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GM 듣거 싶으면 듣고 듣기 싫으면 말고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선생들 대부분이
좌파 단체 소속이었음
이 새끼들 정치 편향 교육 존나 심했음
은연중에 자기들이 지지하는 특정 정치세력은 미화하고
그 반대되는 정치세력은 교묘하게 폄하하는
정치편향 사상독재교육 좆되게 했음.
그 중에서 제일 날조 왜곡이 심한 게 일제시대에 관한 건데
좌파 단체 교사새끼한테 배운거랑 실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랑 완전히 다름.

미국인 한국학 학자 힐디 강 이라는 작가가
일제시대를 경험한 1900~ 1920년대생 한국인들의 증언을 책으로 정리해놨음.
바로 위에 보이는 '검은 우산 아래에서'(2001년 美 출판 / 국내 2011년 출판) 책이 바로 그것임.
이 책을 통해 실제 일제시대 경험자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읽어보도록 하자.
* 저자 힐디 강(여자)은 백인이고 한국인 남편이랑 결혼해서 성이 '강'으로 변한거임. * 미국은 결혼하면 여자가 남편 성으로 바꿈
http://www.hildikang.com/
https://youtu.be/RQqYLrcekYU
강병주 1910년 평북 출생, 은행지점장

독립군, 의병들이 일반 민간인들한테 군자금 내놓으라고 강요하다가 돈 안주니까 그냥 죽여버림
이상도 1910년 경기 출생, 트럭운전수


일본사람들의 조직력 인상적. 마을에 저수지를 만들고 둑을 쌓고 다리를 놓았음.
면도날, 성냥, 레코드 플레이어 같은 신식 근대문물들도 가지고 왔는데 이상도는 그렇게라도 들여온 것이 나았다고 생각함.
홍을수 1905년 경남양산 출생, 사업가
이 사람 아들 홍기성씨가 97년 매일경제 신문 기사에 나오는데 여기서 증언한 내용이랑 일치함.(기사는 끝에 첨부)


홍을수의 아버지는 유학자..
일도 안하고 무위도식. 이 분 말고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도 자칭 유학자 선비 흉내내던 부친이 일도 안하고 먹고 놀아서 가난했다는 증언을 많이 했음.


일본인 교사들이 조선인을 얕잡아보지 않고 열과 성의를 다해 가르쳐주고 격려해줌.

홍을수는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어서 집에 돈을 훔쳐 일본 오사카로 도항함.

당시 농부들은 9월말 쯤 겨울옷으로 갈아입고 4월까지 계속 그옷만 입고 지냄. 그래서 존나 더러웠음.


어느 야쿠자 사장 밑에서 서점일을 하는데, 사장이 주경야독하는 홍을수를 좋게 봐서 가게도 하나 내주고 홍을수한테 월급 인상을 제안했다가, 홍을수가 거절하자 자기가 대신 그 인상분만큼 저축해놓고 나중에 홍을수에게 그 돈을 양도함. 덕분에 경제적 무리 없이 일본유학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음.

이후 홍을수는 아오야마대학靑山大學(영어교육으로 유명한 대학)으로 진학함. 대학에 가보니 공산주의자들이 존나게 많음.

홍을수는 공산당 활동 때문에 일본경찰한테 잡혀서 옥살이 하고 난뒤 조선으로 돌아왔음. 이후 농장 경영 등의 사업을 하며 실업가의 인생을 살게됨. 해방 후 일본인이 남긴 공장을 미군으로부터 양도받아 많은 돈을 벌게 됨. 은퇴 뒤 미국으로 건너가서 샌프란시스코한인노인회 회장을 역임함.

홍을수 선생 아들의 기사인데 홍을수씨 과거 이력이 등장함. 책에서 나온 것과 일치함.

아오야마대학 졸업생. 홍을수 경남. 1935년 동아일보 기사에도 등장.
김호준 1918년생 황해도 출생, 농부

단 한번도 일본사람들에게 나쁜 감정을 가져 본 적이 없다고함.
김서분 1914년생 경남 출생, 주부


김서분 선생도 일본인 교사의 성의, 열의에 대해 칭찬을 함. 심지어 해방 후에 다시 만나기도 함.
쌀로 핵을 만드는 쌀물리학의 창시자 도요다 다이쥬도 당선 뒤 자신의 일본인 은사 만나서 깎듯하게 인사했다고 함.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8/2012301_19498.html

김P 1931년생, 주부

김P 선생도 일본인 조선인간의 차별을 느끼지 못했다고 함.
김원극 1918년 함북 출생, 전매청 직원

김원극 선생도 똑같이 대우 받았고 차별을 당한 적이 없다고 함.
물론 이건 지역마다, 계층마다, 사람마다 조금 씩 다르고 이 책의 50%는 일제시대 조선인에 가해진 억압과 조선인의 저항에 대한 것임. 그런 내용들은 내가 굳이 이 글에서 그 내용을 언급안해도 학창시절에 이미 익히 배웠기 때문에 잘 알고있으리라 생각함.

김찬도 1907년 황해도 출생, 교사농부. 독립운동가.

김찬도씨는 교사이자 농부였고 독립운동가였음. 인터뷰할 시점에서 김찬도씨가 이미 죽고 없었기 때문에 부인 이옥현 여사가 증언을 대신했음. 김찬도씨는 온건민족주의자였지만 동생은 공산주의자로 월북하였다고 함.
http://hawaii.koreatimes.com/article/20180627/1187715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88558
이하전 1921년 평안남도 출생, 학생, 독립운동가

실제 고문을 자행한 것은 이른바 앞잡이라고 불렸던 조선인 경찰들.
영화 밀정에 나오는 송강호나 암살에 나오는 이정재가 오버랩된다.


형무소(교도소)에서 간수들이 정치범(독립운동가)들은 존중해줬다고 함.
안중근도 일본인 간수한테 존중 존경받고 나중에 친필 서예작품 같은 것도 일본인 간수한테
남기고 그랬다는 얘기 들어본적 있는데, 그 얘기랑 비슷한 거 같네.
형무소에서 다른 것 보다 먹는 게 고통스러웠다고 함. 전쟁말기로 치달으면 식량부족에 직면했기 때문에 상한 음식이나 건더기 없는 국이 나왔다고.


그 시대를 직접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의 관계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었고 사이가 좋았던 경우도 많았다고 해.

또한 일제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보시다시피 2013년의 술 취한 30대 좌파 정신병자에게 살인을 당하기도 했어.

패전 직후 한반도에서 수용소에 갇히거나 쫓겨 내려가느라 굶주려야 했던 일본인이 그린 그림.
원산에 살았는데 근처에 살던 조선인 여성이 애기포대기에 쌀을 숨겨 갖다 준 일의 `기억`을 남겨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기억을 소거해왔고 현재의 한일 갈등은 그런 70년의 결과이기도 하다.
-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일침 -
< 끝으로 >
좌파 교사 새끼들이 왜 이렇게 개구라를 치고 날조 선동을 하는지 알아봤더니
이게 북한 새끼들이 즐겨 쓰는 갓끈 전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음.
북한 노로당 최고위 간부 황장엽이 증언하는 '갓끈 전술'에 따르면
북 대중 포위망인 한미일 안보협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 중 제일 약한 고리인한일을 이간질한다 → 그 다음 단계로 한미동맹도 이간질한다. 즉 반미로 가기 위한 중간계단이 반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49&aid=000005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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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lbe.com/view/11375905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