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1년 일본인 , 조선인 사업가들이 만주지역에서
수로공사 사업을 추진함 . 이 공사로 자국 토지를 보호하자는
중국인들이 수로공사 앞에서 시위가 발생 .
이 시위는 규모가 커지면서 일본인 , 조선인 사업가와 노동자를
살해는 일 까지 발생 . 이 사건은 만보산 사건으로 조선일보와 일본신문에 대설특보 하게됨 .
이 사건을 구실로 당시 반중감정이 많았던 조선인들이 폭발함. 1920년 부터 수많은 중국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와 저임금을 받고 공장과 시설에 취직하면서 수 많은 조선인들이 실직하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수많은 중국인 상점이 독점하면서 조선인 상점이 파산하고 문 닫는 일이 발생하고 있던 상황.
이 만보산 사건을 구실로 조선팔도 전체에서는 " 중국인을 죽이자 ! " 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 시작은 평양의 차이나 타운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중국인 학살과 중국인 상점을 돌아다니며 방화와 파손 상점주인 살해가 거칠게 확대됨 .

평양을 시작으로 서울 - 인천 - 수원 - 평택 - 대전 - 신의주 - 함흥 - 원주 - 전주 - 대구 - 부산 - 광주 - 청진 - 제주 등 ...
조선에서 중국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그 자리에서 끌려가 집단 구타를 당해 살해 당하는 일이 흔하며.
조선에서 중국인 상점은 모두 파괴되며 수많은 중국사람들은
일본경찰과 조선총독부로 도망을 가기 일수.
거리 곳곳에는 맞아 죽은 중국인들이 거리에 방치되었으며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본경찰이 출동함 .


일본경찰은 이례적으로 중국인을 살해하고 중국인 상점을 파괴한 조선인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워졌으며 실제로 경기도 이천에서 조선인 2명이 중국인 3명을 집단 폭행하여 2명은 중상 1명은 사망 했지만 일본경찰은 조선인들을 귀과조치 시킴.
이에 1931년 중국인들 대부분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하여 1931년 이후 부터 1992년 한.중 수교 까지 중국인들이 조선반도에 들어오질 못함 .
결론 - 과거 조상님들 ㅆㅅㅌㅊ 시절 지금은 대한민국 꼬라지
보시면 묘지에서 들고일어나서 다시 학살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