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기독교신앙의 정수는 삼위일체 신앙에 있듯이, 이러한 개벽신앙의 핵심은 孟子와 中庸의 연결고리에 있다. 그렇다고, “Britt Robinson”당신에게 서방세계 가치보다 굉장히 우월한 현학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할 의사는 전혀 없다. 모든 종교는 돌아가신 사람에 대한 살아있는 사람의 기억의 문제다. 중국의 종교사상을 받아쓴 영역인 ‘한국 일본 대만’등의 영역에서, 그런 경전의 기억은 조상에 대한 기억을 둘러싼 지역 연고와 얽혀서 다양한 차별적 기억과 연결된다.
김대중은 천주교 교적을 가진 천도교 신앙의 민주화운동가이다. 엄밀히 말해서, 김대중의 천주교 교적은 ‘통정한 허위표시’의 ‘가장한 표시’일 뿐이며, 진짜 신앙은 ‘천도교’ 후천개벽신앙이다. 그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는 한국 페미니즘의 진정한 중심이다.
1919년 한국은 고종황제가 죽은 이후에 3년간을 서방 자유진영에 독립을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했다. 그런데, 차디찬 외면을 받았다. 그래서 후원을 받고자 하여 소련공산당에 개벽파 양반귀족이 줄 서게 됐다. 한국 페미니즘의 뿌리에는 개벽파 양반가문 연합의 ‘대감마님’의 소련 여성주의 모방이 있는 것이다.
중국식 부족국가의 난맥상은 아시아에서는 춘추전국시대로 부른다. 그 속에서 양반가문은 각각 자기들만의 부족국가를 건설하려 한다. 그렇게 기존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자기들만의 부족국가를 건설하려는 의지를, ‘후천개벽’이라고 부른다. ‘후천개벽’을 이뤄서 개벽파 양반가문 연합의 ‘대감마님’의 소련 여성주의를 구현하는 무릉도원 구현이 한국 페미니즘의 뿌리에 깔려 있다.
서방기독교와 대항하는 과정에서 생긴 서구 페미니즘 투쟁사 같은 것은 한국에 없다. 미국 복음주의의 백인남성주의에 대항하는 소외된 이들을 강조하는 동방교회 유형의 신앙은 철저하게 20세기 이후에 한국에 퍼진 복음의 상황에서는, 역시 가방끈이 긴 ‘사대부 귀족잔재’들에게 단골이 될 수 밖에 없다.
“Britt Robinson”이 접했을 법한 한국의 페미니스트 대부분이 기독교인임을 주장하는 ‘원불교’인 일 것이다. 실제로 페미니즘의 대학강단 이론 수입의 보따리 장사가 아니라, 대중상대로 페미니즘을 논의하는 경우에 ‘원불교’로 왜곡해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페미니즘이 바라보는 경우, 그 원불교인사들이 미국상대로는 가장표시로 하는 ‘연기하는 얼굴’을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이 천주교인임을 주장하는 천도교인인데, 기독교인임을 주장하는 원불교인이라는 것이다. 이 자체가 ‘이퀄러티’를 어마어마하게 깨뜨린 것이다. 孟子의 잔재를 쥔 이들은 거침없이 세계인권선언에서 가능한 인권 논의의 전제조건인 종속 없는 것을 무너뜨린다.
개벽신앙은 교주 포주 접주 식의 서열의 종법제 질서를 주장한다. 젠더 이퀄러티가 아니라, 대감마님 질서로 여성의 갑질 상황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Britt Robinson”은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 추락을 이야기했다. 지지율 추락의 핵심은 反페미니즘 몰이를 했던 이준석 문제와 깊은 상관이 있다. 실제로 우파 커뮤니티의 반대의 핵심은, ‘여성부’와 연관이 있어도 개벽파 양반가문의 소련 여성주의의 대감마님식 이해의 문제로 인한 자의적 차별의 문제였다. 영리한 선거전략이라면, 대선을 앞두고 결코 ‘여성전체’와 적을 만드는 선택을 안했을 것이다.
이준석은 권력을 이용하는 부정비리로 성상납 받는 문제를 저질렀다. 젠더 이퀄러티를 논하려면 당연히 법 앞의 평등은 됐어, 라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개벽파 양반가문끼리는 서로간에 ‘합종연횡’으로 끌어준다. 이준석은 영남의 개벽파 양반가문의 두목 김무성, 부두목 유승민에 연결된 부두목 유승민의 친구 아들이다. 헌법 평등권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계속 빈발한다.
서방 사회의 인륜성은 사람이 수평적으로 존재할 때 사회를 이루는 기본이다. 반면에, 중국의 제자백가사상가 조금이라도 연결된 인륜성은 양반 가문과 얽힌 수직종속이다. 당연히 법앞의 평등을 전제로 이준석에 문제제기 했으나, 개벽파 양반가문 부두목의 친구아들을 건드렸다고, 매스미디어가 자의적으로 이준석 보호를 나섰다.
젠더 이퀄러티를 논하기 이전에 한국 사회에서는 법 앞의 평등의 기본 원칙이 귀족들의 권력독점 욕구에 무너지는 것이 완연하다. 젠더 이퀄러티를 빙자한 일제시대 소련 여성주의를 연결했던 양반가문의 갑질과, 그에 종속된 여성들(직계 식솔)의 자의적 상황에 대한 반대가, 실제로 한국의 20-30대들에 벌어지는 문제다.
결국, 한국은 페미니즘 등 서구좌파의 토대가 있는 것처럼 연기하면서도 아무런 토대가 없었다는 불편한 진실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모순에 대한 반대는 미국 백인우파의 반 페미니즘과는 번지수를 달리한다. 어설픈 이론수입과 번역으로 인한 것에 반대다.
결국, 페미니즘은 대한민국의 간판을 내리면서 공산화를 시도하여, 영원히 특정 양반가문의 권력독점을 하려는 쪽의 권력 확장술일 뿐이며, 젠더 이퀄리티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고, 그런 것이 한국에 토대가 있는 양 중국식 커뮤니즘이 아닌 척 위장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런 위장은 원불교 기업 삼성전자의 해외 좌파 국가에 수출하는데 한국 이미지와 연결이 있다. 국내의 진실과 상응하는 측면에서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맞다. 너무 끔찍하다. 그러나, 진실을 드러낼 경우에 삼성전자의 수출은 한국의 이미지 문제로 손해가 있다. 또, 이러한 원불교 귀족이 개신교 기구 ncck를 이용해먹었다는 문제는, 미국이 덮어주기에도 심각한 모럴헤저드 문제로 나타난다.
야당 제일 두목인 이재명은 건설과 관련된 횡령비리로 수천억원을 부당착복한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부과 매스미디어가 조선왕조 양반가문 연합에 휘어진 영향으로 제대로 심판받지 않고 있다. 이재명은 페미니즘 수호자의 이미지를 띠고 있으나, 법 앞의 평등이라는 상식이 무너진 상황에서 ‘젠더 이퀄리티’는 뚱딴지로 들린다.
한국은 결코 미국 백인우파가 말하는 反페미니즘을 할 의사가 없다. 한국의 중세는 孟子를 휘두르는 신분제 사회다. 그 곳으로 복귀하는데, 오히려 “Britt Robinson”이 본 원불교인인데 기독교인인척 하는 여성론자들이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Britt Robinson”이 착각하는 문제가 있다. 미국 선교사들이 아시아에 꾸준히 복음을 퍼뜨렸다. 그러면, 그 아시아는 미국 복음주의와 연결될 동질성일까? 물론,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신앙전파는 한국인의 신앙체험에 깊이 영향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헬라문명이 아닌 샤머니즘 문화를 전제로 이해하는 복음주의 신앙은, 미국 복음주의와 같은 성경의 말씀을 따른다는 점의 공통분모지만, 세상인식의 차이로서는 다를 것이다.
<요점> : 한국의 페미니즘은 미국 등 유럽에서 벌어지는 백인우파 기독교와 그런 문제가 아니라, 소련 공산주의와 연결된 양반가문의 대감마님 문화(자의적 차별 내재)에서 시작됐다. 이는 법앞의 평등인 기본적인 평등권의 침해를 유발한다. 한국의 매스미디어와 사법부는 특정한 양반가문 장악으로 이런 진실을 왜곡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한국에 서구의 진보적 가치가 있는 이미지를전제로 얻어지는 해외수출확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진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 페미니즘은 소련공산주의와 연결되는 양반가문의 대감마님 문화로 인한 자의적 차별과 연결됐다. 이는 모든 페미니즘과 반대가 아니다.
디플로맷은 박근혜 탄핵 직후에도 문재앙을 손잡아줬다. 맹자의 역성혁명에 가까운 쿠데타와 전복인데, 이를 유럽식으로 오해하는 망동을 저질렀다. 사실, 레이달리오라는 투자자/경제학자의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담긴 중국관점을 보면, 미국 우파의 진실이 싫어서 자기들의 미국에서 없는 진실이 해외에 있다고 심리적 투사를 해서 보는 관점이 보인다. 브릿로빈슨의 한국관점도 레이달리오의 중국관점 못지 않다.
브릿 로빈슨이 본 한국페미니즘 대부분이 사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