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내가 알아봤다.

이용수 할매의 증언 퍼레이드

1) 이용수, 위안부로 가는 과정

14살이던 1942년 자다가 끌려간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96. 1. 23. 한겨레>

1942년 만 14살의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다​가 해방 이듬해인 46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1999. 3. 6. 한겨레>

15살이던 1942년 경 집에서 자다가 일본군에 의해 대만으로 끌려갔다. <2006. 7. 6. 동아일보>

15살 때인 1943년에는 동네에 있는 칠성국민학교에서 정신대 훈련을 받기도 했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1), 1993. 정대협 간』>

16살 때인 1943년 여름의 어느 날, 다른 4명의 동네 언니들과 함께 일본군에 끌려갔다. <2015. 3. 12. 대구MBC 강당>

1943년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코와 입 밖에 보이지 않는 모자를 쓴 군인이 우리를 데려갔다. <2015. 3. 12. 대구MBC 강당>

16살 때인 1943년 10월 고향 대구에서 이웃이 불러 외출했다가 다른 여성 4명과 함께 일본군에 끌려갔다. <2021. 1. 16. 조선일보>

1944년 나이 16살이던 어느 날 저녁 밖에 나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갔다. <2007. 6. 12. EBS ‘시대의 초상, 위안부라 하지마라>

1943년 만 16세의 나이에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대만으로 끌려가 고생을 하다 해방 이듬해인 46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1999. 3. 5. 연합뉴스>

1944년 내가 만 16살 때가을, 친구 분순이가 불러서 갔다가 일본인이 보여준 빨간 원피스와 가죽 구두가 얼마나 좋았던지 다른 생각도 못하고 선뜻 따라 나섰다. <『정대협 증언집(1)』>

17살 때 대구에 있는 집 마당에까지 일본군이 들어와서 끌고 갔다. <2012. 9. 14. 영남일보>

17세 때(1944년) 취직시켜준다는 일본인의 말에 속아 친구와 함께 대만에 있는 위안소로 강제 연행되었다.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

▸여러분, 저희들은 독립운동 선두에 섰습니다. 폭발(폭탄)이 빗발치는데 살아 나와서 여러분 앞에 똑똑하게 이렇게 서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 정말 여러분 보고 싶었고 여러분 앞에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저는 한없이 반갑습니다. <2017. 3. 1. 광화문 광장>

2) 전기 고문 관련 발언

​14살에 일본군에게 끌려가 가미카제 부대에서 전기고문까지 당하고 돌아왔다. <2019. 11. 13. 서울중앙지법 민사법정558호>

▸​15살에 가미카제 부대에 끌려가 온갖 전기 고문, 매를 맞아가지고 지금도 아야 아야 죽지 못해서 이렇게 산다. <2016. 7. 21. 서울신문>

16살에 자다가 군인에게 붙들려갔는데 군인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전기고문 등 갖은 고통을 당했다. 대구에서 우리를 데려간 남자가 위안소의 주인이었다. 우리들은 그를 ‘오야지’라고 불렀다. 방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안 들어가려고 하니까 주인이 내 머리끄댕이를 잡아끌고 어느 방으로 데려갔다. 그 방에서 전기 고문을 당했다. <『정대협 증언집(1)』>

3) 종전 소식 관련 발언

▸어느 날 부대 내에서 비행기 청소일 등을 하는 대만 노무자가 담 너머에서 전쟁이 끝났다고 알려주더군요. <2015. 4. 23. 뉴시스>

▸그래서 제가 어느 날 이 심부름하는 머시매 그 사람이 와서 전쟁이 끝났다고 했어. <2020. 11. 11. 법정 진술>

▸그런데 어느 날, 통 말이 없던 먼저 온 여자 하나가 “나도 조선 여자다” 하며 조선말로 전쟁이 끝났다고 말해 주었다. <『정대협 증언집(1)』>

4) 결혼 관련 발언

▸“내가 환갑이 되던 1989년 1월에 일흔다섯 살의 할아버지와 결혼을 했다. 남자가 싫어 일부러 나이 많은 노인네를 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의처증과 구박이 하도 심해 그것도 실패를 하고 말았다. 올해 2월에 이혼을 하고, 지금은 대구에서 혼자 살고 있다.” <『정대협 증언집(1)』>

▸ "대만에서 2년 동안 있었던 이용수(66)씨는 귀국 뒤 술집종원, 가정부 등 밑바닥생활을 떠돌다 가족들의 끈질긴 권유로 지난 87년 60살의 나이로 8남매를 둔 75살 된 노인의 후처로 들어갔다. 때늦었지만 면사포도 써보고 싶고 혼인신고를 하는 것도 처음이고 또 마지막 기회라는 것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5년 동안 살면서 돌아온 것은 치매에 걸린 남편의 행패와 폭력, 가족들의 냉대뿐으로 지난해 3월에 위자료 한푼 받지 못한 채 이혼하고 말았다." <한겨례신문 1993년 1월20일자>

▸43년 만 16세의 나이에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대만으로 끌려가 고생을 하다 해방 이듬해인 46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할머니는 결혼을 하지 않고 보험회사 등에 다니며 홀로 지내다 지난 92년 일본군 정신대 피해자로 신고한 뒤 매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가하고 지역의 피해 할머니를 만나는 등 일본정부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화제>정신대 할머니 명예대학생 과정 수료 <1999. 3. 5. 연합뉴스>

▸ 질문 : 결혼은 왜 안하셨어요? 답변 : 나는 이미 내가 버린 몸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 한테는 (순결이)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더러운 몸이다. 그러니까 나는 (순결이) 중요한 사람들한테 갈 수 없다는 그 마음부터 먼저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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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줄요약 : 정신이 혼미하다
PS : 위안부가 언제부터 독립운동 종목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