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려는 의지는 목표에 도달한다는 보장이다.
출처: https://www.bertha-dudde.org/ko/proclamation/3508" target="_blank">https://www.bertha-dudde.org/ko/proclamation/3508 (영어)
영적인 성장을 향한 의지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의식적인 추구는 사람이 자신의 목표에 도달한다는 가장 확실한 보증이다. 왜냐면 하나님은 빛을 갈망하는 어떤 사람도 어두움 속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육신을 입기 시작한 인간은 어떤 지식도 없고, 그에게 전달되야만 한다. 그의 의지에 따라, 그에게 깨달음을 주는 그의 혼의 성장정도에 따라 지식의 분량이 그에게 전해질 것이다. 초기에는 지식이 외부로부터 그에게 주어지고, 그가 스스로 단지 이 지식을 활용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그가 이 지식을 진리로 받아드릴 수 있을 지 생각하고 점검해야만 한다. 이런 점검하는 일이 이미 진리를 향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판단력은 그의 삶의 방식에 따라 정해진다. 단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의 방식이 그에게 전적인 판단력을 준다. 왜냐면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을 추구하고, 이로써 그가 진리에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혼은 초기에는 이 땅의 과제를 의식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이 땅의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지식 없이 선을 위해 추구할 수 있고, 악을 혐오할 수 있다. 그러면 혼은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고, 진리가 외부에서 혼에게 제공되면, 진리를 깨닫는 일이 혼에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은 자신에게 제공되는 것이 유익한 효과를 내려면, 즉 혼의 성장을 지원하려면, 제공받은 것을 내적으로 소화해야만 한다. 사람은 시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왜냐면 하나님이 사람이 사용해야만 하는 이성을 선물로 주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은 깨달음에 관한 일이면, 사람에게 영적인 재물이 제공되면, 자신의 영의 인도를 받고, 그의 이성이 역사하게 한다.
그의 혼은 영에게 어떤 저항도 하지 않을 것이고, 혼은 자신 안의 영의 불씨가 촉구하는 일을 행할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의 혼은, 즉 선을 향하고 악으로부터 돌아서는 사람의 혼은 빛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혼은 불충분한 지식에 만족하지 않고, 시험하고, 숙고하고, 생각을 통해 올바른 답변을 받을 것이다. 왜냐면 혼을 진리로 인도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느 정도의 성장에 도달하고, 깨달음에 도달하면, 즉 영적인 재물을 순수한 진리로 깨닫는다면, 혼은 이제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더 깊은 지식을 추구한다. 왜냐면 혼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점점 더 강해지고, 하나님의 임재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이 하나님과 같게 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혼은 진실로 자신의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이 쉬지 않고 그를 자신에게 이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혼의 소망에 따라 혼에게 빛과 힘을 준다.
혼이 한번 빛의 유익을 느끼고, 지식이 있고, 즉 혼의 영이 생명으로 깨어나면, 하나님은 혼을 절대로 더 이상 어두움의 상태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 혼의 영은 이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영원한 아버지 영과의 연합을 추구한다. 깨어난 영은 절대로 다시 잠에 빠지지 않고, 이 땅에서 인간의 최종 목표인 아버지의 영과 하나가 되기 까지 쉬지 않는다.
아멘
https://www.mediafire.com/file/3dvnaoxxdxq7ts0/2022-07-06_ALL_KO.pdf/file (148 MB, 6264 Page)
https://www.mediafire.com/folder/5br9ngvgrkprn/Dokuments
(2022년 7월 24일 Update 됨)
https://www.bertha-dudde.org/ko
http://kr.zentrale-begriffe.de/liste.html
kr.lorber.wolf4you.de
http://jakob-lorber.cc/index.php?s=&l=kr
http://jakob-lorber.cc/index.php?s=&l=en (영어)
www.anita-wolf.de (독일어)
www.prophetia.org (독일어)
https://www.youtube.com/channel/UCE0k72bPbRg5bSULTMtIxmA/videos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영을 통해 받은 문장 몇가지
생각이 그만두는 곳에서 사랑은 시작된다.
Die Liebe beginnt da, wo das Denken aufhört.
(생각은 지혜를 상징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게, 지혜가 죽어서 사랑이 역사하게 된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 로버)
아버지는 사랑, 아들은 지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될 때 유용한 것이 비로소 나옵니다. (의지를 통해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 지혜, 의지가 하나님의 7영의 첫 세가지 영으로 창조하는 속성입니다.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하는 질서가 중간의 영이고,
신실, 인내, 긍휼이 나머지 세가지 영으로 하나님의 유지하는 속성입니다. (야곱 로버)
사람에게 인내가 없으면 자살하는 것과 같습니다. ( 이 부분을 읽어 보실 분: https://jakob-lorber.cc/index.php?s=Gej+7.20&l=kr&b= )

너는 하나님을 여기 저기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마음의 문 바로 앞에 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서서 머물며 기다린다.
Du brauchst Gott weder hier noch dort zu suchen; er ist nicht weiter als vor der Tür des Herzens. Dort steht er und harrt und wartet.
"너는 왜 사느냐?"라고 삶에게 천년동안 물어본다면, 만약 삶이 대답을 한다면, "나는 살기 위해 산다"라고만 말할 것이다. 그것은 삶이 그 스스로의 이유로 살며, 스스로에게서 솟아나는것에 있다. 그러므로 삶은 "왜"라는것 없이 산다. 그것은 그 자신을 살 뿐이다!
또한 진실된 인간에게 물어본다면, 스스로의 이유로 행하는 자에게 "네가 행하는 것을 왜 행하느냐?"라고 물어본다면, 그가 진정으로 대답한다면, 그 또한 "나는 행하기 위해 행한다"라고만 말할것이다.
Wenn das Leben fragte tausend Jahre lang: "Warum lebst du?", wenn es überhaupt antwortete, würde es nur sagen: "Ich lebe, um zu leben!" Das rührt daher, weil das Leben aus seinem eigenen Grunde lebt, aus seinem Eigenen quillt; darum lebt es ohne Warum: es lebt nur sich selber! Und fragte man einen wahrhaften Menschen, einen, der aus seinem eigenen Grunde wirkt: "Warum wirkst du deine Werke?", wenn er recht antwortete, würde er auch nur sagen: "Ich wirke, um zu wirken!"
자신이 되어야 할 사람이 되기 원하는 사람은 지금의 자신은 버려야 한다.
Wer werden will, was er sein sollte, der muss lassen, was er jetzt ist.
참으로, 삶이란 고귀한 것이다. 또한, 가장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은 가장 고귀한 자이다.
Wahr ist es, daß Leiden edel ist, und wer am meisten durchmacht, ist der Alleredelste.
무언가를 갈망하는 한, 그것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것을 가졌다면, 그것을 사랑할 지언정 갈망은 사라진다.
Solange man die Dinge begehrt, besitzt man sie nicht. Wenn man sie hat, liebt man sie, aber die Begierde fällt weg.
고통을 받고자 하는 것은 사랑에서 온다. 고통을 받기 싫어함은 부족한 사랑에서 온다.
Leiden wollen kommt von Liebe. Nicht leiden wollen kommt von mangelnder Liebe.
하나님을 특정한 형태로 찾으려 하는 사람은, 그 형태를 만나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은 찾지 못한다.
Wer Gott unter bestimmten Formen sucht, der ergreift wohl diese Form, aber Gott, der in ihr verborgen ist, entgeht ihm.
영원의 말씀은 침묵 속에서만 들린다.
Das ewige Wort wird nur in der Stille laut.
인간이 희생으로써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곳에서,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위해 임하게 된다.
Wo der Mensch aus Hingabe das Seine preisgibt, da muß notgedrungen Gott für ihn eintreten.
모든 미덕이 미덕이라고 불리울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은 사랑 뿐이다.
Nur Liebe gibt allen Tugenden, daß sie Tugend heißen dürfen.
천명의 독서의 장인보다 한명의 삶의 장인이 낫다.
Ein Lebemeister ist besser denn tausend Lesemeister.
인간은 침묵 속에서 자신의 고결함을 가장 쉽게 지킬 수 있다.
Im Schweigen mag der Mensch am ehesten seine Lauterkeit bewahren.
가장 중요한 시간은 항상 지금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항상 너의 앞에 있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행동은 항상 사랑이다.
Immer ist die wichtigste Stunde die gegenwärtige; immer ist der wichtigste Mensch, der dir gerade gegenübersteht; immer ist die wichtigste Tat die Liebe.
하나님을 찾은 사람은 하나님을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다. 길거리에서도 사람들 속에서도, 교회에서나 감옥의 고독함 속에서나.
Gott aber, hat man ihn überhaupt, so hat man ihn allerorten; auf der Straße und unter den Leuten so gut wie in der Kirche oder in der Einöde oder in der Zelle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네가 말하는 유일한 기도라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Wäre das Wort ›Danke‹ das einzige Gebet, das du je sprichst, so würde es genügen.
진리는 너무나도 고귀하여, 만약 하나님이 진리에서 멀어진다면, 나는 진리을 간직하고 하나님을 버릴 것이다.
Die Wahrheit ist so edel: möchte Gott sich vor der Wahrheit kehren, ich wollte mich an die Wahrheit halten und Gott lassen.
자기 자신의 집에서 낯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가장 불쌍할 것이다.
Wer in seinem eigenen Hause fremd sein könnte, das wäre die wahre Armut.
지옥은 성품일 뿐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의 성품은 그대로 영원에서 그들이 찾게 되는 그들의 성품이 된다.
Hölle ist nichts als ein Wesen. Was hier das Wesen der Leute ist, das bleibt ihr Wesen in Ewigkeit, so wie sie drin gefunden werden.
작업복을 입고 순수한 것이 가장 높은 자리를 얻고도 악한것보다 낫다.
Besser im Arbeitskittel und rein sein, Als mit dem höchsten Titel gemein sein.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안에 있다. 우리가 집에 있는 경우가 적을 뿐이다.
Gott ist immer in uns, nur wir sind so selten zu Hause.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
Der wahrhaft Liebende liebt Gott in allem und findet Gott in allem.
하나님은 현재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너를 보는 그대로 너를 받아들인다. 과거에 어떠하였던 너가 아니라 지금 있는 너를 받아드린다.
Gott ist ein Gott der Gegenwart. Wie er dich findet, so nimmt und empfängt er dich, nicht als das, was du gewesen, sondern als das, was du jetzt b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