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opard 1(1965~1984) : 4,744대 생산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초의 독일 전차.
초기에는 'Leopard'라 불렸으나 나중에 Leopard 2가 나오자 제식 명칭을 Leopard 1으로 수정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독일에서는 Leopard 1A4까지는 1을 뺀 Leopard A4 같은 형식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으며 1은 Leopard 1A5부터 붙게 된다.
만약 독일어 포럼에서 1인지 2인지 표기가 없다면 Leopard 1으로 보면 된다.
캐나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이탈리아, 터키, 호주에서는 아직도 운용 중이다.
엔진과 변속기가 조합된 파워팩을 장착해 엔진이 고장나도 20분 만에 교체가 가능하여 야전 정비소요를 단축시켰고 기동성을 위해 중량대비 출력이 큰 830마력 엔진을 장착했다.
또한 하천이 많은 곳의 작전도 염두에 둔 설계 덕에 자력으로는 수심 2.25m, 슈노켈을 장비하면 수심 4m를 단독으로 도하할 수 있다.

Leopard 2(1979~) : 3,200여 대 생산된 서구권 최초로 실전 배치된 3세대 전차(이후 3.5세대로 개량됨).
가장 큰 특징은 전투 중량이 55t이나 되는 중(重)전차임에도 화력이나 기동력, 방호력을 균형 있게 갖추고 있어서 신뢰성이 뛰어나다.
M1A1/2의 주포로도 채용된 Rheinmetall 사의 120㎜ 활강포, MTU 사의 1500마력 액체냉각식 디젤 엔진, 복합장갑 등을 채용헀다.
최초로 Rheinmetall 사의 120mm 44구경장 활강포를 사용해 화력이 출중했다.
화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다.
독일의 우수한 공업력에 힘입어 만들어낸 정밀한 스테이빌라이저는 전차가 고속기동하는 와중에도 전혀 흔들림없이, 목표물을 겨눌 수 있다.
Leopard 2A6부터는 주포가 기존의 44구경장에서 55구경장으로 길어져 주포의 관통력이 증대되었다.
상당히 길어진 장포신 주포 덕에 무거운 탄임에도 탄속이 동구권 전차만큼 빨라젔고 위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현재 55구경장 120mm 활강포를 장착한 전차는 Leopard 2A6, 한국의 K-2 흑표, 터키의 Altay 뿐이다.
하지만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는 M1 Abrams보다는 관통력이 떨어진다.
미국이 55구경장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시가전에서 걸리적 거리고 대규모 전면전을 할 일이 없기 때문.
게다가 텅스텐은 관통자가 뾰족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특별하게 성형해야 하지만 열화우라늄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냥 통짜로 만들다 보니 중량도 높아저서 위력도 높다.

1호 전차(1934~1938) : 1,659대 생산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최초의 독일 전차.
베르사유 조약에 걸리지 않기 위해 '농업용 트랙터'라는 명칭으로 개발됐다.
장갑은 소총탄과 동급 기관총탄을 겨우 막아내는 정도였다.
측면은 13mm 두께의 경사가 거의 없는(있어도 약간 있는) 균질 압연 강판 장갑이며 포탑 상부는 8mm, 차체 상부와 측면은 6mm의 장갑을 가졌다.
얇은 장갑에도 불구하고, 실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안에 거액을 들여 표면 경화 처리된 것이었다.

2호 전차(1935~1944) : 1,856대 생산된 경전차.
전쟁 발발 시점에서 이미 구형이었으나, 1939년의 폴란드 침공이나 1940년 프랑스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1/2호 전차에 비해 3/4호 전차의 숫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독일군의 실질적인 주력 전차 역할을 하게 됐다.
이후 전차 생산의 중점이 3/4호 전차로 옮겨가면서 2선급으로 돌려지거나 북아프리카 전선 등 장비 우선권이 떨어지는 전선에서 활용됐다.

3호 전차(1939~1943) : 5,774대 생산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최초로 제대로 만들어진 독일의 중(中)전차.
3(포탑) + 2(무전수, 운전수)를 정립하고 이에 영향을 받아 타국에서도 3인승 포탑을 시작했기 때문에 현대 전차의 아버지로 보는 의견이 있는데, 이미 10년도 전에 영국의 Vickers Mideum Mk.1이 3인승 포탑을 사용했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 타국에 영향을 주었다기엔 초기 불량이 심각하여 프랑스 침공 이전엔 생산량이 한 줌 밖에 안 됐고, 생산을 정상적으로 시작했을 땐 영국과 소련에서 3인승 포탑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거기다 3호 전차 이전 단포신 전차 중에서 3인승 포탑이 없었던 것이지, 다포탑 전차 중 메인 포탑에 3인승을 채택한 경우는 매우 많았다.
굳이 현대 전차의 아버지라는 명칭을 쓰고 싶다면 3호 전차를 콕 집어서 현대 전차의 아버지라고 부를 게 아니라 전간기, 제2차 세계 대전 전차 전부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4호 전차(1936~1945) : 8,553대 생산된 중(中)전차.
제2차 세계 대전 초기부터 주력으로 활약했으며 Panther(5호 전차) 개발 이후에도 큰 비중을 차지한 독일군의 실질적 주력 전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전차.
체급으로는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M4 Sherman, T-34와 비교된다.
M4 Sherman과 비교하자면 장갑도 빈약하고 대전차 능력이 열악한 초기형은 절대적으로 열세하였지만 장포신 F2형에서는 75mm M4 Sherman에 비해 화력에서 다소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고, G형에서 장갑까지 강화되어 대등한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후기형 M4 Sheman이 등장함에 따라 4호 전차는 300마력 엔진의 강화 없이 중량은 계속 증가하여 기동성이 저하되었으나 M4 Sheman의 경우 350마력의 초기형에 비해 450마력으로 강화되어 기동성에서 완전한 우세를 점하게 되고, 76mm를 장착한 시점에서는 화력의 우위도 빼앗기게 된다.
T-34와 비교하자면 시야가 불량하고 비좁은 2인 포탑의 초기형이라 할지라도 장갑과 대전차 능력이 열악한 4호 전차 초기형보다는 우세했다.
후기형에 와서는 주포가 연장되면서 화력이 강화되고 포탑도 확장되어 2인 포탑 치고는 상당히 넓은 포탑을 가지게 되었지만 장갑과 화력이 대폭 강화된 4호 전차 후기형에는 오히려 확실한 열세였다.
T-34-85가 등장하자 수치상으론 전반적으로 4호 전차 이상으로 향상되었다.
3호 전차와 같이 토션바 현가장치로 갈아타려 했으나 내부 용적 문제로 기각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두 전차와는 공격을 주고받을 수 있었기에 현역에서 싸울 수 있었다.
꾸준한 개량으로 종전 이후까지도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이 때문에 독일군 사이에서는 '군마(軍馬)'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사랑받았다.
참고로 가장 마지막까지 현역으로 싸우던 4호 전차는 1965년에 수송 임무 행렬에 있었던 이스라엘군의 M4 Sherman(프랑스제 105mm 포를 장비)에 의해 격파당했다.

Panther/5호 전차(1943~1945) : 6,000여 대 생산된 중(中)전차.
최종적으로 양산이 개시돼 전선에 등장한 것은 동부전선이 한창이던 1943년으로, 오히려 Tiger 1보다 1년 가량 늦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 전차를 '기어다니는 He 177 Greif'라고 평가했다.
G형을 기준으로 55도 경사에 80mm 두께를 가졌는데 수직 장갑의 두께로 환산하면 140mm에 이르는 방어력을 가진 셈이고, 여기에 60도에 가까운 경사는 실제 관통거리의 증가량보다 절반에 가까운 관통력 저하를 유발한다.
100mm의 포탑 전면은 충분히 두꺼워 보이지 않겠지만 반원형 포방패가 포탑 전면 대부분을 덮고 있었고 포방패도 100-110mm 정도였지만 탄착각이 매우 양호하게 나오지 않는 이상은 관통이 어려웠다.
한 마디로 중(中)전차의 탈을 쓴 중(重)전차.
실제 체급도 소련의 중(重)전차급이다.
방어력과 화력의 양립으로 무게도 적절하게 맞췄고, 여기에 티거에서 썼던 강력한 마이바흐 엔진을 실어 상당히 우수한 기동성을 가졌다.
게다가 제자리 선회가 가능해 전술 기동은 훌륭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차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최악의 전차로 손꼽힌다.
전면과 약간의 전측면을 포함하여 잘 쳐줘야 90도 가량의 각도를 제외한 나머지 270도 방위에서 구형 T-34의 76.2mm 포를 전혀 막지 못함은 물론이고 심지어 영국의 Matilda, Valentine에게도 2km 이상의 거리에서 무조건 관통된다.
포탑 회전 속도가 느려 상황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었다.
작은 포탑에 큰 포를 장착해 밸런스가 좋지 않았기 때문인데 20도 정도의 경사만 되어도 포탑을 돌리기가 매우 힘들었으며 그보다 더한 경사에서는 포탑이 멋대로 돌아가기도 했다.
변속기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어 주행거리 100km 이하로는 전체의 5%가 고장나지만, 주행거리 1500km 이하에선 전체의 90%가 고장났다.
엔진도 좁은 공간에 억지로 집어넣으면서 공간 부족으로 정비도 까다로워지는 등 문제가 있었다.
변속기 정비만 해도 전면 기관총과 무전기를 들어내고 천장 일부를 들어내고 차체 위로 크레인을 써서 통째로 들어올려야 했다.
무거워서 운송이 힘들고 연료가 많이 소모됐다.
안 퍼진다고 해도 T-34의 반도 안 되는 항속거리가 큰 문제가 되었다.
또한 높은 무게는 교량이나 특수지형의 통과도 불편하게 했다.
포탑 내부가 상당히 좁았다.
특히나 탄약수의 공간의 경우 탄약을 원활히 장전하는 것 자체가 불편해보이는 점으로 이런 좁은 전투공간이 장기적인 전투에서는 상당한 피로도와 전투능력 저하로 직결 된다는 점에서 나름 중요한 문제다.
원래 전차의 포탑 자체가 좁기는 한데 승무원의 거주성에 직결되는 포탑링이 좁은 게 문제.
M4 Sheman보다 작고 T-34/85보다 조금 넓은 수준 밖에 안된다.
심지어 거주성이 거지 같기로 유명한은 IS-2보다도 좁다.

Tiger 1/6호 전차 (1942~1944) : 1,347대 생산된 제2차 세계 대전 지상전의 상징.
제2차 세계 대전 중 가장 강하게 중무장되고 방호된 전차였으나, 그 설계는 보수적이었고, 약간의 심각한 결점을 갖고 있었다.
평평한 장갑판은 T-34 경사 장갑에 비해 단순했고, 충분한 방어를 제공하기 위해 무게가 엄청나게 증가해야 했다.
무거운 중량은 현가 장치에 심각한 부담을 주었고, 복잡한 구조는 정비를 어렵게 했다.
전차의 뒷부분에는 엔진실이 있고, 그 양측 공간에는 연료탱크와 라디에이터, 환풍기가 있었다.
엔진은 21L의 V12형 마이바흐 HL 210P45이며, 출력은 753.4마력이었다.
성능은 좋았으나 차량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963번째 티거부터는, 개량된 HL 230 P45(23리터) 엔진으로 바뀌었고, 690마력을 낼 수 있었다.
관성 시동기가 오른쪽에 붙어 있었는데, 뒷쪽의 출입구를 통과한 사슬에 의해 구동되었다.
11t의 포탑은 엔진의 기계 구동장치로부터 동력을 공급받는 유압 모터를 사용하였다.
완충 장치는 16개의 토션바를 사용하였다.
공간 절약을 위해, 스윙암이 양쪽에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었다.
각 스윙암에는 3개의 로드휠이 있어 야지 운행을 용이하게 하였다.
휠은 지름이 800 mm 이고 양쪽 다 합해서 48개가 끼워져 있었다.
또 다른 새로운 특징은 마이바흐-올파 유압 조정 자동 변속기와 반자동 변속기였다.
경량차량의 클러치와 제동장치 설계 대신 메르트-브라운의 단일 반경 시스템의 변종이 사용되었다.
8단의 변속 장치가 있어서, 16개의 서로 다른 회전반경을 갖게 되었다.
만일 작은 반경이 필요하다면, 전차는 브레이크를 사용하여 회전할 수 있었다.
허나 전차의 자동화된 특징은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아 있었다.
움직일 수 없게 된 티거를 견인할 때에는, 엔진이 종종 과열되어 종종 엔진 고장을 일으키거나 불이 났고, 이 때문에 규정에 의해 무력해진 동료를 견인하지 않도록 하였다.
낮은 곳에 부착된 스프라켓은 장애물 통과 높이를 제한했다.
궤도는 스프라켓 위로 올라가 움직일 수 없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궤도가 바퀴를 벗어나거나 끼이면, 견인을 위해 두 대의 Tiger 1이 필요했다.
인장력이 세서 종종 궤도 핀을 빼내어 궤도를 분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떤 경우에는 폭약으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독일의 표준 Famo 구난 견인 차량은 이 전차를 견인하지 못했으며, 1대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견인 차량이 3대까지 필요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생산 단가가 높다는 것이었다.
생산 시간, 원료, 가격의 면에서 높은 대가를 요구했고 4호 전차 2배, 3호 돌격포 4배의 비용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적은 M26 Pershing, IS-2이다.
Tiger 2/6호 전차 B형(1943~1945) : 492대 생산됐으며, 본명보다도 '쾨니히스티거(Königstiger)' 또는 '킹 타이거'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아돌프 히틀러의 1944년 2월 명령으로 Tiger 1/2는 독일 병기 중 별명이 공인받은 몇 안되는 사례 중 하나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지상전의 전설 Tiger 1의 계보를 잇는 중전차로서 Tiger 1만큼은 아니지만 독일제 전차 중에선 그 다음이라 할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1번째 장점으로 강력한 8.8cm 71구경장 전차포를 꼽을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포탄 기준으로 최강 전차포 리스트 상위권에 꼭 들어가는 포로 포신 길이만 약 6.24m의 대단한 장포신이기에 단순 구경 상으로는 34mm나 차이나는 스탈린 전차의 122mm D-25T 전차포를 압도하는 관통력을 발휘했다.
당시 모든 연합군 전차의 정면장갑을 1.8~2km 거리에서 관통 가능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포구초속이 1000m/s.였다.
그것도 평범한 철갑탄으로 달성한 것이다.
2번째로 우수한 방호력.
당대 최고 수준으로, 장갑 질이 낮아지기 전까지는 서부전선에서 Tiger 2의 전면 장갑이 전차나 대전차포에 의해 관통된 사례는 없다.
차체정면 150mm, 하부장갑 100mm, 포탑정면 180mm으로 IS-2, ISU-122에도 탑재된 122mm는 200m에서 차체 정면 하부를 노려야 관통, 포탑정면은 100m 이내에서 관통이 가능했다.
하여간 연합군 전차가 뭘 쏘던지 쏘면 다 튕겨내고 혼자서 그냥 아군 1개 중대는 다 격파하는 압도적인 공포를 동부/서부전선 가릴 것 없이 연합군 전차병들에게 안겨주었다.
이는 중전차인 IS-2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전차는 IS-2의 정면 상부를 2100m, 포방패는 1800m부터 관통이 가능했다.
이런 상당한 능력을 가진 중전차였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안타까운 데뷔전을 가지고 있다.
3대의 Tiger 2가 T-34/85 단 1대에 격파당했던 것이다.
1944년 8월 11일 501 중전차대대가 Tiger 2를 처음 수령받고 투입하던 중 저런 참사가 일어났다.
격파의 원인이 아직 해당 전차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포탑 측면과 포탑링을 근거리에서 강타당한 탓에 내부포탄 유폭으로 격파당한 것.
알렉산드르 오스킨 소위가 이와 같은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다만 이것은 약한 측면 방호력의 영향력도 있는데, Tiger 1 대비 전면장갑은 대폭상승 하였으나 측면은 80mm로 그대로였다.
이 때문에 M4 Sherman에게 격파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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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ㅅㅌㅊ 성능을 자랑했으나 M26 Pershing, M36 Jackson의 등장으로 탈탈 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