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구한 중국사를 통틀어 볼때 제갈량이 충성을 다한 촉한(221∼263)은 작은 나라일 뿐이다.
작은 나라의 재상이었던 제갈량은 국가의 실질적인 1인자로서 끝까지 나라에 충성한 충신으로 평가받는다.
훗날 문학에 의해 제갈량이 신의 영역으로까지 추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가 진수는 "제갈량의 군재(군사적 재능)는 평범했고 임기응변이 부족했다"며
혹평에 가까운 평가를 내리기도 했으나,
제갈량이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법가(法家)로서 엄격하면서도 공정하게 법을 시행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역사가 진수 역시 제갈량의 공정한 법집행에 대하여 극찬에 가까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제갈공명의 3공원칙]
1,800여년전 중국 촉한의 승상 제갈량은 3공원칙이라는
국가운영원칙을 공정, 공평, 공개로 정함.
군사적 업적
1. 완벽함에 가까운 대군 통제 및 운용
(1) 회전/야전 불패 신화 : 사마의, 장합, 곽회, 비요 등은 모두 제갈량을 상대로 한 야전에서 패배 ( 노성/기산/상규 등 ) , 장합은 아예 목문에서 전사. 그나마 진창에서 20일 농성한 학소가 제갈량에게 한방 먹였다고 할 만한 유일 사례 / 선제기의 제갈량군 1만 참수 기록, 후방 급습 성과 기록 등은 왜곡 의심 ->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는 선제기 기록을 불신하여 아예 싣지 않음.
(2) 퇴각전 하나는 역대 최고 : 별동대 괴멸, 군량 부족 등으로 퇴각할 때마다 신속 정확하게 철수. 추격으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을 뿐더러, 만일 퇴각하는 제갈량군을 추격할 경우 그 추격군은 패배 확정. ( 왕쌍/장합 )
2. 팔진법의 개발
(1) 팔진법의 혁신 : 진나라 사람 이흥이 " 제갈량의 팔진법은 손자, 오자병법에도 없다 " 라고 말할 정도로 혁신적 개량.
(2) 진형 구축에서 최고의 효능 발휘 : 사마의의 " 천하의 기재 " 평가는 제갈량의 진형을 검토한 후의 발언.
(3) 대군 운용의 정수 : 제갈량이 인솔하는 촉한 군대의 통제 및 운용은 팔진법에 기초.
(4) 후대에 이르기까지 활용 : 서진의 명장 마륭은 팔진법을 활용하여 강력한 선비족 수령인 독발수기능을 대파하고 그의 목을 벰. 당나라 명장 이정은 제갈량의 팔진법을 개량하여 최강의 대(對) 기병진법 육화진을 개발 -> 남송의 악비 등장 이전까지 제갈량의 팔진법은 실전에서 계속 활용됨.
3. 군사 장비의 개발
(1) 십시연노 ( = 원융노 ) 개발 : 진나라 사람 이흥은 이를 신노 ( 神弩 ) 라 부르며 극찬. 강력한 위력으로 인해 송나라 사람 왕응린은 십시연노를 최산노 ( ?山弩 ) , 즉 산을 무너뜨리는 노라고 부름.
(2) 목우/유마의 개발 : 군량 수송 장비의 개발, 익주 험지의 수송 능력 강화.
(3) 기본 장비의 품질 강화 : 제갈량과 포원이 제작한 칼 ( 刀 ) 은 쇠구슬을 가득 채운 대나무 통을 가볍게 잘라버리는 위력을 발휘하여 신도 ( 神刀 ) 라고 불림 / 역시 제갈량과 포원이 제작한 철투구는 쇠뇌에 맞아도 뚫리지 않았다고 전함 / 전투용 도끼와 칼, 창 등의 장비 품질 상향을 위해 노력 -> 제작에 소홀할 경우 직접 문책.
4. 이민족과의 군사 협력
(1) 선비족과의 연계 : 제갈량 북벌 당시 선비족장 가비능이 제갈량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음.
(2) 남만족 출신 병력의 활용 : 남만을 평정한 후, 청강의 부족들 중 일부를 촉군 부대로 편제 -> 오부영군으로 불리는 이 부대는 왕평 휘하에서 활약, 231년 북벌 당시 장합을 격퇴하는 등의 전공을 세움.
(3) 그 외의 이민족과의 관계 : 강족, 저족 등과의 여타 이민족과 우호적인 관계 유지.
정치적 업적
1. 농업의 장려
(1) 대규모 수리시설 도강언 정비 : 작물 생산량 폭발적으로 증가. 초주 曰 " 타국 풍년작이 우리 평년작, 타국 평년작이 우리 흉년작 " , 화양국지 曰 " 물이 가물어도 사람들이 굶주림을 알지 못하고, 흉년이 없어 천하가 이를 하늘의 곳간이라 일컬었다 " / 현 중국의 도강언에는 도강언의 유지 및 보수에 공이 있는 사람들이 동상으로 서 있는데, 제갈량 동상도 서 있음.
(2) 기타 수리시설 정비 : 진 - 한 시대에 건설됐던 제방을 비롯한 수리시설들을 정비 및 보수.
(3) 한중의 농토 개간/둔전 진행 : 북벌 전선이자 요충지인 한중에서 군량 자급자족 가능. 병사들과 백성들이 같은 농경지에서 농사를 하면서도 백성들이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기현상 발생. 한중의 개간과 둔전은 제갈량 사후까지 계속 이어짐.
2. 소금의 생산/관리 정비
(1) 생산과 관리의 체계화 : 전문 부서 염부 ( 鹽府 ) 를 만들어 소금의 생산을 체계적으로 관리. 유능했던 책임자 왕련, 여예 등의 노력으로 촉한의 소금 생산량이 크게 증가. 촉한에서 생산된 소금은 오나라로 수출되기도 함.
(2) 염정 ( 鹽井 = 소금 우물 ) 의 개발 : 제갈량의 노력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염정들이 개발됨. 좌사의 글 <촉도부蜀都賦>에서 " 집집마다 염정이 있다 " 라고 언급 / 송대의 시인 소동파는 <제갈염정諸葛鹽井>이라는 시를 짓고, 자신이 주를 달아 14개의 " 제갈염정諸葛鹽井 " 이 산 아래에 있다고 전함.
(3) 소금의 유통 촉진 : 가격은 낮추고, 품질은 개량하여 소금의 유통을 촉진시키고 세금 수입도 증가하는 일거양득의 현상.
(4) 화정 ( 火井 = 천연가스 ) 의 이용 : 소금의 순도와 생산량 증대. 화정을 이용하여 생산한 소금은 여타 생산 방법의 2배에 가까운 생산량을 보임 -> 진나라 사람 이흥은 제갈량의 4대 개발 업적 중 하나로 소금 우물을 꼽음.
3. 촉금 ( 蜀錦 ) 산업 정비
(1) 생산과 관리의 체계화 = 금관 ( 錦官 ) 설치 : 촉금 사업은 관영/민영의 구분 없이 금관의 직, 간접적 관리를 받음.
(2) 교역으로 인한 막대한 수익 : 위나라의 조비, 조예는 모두 촉금 덕후. 위나라는 적대 관계임에도 불구 촉금을 대규모로 수입, 이는 촉한에서 막대한 양의 수익 내지 군자금으로 전환 -> 위나라에 촉금 팔아 번 돈으로 위나라를 친다.
(3) 오나라와의 교역에서도 촉금은 상등품 : 양국의 외교에서 촉금이 예물로 사용됨.
(4) 최고 책임자인 승상이 모범 : 제갈량이 임종에 이르러 스스로 언급하기를, 자택에 800 그루의 뽕나무가 있어 자식들이 먹고 살 걱정이 없다 / 국내 촉금의 과다 사용을 막기 위해 스스로 검소를 실천 -> 촉한 관리들 대다수가 청렴, 검소.
4. 남중의 개발
(1) 농업 장려 : 촉한의 농경 기술을 전파 -> 농기구와 가축을 지원하고 농사 경작을 가르침.
(2) 소금 생산 : 남중 지역에 염관을 설치 -> 남중 지역 소금 생산량 대폭 증가, 남중 경제력 향상 / 촉한 정권의 염세 수입 증가
(3) 의사소통 문제 해결 : " 승상 제갈량이 친히 도보 ( 圖譜 ) 를 그려 교화를 행하다 " ( From. 제갈량 평전 )
(4) 남중 출신 인재 발탁 : 맹획은 중앙에서 어사중승까지 승진, 맹염은 보한장군 + 제갈량 북벌에 종군, 찬습은 영군
(5) 선정으로 교화 : 이민족이 중앙 정권에서 파견된 관리들 칭송하고 사당 세워 추모하는 나라는 삼국 중 촉한이 유일. 현재까지도 남중 지방 곳곳에는 제갈량과 관련된 전설 및 설화, 유적 등이 즐비하다고 전함.
5. 인재선발
(1) 능력 위주의 인재 선발 : 이엄보다 관위가 낮았던 양홍을 이엄과 동급 인사로 발탁. 뒷날에는 양홍보다 관위가 낮았던 하지를 양홍과 동급 인사로 발탁. 위나라 항장 출신의 강유, 왕평 등도 중용.
(2) 실적의 입증을 중시 : 1차 북벌 당시 왕평의 훌륭한 뒤처리 및 사후조치를 높게 평가하여 중용, 장완/비의/동윤 등의 내정계 인재들은 모두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실적을 쌓아 제갈량의 심복 내지 후계자로 자리매김함.
6. 법제의 바른 시행
(1) 촉한의 법 ' 촉과 ' 제정을 주도 ( 법정, 이엄, 유파, 이적 등도 함께 참여 )
(2) 내분/정쟁 부작용 최소화 : 하라는 일 제대로 안 하고 + 구석 타령하며 역적질 사주하고 + 황제에게 거짓말하고 + 정권 최고 책임자에게 개긴 인물을 사형시키지 않고 유배에서 끝낸 건 동시대에 촉한 밖에 없음. 심지어 아들은 연좌도 안 걸리고 중랑장으로 계속 복무.
(3) 법 앞에선 만민 평등 : 사적으로도 친분 깊고, 공적으로도 심복이었던 마속도 군령 위반 처벌을 위해 예외 없이 참형. 전쟁 패배 책임을 지고 스스로의 관직을 강등한 최고 책임자 역시 동시대에선 제갈량이 유일한 사례.
(4) 공정한 법률에 대한 찬사 : 진나라 사람 이흥은 " ( 제갈량의 형법 집행이 ) 정나라보다 공정하고, 교화는 노나라보다 아름답다 " 고 찬탄하는 동시에 " ( 제갈량은 ) 관중과 안영에 그치지 않고, 고요나 이윤에 비견된다 " 고 극찬함.
위(魏)나라 역사학자 진수(陳壽)가 지은 정사(正史)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의 사람됨을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忠義를 다하고 時代에 의로움을 준 사람에게는 비록 원수라 할지라도 반드시 상을 주고, 법을 어기고 태만한 자에게는 비록 친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벌을 주었다.
죄를 인정하고 眞實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풀어주었으며, 말을 교묘하게 꾸미는 자에게는 비록 가벼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사형에 처했다.
선을 행하면 작은 일이라도 상을 주지 않은 적이 없고, 사악한 行動을 하면 사소한 것이라도 처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盡忠益時者雖讎必賞,犯法怠慢者雖親必罰,服罪輸情者雖重必釋,游辭巧飾者雖輕必戮;善無微而不賞,惡無纖而不貶;
충성을 다하며 시대에 이익되는 자에겐 비록 원수라도 반드시 상주었고, 범법하고 태만한 자에겐 비록 근친이라도 반드시 벌했다. 죄를 자복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비록 [죄가] 무거웠더라도 반드시 풀어주었으며, 진실을 말하지 않고 교묘히 꾸미는 자는 비록 [죄가] 가볍더라도 반드시 주륙했다. 선행은 작더라도 상주지 않음이 없었으며, 악행은 가늘더라도 [지위를] 깎지 않음이 없었다.
- 명을 따르지 않으면 아끼는 마속이라도 처형하여 기강을 지켰고 명을 따르면 무식하고 낮은 자리에 있던 왕평도 높이 발탁하는 상벌 준수의 모범
庶事精練,物理其本,循名責實,虛偽不齒;終於邦域之內,咸畏而愛之,刑政雖峻而無怨者,以其用心平而勸戒明也。
모든 사무에 정통했고, 사물은 그 근본을 이해했으며, 사람의 말에 근거하여 그의 행위를 관찰하고 허위로 가득찬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았다. 마침내 방역 안의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했고, 형법과 정치가 비록 준엄해도 원망하는 자가 없었다. 이것은 마음을 공평하게 쓰고 권계[상벌]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 싸움에 지면 조운도 강등시키고 군령을 어기면 탁고지신 이엄도 귀양보내는 분명한 처리
7. 오나라와의 외교
(1) 명분과 실리를 적절히 운용하며 외교 관계 수립 : 제갈량이 선정/파견한 등지, 진진, 비의 등은 모두 외교관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 -> 등지와 비의는 손권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함.
(2) 외교 전략문 절맹호의 작성 : 외교 관계에 있어 명분과 실리의 조화를 추구, 국교를 성공적으로 수립.

제갈량의 명문으로 꼽히는 출사표
出師表(출사표)
諸葛亮(제갈량)
臣亮言(신량언)
신 제갈량이 말씀을 올립니다
先帝創業未半(선제창업미반)
선제께서 천하의 일을 반도 완성을 못하시고
而中道崩殂(이중도붕조)
중도에서 붕어하시니
今天下三分(금천하삼분)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
益州疲弊(익주피폐)
익주는 피폐해졌습니다
此誠危急存亡之秋也(차성위급존망지추야)
이 시기는 참으로 나라의 존망이 달려있는 위급한 때입니다
然侍衛之臣(연시위지신)
하지만 가까이 있는 신하들이
不懈於內(불해어내)
안에서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忠志之士(충지지사)
충성심을 가진 신하들은
忘身於外者(망신어외자)
바깥에서 나라를 지킴에 몸을 아끼지 않으니
蓋追先帝之殊遇(개추선제지수우)
이는 모두가 선제의 특별한 총애를 생각하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欲報之於陛下也(욕보지어폐하야)
그러므로 폐하께 그 은덕을 갚고자 하오니
誠宜開張聖聽(성의개장성청)
폐하께서는 진심으로 귀를 크게 여시어 들으시고
以光先帝遺德(이광선제유덕)
선제께서 남긴 그 유덕을 빛내시며
恢弘志士之氣(회홍지사지기)
큰 뜻을 품은 지사들의 기세를 더욱 크게 해 주십시요
不宜妄自菲薄(불의망자비박)
함부로 자신을 낮추지 마시옵고
引喩失義(인유실의)
옳지 않은 비유로
以塞忠諫之路也(이색충간지로야)
충간의 길을 막지 마옵소서
宮中府中(궁중부중)
궁중과 관아가
俱爲一體(구위일체)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에
陟罪臧否(척죄장부)
승진과 죄 그리고 선함과 악함을 다룸에 있어서는
不宜異同(불의이동)
마땅히 다름이 없어야 합니다
若有作奸犯科(약유작간범과)
만일 간악한 짓을 해 법을 어긴 죄가 있다거나
及爲忠善者(급위충선자)
충성스럽고 선한 자가 있을 시에는
宜付有司(의부유사)
마땅히 속한 관아에 맡기어
論其刑賞(논기형상)
그 형벌과 상을 논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以昭陛下平明之理(이소폐하평명지리)
폐하의 공평하고 깨끗한 다스림을 밝게 드러나게 하시고
不宜偏私使內外異法也(불의편사사내외이법야) 사사로이 치우치어 안과 밖의 법 적용이 달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侍中侍郞(시중시랑) 시중시랑인
郭攸之費禕董允等(곽유지비의동윤등)
곽유지와 비의, 동윤 등은
此皆良實(차개양실)
다 어질고 신실하여
志慮忠純(지려충순)
뜻과 생각이 충성스럽고 진실한 자들입니다
是以先帝簡拔(시이선제간발)
선제께서 가려내어 뽑아
以遺陛下(이유폐하)
폐하께 남겨주셨습니다
愚以爲(우이위)
우매한 사람이 생각을 하건데
宮中之事(궁중지사)
궁중의 일은
事無大小(사무대소)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悉以咨之(승이자지)
무엇이든 그들에게 자문을 구하시고
然後施行(연후시행)
그런 후에 시행을 하신다면
必能裨補闕漏(필능비보궐루)
반드시 조정의 틈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有所廣益(유소광익)
널리 유익함이 있을 것입니다
將軍向寵(장군상총)
장군 상총은
性行淑均(성행숙균)
성품과 행동이 어질고 가지런하며
曉暢軍事(효창군사)
군사에 관해 막힘이 없이 밝아
試用於昔日(시용어석일)
지난 날 잠시 써 살피시고는
先帝稱之曰(선제칭지왈)
선제께서 칭찬하며 말씀하시기를
“能”(능)
유능하다 하셨으니
是以衆議擧寵爲督(시이중의거총위독) 이에 군신들이 논의하여 상총을 천거하여 지휘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愚以爲(우이위)
우매한 사람이 생각을 하건데
營中之事(영중지사) 군영의 일은
事無大小(사무대소)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悉以咨之(실이자지)
무엇이든 그에게 자문을 구하신다면
必能使行陣和睦(필능사행진화목)
반드시 진영은 화목하게 될 것이며
優劣得所(우열득소)
그 자질에 맞추어 병사들을 잘 쓸 것입니다
親賢臣(친현신)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 하고
遠小人(원소인)
소인을 멀리 하였기에
此先漢所以興隆也(차선한소이흥륭야)
이로 인하여 옛 한나라가 흥하고 융성하였던 것입니다
親小人(친소인)
소인을 가까이 하고
遠賢臣(원현신)
현명한 신하를 멀리 하였기에
此後漢所以傾頹也(차후한소이경퇴야)
후한은 이로 인하여 기울고 무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先帝在時(선제재시)
선제께서 계실 때에
每與臣論此事(매여신론차사)
늘 신과 이 일을 논의하면서
未嘗不歎息痛恨於桓靈也(미상불탄식통한어환영야) 환제와 영제 때의 일을 탄식하고 통한을 갖지 않은 적이 없으셨습니다
侍中尙書長史參軍(시중상서장사참군)
시중상서와 장사, 참군은
此悉貞亮死節之臣(차실정량사절지신)
모두가 다 마음이 곧고 분명하여 절개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신하들이니
願陛下親之信之(원폐하친지신지)
원하옵건데 폐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두시고 믿음을 가지시옵소서
則漢室之隆(즉한실지륭)
그렇게 하신다면 한나라 왕실의 융성은
可計日而待也(가계일이대야)
가히 날짜를 꼽듯이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臣本布衣(신본포의) 신은 본래 미천한 사람으로
躬耕於南陽(궁경어남양) 남양에서 몸소 밭을 갈며
苟全性命於亂世(구전성명어난세)
난세에 구차하게 목숨을 온전히 유지하고 살며
不求聞達於諸侯(불구문달어제후)
제후에게 알려지려 힘쓰지도 않았습니다
先帝不以臣卑鄙(선제불이신비비)
선제께서는 신을 천하고 비루하다 여기지 않으시고
猥自枉屈(외자왕굴)
진실로 스스로 몸을 낮추시며
三顧臣於草廬之中(삼고신어초려지중)
세 번이나 신의 오두막을 찾으시어
諮臣以當世之事(자신이당세지사) 신에게 당세의 일을 물으시니
由是感激(유시감격) 이에 감격하여
遂許先帝以驅馳(수허선제이구치)
마침네 선제의 마부가 되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後値傾覆(후치경복)
나라가 기울어 넘어지려 하는
受任於敗軍之際(수임어패군지제)
군이 패전한 때에 임무를 맡았으니
奉命於危難之間(봉명어위난지간)
그렇게 위태롭고 어려운 상황에서 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爾來二十有一年矣(이래이십유일년의)
그 후로 21년이 지나갔습니다
先帝知臣謹愼(선제지신근신)
선제께서는 신이 몸을 삼가 함을 아시고
故臨崩(고임붕) 임종을 맞이하시며
寄臣以大事也(기신이대사야)
신에게 큰일을 맡기시었던 것입니다
受命以來(수명이래) 명을 받은 이래로
夙夜憂歎(숙야우탄)
밤낮으로 근심하고 한탄 하였지만
恐託付不效(공탁부불효)
맡기신 일이 공효가 없어 염려함은
以傷先帝之明(이상선제지명)
선제의 밝은 유업에 누를 끼칠까 봐 그런 것입니다
故五月渡瀘(고오월도노)
그리하여 지난 오월에 노수를 건너
深入不毛(심입불모)
불모의 땅으로 깊이 들어갔기에
今南方已定(금남방이정)
이제 남방은 이미 평정이 되었습니다
兵甲已足(병갑이족)
군사와 무기도 풍족하기에
當獎率三軍(당장솔삼군)
권하오니 마땅히 삼군을 거느리고
北定中原(북정중원)
북쪽 중원을 평정해야 합니다
庶竭駑鈍(서갈노둔)
바라옵건데 소신 둔하고 미련하오나 있는 힘을 다해
攘除姦凶(양제간흉)
간악하고 흉악한 것들을 물리치고
興復漢室(흥복한실)
한나라 왕실을 회복하고 일으키어
還於舊都(환어구도)
옛 도읍지로 돌아가는 것이
此臣所以報先帝(차신소이보선제)
신이 선제께 보답하는 일이며
而忠陛下之職分也(이충폐하지직분야)
폐하께는 직분을 다해 충성하는 길입니다
至於斟酌損益(지어짐작손익) 손익을 짐작하여
進盡忠言(진진충언)
다만 나아가 충언을 올리는 일은
則攸之禕允之任也(칙유지의윤지임야)
곽유지와 비의, 동윤의 임무입니다
願陛下託臣以討賊興復之效(원폐하탁신이토적흥복지효) 원하옵건데 폐하께서는 신이 적을 토벌하고 한실을 회복하고
일으키는데 힘을 쓸 수 있도록 해 주시옵고
不效則治臣之罪(불효칙치신지죄)
공효가 없다 하면 신을 죄로 다스리시고
以告先帝之靈(이고선제지령)
이를 선제의 영전에 고하소서
若無興德之言(약무흥덕지언)
만일 그 은덕을 느끼는 간언이 없다면
則責攸之禕允等之慢(즉책유지의윤등지만)
곽유지와 비의, 동윤등의 게으름을 책하시고
以彰其咎(이창기구) 그 허물을 드러내소서
陛下亦宜自謀(폐하역의자모)
폐하께서도 또한 마땅히 스스로 도모하시어
以諮諏善道(이자추선도)
자문을 구하시고 옳은 길을 물으소서
察納雅言(찰납아언) 바른 말을 살펴 들으시며
深追先帝遺詔(심추선제유조) 선제의 유조를 중히 따르소서
臣不勝受恩感激(신불승수은감격)
신은 은혜 받은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今當遠離(금당원리) 이제 멀리 떠나며
臨表涕泣(임표체읍)
표문을 대하니 눈물이 나
不知所言(부지소언)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제갈량의 또 다른 명언이 담긴 계자서 (誡子書"아들아 보아라")
삼국지(三國志)의 제갈량이 54세에 여덟 살배기 아들 제갈첨에 남긴 계자서는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며, 일찍이 우리나라 학자들도 이 말을
학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마치 전통처럼 내려왔다.
“무릇 군자는 고요함(靜)으로 몸을 닦고(修身), 검소함(儉)으로 덕을 기른다(養德).
담박(淡泊)하지 않으면 뜻(志)을 밝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이를 수 없다.
무릇 배움(學)은 고요해야 하며, 재능(才)은 모름지기 배워야 얻는다.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오만하면 세밀히 연구할 수 없고, 험하고 조급하면 본성을 다스릴 수 없다.
나이는 시간과 함께 내달리고 뜻은 세월과 함께 사라지니
고목이 말라 떨어지면 비탄에 빠져 궁하게 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