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한양 점령하고, 더 나아가 선조가 버리고 간 왕자들까지 (임해군, 순화군) 인질로 잡았다는 사실은 아마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임.

근데,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왕자들 정도나 되는 중요인물들이 전투 한 번 없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잡혔을까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본인도 그 중 1인임.
그래서 한 번 찾아봤지.
그랬더니, 국경인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매국노께서 뒤통수 거하게 치시며, 왕자들과 왕자들 보필하던 신하들을 모조리 잡아 적진에 넘겼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음을 알아냄:

여기서 궁금했지. 그의 출신이...혹시 그 쪽 출신은 아닐까...

그래서 구글 해봤더니...
짜~잔: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면:
"본시 전주에 살다가 죄를 지어 회령으로 유배되었다. 뒤에 회령부의 아전으로 들어가 재산을 모았으나, 조정에 대해서 원한이 많았다."
-> 전주에서 아령으로 백성들 등쳐먹으며 살다가 걸리니까 오히려 앙심을 품음
"이 때 근왕병(勤王兵) 모집차 이 곳에 머무르고 있던 선조의 두 왕자 임해군(臨海君) 이진(李珒)과 순화군(順和君) 이보 및 그들을 호종하였던 대신 김귀영(金貴榮)과 황정욱(黃廷彧)·황혁(黃赫) 부자, 남병사(南兵使) 이영(李瑛), 부사 문몽헌(文夢軒), 온성부사 이수(李銖) 등을 그 가족과 함께 잡아 적진에 넘겼다."
-> 앙심을 품고 뒷통수 작렬시키며, 왕자들 잡아다 적장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버림
"이에 가토에 의하여 판형사제북로(判刑使制北路)에 임명되어 회령을 통치하면서 이언우(李彦祐)·전언국(田彦國) 등과 함께 횡포를 자행하다가 북평사(北評事) 정문부(鄭文孚)의 격문을 받은 회령유생 신세준(申世俊)과 오윤적(吳允迪)의 유인에 떨어져 붙잡혀 참살되었다."
-> 왕자들 팔아먹고 떵떵거리며 살다가 7시에 치를 떤 백성들에게 참교육 당함.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님. 수백년 뒤 일어나 625 전쟁 때도 무려 소장인 윌리엄 딘 사단장이 빨갱이들 한테 포로로 잡힌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예외 없이 여윾시 우덜식 뒤통수가 작렬함.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에서 한두규의 밀고로 인민군에 생포되었다. 이 과정에서 딘 소장의 전속부관이 한두규에게 사살되었다. 한두규는 9.28 수복 후 경찰에 체포되어 1954년 9월 23일에 “불법체포죄”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으나 그는 무죄를 주장하였다. 복역 중에 딘 소장이 그의 감형을 탄원하여 1957년 좌익수전향자로 감형되어 출소하였다"
1줄 요약:
7시는 진짜 과학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