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가 본질이었던 민주개혁정부, ‘엑스파일’에 빠진 공정과 상식
-교과서 법치가 ‘이단’이 되고, 신종교가 주인되는 악마 같은 세상-
 
 
이재명이 화천대유 사건으로 수세에 몰리자 썼던 페이스북의 ‘민주개혁정부’ 드립은, 문재앙 정책의 모든 것의 진실성을 부심과 동시에 노무현 시대는 물론이고, 멀게는 김대중 시대까지 소급한다.
 

동시에, ‘전두환 4천억 비자금’까지 이재명 화천대유 사건에 소환돼야 한다. 전두환을 편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의 법상식에 깔린 공정한 판단을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선거에 출마할까? 그들은 도대체 왜 엄청난 선거비용을 지출하고, 선거에 당선되려 할까? 관직을 잡고서 본전을 뽑았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은 이를 막으려 했다. 전방위적으로 이를 틀어막고 전두환 혼자 챙겼다. 오늘날 보면, 그 사이즈는 애교다. 물론, 전 국민이 쏘주와 맥주를 먹던 시절에, 박정희의 ‘씨바쓰리걸’(양주 중에 제일 싼 것)도 국민에 원성의 표적이 됐다.
 
김영삼은 모두가 부패한 시대를 다 틀어막고, 전두환 혼자 부패했던 상황에 대하여 정죄하면서, 유명한 드립이 있다. 이제 완전한 법치주의를 구현하겠다. 그 이후에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공포스럽고 공황스럽다.
 
사실, 이재명의 성남 건설 비리는 가로세로연구소 김소연 변호사의 대전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있다는 지적처럼, 전국을 까보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기를 쓰고 ‘김대중’ ‘노무현’까지 불똥 튀게 하지 말라는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이재명, 너 혼자 부패한 거야.> 지역주택조합이 전국에 몇 패턴으로 전국이 동일한데, 이재명의 성남 건설비리도 전국에 유사한 패턴이 반드시 있다.
 
내가 피해자로 있는 지역주택조합 문제를 잘 연구하면, 지역자치단체가 부정비리의 공범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法 은 지방자치단체가 법을 잘 지키겠지만, 사실은 부동산 건설 현실은 지방자치가 惡과 한통속인 경우 말이다. 지역주택조합은 토지매입율을 조사하라지만, 대부분의 지주택은 일반인들이 조사 못하게 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주택 사업 구역은 이미 공개가 되고 그 지역내 일반땅값은 공개가 된다. 조합원 납부비용으로 1원 한푼 안 써도, 그 지역 사업구역의 땅값의 절반도 안된다. 구청이 몰랐을리 없다. 지방의회의원과 그 지주택 사기꾼이 한통속이니까 고의로 눈감는 것이다.
 
국회와 한통속이 된 지방자치 단체는 소송에서 언제나 법 밖이었다. 유능한 변호사일수록, 지방자치단체와 안 싸우려 했다. 이번에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쓴 공공개발이었다. 민간개발인양 성남시가 주장하는데, 그러면 하나은행 컨소시움은 지주택 조합원처럼 제발로 고 위험에 수천억원을 배팅한 건가?
 
군사정권은 권위주의로 권력자가 법 밖이라면, 좌파독재는 두레식으로 귀족마피아 당파를 이루는 지방권력자는 법 밖이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성남시같은 금싸라기 땅을 제외한 나머지영역에서 거의 대부분 미분양으로 끝나고, pf 대출업자는 모럴 헤저드가 심각해서 부실채권이 된 pf에는 관심없고, 건설업자가 분양완성될 때까지 높은 이율의 이자를 내주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권력을 쥔 지방권력이 크게 건설로 뽑아먹은 댓가는, 그 지역상권의 붕괴다. 정상가격보다 일방적으로 쳐올라간 자산가격은 자영업 상권의 붕괴를 초래한다. 자본시장 확장을 바라는 전경련 성향의 보수논객은 이를 언제나 눈감았다.
 
피폐해진 자영업 상권 영역에, 좌파 영구권력을 위한 현금 살포가 나타난다. 그렇게 부정하게 돈을 벌고, 부정한 돈을 조직확장에 쓴다. 이게 반복이다.
 
시장경제와 공산주의가 나란히 나열되는 것은 신비할 거 없다.
 
오징어게임에서 456억 받은 세상의 상상과, 공산혁명 때에 권력 독점 이후 권력자가 누릴 상상은 본질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지방권력과 씨족 혈연끼리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그러나, 그게 서양시민적 민주주의다. 지방권력과 씨족 혈연끼리 부정비리였다. 그게 서양의 지방자치다. 지방권력과 씨족 혈연끼리 부패경제다. 그게 서양의 시장경제다.
 
이런 식의 언어의 창설자는 김대중이다.
 
이재명은 어차피 김대중 때부터 어차피 이중적이며 위선적인거 아니까, 화천대유 사건을 덮으려 민주개혁 타령한다. 과거 전두환 때 김대중 지지층은 김대중만 바라보았겠지만, 지금은 시야는 모든 것을 다 볼 것이다.
 
어느 쪽에서는 부정비리가 나와도 월북자가정들의 욕망인 대한민국 붕괴를 해줄 정도령이라고 이재명을 응원한다. 씨족 혈연의 님은 부정비리해도 된다. 도대체, 박근혜는 왜 감옥에 있는건가?
 
엑스파일에 갇힌 공정과 상식도 문제다. 국민의 법 상식은 법앞의 평등인 서양법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전라도 천도교 색깔로 대기업과 북한문제를 아우르려 한다. 물론, 홍준표도 천도교 색깔이긴 하나, 덜 문제적인 경상도 색깔이다. 윤석열은 ‘님’이니까 부패할 수 있다. 열외이다. 이렇게 유도하는 이들은, 모르긴 모르되 ‘부패 공동체’이거나 ‘부패 공동체 신입회원’을 꿈꾸는 이들일 것이다.
 
모든 매체와 권력기관은 모조리 신종교인이 장악했다. 부정선거는 그 여파다. 신종교 색깔이 안 맞는 정치인은 그냥 쉬시길. 법 밖에서 이런 이야기다. 하땡땡 같은 정치인은 과거 운동권시대부터 지금까지 쭉 상층에서 명령 내리면 잘 복종하는 웃찾사 코메디의 ‘형님 뉴스’ 길용이 같은 존재다.
 
곽상도의원은 이재명의 부동산 사기에서 최소한 ‘교사 방조’, 최대치로는 ‘종범’의혹까지 처해 있다. 조수진의원은 보아하니 마구 감싸는 움직임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그게 정답이다. 서양법으로 그게 맞나?
 
제일 고통 없이 한 멘트가 읽기 어려운게 조갑제씨의 인식이다. 확실히 신종교는 전라도가 양과 질에서 압도한다. 여기서, 경상도가 신종교로 전라도와 정면 승부하는 것은 어리석음이 확실하다. 군사정권 때 경상도의 시대는 기독교 중심이었으니 가능한 문제다.
 
조갑제닷컴은 전여옥씨의 윤석열 방어 문제로 내부총질 이야기한다. 이낙연이 이재명 보호를 위하여 내부총질 운운하는 추미애 향해서 내부(내부=이재명 아니고 내부=이낙연이라)총질하지 말라고 한다. 전여옥의 부정대상인 유승민 홍준표가 이낙연처럼 말할 수 있다. 전여옥의 드립자체가 서양 법치 인식이 아예 1터럭도 없다. 완전히 그야말로 순백의 노비신앙으로 청중을 고의로 돌린 거 같다. 그러나, 꼴 보니 자산버블이 터질 모양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 갈 모양이다.
 
오늘도 민경욱의원은 법치 놔두고 신종교인끼리 국회를 독식하는 것에 억울해 하며 활동한다. 나의 가장 억울함은 조갑제의 숨쉬는 거 그 자체격인 허구헌날 중공 문화의 조상숭배 코드로 과거를 지향하면서 부족전쟁으로, 고의로 싸우게 하면서도 경상도의 패배를 고의로 유발하느냐 문제이다. 조갑제는 글을 보면 법치 뿐만 아니라 서양인문학 전분야에 대해서 백지를 보인다. 그러나, 오직 경상도 신종교로 대중을 세뇌하는 탁월한 테크닉을 보여서 쭉 갑이 되고 있다.
 
국론통합이 과거의 1인통치권자가 아니라면, 부족중심이 아니라 적어도 투명한 법 앞의 평등이 돼야 한다. 그런데, 조갑제씨나 김대중씨나 신종교 색깔로 서로 싸우게 하면서, 양 라인을 박영수나 곽상도 등이 왔다갔다 하는 사회를 선호한다. 국민은 일방 부담만 지고 이익은 귀족만 먹는 구조다.
 
전여옥 조갑제의 ‘내부’(씨족주의)가 아니라, 홍준표 유승민의 ‘내부’(씨족주의)같은 끝없는 부족가문 싸움의 종언을 위해서, 서양법주의가 있다. 조갑제는 서양법 자체를 과거부터 지금까지 알았던 적이 단 한 순간도, 0.000000001초의 순간도 없다.
 
결국, 악마의 레버리지인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국민들을 열심히 일하려는 의지보다, 선거철마다 부족끼리 줄서고 그런 계기로 모였다. 부동산폭락론은 이명박 때 선대인같은 놀부 심뽀가 아니다. 부동산 폭락처럼 ‘악’의 공평한 징벌이 없다는 판단이 선 사람들의 알음알음 때문이다. 물론, 연계된 피해자는 모든 문제의 기원인 200조 가계부채를 1800조로 끌어올린 프로젝트의 창시자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국민소득 5만달러(어차피 부채버블로 올리고,고통은 민간 전가할 꺼 아니냐)와 고려연방제(역시 민간의 기본권리를 북한에 팔아먹는 것)의 경쟁 구조를 때려치우자는 이야기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긴 꿈’에서 깨어나자는 이야기고,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종말론적 심판이 오자는 이야기고, 니체식으로 말해서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를 보자는 이야기다.
 
나는 요즘 칼빈주의와 칼 바르트 신학등을 정리하고 있다. 통합측 교회의 신학이라고 정리한다. 그러면 그게 맞을 것이다. 모두에게 기록된 법칙, 규칙 등은 동일하다. 그런데, 조수진이 곽상도 빨아줄 때 특정 연고에 벌려준다. 특정 연고에 가혹한 잣대로 박근혜를 심판했던 것이다. 특정 연고에 가혹한 잣대로 한없이 특정인에게 열려진 게 윤석열 잣대 아닌가? 문갑식 주필도 큰 실망을 줬다.
 
나는 뭘 말하냐 하면 ‘로앤비’ 변호사 사이트의 주석서(교과서) 법이론의 정당성 이야기한다. 문재앙이 그런 가치를 5년 이상 깨버리니, 모든 게 개그가 됐다.
 
한국사회에서는 교회 비유로 신쩐지가 중앙에서 떵떵 거리고 정통 교리가 소외받는 현실로 보면 된다. 이랬던 모든 기반이 부동산 버블이었다.

이젠 버블 붕괴와 더불어, 김대중 노무현의 과오를 논할 때 아닌가? 도대체, 왜 김대중, 노무현은 과오란 평가에 열외인가? 최재형은 왜 김대중, 노무현 잣대와 전두환, 이승만 잣대가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