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환 의원의 ‘통일국시론’이 희대의 사기극이란 판단 정도가 없으면, 정권교체를 바라는 20-30의 지지를 국힘당이 받기 어려울 것이다.
 
 
대학에서 서양 민주주의를 배운 사람들은 양당의 정치가 코메디라고 본다. 조선시대 사극의 실사판 버전처럼 양당 모두 어둠의 귀족 두목이 낙점한데로 움직인다. 민주당의 사사오입은 뚜렷한 위법 정황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재명의 경쟁자인 이낙연이 승복해 버린다. 법원은 위법이 명백한데, 문제제기를 기각해 버린다. 저게 민주주의 사법부 맞아? 그리고, 야당은 이낙연 지지자들의 역선택과, 이재명 지지자들의 역선택에서 원하는 후보를 세우기 위해서, 당력을 총동원해 버린다.
 
역선택은 어차피 돌아갈 표다. 그러나, 사실은 20-30의 홍준표 표심에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난 정권교체 자체를 바라되, 국힘 지지에는 아직 낯설은 표심이 있었다.
 
조갑제씨는 김영삼 요순시대를 그리워하는 노인의 대표주자로, 김영삼 시대 해법으로 홍준표를 윤석열 도와달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 26년에 4개월짜리라고 연일 토론회에서 빈정댄 홍준표는 자존심에서 허락할 수 없다. 20-30이 도구로서 선택한 홍준표이지, 덕질하는 팬심은 아니기 때문에, 그 표심을 묶는다고 캠프에 참여해도 得은 없고 失만 있다. 홍준표의 캠프 참여 거절은 나무랄 일은 아니다.
 


윤석열은 20대 때 좌파였다. 그런 정서라면 1980년대 좌파들의 교양서적인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을 것이다. 모든 역사는 현재사다. 그러나, 닥친 현실은 與와 野는 김대중 노무현 요순시대와, 김영삼 요순시대를 그리워하는 과거사 미화 일변도다. 윤석열이 대선주자라면 독자적인 개인 매력으로 접근해야 한다. 후보의 생각자체가 요순시대를 생각하고, 과거를 아름답게 착색하고, 그런 식의 생각 구조 속에서 大同을 생각하면 안된다. 이미, 이재명의 ‘대동세상연구회’가 그런 식으로 하여 중공형 공산주의로 선거운동 시작했다.
 
6.25 전쟁 신화를 국민에 깔아버리고, 좌파를 이분법적 소탕하며 그 전제로 과거지향적 요순시대를 희구하는 감정으로, 이승만 시대 등 우파들의 시대를 그리워하도록 하며, 공산당 피해자들을 오늘날 광주민중항쟁 전두환 진압 피해자처럼 하던 시대가 있다. 그때, 1980년대 운동권들은 모든 역사는 현재사를 주장했다.
 
지금은 문재앙 시대에 민중민족해방투쟁사의 과거 미화론과 그에 기반한 남로당 후손과 북로당의 결합의 넌더리 속에서 산다. 20대 정서는 다양할 것이나, 정권교체를 지지하면서도 국힘당에 낯설어하는 것은 좌편향 교육에 익숙하면서 우파 기성세대와는 사고구조가 이질적인 세대들의 모습일 것이다.
 
한국사회는 유성환의원의 통일국시론에서 상징적으로 뒤 바뀌었다.
 
유성환 의원 뿐만 아니라, 김지하시인의 한국현대사읽기에도 한국현대사에 존재하지 않은 요순시대적 대동사회가 있는데, 미국과 소련이 진입해서 망쳤다는 함석헌 프레임을 강조한다. 그 프레임에 동조하려면,
 
<민주화운동>이라고 쓰고 <老論化 운동> 이라 읽는 것을 긍정해야 한다. 모든 문제에서 노론 남로당 교육 빼고는 뇌가 텅텅 비어 있어야 한다. 그런 전제조건을 맞추기 위해 우파는 조갑제의 박정희 전기를 뺀 나머지는 철저하게 골빈놈으로 교육 받았다.
 
 
노땅들에겐 진리지만, 50대 이하에겐 고통의 근원이 된 모든 현재를 비틀어버린 악마적인 것이다. 여기서, <노땅의 시각>이 아니라, <50대 이하의 시각>을 허락해야 국힘당이 정권교체의 전망을 갖는다는 이야기다.
 


20-30의 하소연은 일정 부분은 받아내지만, 많은 부분은 못 받을 것이다. 당사자들도 알고 있다. 다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정말로 역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바뀌길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역선택과 경쟁하는 야당의 노땅 중심의 당력의 총방어에서는 황당할 것이다. 조갑제씨나 고영주씨나 우파에서 한다 하는 논객들의 대부분은 노인들로 각자의 요순시대로, 현재를 과거중심으로 본다. 즉, 모든 상황에서는 김영삼 요순시대를 그리워하는 집단파벌 붕당 사대부의 자아의식의 ‘과거-과거-과거’만 남아있는 것이다. 저짝은 김대중 요순시대를 그리워하는 집단 파벌의 붕당 사대부의식의 ‘과거-과거-과거’만 있다.
 
윤석열은 광주민중항쟁을 극렬히 빨았다가 역반응을 맞았다. 광주민중항쟁을 우파 후보가 다뤘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老論化 운동의 상투적 전략처럼 전라도 씨족만의 일을 외부에 숭배를 강요하는 부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종교의 자유침해의 권리남용이다. 조선시대는 다 괜찮았어. 민족신앙. 이런 가닥으로 젊은 세대들의 권리침해를 당연시해오는 뿌리깊은 과정이 있다. 그렇게 젊은 세대는 권리침해하고 민주당은 조선족, 동성애자,의 인권을 논하고, 국힘당은 북한인권을 주장한다. 이웃의 인권은 무시하고 저 편한데로 편드는 것은 ‘연고온정주의’이지, 인권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오늘의 감정으로 유성환의원의 통일국시론을 바라보면, 반공국시론이 깔린 전라도 남로당 소탕주의에 대항하여, 통일담론의 사실상 핵심인 해방공간의 <민주주의 민족전선>, 즉 남로당과 북로당의 도킹하는 장면에, 일반국민을 이데올로기와 신종교에 궁박상태에 빠진 것을 악용하여 사기를 친 것에 다름 아니다. 이승만 시대의 6.25 전쟁기의 북진자유통일은 냉정한 말로, ‘민주주의 민족전선’ 반응의 모방에 가깝다. 통일국시론은 영남 유권자를 호구 취급하고, 자기들 권력 갑질하겠다는 이야기가 현실의 의미다. 반공국시론의 시간보다 ‘통일국시론’이 월등히 긴 기간을 보냈다.
 
반공국시론 시간에 남로당 좌파가 차별 문제로 얼마나 많이 울부짖었나? 오늘의 현실에서 영남 우파 유권자에게 통일국시론이 어떤 의미인가? 평행이론으로 바라보자.
 
사실, 문재앙의 종전선언의 의도는 이미 1987년 5월의 민주당 정강논쟁에서 답이 클리어하게 나왔다. 그 이전에는 장준하의 공산화를 포함한 모든 통일은 善이란 주장에서 클리어하게 나왔다. 더 멀리는 김대중시대와 문재인 시대의 기득권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이 세운 학교라는 경희대인맥들이 다아는 의열단 선언에서, 만주 항일부족을 위해서는 살인 폭력 방화등 모든 수단을 다 써도 善이란 말이 나왔다.
 


前북핵대사라는 노인은 진상은 다 규명됐는데도, 아직 진상규명 안됐단다. 즉, 문재앙은 봐줘. 상도동 출신인데 동교동 김대중계에 꿔준 정치인이야. 이런 메시지가 아닐까? 세월호 사건에서는 우파세력의 궤멸이란 원하는 속내가 나올때까지, 진상은 다 규명됐는데 진상규명이 아니란다.
 
기본적으로 김대중 김영삼 파벌로 권력 갑질을 주도하는 신종교 노인들의 사고방식은 대단히 다르다. 노땅들이라고 그 분들의 사고에 일치하는게 아니다. 그런 권력에 끌려온 세월이 길 뿐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세대는 그냥, 김대중 김영삼 요순시대를 바라보는 신종교 무당신앙 노인네들의 상상속에는 없는 일일 것이다.
 
윤석열은 과도하게 김영삼 추종의 신종교집단의 프레임으로, 이재명 감옥 보낸다.에 갇혀 있다. 20-30세대들에게 어떻게 이 사회를 변화할 것인가? 현재 중심으로 논해야 한다. 현재 중심으로 과거를 보는 비판적 사고는 1980년대 운동권의 기본이다. 지금 20-30에도 그런 자유를 누리게 하자는 게 맞다.
 
홍준표는 기본 사고가 올드하다. 자기를 덕질해줄 사람으로 바라본다. 미디어가 20-30은 홍준표를 좋아한다는 제목 노출이 반복된 문제이지, 결코 홍준표 사고가 대학에서 인문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바로 알아듣는 표현이 아니다. 그런 표현이 거의 없다. 페이스북 들어가면 진충보국이란 표현이 나온다. 거의 대부분의 표현은 신종교 개념이다.
 
윤석열이 ‘현재’ 우리 사회 중심으로 논하는 젊은세대의 비판적 사고의 토대를 받아주겠다는 입장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교체 열망의 표심을 지지로 땅겨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