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문빠는 윤석열이 이기면 보수의 승리 아니라 이재명의 패배로 볼까?-

필자는 공병호 박사님을 응원했었다. 지금도 그 지지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전망이 그 분과 이젠 달라졌다. 정권교체가 윤석열이 문재앙보다 획기적인 경제 마인드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보는 게 현실에 부합한다. 전체의 경제구조는 똑같고, 다만 좌익에 가는 돈줄만 차단되거나 상당히 규제가 된다는 것 뿐이다. 그 규제되는 만큼 반대급부로 누군가 이익을 누릴 가능성도 있겠다. 그런데, 어저께 간만에 들었던 공병호 박사님 유튜브는 필자와 다른 전망을 내세우고 있다.
공병호 박사님은 군사정권 경제학을 기억할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1인 통치권자의 권력집중을 방대하게 동의를 받는다. 그런 문화가 있고, 그 연관한 관치경제학이 있다.
그러면, 지금 문재앙 경제의 문제인 부동산 과표 폭등과 과잉 납세, 및 각종 다중채무로 인한 극심한 소비여력 침체, 이 속에서 대기업과 정치인만 살찌는 계절에는, 군사정권의 1인 통치권 강화를 위한 충군애국 이데올로기같은 게 없을까?
공병호 박사님은 문재앙 비판에 1990년대에 민주당에서 나온 전두환 비판 프레임을 쓰는 일이 반복된다. 물론, 그 시대에 가장 청춘이면 그런 판단이 가능하다.

‘무당’은 중국사상사에서 유불선 모두의 근원이다. 1인 독점적 제사장을 말한다. 군사독재정권은 1인 통치권자의 권력강화를 위한 공권력이 문제라면, 좌파독재정권은 ‘교주-포주-접주’등 다양한 방식의 정치적 스피커들의 권력강화를 위한 현금 살포가 문제다. 여기서, 필자는 돈은 재벌앞에 쌓아둬야 하는데 나누면 문제라고 보는 전경련 경제학자의 도식은,도식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윤희숙, 김정호 교수 류의 방식으로 19세기 노론독재 민란 봉기 때 나타나는 사회구조의 재탕인데, 이를 고의적으로 북유럽식이라고 ‘억지 분단장’하여 좌익에 이로움을 줄 이유가 없다고 본다. 국제화시대에는 그런 헛소리는 북유럽 사람들에게 한국에 ‘알러뷰 꼬레아’하면서, 더욱 그 상태를 대못 박는 역효과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싸이 흉내’내거나 ‘오징어게임’흉내낼 때 친근감을 한국이 느끼듯, 당연히 한국에 북유럽마인드가 설친다고 하면 북유럽 사람들이 ‘알러뷰 꼬레아’ 안할 수가 없다.
현재까지 이어진 경제구조는 김대중 마인드를 기초로, 노무현이 2006-2008년에 세운 도식이 지배한다. 노무현이라는 무당제사장을 향해 돌격 앞으로, 노무현만 믿어요 달려든 친노가 하우스푸어로 10년간 묶엿고, 이제 친문들이 영끌해서 또 똑같은 일을 당했다. 박근혜 정권을 차지한 과거 친노들이 부채유발 문제를 해서, 하우스푸어로 묶인 사람들을 풀어줬듯이, 미래의 친문들이 영끌하다가 자산가치 수직낙하 할 때에 잠겨버린 사람들을 구출할 수 있을까?
군사정권은 1인 통치권자의 정당성으로 권력을 집중한 자의 삼권분립이 뭐냐, 십새끼야! 하는 입장이다. 좌파독재정권은 유불선을 아우르는 고려연방제 주권으로, 좌우를 아울러, 동서를 아울러, 남북을 아울러, 문사철을 아울러, 아울러, 아울러, 집중하여 삼권분립이 뭐냐, 야이 씨발년아! 하는 입장이다.
문재앙 경제학의 문제는 결국은 호남 향우회 70대 노인들이 기억하는 일제시대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전라도 천도교로 하는 관성의 문제에 잇다. 이를 극복하지 않는 한, 계속 포퓰리즘에 시달린다.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하지만, 광주민중항쟁에 깔린 그러한 요소를 거의 전부를 계승한다.

친문들은 눈치를 챘다. 정권교체가 되도 계속 보수 우파는 호구신세라는 것을. 계속 포퓰리즘 경제가 지배한다는 것을. 그냥 고려연방제를 잠시 늦춰서 보수 우파에 ‘목숨만 살려준다’ 상태라는 것을.
어제는 난생 처음으로 ‘뚜껑 열린 티브이’를 30분 정도 들었다. 김건희를 제2의 최순실로 프레임화할 모양이다. 사실, 그런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김건희에겐 ‘타짜 정마담’이 어른 거린다는 것이다. 조폭 연루 혐의의 이재명 부인의 녹취록에서는 ‘조폭 부인’의 어둠이 연상되는 것과 다르면서도 걱정스러움으로는 공통 부분이 있다. 법치국가에서 개인인생관이 법치주의보다 앞서는 경우에는 불안감을 줄 수 밖에 없다.
공병호 박사님 유튜브는 정권교체가 되면 다 바뀐다고 보지만, 필자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물론, 대선에서 반 포퓰리즘 공약을 바로 쓸 수 없다. 군사정권에 1인 통치권자 권력강화로 짜여진 문화에 길들어진 개인이, 그 상태가 잘못이라고 깨닫는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의 개인이 깨닫는데도 마찬가지다.
10억원 이상의 자영업 다중채무를 짊어지고도 ‘행여나’하는 요행을 바라는 분들이 너무 많은게, 현재 한국경제의 최대 위기다. 경제마인드 대신에 무당마인드가 압도한다. 기복주의와 운과 우연을 믿는 이들이 압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좌우 아울러’ 하는 중도 중용 조화 균형 상생의 독점적 천지만물을 아우른다는 무당제사장 경제학은, 사실상 아무것도 책임을 안지고 마음대로 하고 이익은 귀족이 피해는 너네가 하는 체제다. 이 상황에서, 그래도 뭔가 희망을 이어가려면, ‘아울러’가 아니라 자유민주 우파 시장경제의 몫이 필요하다, 자꾸 분권형을 주장하며 제도권에 파고 들고, 제도권에서는 계속 시장경제원론, 자유주의 원론을 주장해야 한다. 동시에 그런 것과 잘 맞물리는 기독교신앙(시장경제국가의 기독교유형)도 같이 주장해야 한다. 한국경제는 터져서 바닥을 칠 모양이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 정책은 대중의 현실감이 없다. 1987년 김대중, 1998년 김대중만 있다. 바닥을 치는 것은 필연인데, 거기서 바닥을 뚫고 영구추락하느냐 아니냐는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윤석열의 승리를 국힘의 승리, 보수우파의 승리가 아니라, 이재명의 패배로 트위터 문빠들은 바라본다. 거기에서, 현타가 오는 우파 유권자층이 늘어나고 있다. 사실, 김대중의 공식이 딱딱 맞아들어가고, 김대중공식을 절반정도만 사용하고 인기를 끌던 김영삼의 시대도 아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