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짱깨를 존나게 싫어함을 알림과 동시에 한나라 이후는 미개한 이민족의 역사로, 지금의 중국을 바퀴벌레 취급함을 알립니다.






오늘은 삼국지를 다룰건데 그 인물은 바로 '제갈각(諸葛恪)'이야

이름에서 느껴지다시피 그 유명한 '제갈량'의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바로 제갈량의 친형이자 오나라의 대신인 '제갈근'의 아들이야.

제갈각은 제갈공명이 빛낸 '제갈'씨를 오히려 빛내면 빛냈지 결코 더럽히지 않은 아주 뛰어난 인물로

특히 어렸을때부터 포텐이 미친듯이 터진 인물이여서 어렸을 때 일화가 많은 편이야.

또한 어렸을때 잠깐 반짝하던 그런 신동이아닌 어렸을때 받은 기대에 부응하여 크게 이름을 떨치는데 성공하지.

그렇다면 오늘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보자!



(삼국시대 말의 위 촉 오의 위치 및 크기. 이때 우리나라의 삼국지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1. 당나귀를 얻는법


어렸을 적 제갈각은 신동 그 자체로, 뛰어난 재능과 특히나 임기응변에 굉장히 능해 당할자가 없어 어릴떄부터 그 이름이 멀리퍼져있었다.

그리하여 오나라의 군주 '손권'으로부터 총애를 받았고 손권은 그를 많은 자리에 데리고다녔다.





어느 날, 손권이 많은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장난끼가 발동하여 사람을시켜 당나귀 한 마리를 끌고오게하여 당나귀의 얼굴에 긴 봉투를 붙여 제갈각의 아버지의 제갈근의 자, '제갈자유(諸葛子瑜)'라고 적게하였다.

*자는 본명과 달리, 성인이되서 쓰는 이름으로 옛 중국의 관행이다.

중신인 제갈근의 얼굴이 당나귀처럼 길어 그를 놀리기위한 심산이었다.

이때 제갈각이 무릎을꿇고 말했다.





"붓으로 두글자를 더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에 손권은 허락하여 붓을 주었고 제갈각은 이에 '지려(之驪)' 두글자를 추가하여 '제갈자유의 나귀' 란 뜻으로 만들어버리니 모두가 크게 웃었고 손권은 당나귀를 제갈각에게 하사했다.

*之는 소유격의 뜻을 가지며 驪는 '당나귀 려'이다.


2. 아빠 vs 삼촌

어느날, 손권이 제갈각에게 참으로 어려운 질문을 물었다.
  




"그대의 부친과 숙부(제갈공명) 중 누가 더 뛰어난가?"

제갈각의 아버지 제갈근 역시 오나라의 대장군까지 오르는 실력가였으나 확실히 시대를 초월하는 인재이자 동생인 공명보다는 부족한 점이 있었으니,

제갈각이 애매하게 아버지의 명성을 높이려단 오히려 아버지를 욕먹일 수 있는 곤란한 질문이었으나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신의 부친이 뛰어납니다"




"어쨰서 그런가?"




"신의 부친은 일을 맡길 만한 자를 알지만 숙부는 모르기때문에 더 뛰어난 것입니다.(제갈량의 마속의 기용을 비유)

손권은 이에 크게 웃었다.


3. vs 노신

손권은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지독한 알콜중독자 수준의 애주가였다,






그리하여 주연을 자주열었는데, 어느 날은 제갈각에게 다니면서 중신들에게 술을 권하도록 말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술잔을 따르다 중신이자 나이가 많은 노신인 '장소'앞에 이르렀다.

장소는 이미 취기가 올라 술마시기를 거부하며 말하길,





"이것은 노인을 공경하는 예의가 아니다." 

이것을 본 손권이 말했다.





"그대가 장소로 하여금 말을 굽힐 수 있게한다면 응당 마실 것이다."

제갈각은 장소에게 반박하며 말했다.





"옛날 강태공은 90세때도 깃발을 잡고 도끼를 가지고는 아직 늙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군사적인 일에 있어서는 공을 후방에 두면서도 술 마시고 밥 먹는 일에 대해서는 앞에 있는데 어찌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다 하십니까?"

이에 연륜과 노련함을 갖춘 중신, 장소도 할말을 잃었고 결국 술을 한가득 마시게되었다.


4. vs 노신 2

어느날, 궁전에 머리가 흰 새가 궁전 앞으로 날아들어왔다.

손권이 이에 궁금하여 묻길,





"이것이 무슨 새인가?"




"백두옹(白頭翁)이라는 새입니다.(흰 백, 머리 두, 어르신 옹)



(실제 백두옹 사진)

마침 그 옆에있던 장소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늙었으므로 제갈각이 자신을 놀리는거라 생각해 말했다.(백두옹은 머리가 흰 영감을 뜻한다)




"제갈각은 폐하를 속이는 일입니다. 백두옹이라는 새 이름을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갈각에게 백두모(白頭母)라는 새를 구해오도록 하십시오."

제갈각이 이에 말했다.




"앵모(鸚母)라는 새가 있는데 이것과 대를 이루는 새가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공에게 앵부(鸚父)라는 새를 구하도록 하십시오."

*앵모의 앵은 '앵무새 앵'이므로 아마 앵모는 앵무새로 추측된다. 

장소는 대답할 수 없었고 모두가 크게 웃었다.


5. 촉나라가 말을 보내올 이유

촉나라에서 사신이 도착한 날이였다. 이에 대신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 손권이 사자에게 말했다.





"이 제갈각은 말타기를 매우 좋아한다. 돌아가서 승상에게 좋은 말을 보내오도록 해라."

제갈각은 즉시 무릎을 꿇고 감사해했으니, 손권이 말했다.




"말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감사해한단 말이오?"




"촉나라는 폐하의 외부에 있는 마굿간인데 오늘 은혜로운 조서를 내렸으니 말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어찌 감사해하지 않겠습니까?"

손권은 이에 크게 기뻐했다.


6. vs 비의

또한 어느 날, 촉나라에서 사자로 '비의'가 왔다.

*비의는 제갈량이 인정한 인재로, 제갈량 사후 승상에 오를 정도로 상당히 총명했으며 오나라와의 외교담당을 주로 맡았다.

손권이 비의를 대접하기 위한 주연상을 준비했는데, 군신들에게 비의가 오기전 그것을 미리 먹으면서도 비의가 온 후에도 그냥 무시하고 먹으라는 명을 내렸다.

이 무례한 광경을 보고 비의가 말했다.





"봉황이 날아오르자 *기린은 먹던 것을 뱉었는데, 당나귀와 노새는 무지하여 예전처럼 엎드려 먹는구나"

*목이 긴 동물이 아닌 전설상의 동물이다.

이에 제갈각이 답하길,




"오동나무를 심는 것은 봉황을 맞이하려함인데, 어찌하여 제비나 참새가 스스로 날아왔다 하는가? 활로 쏘지는 않을 것이니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시게!"

이후 비의와 제갈각이 서로 시를 주고받으니 모두 훌륭하다하였다.


7. 말똥과 달걀의 차이

어느날, 손권의 태자가 제갈각을 조롱하며 말했다.





"제갈각은 말똥을 먹을 수 있다"




"태자께선 달걀을 드시도록 하십시오"

이에 손권이 기이하게 생각하여 제갈각에게 물었다.





"태자는 경에게 말똥이나 먹으라했는데 경은 태자에게 계란을 먹으라하니 어찌하여 그랬소?"




"똑같은 곳에서 나왓을 뿐입니다."

손권은 크게 웃었다.


8. 첫 임무





이처럼 여러 상황에서 뛰어난 기지를 보인 제갈각이기에 손권은 그의 기지가 업무에서도 빛을 발하는지 시험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군량관리를 맡겼는데 이는 처리해야하는 문서가 굉장히 번잡해 제갈각 본인도 싫어하는 업무였다.

하물며 삼촌이자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도 제갈각 성격상 업무를보다 한 사고 칠 것 같다 생각했는지 당시, 오나라의 승상이던 '육손'에게 편지를 보낸다. 다음은 그 편지의 내용이다.

'우리 형님은 늙었고 아들인 제갈각은 거친 성격을 갖고있는데, 오늘 그에게 식량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겼습니다. 식량은 군사적인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업무로 나는 먼 곳에 있지만 큰  불안을 느낍니다. 당신이 특별히 폐하께 알려 그의 임무를 바꾸도록 하십시오'






육손은 손권에게 이를 알렸고 손권은 즉시 지휘관의 관직을 주었다.

그간 제갈각이 많은 기지를 보여주었으나 임무에서가 아닌 말재간에 한정된 영역이었고 그 전에 어떤 임무에대해 처리한 적이 없었기에 이 지휘관의 능력에 대해서는 항상 물음표였다.




(산월족은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후예이자 중국 동남부의 이민족으로 한나라 시절부터 지역을 소란스럽게했다. 지금도 산월족이 사는 마을이있다. 사진은 산월족 마을의 사진.)  

그러나 이 초급지휘관은 단양군에 거주하는 오나라의 이민족 '산월족'의 토벌작전을 과감히 제안하였다. 제갈각이 말했다.





"단양은 산이 험하고 백성들이 과감하고 강인하여 병사를 출동시켜도 소수의 사람들만 얻었을 뿐 깊고 먼 산속에 있는 자들을 전부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단양의 관리로 임명되어 나간다면 3년만에 4만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갈각이 언급한 것처럼 산월족은 지세가 험하고 강인하여 많은 토벌 작전에도 그들을 복속시킬 수 없었기에 많은 중신들이 그의 자신감에 우려를 표했다. 





"단양은 산이 험하고 오군, 회계, 신도, 파양 네 군과 인접해있으며 면적이 수 천리에 산과 계곡이  무수히 쪼개 있고, 외지고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성에 들어온 적도 없고 모두가 들녘에서 무기를 쥐고 최후에는 수풀속에서 늙어 죽습니다.

도망자나 사악한 자 모두 이곳에 도망와 살고있으며 산속에는 구리와 철이 생산되어 직접 병기를 만듭니다. 또한 그들은 무예를 좋아하고 산을 타고 가시덤불을 지나가는 것에 굉장히 능하며 떄때로 틈을 살펴 소란을 일으킵니다.

매번 병사들이 그들을 토벌하기위해 그들의 소굴을 찾아다녔고, 그들은 싸울때나 도망갈때나 움직임이 날래어 이전부터 그들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제갈근 역시 제갈각의 이 근거없는 자신감에 크게 우려를 표했으니, "제갈각은 우리 집안을 크게 일으키지못하고 우리 종족을 멸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할정도였다.






그러나 제갈각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최선을 다해 진술했고 손권 역시 그가 보여준 기지를 믿고 이 초급지휘관에게 장군의 직과 단양태수 자리를 주었다. 이때 제갈각의 32세였다.

임지에 도착한 제갈각은 바로 작전을 하달했다.





(산월족이 출몰하는 단양군과 주변 4군의 위치, 그외 오나라 양주지역 행정지도)


오군, 회계, 신도, 파양 4개 군의 관리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관할하는 지역을 지키고 군대를 정돈하며 관할지역의 백성들을 안정되게 다스리도록했다.




그리고 장수들을 산월족의 거주하는 지역에 나누어 배치해 병사들을 험지에 주둔시키고 단지 방어 진지만을 수리하며 지키고 그들과 교전할 것을 금했다. 그러면서 곡식이 익을때를 기다렸다가 병사들을 풀어 베도록하여 씨를 남기지않게했다.

이에 산월족이 식량이 다하게되었음에도 약탈을하러 나올 수 없었고 결국 강인한 산월족도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하나 둘 산에서나와 항복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갈각은 한 가지 명령을 더 내리니,





"산 속의 백성들은 악을 버리고 복종하게되었으니 모두 그들을 위로해야한다. 그들로 하여금 밖의 마을로 이사시켜 살도록하며 의심하여 구금하는 일이 없어야한다."

관리들이 항복한 산월족을 도리어 의심하여 다시 반항할 것을 우려한 꼼꼼한 교화 정책이었다.






그러나 '호항'이란 관리가 이 명령을 어기고 항복한 자를 체포하는 일이 발생하자 호항이 명령을 어겼다하여 그를 참수하면서까지 명령에 속임수가 없다는 것을 보이니 이에 산월족이 노인과 어린아이 너나 할 것없이 산에서 나오게되었다.

1년이 지나자, 항복한 사람들의 수는 제갈각이 생각했던 것과 같았으며 제갈각은 항복한 무리에서 무려 1만명의 *사병을 거느리게되었다.

*오나라는 호족사회로 군권시스템이 호족들의 사병으로 중앙군을 편성하는 방식이었다. 그리하여 외세에 침략에는 잘 맞섰지만 밖으로 나가 싸우는 정벌전에서는 호족들이 자신의 병력을 내길 꺼려해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오나라 장수들이 그토록 토벌하기 위해 고생했던 산월족이 단 한번의 싸움없이 제갈각에게 토벌되고 이후 산월족은 거의 완전히 오나라에게 복속되었으니 오나라의 신동이 큰 기둥으로 성장했음을 알렸다.

손권은 그 공로에 크게 기뻐하며 제갈각을 승진시키고 후작의 위치를 주었다.

9. vs 사마의




(제갈각의 부임지 '환구'의 위치. 제갈각은 위나라 영토 '육안'을 자주 침공했다.)


제갈각은 손권에게 청해 위나라와 가까운 '여강군'의 '환구' 지역에서 근무할 것을 청했고 위나라 지역을 정찰해 수춘성 공격을 제안했으나 손권이 허락치 않았다.

그러면서도 위나라의 변경 지역을 지속적으로 공격하여 위나라 군을 격파해 그곳의 백성들을 포로로 납치했다.

대대적 침공에 의한 큰 피해는 아니였지만, 지속적인 제갈각의 공격이 몹시나 신경쓰였는지 위니라의 '사마의'가 제갈각 공격에대해 논의하니. 의논하는 자들이 말했다.





"적이 견고한 성에 의지해 곡식을 쌓아놓고 우리의 군대를 유인하고자 하는 것이며 지금 외떨어진 군사로 멀리 공격해왔으니 그들의 구원군이 필시 올 것이라 진퇴가 쉽지 않으며 공격하는데 유리한 점이 없습니다."

사마의가 말했다.





"적의 장점은 물에서 싸우는 것이니 그들의 성을 공격해 그 변화를 살펴야하오. 만약 그들의 장점을 쓴다면 성을 버리고 달아날 것이니, 이는 우리가 승리하게 되는 것이오.

만약 감히 성을 고수한다해도 그들의 단점을 쓰는 것이니 이것 또한 우리가 유리하오." 

*오나라는 육전보다는 수전에 강했고 위나라는 육전에 강했다.





(사마의의 진격로. 사마의는 제갈각 토벌을위해 '서현'까지 진격한다.)

친히 사마의가 군을 이끌고  출격하니 이 소식을 들은 손권 역시 병사를 출동시켜 맞서려하였다.

그러나 전투에 앞서 손권이 승패에대한 점을 치니 불리한 결과가 나오자 제갈각에게
독자들에게는 아쉽게도 후퇴명령을 내렸고, 제갈각은 이에 비축해둔 군량을 불태우고 성을버리고 후퇴한다.



(시상의 위치)

그리고 손권은 공격적 성향의 제갈각을 아예 남형주에 속하는 후방인 '시상'으로 배치한다.


10. 오만한 편지

스스로가 위나라의 공략을 위해 전방배치를 부탁하며 패기넘치게 여러번 위나라를 공격한 제갈각이었으나 자신을 후방으로 끌어내린 손권의 인사조치에 누군가 자신을 견제하고있다 생각했는지 큰 불만을 품었다.




(육손은 관우 토벌 및 이릉대전 등에서 지대한 공을 세우며 정치 행정에도 밝은 오나라 최대 공신이었다.)

그리고 이 불만을 한 가득담으면서도 패기와 오만함이 한 가득담긴 편지를 승상인 '육손'에게 보낸다.(이 당시 육손의나이 60대 초반, 제갈각은 40대 초반이었다.)

다음은 그 편지의 요악이다.

'현재 도덕과 사업을 지키는 자는 몇 명없으므로 마땅히 서로 도와 국가의 사업을 일으키고 아래로는 서로가 중히 아껴야합니다. 또 세상 풍속이 서로 훼방하기를 좋아하여 공이 많은 사람들을 훼손시키니 장차 앞으로 공을 세울 사람들은 즐거워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듣고 탄식했습니다.

재능있는 사람에대해서는 세미하고 가혹하게 요구하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만일 가혹하게 요구한다면 옛날의 성인과 현인들도 완벽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그들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때문에 도덕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옳지않으며 보통 사람의 표준으로 바라봐야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갈라져 원수가 된 까닭은 자신은 도의를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바른 도의로 질책했기 떄문입니다. 그렇게 한 차례 원수가되면 소인들이 그 중간에모여 뜬 소문이 여러차례 쌓여 지극히 현명하고 가까운 이들도 그 진위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장이와 진여'는 서로 피를 흘렸고 '소육과 주박'은 끝까지 좋은 사이가 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과실을 버리지않고 미미한 일로 서로를 꾸짖으며 이것이 오랫동안 계속된다면 원수가되어 나라에 좋은 선비는 다시 없을 것입니다.'


*'장이와 진여', '소육과 주박' 모두 절친한 사이였으나 오해가겹쳐 서로가 싸우는 원수가 되었다. 즉 이 편지는 '내 발목 잡지말고 나 안쓰면 우린 그들처럼 원수가 될 것이다'라는 협박성의 편지다.







이 편지를 보고 굉장히 불쾌해한 육손이었으니 제갈각을 심히 책망했고 한편, 육손 역시 이 편지에 대응한 것으로 추측되는 편지 한통을 제갈각에게 보낸다.

"나보다 높은 관직에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받들어 함께 승진하고, 나보다 낮은 관직에 있는 사람은 도와줍니다. 지금 당신을보니 기세는 윗사람을 능멸하고 마음은 아랫사람을 멸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옳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제갈각은 이것으로 육손이 자신을 책망하고 있음을 알았고 그의 취지를 칭찬하며 그의 기분을 풀기위해 노력했다.


11. 제갈각의 처세법

한편, 오나라는 태자의 점지를 둘러싸고 막장스러운 정치싸움이 일어나고있었다.




(정치싸움의 원인)

오나라의 태자가 연달아 요절하는 바람에 손권이 손권의 삼남 '손화'를 태자로 세웠으나 문제는 그의 네째아들 '손패'도 총애하여 서로를 대하는데 차별이 없었던 것이다.

황태자와 일반 황자간의 구별이 없어지자 이 틈을타 육손, 제갈각 등 기존 짱짱한 기득권에 밀린 중견 중신들이 대권을 잡기위해 손패에게 달라붙었고 손화를 황태자로 세웠음에도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기위해 헐뜯는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손화파와 손패파를 막론하고 무수히 많은 중신들이자 호족들이 손권의 황권 강화목적과 맞물려 공이 크든 작든 가릴것없이 숙청당했는데, 국가의 큰 공신이자 승상인 육손 마저 손권으로부터 내쳐져 화병으로 죽게될 정도였다.

제갈각 역시 태자인 손화를 지지하며 이 싸움에 끼어들었고 그의 장남 '제갈작'은 네째아들인 손패를 지지하였기에 모두가 피비린내나는 권력싸움에 깊게 관여되었다.




(당시 파벌싸움 참가자 명단의 일부 및 그 결과/ 손화가 정통성을 가진 황태자기에 기존의 기득권 대신들이 태자가 바뀌어 일어나는 국가의 혼란을 막기위해 주로 태자편을 들었다.)

결국 넷째 아들, 손패가 무엄하게도 '황태자 살해를 모의하다 계획이 들통남으로 인해 손패가 사형에 처하는걸로 다툼은 마무리 되었으나,

이미 그 과정에서 두 파벌의 대신들이 모조리 죽거나 쫓겨남으로서 숙청당한 것은 물론, 황태자 손화까지 폐위가 될정도로 손권은 이 사건을 잔혹하게 처리했다.

제갈각 역시 황태자 살해를 계획한 손패의 편을 든 장남 제갈작으로 인해 손권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고 아들을 재교육시키라는 손권의 말을 듣고는 장남을 독살시키면서까지 모두가 죽은 미친 피비린내 나는 정치싸움에서 온전히 몸을 보전하는데 성공한다.


12. 오나라의 정권을잡다.






황태자 싸움에 관여되어 승상이자 대장군인 육손이 손권에게 숙청당해 화병으로 죽는 바람에 제갈각은 대장군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연이어 손권도 노쇠하여 병에걸리게되자 다음의 뒷일을 누구에게 맡길지 상의하였다.

대신들 모두가 제갈각이 기량이 뛰어나니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표를 올렸다.






손권은 육손의 편지에서 드러나듯 제갈각이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여 일을 처리한다하여 그를 꺼렸으나 조정 신하들 모두가 그에 미치지 못했기에 제갈각을 불렀다.

손권이 말했다.





"나의 병세는 절망적이다. 아마 여러분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니 모든 일을 그대들에게 부탁한다."

제갈각이 눈물을 흘리며말했다. 





"신 등이 모두 두터은 은혜를 입었으므로 응당 죽음으로서 조서를 만들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정신을 안정되게하고 외부의 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불만을 가진적 있어도 어렸을떄부터 귀여워해주던 임금이 떠나가는 것은 큰 슬픔일 것이다.)

이에 손권은 국가 시험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일을 제갈각에게 결재받도록하였으며,

손권의 유명을 받은 탁고대신으로서 대권을 잡게된 제갈각은 선정을 펼치며 민심을 얻는 것에 힘썼다.

*'제갈'씨는 원래 서주 출신으로 서주대학살 이후 흩어졌다. 제갈각 역시 양주에 근거지가 없는 신흥호족 세력이여서 자신의 기반을 든든히해야했기에 이런 노력들이 필요했다.

백성들이 미처 납부하지 못한 세금을 면제하고 관세를 없앴으며 모든 일을 처리하는데 은혜와 혜택을 중시하니 백성들 중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제갈각이 드나들때면 모두 제갈각의 모습을 보고싶어했다.

이렇게 제갈씨가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에 이어 제갈각으로인해 다시 한번 국가의 중심이되었다.

2부에서 계속.


원래 1부에서 끝내보려고했는데 이 양반이 꽤나 재밌는 성격을 가진만큼 인생을 재밌게살아서 이야기가 많더라구

1부는 그닥 전략적인 면이 많이 없었는데 2부는 굉장히 전략적이고 우리가 몰랐던 정치적인 부분들이 많아서 몇배는 더재밌을거라 생각해.

2부도 많이 썼으니 금방 다시 돌아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