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토 타카 加藤鷹
데뷔 1988년
은퇴 2013년
작품 약 15000개
상대배우 약 8500명
사람이라는 게 그럼.
죽도록 사랑하다가도 이별 후 몇 년이 지나면 갑자기 이름이 떠오르지 않거나, 같이 갔던 장소를 쌔까맣게 잊게 되거나, 씁쓸하지만 시간이란 게 그런 것임.
한때 내 하드디스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숱한 AV 배우들이 얼마나 갈려나갔을지 짐작도 안 됨. 가끔 옛날 영상을 보면 ''내가 이깟애를 좋아했었나;;;;;;;;"싶을 때도 있음. 그것이 사람이고 그것이 인생임....
소싯적에는 카토타카 성님처럼 나도 고수가 될테야 하던 적도 있었는데 어느새 그 이름을 완전히 잊고 '안녕하시미켄!'을 보고 있던 나도 그런 거겠지...
'골드핑거' 카토 타카가 유튜브에 채널을 열었음. 2~3주 정도 됐음.
요즘이야 시미켄도 있고 츠보미도 있고 유나도 있고 한국 유튜브 하는 애들이 제법 생겨서 아무런 느낌이 없을 줄 알았는데
기억에서 잠시 사라졌던 사람이 이렇게 뜬금없이 채널을 여니 기분이 묘함.
난 오늘 카토 타카라는 남배우에 대해 간략하게 기억을 되짚어보고 싶음.
이 사람은 걍 AV 업계 역사만 풀어도 아마 몇년은 거뜬하게 썰을 풀거임.

카토 타카는 한때 AV 남배우를 대표하던 이름이었음. 남배우=카토타카였음.
특히 시오후키(분수쇼)와 테망(손가락플)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1등 공신이 바로 카토 타카임.
AV 작품의 대세는 물론 일반 대중의 성문화까지도 바꿔버린 양반이라는 것임.
카토타카는 1980년대에 AV 남배우로 데뷔했음.
이때는 좀 특이한 시대인데 일본 AV의 초창기였고 그래서 거의 99% 정도의 작품이 헛ㅈ질로 이뤄졌음.
모자이크를 해도 헛ㅈ질, 모자이크를 안해도 헛ㅈ질. 한마디로 국내 에로 영화판이랑 거의 비슷했음.
무라니시 토루 감독(넷플릭스에서 살색의 감독 실존인물)이 감옥갈 각오하고 실제 삽입 촬영을 강행하기 전까지는 다 헛ㅈ질인 셈임.
실제 삽입이 해금되고도 2000년대 초반까지도 헛ㅈ질이 있었으니 80년대에는 오죽했겠음.
시오후키의 개발이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게 됨....

1980년대의 대세는 여배우 중심임. 이때 남배우는 사실상 그냥 아무것도 아닌 존재고(스텝들이 대타 뛰기도 하던 시절;;;;;;;;;;) 여배우가 얼마나 좋은 연기력을 펼치느냐에 중점이 맞춰져있었음.
그도 그럴만한게 AV 시장의 초창기다보니깐 대부분 이쪽으로 넘어온 초창기 멤버들이 영화사 출신이 많았음. 그러니까 연기력 같은 거에 초점을 많이둠.
무라니시가 실삽입 시대를 열긴 햇으나 이것도 먼가 과도기에 가까웠지 모두가 실삽입을 반겼던 것이 아님. 1990년대로 와도 헛ㅈ질이 조금씩 해금되는 분위기였던 거지 이때도 헛ㅈ질이 많았음. 게다가 떡모자이크 시대기 때문에 분간을 하기도 어려움.
그래서 초점이 '전희'에 점점 맞춰지기 시작함. 본격적으로 남자 배우의 실력이 드러날수 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한 것........
"그 전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에서 시오후키는 시작됐다" - 카토타카
카토 타카가 실제 인터뷰에서 했던 말임. 헛ㅈ질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 전희 단계에서 시청자에게 강한 임팩트를 줄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이때 카토타카는 그렇다면 청각자극, 시각자극을 동시에 줄수있는 테망(손플)을 발전시키자 머 이런 식이 된 셈.
떡모자이크 뒤에서 손으로 청각적인 효과를 주면서 뭔가를 하고 있다가 분수가 뿜어져나오는 장면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엇음....
카토 타카는 무라니시는 물론 살색의 감독의 여주 쿠로키 카오루와도 작업을 했던 사이임.
진짜 남배우의 조상 같은 셈.
최근에 유튜버로 절정을 맞이하고 있는 시미켄이
AV에 관한 편견을 깨는 썰을 많이 풀고 있는데 그 중에 시오후키 얘기도 있었음.


시미켄은 유튜브에서 "시오후키를 하지마라. 시오후키는 남성들의 오해다. 여성에게 성적 쾌감은 없다"라는 발언을 했음.
지금껏 시오후키 플레이에 대한 막연한 환상으로 혹한의 트레이닝을 하던 남자에게는 충격적 발언.
이같은 내용을 시오후키의 아버지라고 할수 있는 카토 타카도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음.

시오후키를 개발한 이유
"섹스 과정을 1부터 10이라고 봤을 때 시오후키는 중간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결국은 전희라는 것이다.
내가 AV 업계에 처음 왔을 때는 여배우의 퍼포먼스나 재주가 중심이었다. '이렇게 잘 하는 여배우가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오후키 개발에는 당시 AV 업계의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에는 여배우와 남배우가 실제로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전에 뭔가를 보여줘야한다'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요즘처럼 실제로 하는 여배우만 있었다면 당시 아무도 그런 걸 생각해내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격렬해지는 시오후키
"나는 조금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것이 아니라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격하게 뭔가를 해서 강제로 뿜게할 바에는 안 하는 것이 낫다."
시오후키의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할 정도임.
시오후키라는 건 당시 일본 AV 업계가 처한 상황에서 카토타카가 풀어낸 개성 중 하나란 소리.
물론 시오후키 자체가 없는건 아님.
분명 카토타카는 단 1분만 주어지면 여성이 조수를 뿜게 하는 능력이 있음.
다만 그것이 극한의 절정 쾌감 이런 거랑은 거리가 멀다 이거임


카토 타카의 전설적인 골드핑거를 실제로 보고 놀라고 있는 아이돌 사시하라 리노
1959년에 태어났으니까 이승만 정권때 태어난 양반임
현재 나이는 60을 훌쩍 넘어버림
근데 애인이 여전히 ㅈㄴ 많다고 함
하긴
아재 거기 서요?라는 말은 있어도
손가락은 잘리지 않는한 컨트롤이 가능할테니...............





3줄요약
-카토 타카는 당시 업계의 특성땜 시오후키와 손플을 개발
-실제로 시오후키에는 절정 쾌감 같은게없고 기가막힌 전희 중 하나
-거긴 죽어도 손가락은 여전하니 늙어도 여자가 줄을 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