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도도 달력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 미쉘 푸코





 
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대략 1970년을 전후로 이전의 이른바
자신의 ‘구조주의적’ 혹은 광의의 언어학적 시기를 마감하고, 니체적 의미로 이해되어야만 하는 ‘권력의 시기’로 접어든다.
물론 푸코 스스로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은 구조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그 이전 시기의 푸코가 과연 구조주의자였는가의 여부는 이 자리에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1) 푸코과 권력, 정치의 문제

여하튼 푸코는 1970년을 전후로 변화 혹은 변혁의 이유와 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공시적인 혹은 이른바 ‘정태적인’ 구조주의적 함축을 지양하고, 권력의 문제에 집중한다.
푸코의 권력에 대한 이러한 천착은 대략 1970년 말을 기점으로 하여 시작되는 이후의
이른바 ‘주체 혹은 윤리의 시기’가 시작되는 1980년의 인터뷰에서조차 스스로 “근본적으로 나는 오직 권력의 역사만을 다루었을 뿐입니다.” 라는 발언을 가능케 할 만큼 푸코 사유의 근본적 지향점들 중 하나였다.

푸코는 1976년 언어학으로부터 권력에로의 이러한 전환을 ‘의미 관계들이 아니라, 권력 관계들’(Relations de pouvoir, non relations de sens)이라는 말로써 정리한 바 있다. 물론 이 권력의 시기를 대표하는 동시에 그의 대표적인 주저로 보아야만 할 1975년의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Surveiller et punir. La naissance de la prison)이 바로 그러한 것처럼, 권력의 문제는 푸코의 사상 중 가장 독창적인 동시에 논쟁적인 주제임에 틀림없다. 이 시기 푸코 권력관은 단적으로 1970년대 초 이래 푸코가 사용하기 시작하는 권력-지식(le pouvoir-savoir) 및 그 기초로서의 권력 관계들(les relations de pouvoir)이라는 용어로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속하는 푸코의 이른바 생명정치(le bio-pouvoir) 개념은 바로 이러한 관점 아래에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이다.








 







2) 전통적 권력관 비판

푸코는 『감시와 처벌』을 통해 권력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다. 이 때 푸코가 말하는 권력의 ‘기존’ 관념들이란 단적으로 플라톤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정치사상이라는 세 가지 권력관을 일컫는다. 우선 플라톤주의는 진리와 권력의 관계를 대립적인 것으로 본다. 곧 권력은 본성적으로 권력이 진리를 굴복시키려하는 억압적 측면을 가지고 있고, 진리는 그것에 굴종, 중립, 거부 혹은 초연하는 등의 다양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물론 플라톤의 ‘해답’은 진리를 이해하는 자들이 정치적 권력을 쥐어야만 한다는 이른바 철인정치론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단적으로 지배계급이 어떻게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진리에 복종할 수 있는가를 다룬 이론이다. 다음으로 근대의 자유주의적 권력관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기초적 배경 위에 상행위 및 시민적 자유를 첨가한다. 물론 이에는 사목적 권력(le pouvoir pastoral) 및 내치(公安, la police)의 개념을 포함한 다양한 근대의 통치 기술들이 포함된다. 이에 더하여 역사적으로 가장 늦었지만 당시 1970년대의 유럽, 좁게는 프랑스 사회 안에 사는 푸코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권력관은 물론 사회주의의 권력관이다. 사회주의적 권력관 역시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위험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관계로 본다. 곧 사회주의의 권력관은 단적으로 그것이 표방하는 ‘진리-이데올로기’ 사이 대립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진리는 과학성을 담보한 세계에 대한 올바른 반영으로서의 인식이며, 그것이 계급적 이해관계 곧 허위의식에 의해 가려진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물론 푸코는 이러한 세 가지 기존 관념들을 모두 논파하고자 하지만, 우선 스스로 이 모든 것의 중핵에 위치한다고 보는 플라톤주의의 권력관을 공격한다. 1973년 푸코는 브라질의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일련의 논문들을 모은 「진리와 사법적 형식들」(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을 통해 플라톤주의의 진리-권력관을 비판하며 자신의 권력-지식론의 단초를 내비친다. “[플라톤 이래] 서양은 진리가 결코 정치적 권력에 속하지 않으며, 정치적 권력은 눈먼 것이라는 거대한 신화에 의해 지배되게 된다. [...] 플라톤과 함께 서양의 거대한 신화 하나가 시작되는데, 지식과 권력 사이에는 이율배반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만약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권력을 포기해야만 한다. 지식과 학문이 자신의 순수한 진리를 찾는 곳에는 더 이상 정치적 권력이 존재할 수 없다. / 이 거대한 신화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모든 지식, 모든 인식의 뒤에서 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의 권력 투쟁이라는 점을 보임으로써 니체가 파괴하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이 신화이다. 정치적 권력은 지식의 결여가 아니며, 지식과 함께 짜여 지는 것이다.”
 

이제 푸코는 플라톤주의의 권력관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고 두 가지 근대적 권력관으로서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권력관을 고찰한다. 한편 푸코에 따르면, ‘우리 시대’에 이렇게 권력의 문제가 전면에 부각된 것은 ‘우리의’ 현실이자 과거인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의 존재이다. 푸코는 이들을 20세기 권력의 두 가지 커다란 질병 혹은 두 가지 병리학적 형태라 부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20세기 권력의 두 가지 커다란 질병이 칸트로부터 시작되는 주된 철학적 자원들 중 하나로부터 기원하는 ‘우리 정치적 합리성’의 관념 및 절차를 이용해 왔다는 점이다. “칸트 이래로, 철학의 역할은 이성으로 하여금 경험 내에 주어진 것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 시대 이후, 즉 근대 국가 및 사회의 정치적 관리의 발전 이후, 철학은 또한 정치적 합리성의 과잉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따라서, 푸코에 따르면, 이 ‘질병들’ 아래에 놓여있는 것은 합리성 혹은 정치적 합리성 자체의 문제*이다.



이 ‘질병들’은 칸트 이래의 국가 이론 내에 존재하는 근대적 정치적 합리성에 관련된다는 의미에서 고유하게 근대적인 문제들이다. 따라서 확립되어야 할 것은 근대 정치적 합리성**의 기제를 분석할 수 있는 권력 관계의 새로운 경제이다. 오늘날 권력은 다름 아닌 합리성 곧 진리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질병들’에 관련된 오늘날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다름 아닌 적절한 분석 도구의 결여이다. 권력에 고유한 관계 양식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분석의 도구를 발견하기 위한 첫 작업으로서 푸코는 기존의 권력 개념들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아래에서 나는 푸코의 이러한 탐구를 사법적 유형, 초월적 주체의 유형, 이데올로기적 유형, 경제적 유형 및 총체성의 유형이라는 다섯 가지 형태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구분을 통하여 푸코는 기존의 플라톤주의ㆍ자유주의ㆍ사회주의의 권력관 일반을 관통하는 지점들을 포착ㆍ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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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코가 인정하듯이 권력과 합리성 사이의 이러한 관련은 베버 및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푸코의 이러한 경향은 근본적으로 니체에 영향 받은 것이며, 실제로 푸코가 수행한 합리성-권력의 연관 역시 근원적으로는 니체적 관심에 입각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 : 푸코에게 있어 합리성(la rationalité)은 이성(la raison)의 특수한 형식이다. 합리성은 16-17세기 이래 태동되어 18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구축된 이른바 ‘근대적’ 국가 이성(raison d'Etat) 성립 이후의 결과 혹은 효과로서 간주된다. 푸코는 이 시대 이전의 사건을 지칭하기 위해 합리성이라는 용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반면 이성은 이에 비해 훨씬 더 일반적이며 광범위한 지칭이다. 예를 들면, 이른바 17세기의 ‘대감금’에 이어 나타난 ‘분할’은, ‘합리성/비합리성’(rationalité/irrationalité)의 사이가 아닌, ‘이성/착란’(raison/déraison)의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푸코에게 있어 합리성은 순수하게 근대적인 현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적 합리성이란 동어반복이다. ‘합리화’(rationalisation)라는 용어는 물론 베버적 함축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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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 좋으면 2편, 3편 계속 연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