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경제학과 김대중 경제학을 헷갈리는 조선일보 부동산면의 문제점
-버블을 영원히 터뜨리지 않겠다는 것은 ‘인간神’이 되려는 발상-
가계부채가 <세계 넘버 1>이다. 1800조는 분식된 통계이고, 전세자금 대출까지를 포함한 모든 대출은 3000조다. 게다가, 세계 경제는 <바젤 3>시대다. 중공이 부채를 통해서 경제공룡이 된 것에서, 시장경제 진영의 반성이다. 두 번 다시 중공스타일의 괴물이 나오지 않게, 부채를 적정수준으로 쪼이겠다는 발상이다. 이 두 가지 요건을 종합돼서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적정하다. 그런데, 조선일보 부동산 면과 국힘당 이준석 대표를 포함해서, 여전히 글로벌 추세와 한국의 부채 현실을 눈감고, 신종교 무당신앙의 ‘탈규제’로서 ‘무위이화’ 교리는 실현되니까 풀 배팅 걸라는 식이다. 김대중이 창시한 범 민주당 경제학인 대중참여경제학 버전으로, 시장경제는 ‘老子’와 같다고 본다. 중국 남부의 무질서 경제가 시장경제와 같다는 이야기다.
때는 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경제학 이전에는 국가주의 케인즈 경제학만 있었다. 필자는 국가주의 케인즈 경제학으로 모든 물자를 분배하는 官의 수퍼파워 시대로 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유방임> 경제학이 실현 가능한가의 대학가 논쟁이 있었다. 민주정의당 측의 논객들은 ‘붕당망국론’을 내세우며, 자유방임 상태는 결코 시장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측은 붕당망국론은 식민사관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붕당망국론을 논하는 논조에 왜색은 나빴지만, 미국의 중국학과 중국의 중국학은 동일한 팩트를 다룬 부분이 존재했다. 즉, 붕당망국론에서 기인한 서술의 왜색성을 제외하고, 샤머니즘 문화에서 시민사회의 자연적 불성립의 주장이, 아시아를 비하하는 것도 폄하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박원숭의 성추행을 비호하는 시민사회를 이미 보았다.
1950년대에 지방자치와 정치인들은 미국 원조자금을 자기 앞에 끌어쓰기에 바빴다. 그때는 부채를 몰랐다. 그래서, 제대로 되는게 없었다. 이제, 부채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마음껏 하고 싶었는데 못하는 영역을 부채로 쌓을 수 있었다.
박세일 교수, 자유경제원 김정호 교수, 조갑제기자는 연일 규제를 풀기만 하면 저절로 잘 된다고 주장했다. 이때의 여파는 老子가 시장경제와 같다고 하는 일군의 세력이 창출됐다. 다, 거짓말이다. 천도교 무위이화 교리에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논하다가,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를 논했다. 한마디로 평가하면, 모든게 ‘거짓’이 됐다. 피해자의 경우는 ‘사기’라고 울분에 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입증은 어려울 것이다. 1990~2000년대는 시장경제는 자유경제원 라인이 독점하여 소개했다. 2010년 무렵부터 좌파가 학술담론에서 ‘원론 시장경제’를 꾸준히 소개했다. 그러면서, 신종교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또다른 시장경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민경국 교수의 하이에크 소개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문제가 심했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곧 영국과 미국이 유럽 사회에서 가장 캘빈주의 종교신앙심이 높았던 공간에서의 시장경제란 이야기다. 물론, 계몽주의란 말은 기독교 영역을 말하는 게 아니다. 민경국 교수를 포함하여, 정규재씨, 김정호 교수 모두는 기독교와 경제를 얽는데 모종의 심리적 경련이 일어나는 분들이다.
다시금 강조하건데, 하이에크는 철학자의 神이지 기독교의 神이 아니다. 그러나, 하이에크의 사유체계는 칼빈주의 사유체계와 정확하게 겹친다. 무난하게 부르주아 계급은 교회 내부에서는 교회 지도자로 하고, 세상 속에서는 부르주아 계급이 되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교회 속에서는 서방 기독교의 ‘바른 교의’, 그것이 고스란히 경제에서는 바른 경제 규칙이 중심이 됐다. 둘 모두를 통괄하는게 부르주아 계급이다.
바이든 뿐만 아니라, 종북 집회에서 후원자로 자주 등장한 위르겐 몰트만 같은 쪽이 있다. 하이에크가 ‘작은 정부’를 주장하고, 칼 포퍼가 ‘열린 사회’를 주장하는 것에서, 서방 사회의 그런 국가와 무관한 시민사회의 법칙(교회 내적으로 신앙 규칙)을 준수하는 것에서 사회 약자들은 정말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배우기 존나 싫어!! 싫단 말이야!! 하는 미국의 낙후된 이들은, 마약에 빠져든다.)
몰트만을 포함한 해방신학자는 낮은 곳에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주장한다. 삼위일체 자체가 동방기독교는 다르다. 성부의 강조점이 주어진다. 유대교나 헬레니즘의 공통점이 있다. 사실은 낮은 곳에 임하시는 하나님은 서방 기독교(트럼프 지지층)입장에서는, 일베정서로 표현하면 ‘조까는 소리’일 뿐이다. 정부가 하나님이라는 이야기이며, 물개박수 개돼지 모음에 가깝다. 문재앙이 실정을 거듭해도 정권 기간에 천문학적 정부 부채로 만든 부패자금으로 감사해하는 지지율이 넉넉하듯이, 바이든도 마찬가지로 지지율을 안고 있다.
칼 포퍼와 하이에크에서는 아리스토렐레스를 느낀다면, 케인즈는 압도적으로 ‘플라톤’이다. 대공황 탈출이라는 것에서 연역해 낸다. 바이든 성향의 MMT 이론가도 마찬가지다.
나는 하이에크냐 케인즈냐 이분법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트럼프 막판의 연준의장이 성공적으로 바이든과도 녹아드는 만큼, 경제를 둘러싼 서양이성은 매개고리가 된다.
조선일보 부동산면은 신종교처럼 ‘공맹’=악, ‘노장=선’의 이분법이다. 부채를 무조건 풀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미 비용 인플레 뿐만 아니라, 막강한 세계 넘버 1 수준의 부채로 인한 통화량 증가로 초래된 자산버블이, 민생경제의 폭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대기업은 편할 것이다. 중공의 기술개발도 중공이 인재가 뛰어나서 기술개발이 잘되는게 아니라, 부채를 통해서 뽑아낸 자본시장의 힘이 과학기술을 밀어올린다.
때는 2006년. 노무현이 김대중의 6.15 국토공학에 맞춰서 이미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으로 나타난 일본 열도 재개발을 부흥한다. 그때 경제학자들이 했던 말이 그것이다. 우리는 결코 일본처럼 금리의 조속한 상승을 통하여 버블을 꺼뜨리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양자택일에 처했다. 윤희숙처럼 버블 붕괴도 안되고 돈 살포도 안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 양자택일은 자산버블 붕괴와 시장경제 원칙의 극적 부활. (고통이 있더라도 주도권은 한국 국민)
2) 막판까지 계속 자산가격 우상향 떡상 노래하다가, 일순간 국제자본이 한국의 버블을 탕 터뜨리고 운지해 버림. (샴페인 터뜨릴 시간을 최대치로 즐기되, 고통이 더 극대화고 주도권은 외국이다.)
물가가 계속 하늘 높은 줄 오른다. 경제학 원칙으로 보호돼야 할 자산이 버블로 만든 자산가치인가? 아니면, 일반 국민의 소액 자산까지를 모두 동일한 가치로 보는 것인가? 당연히 일반국민의 소액자산까지를 포함한 것이다.
여기서, 신종교인들은 ‘조선왕조’식의 양반중심주의를 둔다.
씨족혈연 논리와 신분제 논리에서는 시장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막스베버의 사회경제사에서 반복에 반복을 하는 메시지다.
고민정이가 ‘곳간의 쌀’로 국가재정을 비유했다. 김대중 진영의 박현채, 변형윤을 포함한 모든 좌파경제학자의 토대는 농업이다. 중국학 책을 보면, 중국유불선에서는 아무리 서민을 아껴도 그것은 귀족 보호용이고, 서민을 보호하지 않는게 관행화라고 한다.
민주당 경선은 보지 않는다. 이낙연이 수백조를 뉘집개 이름으로 논한다. 이미, 자산버블로 인하여 과다 계상된 자산가치로 인한, 서민경제의 붕괴는 논외로 치는 것이다. 물론, 자산가치가 끝없이 우상향해와서 꾸준히 대출을 뽑아써 왔다. 이젠, 그것이 한계에 다다랐다.
요약하자.
시장경제 : 법칙, 규칙 중심 (서방기독교) - 부르주아 주권
사회민주주의 : 약자 중심의 탈을 쓴 개돼지 모음(동방기독교) - 황제(정부) 주권
김대중 경제학 : 지연, 혈연 중심 - 양반 혹은 그 연장선의 신종교 지도자 주권. 모든 규칙에서 자유롭게 하여 사민주의 같지만, 또 극강의 중국형 씨족제를 주장하여 아무런 보편타당성 없이, 책임도지지 않음.
가계부채가 3000조다. 여기서 왜 대출을 만팡지게 풀어놓지 않는가? 실수요자 운운하며 ‘中庸’을 빙자하지만, 사실은 중화주의의 中처럼 모호하기 짝이 없는 자의성도 없다. 계속 심리조작으로 아랫것들이 대출을 쓰게 하고, 그로 인하여 자산가치가 우상향 되길 바라고, 그것을 통해서 재원을 더 얻겟다는 발상은 조선후기 양반 귀족의 탐욕 그 자체다.
시장경제의 발생 : 부르주아계급의 농산물 수출
독일 경제학의 발생 : 정부의 행정 문제
한국의 경제학의 발생 : 양반 후손들의 탐욕
그만 알아보자.
이주열 한국은행장 뿐만 아니라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좌고우면하지말고, 시장경제 원론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지난 30년간 이끌어온 김대중 시스템은 마치 90년대에 30년간 이끌어온 군사정권 국가주의 경제학에 진절머리를 느끼는 만큼, 이미 손상돼 있다. 버블 붕괴와 더불어 김대중 경제학 라인으로 최근에는 변양균까지 이어지는 이들이 책임을 져야 될 사안이라고 본다.
조선일보는 문재앙에게 선진국은 가계 대출을 낮추는 데, 한국은 왜 늘어나냐 탓만 하지 마라. 신종교 특유의 후천개벽 환타지. 그런 것은 없다. 다, 사기다. 이런 먼저 고백 없으면, 정권교체가 되도 줄이는 것은 어렵다. 차라리, 먼저 터져 버려서 국가가 거지가 돼야지 나을까 싶을 정도다.
서구 자유진영은 무당신앙으로 중국 남부정서가 있는게 아니다. 바른교의 중심의 신앙이 세상속에서 통하는 바른 원칙주의가 있다. 세상에 가계부채 3천조인데 계속 풀자?? 그게 ‘자유’인가? 그게 ‘시장경제’인가? 김대중경제학은 범죄다.
한국은 두 마리 토끼 다 잡으려다가 다 놓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몰트만의 일관된 논조는 서방교회 개새끼다. 독일 즈그네 나라 루터의 종교개혁이 서방사회만 잘해줬다고 개새끼다. 동시성으로 미국 우파 기독교는 EU를 반대합니다. 등등, 조금이라도 동방 기독교와 얽히는 모든 것에 반대다. 이런 바뀐 세계 트렌드도 모르고, 아직도 1990년대에 기독교로 위장한 신종교를 손잡아준 독일과 미국 민주당의 연합인줄 착각한다.
가계부채로 인한 자산버블로 강북지역 대부분의 공간에서 생산성보다 자산가치가 월등히 높아서, 자기 집 담보로 대출 꼽아먹기 뿐 아무것도 못하면, 시장경제의 금융담당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가운데, 인플레도 존나 높아버리면 금융담당자는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뻔한데, 왜 이주열과 고승범을 원망하는 분위기냐?
우파에겐 1990년대 이후 경제학이 없었다.
본질적인 질문 !!
일본 경제관료는 병신이라서 버블을 스스로 터뜨렸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