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진틈이 있어야 그사이로 빛이들어온다
나의 항복은 적의 항복이며, 내 적은 바로 나의 의지다. 나의 마음이 진정으로 항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전투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내가 강해질 수록 나는 더욱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내가 휘두른 칼이 결국 나의 머리를 자르고야 말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가? 항복이다.
확고한 불변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나를 배반하고 있다. 마치 강물에 떠 있는 느낌이다. 언제 가라 앉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 또한 수용해야 한다.
현재의 내 위치는 나 자신의 허락을 통해 축적 되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앞으로도 계속 분개해야 하는 가? 그렇다면 끝이다. 분개는 나 자신을 공격할 뿐이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 분개할 수는 없다.
내가 지혜로운 인간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나의 임무다.
행복은 수단을 통해 달성되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향해 의지의 실천을 했을 때 길의 중간에서 우연찮게 얻은 물 한 모금 같은 것이다.
행복을 손에 넣고 싶다면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 되어서는 안된다. 행복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행복을 손에 넣고 싶다면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 되어서는 안된다. 행복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인생은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으로 연출 된다.
우리들 각자가 항해에 나선 배라고 한다면 인생은 드 넓은 대양이며, 이성은 나침반, 정열은 질풍이다.
자연이라는 우주의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자녀들을 무수한 위험과 고난 앞에 방치한 채 방관만 하고 있다. 그들이 죽더라도 다시 자기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악마가 숨어 있다. 이 악마는 내가 느끼는 현재의 감정과 기분이 최선이라고 소곤거린다.
논쟁이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이 주로 선택하는 무기는 누군가의 권위다.
세상 사람들은 난제와 부딪혔을 때 권위를 따르면서도 의기양양하게 스스로 판단한 것 처럼 착각에 빠지곤 한다. 권위를 갖춘 말을 인용했을 뿐이면서 마치 자신이 직접 고안해낸 결론 인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곤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 우리를 공포로 몰아 넣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이, 나를 쏙 빼닮은 천사 같은 아이가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핍박하는 악령인 것이다.
사람들은 사는 게 괴롭다는 말을 쉴 새 없이 반복하면서도 그 지겹고 힘든 삶을 종말로 이끌어줄 사고와 사건과 질병을 회피하기에 여념이 없다.
고통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걸어가야 할 필수 과정이다. 절대로 사라질 리 없는 유일한 길이다. 그 끝에 죽음이 있다. 죽음이야 말로 우리를 완성시키는 강력한 본성인 것이다.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난 자들이다.
불명확한 인생에서 죽음보다 확실한 사실은 없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보다 명확한 전제는 없다.
자신의 쾌락이 누군가의 고통으로 가능해졌으며, 나의 고통은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쾌락 때문임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는가? 아니다 단지 속여왔을 뿐이다. 아주 오랜시간 인간을 속여 왔다. 좀더 기다리면 좀더 노력하면 내가 그대를 찾게 되리라. 그렇게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
절망은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자 분별 있는 인간, 그래서 상처받은 인간의 침실을 정중하게 노크했을 뿐이다. 다만 지레 겁먹은 우리들이 절망을 죽음과 혼동하여 좌절하고 포기했던 것이다.
고통도 영원하지 않고, 사랑도 불멸은 아니다.
인내를 그대의 의복으로 삼아라. 의복을 벗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지리라. 인내를 벗지 않는다면 수치를 당할 일도 없으리라.
산을 정복하고 싶다면 산 정상의 방향이 바뀌어져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등반에 성공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까닭은 산길이 험해서가 아니다. 처음 목표했던 산 정상을 포기하고 다른 산봉우리를 쳐다봤기 때문이다.
성공에 집착하는 사람 일 수록 타인의 성공을 시기한다.
평안과 안식과 행복과 족함은 그대에게서 삶의 의지를 빼앗는 적이다. 그대의 삶이 평안과 안식과 핵복과 족함을 누리게 되었을 때 그대의 삶은 사육자의 의지를 따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대의 삶이 거대한 우리가 됨을 명심하라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기쁨을 찾지 못한 청춘은 인생의 지혜에 닻을 내리지 못하고 삶이라는 바다 위를 언제까지나 외로이 떠돌게 될 것이다. 고뇌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가진 자는 빼앗김을 두려워 하고, 이름을 얻은 자는 기억되지 못함을 두려워 하며 산다.
왜 인간은 진리를 찾는가? 이 보잘 것 없는 짧은 생애 동안 진리를 추구했다는 기만이 마음에 평안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선한 성질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선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러무르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라도 내부의 선함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은 우리에게 충분한 선을 베풀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타고난 선이 부족하다. 신이 우리에게 베푼 선으로는 건과 악을 판단하는 정도 밖에 쓰임이 없다.
번민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번민은 욕심에서 태어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욕심보다 강한 무기가 있다.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이다.
인생의 목적은 전진이다. 머나먼 향해를 떠난 배는 바다에서 풍파를 만난다. 풍파없이 배가 항구에 닿을 수는 없다. 그래서 시련은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낙엽처럼 힘없이 추락할 때 바람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러니 후회하지 않는다고. 너를 미워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진심으로 나의 생애를 사랑한다면 정해진 운명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랑이란 착각이다.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이며,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이다. 나의 사람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인간은 서글퍼 진다.
역사는 개인의 시간들이 한데 모인 기록이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끈기가 없으므로 호감은 언제든지 반감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겉으로는 의지가 강하고 총명해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나약 해지는 것이 사람의 본성임을 망각해서는 곤란하다.성공한 인생은 좋은 친구의 유무가 결정적이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친구로 둔다는 것은 그의 그늘에 가려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친구를 원한다.
달은 태양이 자리를 비웠을 때 별들 사이에서 빛 난다. 하지만 태양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 그늘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 없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인간의 자질 중 가장 필요한 한 가지를 꼽아보라면 성실을 택하겠다. 성실함의 미덕은 내게 부족한 다른 자질들을 보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아파하고 싶지 않다면 아픔과 친해져야 한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 영혼이 바라는 나의 모습과 친해져야 한다.
우리는 친절과 우정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친절이 그의 인격에 대한 감탄이라면 우정은 친구의 영혼을 위한 헌신이다. 친절이 상대방의 감사로 만족한다면 우정은 친구의 행복으로 만족한다.
사랑은 고통과 기다림에 대한 인내다. 고통을 치리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내가 나를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고통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는 이 밤이 부끄럽다.
사랑의 표현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고통이다. 사랑은 그 고통을 기다리는 것이다.
인간은 정직해져야 한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져야 한다. 지금 나는 본래의 내가 가진 능력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평가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사랑을 꿈꾼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노이로제 상태다. 연인과 함께 지냄으로써 나의 인생이 행복해질 것이냐에 대한 판단은 없다. 그저 곁에 두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 뿐이다.
연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고 신성하다. 그러나 속내는 성욕이다. 즉 본능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이기심이다. 이 본능이 특수한 외부조건의 도움으로 개체화된 것이 우리가 말하는 사랑의 정체다.
사랑은 고통과 기다림에 대한 인내다. 고통을 치리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내가 나를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고통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는 이 밤이 부끄럽다.
사랑은 고통과 기다림에 대한 인내다. 고통을 치리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내가 나를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고통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는 이 밤이 부끄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