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주를 하던 나는 1894년 여름 일본을 떠나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던 조선으로 여행을 시도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남부 지방은 정부에 대한 봉기가 극심했고, 동아시아의 두 강대국인 일본과 중국은 조선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전쟁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전쟁은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의 정치적 문화적 관계를 이해하기에는 적기였다.

 

여러모로 조선은 작은 중국처럼 보인다. 다만 현재 중국의 축소판이 아니라 17세기 명나라 시절의 중국인 것 같다. 조선의 문화는 그 단계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조선은 오늘날 중국와 일본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에게 특히 흥미로운 비교 연구의 기회를 제공한다.

 

제물포

 

서울로 향하는 주요 항구인 제물포에서 조선의 수도 서울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직선거리로 30마일 정도다. 실제로 그러한 도로가 생기려고 한다. 끔찍하게 더운 7월 초의 날씨에 군장과 무기를 챙겨들고 서울로 행군하는 것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 작은 조랑말을 타는 것보다 걷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조랑말은 힘없는 귀를 길게 늘어뜨리고 짐 싣는 당나귀처럼 게으르게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나는 멕시코에서도 이보다 더 나쁜 도로를 보지 못했는데, 아마 이 말이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수도 서울과 이 나라에서 가장 큰 항구인 제물포 사이에도 차가 다닐 만한 도로가 없고, 거세게 흐르는 넓은 한강의 지류에는 다리도 없다.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작은 강에만 다리가 있고, 정작 필요한 곳에는 다리가 없다. 게다가 조선에는 독특한 풍속이 있는데, 홍수가 지는 계절에 다리를 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리가 물에 휩쓸려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1시에야 우리는 수도의 주항 용산에 도착했는데, 수도는 동쪽으로 4마일을 더 가야 했다. 용산은 한강의 가파른 물가에 자리 잡은 그림 같은 조그만 도시다. 다른 도시들처럼 가난하지만 활기가 넘친다.



 

수도 서울

 

수도라! 나는 그곳에서 15분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내 앞에는 2천 피트가 넘는 가파르고 삭막한 산들이 서 있었다. 정산 부위가 갈라져 있고, 눈부시게 하얗고 가파른 낭떠러지를 가진 독특한 야성을 지닌 산들이었다.

 

하지만 수도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 눈에는 시나이 반도의 호렙 산처럼 보이는, 황량하게 하늘로 솟은 바위들 사이에 있는 것은 아닐 텐데? 다시 한 번 이 그로테스크한 형상에 놀라고 있을 때, 나는 요철 모양으로 되어 있는 높은 성곽을 발견했다. 성곽은 산등성이를 따라 계곡에서부터 약 1천 피트 높이까지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잿빛 산허리 사이로 사라졌다. 이는 조선인들이 모방했을 중국의 성벽과 유사했다. 누더기를 걸친 내 짐꾼이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 이 초라하고 다니기 힘든 길이 조선 왕국의 수도와 주항을 연결하는 유일한 육로다. 이 길은 아름답게 휘어져 있는 중국식 이중 지붕이 높이 달린 커다란 석조 문으로 이어졌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나는 친분이 있는 외교관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서울은 아마도 호텔이나 찻집, 그 밖에 유럽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를 볼 수 없는 유일한 수도이자 왕의 거주지일 것이다. 이곳에 체류가 허락되는 유럽인은 외교관과 선교사뿐이다. 약 10년 전만 해도 조선은 이 외교관과 선교사들에게도 폐쇄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전설에 둘러싸인 땅이었다. 그 이후에도 극소수의 여행자만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헤세-바르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