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이전의 유럽사 거의 모든 곳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그 유명한 가문《합스부르크》
1438년부터 1806년까지 

유럽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제위는

연달아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나왔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왕실을 거의 600년 동안 지배한 것으로 유명하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랑스 왕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유럽의 왕실과 연결되어 있다.

프랑스 왕도 외가로는 물론 합스부르크와 연결된다.
나폴레옹의 적자를 낳은 두번째 아내 마리 루이즈도

합스부르크가의 사람이다.

 


....오스만과의 전투(1526)로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하던 연방 가운데 하나인 헝가리 왕조가 단절.....

합스부르크 페르디난트 1세 ( 1503년–1564년)부터는

신성로마황제 및 오스트리아 대공이 헝가리의 왕을 겸하기 시작한다.

헝가리의 왕위는 합스부르크가가 승계했지만

헝가리는 독자적인 정부, 의회, 법률을 가지고

광범위한 자치권이 있다.
(중세의 정치적 신분제 전통인 

왕ㆍ공ㆍ후ㆍ백ㆍ자ㆍ남작의 귀족 지위가 있고

대개는 공작통치의 공국형태로 독립적인 국가형태를,

좀 더 규모가 있다면 대공국, 때로 왕을 자처하여

상위 권위인 황제에게 허락을 구하거나,

정치적으로 쟁취한다.

때로 제후국이라는 보호국을 자처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대공국은  오스트리아 제국(1804)을 선포
1804년 나폴레옹의 프랑스제국에 대항한다.

나폴레옹은 대프랑스동맹을 격파하고,

합스부르크가의 신성로마 제국은 해체(1806)한다. 

러시아와의 완충지대이자 꼭두각시로 제국내

왕국ㆍ공국ㆍ후국들을 규합 라인동맹을 결성한다.

이후 1차대전 이전 가장 큰 규모의 전투로

총62만여 병력이 싸운 라이프치히 전투(1813)에서

나폴레옹이 격퇴된다.

이 후 파리가 점령되고 나폴레옹제국은 붕괴한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1814년 부터 1815년까지 나폴레옹전쟁의 사후처리를 위한

빈 회의를 주도하면서 유럽최강국의 지위를 탈환한다. 

...................

하지만

프랑스 2월 혁명 (1848)에 이어

오스트리아 3월 혁명, 빈 혁명, 베를린 혁명등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국민국가(nation state)의

시대적 조류에 밀려 세력을 잃는다.

 

이탈리아의 독립과정에서 그 지역의 지배력을 잃고

프로이센과의 전투(1866)에서도 패하여

독일 군소국의 맹주지위마저 상실한다.

신성로마제국 이후 누려온

독일 군소국의 중심 맹주지위를 상실함과 동시에

이후 독일제국이라는 카테고리에서도 제외당한다. 


 

이 후 프로이센과 이탈리아의 동맹에 밀려

베네치아(1866)를 포함한 이탈리아 북부도 상실한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국민국가의 조류에 밀린

합스부르크왕가는 외교를 제외하고

각각의 정부를 가지는 형태로

헝가리(카톨릭) 귀족들과 타협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1867 ~ 1918년)을 탄생시킨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아 지역은 

오스만제국이 400여년(1463~1878) 동안 통치하던 지역이며

보스니아인 대다수가 그리스 정교를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같은  슬라브인이면서 세르비아인과는 종교적 차이로 갈등을 빚어왔다. 

(절라도 쉬키들.....갱상도 쉬키들......종교에 관계없이...

아! 실수 거긴 특별한 종교가 있구나!)

 

300여년 이상 인접한 튀르크  세력과 전쟁을 벌이던 러시아는

19세기 중반이후 범슬라브 민족주의 열기를 타고

 세르비아, 루마니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독립군과 함께

제12차 대튀르크 전쟁(1877-1878)을 일으킨다. 

전쟁에 승리하여 전후 처리를 위해 산 스테파노 조약을 맺는다. 


이 전쟁의 결과로 

몬테네그로, 루마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가  독립국의 기회를 얻는다.

 

산 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Treaty:1878년 3월 3일)으로

범슬라브주의에 편승한 러시아가 너무 많은 이익을 얻자

유럽열강은 불만스러웠다.

지중해의 제해권을 가진 영국입장은

불가리아는 사실상 러시아의 위성국이므로

러시아가 불가리아를 통해 

다르다넬스 해협(Dardanelles Strait)의 통제권을 확보해

지중해에 진출해 제해권을 위협할까 우려했다.(지도참조)

(1841년 평상시 외국군함의 다르다넬스 해협통과를 금지한

국제해협협정도 무력화 된다)

 

프랑스도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로 

중동 지역에서 차후 이해관계를 침해를 두려웠다.

양국은 불가리아의 해안지대 영토축소를 강하게 원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러시아의 영향권하의 범슬라브민족주의가

합스부르크제국의 위협임과 동시에

발칸 반도에 대한 자국의 이해를 침해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같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러시아제국과 삼제동맹의 관계인

독일제국의 비스마르크재상이

이해관계 조정(영토조정-사실상 러시아 봉쇄)을 위해

베를린 회의(Congress of Berlin: 1878.6.13.~7.13.)를 개최한다. 

 

《추가 수정》

외교사에서

러시아 제국의 가장 뼈아픈 패배를 기록한 "베를린 의회 그림

1881년 안톤 폰 베르너(Anton von Werner)의 작품" 

1878년 7월 13일의

라이히 챈슬러리(독일국가수상 집무기관-건물?)에서의 Final meeting 를 묘사.

 

Wikipedia (영문 그림설명)

 

앞쪽 중앙에 묘사된 독일제국 수상 비스마르크(63세,Bismarck)

왼쪽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외무장관

줄라 안드라시(55세,Gyula Andrássy, 6월 영국과 사전 조정이 끝난 상태였다.)

악수하는 오른쪽 러시아제국 2전권자

표트르 슈발로프(51세-1827년생.Pyotr Shuvalov,제복형태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외무장관과 전체적으로 같은 디자인이다. 왼쪽 끝의 카롤리의 시선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나이와 외모가 매치가  보드카에 쩔어서? 화가의 묘사 실수? 화가의 음허한 정치적 의도? 그림 설명 오류? 누군지 사정을 아는 분 있으면 가르침을 바란다. )

 

 왼쪽 의자에 앉아있는 러시아제국 외무장관

-제1전권자, 알렉산더 고르차코프(81세 Alexander Gorchakov, 26년의 외무장관 경력 중 가장 쓰라린 패배를 당한다:루마니아의 베사라비아와 흑해 동부를 얻는다)

그의 왼쪽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제2전권자

알라호스 카롤리(53세,Alajos Károlyi ),

그가 손을 뻗어 잡은

영국 총리 벤자민 디즈레일리

(78세 ,제1대 비콘즈필드백작,Benjamin Disraeli, 솔즈베리 후작을 외무장관에 기용하여 외교전의 대승을 이룬다. 이미 4월과 5월 러시아제국과 사전조율을 마치고, 6월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사전 조율, 오스만 터키제국과는 키프로스 비밀협약 체결-영토권은  오스만 터키제국이, 행정권은 영국이 갖는 것으로 오스만의 분할을 원하는 국내 정치적 요구를 잠재운다)이다.

당시 국제정치에서의 위치를 볼 때, 프랑스에 대한 묘사가 묻힌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회의의 여파는 자유주의 국민국가와 민족주의 독립운동의 역사적 조류,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유럽을 제1차대전으로 이끈다.

 

이 회의에서 체결된

베를린 조약으로  산 스테파노 조약의 29개 조항 중

18개  조항이 삭제되거나 대폭 수정된다.
(베를린 조약의 여파로 1885년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과

1912, 1913년의 제1, 2차 발칸 전쟁이 발발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아의 자치정부 수립은 취소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오스만제국을 대신한 관리권을 얻는다.

(1차대전의 도화선이자 제국의 해체 폭탄을 얻은셈인가?)
불가리아는 오스만제국 치하의 자치권으로 후퇴한다.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편들은 대가로 키프로스를 얻는다. 

러시아 제국은 300년에 걸쳐 러시아-튀르크 전쟁을 펼친 끝에,

드디어 튀르크를 밀어내고

남방진출의 기회를 얻는 듯 하였으나

이 회의에서 서유럽 국가들의 방해에 의해 다시 봉쇄당한다. 

 

이로써

독일제국-오스트리아제국ㆍ헝가리제국-러시아제국의

3제동맹은 사실상 종말을 맞는다. 


1881년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밀약을 맺고

이듬해 공국을 선언한다.

1903년 세르비아공국에 쿠데타 발생

친게르만계에서 친러시아계로 정권교체 후

무기구입처를 변경하고 불가리아와 관세동맹을 맺는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세르비아의 주수출품인

돼지에 고율의 축산관세를 부과한다.

(일명 돼지전쟁이라고 부르는 무역분쟁-

러시아는 세르비아 지지 결국, 오스트리아 패배) 
...................
1882년 독일 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과 삼국 동맹을 맺는다.
(1915년 4월 이탈리아는 이 동맹을 배신하고

런던조약을 맺고 전후 런던 조약의 미이행으로

이탈리아는 다시 2차대전 주축국이 되는 계기가 된다)

러시아제국도

프랑스 제3공화국과 영국ㆍ독일을 견제하는

1892년 러ㆍ불 동맹(1892~1917)을 맺는다.

이 동맹으로 러시아제국은

1891년 시작한 시베리아철도 건설 비용을

프랑스로부터 투자받는다.

당시 발칸반도는

게르만민족주의와 카톨릭, 범슬라브주의와  정교,

이슬람 튀르크등 인종적 민족주의와 종교적 갈등이 혼재하고,

베를린 조약으로 봉합될 수 없는

열강의 이해관계-특히 러시아제국의  남방진출의 야망이

잠시 지연된 것에 불과했다.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전쟁을 예고하는 가운데서도

인류의  번성을 가져올 기술도 함께 싹텄다.

조명용으로 오일의 정제가 연구되고

19세기 중반부터 시추기술로 유전개발이 가능해 짐과 동시에 

증류한 오일을 이용한 내연기관이 연구 실용화되기 시작하면서

가솔린, 등유, 디젤엔진의 내연기관이

20세기가 되기 전에 모두 발명된다.

1908년에는 소형화된 오토바이 엔진도 등장한다.

또한 인류는 1.2차 대전을 통해 이 기술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눈부신 기계문명을 이루어낸다.

양대 전쟁 중에 화학산업도 놀랍도록 발전하여

질소비료를 개발하여

18세기  말의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 인구증가 대비 식량부족이라는

(어느 시대나 있는 인간의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비관론을 과학으로 극복하는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에 큰 진전을 이룬다.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라고 명명한 정신사의 발전도

인류가 기후환경에서 비롯된 위기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인식의 경기(驚氣) 내지 불일치의 극복을 모색한

정신의 발현이었듯이 20세기 전후의 불행의 시대에도

인류는 부단히 발전한다. 》


이하 간략....
영국-독일 해군력 경쟁 1898년 - 1912년/영국-프랑스 협상1904년
1904년 러ㆍ일전쟁 발발(1904년 2월 8일 - 1905년 9월 5일)
제1차 모로코 위기1905년 - 1906년 /영국-러시아 협상1907년 
보스니아 위기1908년 - 1909년 /제2차 모로코 위기1911년 
이탈리아-튀르크 전쟁1911년 - 1912년 /발칸 전쟁1912년 - 1913년 
사라예보 사건1914년 6월 /7월 위기1914년 7월 


보스니아위기 1908년~1909년

1908년 오스만의 혁명으로

황제가 폐위되는 틈을 타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공식적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한다.

슬라브계인 러시아와 세르비아왕국과 몬테네그로공국이 반발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땅은.....

어차피 근 30년 동안 실질적으로 지배했는데 어쩔....)

오스만 제국에는 보상금을 지급한다.

............

남슬라브민족주의자들은

세르비아 왕국을 중심으로 

'南슬라브인들의 땅'-유고슬라비아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였다.
오스만제국은 이미 쇠약해져가고 있었고

가장 방해가 되는 세력은

(게르만민족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다.
세르비아왕국 제2대 국왕 부부를 살해

잔인하게 토막낸 세르비아의 '검은 손' 조직은

마침내  (게르만 제국의) 황태자를 표적으로 하고

22명의 실행단원을 선발한다. 

1914년 6월 28일 1차실패 후  2차에 암살을 성공한다.

황태자 부부 피살사건 이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는 반세르비아 폭동이 일어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당국자들이 부추김과 함께 내재된 종족 갈등이 촉발.
사건 다음날인 6월 29일, 

보스티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 시내에는

아침부터 보스니아인 이슬람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오스트리아 제국기를 흔들며

세르비아인 척결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인다. 

시위대는 세르비아인 상점을 약탈하고 불태웠고, 

세르비아인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이날 시위로 세르비아인 2명이 사망했다.

시위대는 사라예보 외곽 도시로 번졌고, 

인종 증오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역을 휩쓸었다. 

보스니아 이슬람들은 오스트리아의 보호 아래 슈츠크롭스(Schutzkorps)라는 민병대를 조직해 인종청소를 집행했다. 

이 증오의 열풍을 이용해

오스트리아-헝가리 당국은 세르비아인 5,500명을 체포했다. 

이중 700~2,200명이 감옥에서 사망하고, 460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세르비아에서도 또다른 종족주의 열기가 불었다. 

베오그라드 시내는 합스부르크가의 황태자를 살해한 자를

애국자로 환호하는 분위기로 들끓었다. 

고위 관료까지 나서서 테러를 영웅적 행위라고 칭찬하고

 ‘검은손’이라는 조직은 오스트리아가 가공한 거짓이라고 선전한다.

(문뻘건이 구라로 국민선동하는 것 생각나노!

맹목적 증오는 서로에게  어떤 불행을 가져오는지

역사가 보여준다.)

 

 

하다보니 약간의 보충이 아니라 

졸라 개보충이네!

미안하다! 눈 아프겠다! 그만 한다! 

팬티엄도 못되는 용량으로 

라이젠 스레드리퍼 작업을 처리하려니 

잘 안되네! 

그림 3개만 추가하고 끝낸다.


 


 

세계는 변했지만,

인간은 더디게 변하네! 

 

《보충하고자 한 원글》

GREAT GAME-유럽의 화약고 발칸! 

(쉽지 않네!)

https://m.ilbe.com/view/11392037244#_enli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