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은 《‘천도교 경제학’이라는 기둥과 ‘정세현·문정인 통일부’의 기초》에 서 있는 좌파독재체제를 해체하는 의욕이 없다.
 
 

당선이후에는 우파진영이 진영론에 사로잡혀서, 찍어준 표심에 ‘역주행’을 해도 ‘개벽신앙’공식에 사로잡혀서, 진실의 소통을 은폐한다고 계산한 듯 보인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과 고려연방제를 막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윤석열 당선인이 추구할 정부정책에, <윤석열을 키운 ‘국민생각’은 이게 아니다>라는 것을 제시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본다.
 
윤석열 당선인에 표를 주었던 이들은 ‘천도교 경제학’이 악마경제학이지 시장경제가 아니라는 입장에 있는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본다. 윤석열 당선인의 판단이 잘못된 것은, 문재인 부동산실정은 모조리 김대중의 ‘천도교경제학’까지 소급한다는 점이다. 김대중 경제학은 군사정권 국가주의 경제학을 이해해야, 이게 왜 나타났는지를 알 수 있다.
 
군사독재 경제학은 강력한 국가공권력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과, 그 대기업에 수직종속적인 하청업체로 요약된다. 국가의 기업에 이윤이 나는 선 이상을 국가권력으로 개입했지만, 그것에 불만을 느끼는 국민이 늘어났다. 국민이 제일 의문을 가진 것은 ‘1인 통치권자’의 판단력의 문제다. 시장에서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군사독재체제는 대기업체제를 보호하기 위해서 저임금이 강요가 됐다.
 
좌파독재체제 경제학은 천도교경제학(대중참여경제론)이다. 국가가 개입하여 대기업의 이익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그것을 통하여 수직종속적인 제도를 이루는 모든 것을 ‘규제’로 본다. 군사독재는 대기업에 공권력으로 이익을 보장했다면, 좌파독재는 대기업에 무법지대적인 공백 상태로 이익을 보장한다. 좌파독재체제 경제학의 문제점을 상징하는 것은, 민란신앙에 의해서 권력을 장악한 만큼 권력을 창출한 씨족 이기주의가 관철되는 것이다. 좌파독재체제는 대기업에 풍부한 자산유동성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국민에 자산시장 무한떡상에 기반된 세금폭탄공화국이 강요가 됐다.
 
대한민국의 창설은 영남 개벽파가 이승만을 보호하고, 호남 개벽파가 건국반대운동으로 남북한 모조리 공산화를 시도하는 것에 반대를 통해서 나타났다. 일반국민은 이 속에서 영남 개벽파 귀족에 일정 수준은 제도적으로 ‘갑질’의 영역이 잇다고 보았다. 1987년 6월은 문자 그대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장경제를 확보하는 수준만을 동의했다. 군사정권 경제학에는 모든 표현이 영남 색깔이 들어간 유교봉건제가 있다. 유교는 반드시 화이론에 얽힌 사각지대를 만든다. 군사독재체제는 공안기구를 통하여 호남 개벽파의 권력장악을 제어하려 했다. 국가안보가 정권 안보라는 말이 그렇게 나왔다.
 
김대중경제학은 군사정권 경제학에 反논리로 나타났다. 영남 개벽파의 군사정권 때 갑질을 비판했던 이들은, 영남 개벽파보다도 월등하게 판이 커진 호남 개벽파 중심의 ‘공공세금’ 뽑아먹는 약탈체제를 이루었다. 영남 개벽파 귀족은 독자적인 어떠한 정책적 독자성 주장을 포기하고, 호남 개벽파의 종노릇(?)으로 바뀌어 있다. 좌파독재체제는 꾸준히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간을 보고, 정세현 문정인의 통일부와 민주평통을 통해서, 대한민국을 19세기 노론체제처럼 체제 팔아먹기 직전의 ‘풍성(?)한 부패’로 만들려 한다. 천도교로 왜곡된 시장주의를 위해서는 체제를 늘어져서 친북파와 친중파가 남한 장악을 확대시켰고, 좌파정권이 되면 공격적으로 친북파와 친중파의 남한 장악만을 열어줬다.
 
윤석열 당선인은 ‘여성가족부’ 문제 조차도 해결하지 못했다. 여성가족부는 호남 천도교 지배체제의 수많은 문제의 하나였다. 호남 개벽파는 군사정권 내내 영남으로 기울어진 유교공식에 황당해했다. 그렇게 군사정권에 못된 시어미(영남 개벽파)에 당한 착한 며느리 호남 개벽파가 하는 짓을 보자. ‘광주민중항쟁’과 ‘4.3 사건’을 놓고 하는 국가행사는 전 국민이 모조리 ‘대한민국 건국반대운동’이라고 가정하는 행사다. <전국민이 반공실향민이냐>고 힐난한 사람들이 <전국민이 남로당과 인민공화국 후손>이라는 행사는 주저하지 않고 있다.
 
군사정권 유교자본주의가 ‘시장경제 구석 구석’에 초월적으로 개입하는 국가를 상정했다면, 좌파독재체제 천도교경제학은 더욱더 원색적인 정부 개입주의를 표한다. 문재인 정부 때 했던 개입을 윤석열 정부에서는 행하지 않는다는 행정문제의 처리는, 역시 정권이 교체가 되면 행정문제로 전부 살아나겠다는 불안감을 준다.
 
국민이 진지하게 의문을 갖는 것은 ‘천도교 경제학’의 정중앙에 있는 ‘무위이화’교리의 교정쌍전(종교정치)이 지난 30년간 단 한순간이라도 성공한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제, 아파트에서 민심의 폭거로 더 이상 건설공학을 일으킬 수 없으니, 상가건물을 무한대로 높이 올리려고 한다. 역시, 문제점은 아파트에서 보여준 문제점과 동일하다고 본다. 초반에 건물 매도를 통해서 이익을 볼 건물주, 건물건설을 허락하면서 맺어질 여야 정치권-지방자치단체-건설업, 등의 이익일 것이다. ‘최유효이용’으로 그 지역에 공실없이 가득메울 수치를 월등히 초과하게 경쟁적으로 짓는 움직임은, 정해진 임차인 예정자를 서로 끌어쓰기 경쟁이다. 건물이 다 지어지고 나면, 공실을 채울길이 없고, 건물이 지어지고 완판된다고 가정했던 세입자는 거대한 부채를 안고 들어가는 ‘호구’가 돼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격하락이 빚어지면 그 ‘호구’가 다친다고 걱정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1971년 박정희-김대중 대선때 김대중측은 박정희측이 지도자 신앙을 국민에 퍼뜨린다고 파시즘이라고 비난했다. 실제로도 국가=지도자의 의미로 애국심이 작용됐고, 대기업의 이익을 정부가 보장해준다는 측면에서, 국가에 충성이라는 측면이 애국심이 아니라 파시즘이라는 비난과 섞이기 쉬웠다. 그러나, 그것을 비난한 쪽은 ‘지도자 신앙’을 더욱 급진화하여, 추종자들에게만 초과 이익을 보장하는 <강증산 지도자=정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박정희를 파시즘이라고 비난했다면, 그때보다 월등하게 원색적으로 반일종족주의(민족해방주의)를 중심으로 편을 나눠서 원색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떻게 불러야 한다는 말인가?
 
국민의례는 6.25 전쟁 때 희생자에 대한 도교적인 제사를 은연중에 강조했다. 호남 개벽파는 이것이 걸리적 거렸는지, 민중의례를 강조했다. 건국반대운동 때 숨진 남로당과 인민공화국 조상에 대한 강조다. 개벽신앙 경제학은 결국은 권력을 쥔 부족에 대한 초과이익 보장이며, 이것이 매우 자의적인 상태로 나타난다.
 
가계부채는 사실상 3200조이다. 정부 부채, 공기관 부채도 개방하면 저절로 된다는 신념이래에 무한히 쌓았다. 결국은 이익은 자기가 먹고 손해는 일반국민에 전가하는 방식의 악무한이다.
 
자산버블이 붕괴가 되면 시장경제이론상으로 가장 버블을 올린 당사자가 폭탄을 뒤집어 써야 정상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이론을 뒤로 하고 천도교 원칙으로 달려간 정치권력이, 헌법과 법률을 뒤로 하고 개벽신앙 원칙으로 달려간 정치권력이, 과연 시장경제원칙대로 할까?
 
 
윤석열 당선인 인수위는 천도교의 개벽신앙 공식으로 정권만 교체가 되고 시스템을 유지하면, 일반국민이 다 바뀐 줄 믿고 행하는 ‘노비’라는 전제를 행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 개벽신앙 노인 엘리트 그룹의 명령을 하달받는 입장이 아닌지 의문시된다. 국민 민심과 확연히 역주행을 하지만, 이 사회를 이끄는 주도그룹은 예정된 로드맵인 것처럼 보인다.
 
요약하면 1인 통치권자 중심의 영남 정치권력 지배체제가, 1부족 중심의 호남 정치권력지배체제로 바뀌었다. 문재앙 정치권력은 1부족 중심의 지배체제의 모든 악이 다 나온 시대이다. 정권교체는 惡의 해결을 바랐으나, 개벽신앙측은 지도자의 씨족의 문제로, 국민 너희들은 고대 씨족전쟁의 반복 공식에서 ‘노비’였다. 권력을 영남 부족 후원으로 창출하면 다 바뀐 줄 믿어라. 이런 식 아닌가?
 
윤석열 당선인 인수위에서 제일 실패하고 있는 것은, ‘변화’의 이미지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다수 국민에게 기억도 나지 않는 군사정권에서의 단절 이미지만을 강조한다. 지겨운 김대중 지배체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개혁’(사실은 구태)이라고 강조한다.
 
이재명 기본소득의 인기는 강증산 지도자에 줄 서는 씨족윤리가 '사물 표상'으로 나타나는 실체다. 국민이 1도 생각을 안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없는 군중들이 더욱 생각 못하게 천도교로 왜곡된 가짜뉴스가 많고, 귀족 내부는 부정선거로 개벽신앙이 아니라서 코드 일치가 어려운 이들을 배제한다. 윤석열 당선인인수위가 원칙적으로 옳은 발언을 할 때도, 호남 개벽파들안에 무당신앙 본래의 무릉도원 찾는 지형성이 한국정치판에서 의미하는 공산혁명 지향성은 1도 깨지 않는다. ‘집무실 이전’은 변화가 아니다. 김영삼 시대 이후로 군사정권 단절 움직임의 한 부분으로만 읽혀진다. 정치인들은 부정선거만으로 모잘라서, 조선시대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반대파 양반집단이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부정선거 반대집단은 이런 점에서 딱하다. <의식의 사물화>로 맺어지는 지배질서 현실에 대하여, 씨족적 원리로 충성맹세하면 단기간의 이익을 보장해준다는 ‘마약’에 도취된 지속가능하지 못한 이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한다.
 
아직도 정치인이 수리수리 마수리 얍!! 용적율 완화로 높아져라! 하면, 세상이 짠 주술마법으로 국민이 변화한다고 보나? 이재명 같거나 LH 부동산 비리 같은 공무원들과 정치인 연합의 이익이 뽑아먹혀지고, 10여년 뒤에는 또다른 누군가의 정부부채-공공부채-가계부채를 먹는 하마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천도교경제학>으로 무위이화 교리의 정치경제적 적용을 도대체 누가 허락했나? 아무도 허락하지 않았다.
 
 
수요-공급 곡선은 민법질서 속에서 수학적 균형을 전제한다. 무교에서는 이런 수요공급 곡선은 일탈하고 동양학의 음양이론으로 바뀐다. 중국적 종교질서 안에 시장경제는 없었다. 정치권이 전부가 거짓을 논할 때, 진실을 논하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