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예수사기단과 사상전쟁 없으면 ‘정치경제사회문화안보’가 죽는다

-트럼프-김정일 판문점 show를 초래한 ‘기독교민주통일선언’자체가 신흥종교급 배교- -

 

 

가. ‘판문점 쇼’를 포함한 최근 한국의 정치혼란 기원으로서 세계교회협의회 주례하의 남북 기독교교류의 중심 세력의 문제

 

최근에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쇼>가 있었다. 그 ‘쑈’가 나타난 이후에 한국의 우파 사회에서는, 북핵 일괄 타결로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기 전까지 현상 유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보여주기용 핵폐기 쑈’에 맞춰서 남한의 국가안보를 점진적으로 해체하는 단계적 비핵화가 추진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북핵 인정과 동시에 한반도판 일국양제로 가게 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 대학가에 돌던 이야기로 친북좌파는 연방제 통일과정에서 베트남처럼 한국이 완전히 공산국가(공산주의 귀족이 甲을 차지하기)가 될 때까지, 국제사회에서 일탈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외국의 제지를 받지 않고 정치보복을 원없이 한 연후에, 외국과 다시 문호를 열겠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는 곧 韓美동맹파 反共기독교의 완전한 파괴를 의미한다. <남한 사회가 죽든 말든 미국 이익만 챙기자는 식의 시각을 보이는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 <일반 국민이 피해를 겪든 말든 인민공화국 씨족만 챙기는> 문석탄 입장과, 애시당초 <남한은 북한의 속국이라고 보는 김정은의 입장>이 겹쳐져 있어 보인다.

 

이제야, 일반국민들은 90년대의 韓中수교는 ‘동방예의지국’으로서 공산주의에 상관없는 부분에 한에서 韓中 문화 교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국 문명 자체가 곧 중국 공산당이요, 중국 공산당이 곧 중국문명의 총체성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과 상관없는 부분만을 교류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불가능했다. 중국은 아시아적 봉건 전제국가다. 레닌은 공산당을 현대의 군주라고 불렀다. 시민 민주주의와 거리를 둔 아시아의 군주제를 전제한 신앙은 모두 아시아적 공산주의로 가는 매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서구파(기독교) 귀족이 거의 도태가 되고, 東道東器의 위정척사파와 東道西器派(중국문명의 삶-서양문명의 형식) 귀족이 주류를 차지하니 국민성이 확실히 바뀌어 있다.  남북교류는 남북의 신뢰가 구축되는 서양적 이성에 걸맞는 것이 아니라, ‘남북로당’ 연합주권의 중국 봉건전제 군주의 ‘이면 행위’와 서양개념으로 덧 씌우는 포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체제를 결합하면서 모두를 인정한다는 것은 전부 핑계일 뿐이며, 결정적 순간이 오면 홍콩의 ‘일국양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한쪽의 지배력이 다른 한쪽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북한이 대남 전략에서 추구하는 ‘고려연방제’는 중국의 ‘일국양제’와 상당한 유사성이 있었다. ‘일국양제’는 法에 의해서 보호된 국민의 기본권이 아니라, 전제군주의 ‘선정’을 기대하면서 유지된 국민의 권리가 된다.

 

홍콩의 ‘일국양제’는 별개의 완전히 새로운 체제가 결성되는 게 아니라, 시진핑 군주론 안에 설정된 영역이다. 남북한의 연방제(일국양제)가 되도 결정적인 시간이 되면, 홍콩이 지금 벌어지고 있듯이 남북로당에 다른 색깔은 정적 소탕의 시간이 될 수 밖에 없다. 지금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러한 로드맵에 입장 하는 것 자체를 막는 방법이 현명할 것이다. 만약에 ‘일국양제’가 좋다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는 오래전부터 북한과 교류를 했기에 자신들은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뿐이라고 본다. 동시에 다른 성도들이 다치거나 말거나 하는 사실상의 ‘무신론’ 신앙 감정에 있는 경우다. (사탄이 따로 없다)

 

고려연방제(한반도판 일국양제) 이데올로기는 6.15 이데올로기이며, 곧 1970-80년대 민중신학의 이데올로기다. 동시에, 기독자 민주동지회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과거 공안담론처럼, 이 글이 군사정권 체제의 붕괴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그 내용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인정됐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에 있어서는 그 내용이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 가능한 것인가? 질문을 전제한다. 이젠 세계교회협의회 신학의 많은 해설논문이 있는 상황이다. 

 

 

아래의 인용문에서 ‘제3 이념’과 ‘통일’이란 기호의 실체는 샤머니즘 족장 이미지에 좌파 씨족의 유토피아 이미지를 부여한 것이다. ‘사고’는 神인식에 닿아있는 ‘존재인식의 논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인식과 교회론 관점이 아니라, 샤머니즘 족장 인식과 씨족 마을인식, 그리고 오랑캐 인식이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부분은 ‘서방기독교’냐 ‘동방기독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기독교 자체가 아닌 것>을 “세계교회협의회”가 反美확장에 미쳐서(예수 그리스도 신앙이 아니라) 추인할 수 없는 것을 추인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이 회의는 “기독자 민주동지들은 독점자본주의적 체제와 공산독재체제의 비리와 모순을 지양할 수 있는 제3의 이념의 가능성을 모색하여야 한다”는 합의에 도달했다. 토론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되었다.

민주화운동의 이념적 방향설정에 대하여

I. 이념적 방향모색의 중요성이 국내외 민주동지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인식되고 이념문제에 관한 본격적인 토론과 연구가 시급한 과제로 요청되었다. 반체제 학생운동의 일부가 현 체제를 군부파시즘으로 규정하고 노동자, 농민, 진보적 지식인들의 연합전선으로 외세와 결탁한 매판재벌, 매판관료, 군벌을 타도하는 이념적 투쟁으로 급진화시키려는 현시점에서 기독자민주동지들은 사회 현실 분석과 이념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하면서 지금까지의 미비한 자세를 반성하며, 보다 적극적이며 체계적인 연구와 탐색이 긴급히 요구되었다.

2) 한편 현 정권이 위장된 민주주의와 정의의 깃발을 들고 노동운동, 학생활동, 언론기관을 극심하게 탄압하며, 이념서클을 말살시키고, 이념서적을 금지시키는 상황에서 기독자민주화운동은 극우적 이념과 체제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의 역할을 다할 수 있어야 하겠다고 공감했다.

3) 외세의 지배와 종속으로부터 탈피하며, 민족분단의 비극을 극복하지 않고서 참된 민주화의 달성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지는 오늘, 우리는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 강대국들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통일의 상대방으로서의 북한의 지배체제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이해하며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심각히 느낀다.

II.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이념적 방향설정은 70년대를 이어온 이념의 핵심이었던 민주, 민중, 민족, 다시 말해서 정치적 자유, 경제적 평등, 민족적 주체와 자립의 가치개념들을 새로이 전개되고 있는 국내외적 정치상황과 여건속에서 구현하는 방향에서 찾아져야 하며, 이념적 목표와 함께 실천적 방법론이 구비된 새로운 체제와 사회의 설계도로서 부각되고 구체화되어야 한다.

1) 민주화운동의 진보적 세력들이 주장해 온 반독재 반특권, 반외세 반분단의 가치들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설명하는 이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2) 현 집권세력이 극우적인 폭압통치와 수탈경제 체제를 가속화하고, 광주학살 사건 등으로 절망상태에 빠진 반체제세력들이 극좌노선으로 극렬화될 경우, 우리는 극단적 좌우이념의 폭력적 대립이 생길 것을 염려하면서 기독자 민주동지들은 독점자본주의적 체제와 공산독재체제의 비리와 모순을 지양할 수 있는 제3의 이념의 가능성을 모색하여야 한다.

3) 현 집권세력의 지배이념인 안보와 경제발전의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안보, 민중의 생존과 복지가 보장되는 경제발전, 전쟁과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방안 등, 우리의 민주화운동은 차원 높고 실현성 있는 정책들을 제시하며 투쟁해야 한다.

III. 기독자민주동지들은 한국의 사회적 정황 속에서 나타난 민중신학, 사회선교신학의 의미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며, 인간, 자연, 역사, 사회에 관한 성서적, 신학적 가치관들이 한국의 현실분석에 기초한 정치적 이념의 설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보다 근원적이며 상황적인 연구에 힘을 기울여야한다.

1) 기독자들은 민주화운동의 이념적 방향을 설정하는데 있어서도 기독자가 아닌 다른 모든 민주세력들과 협력하여야 하며, 진지한 대화와 토론을 위한 공동의 광장(Forum)을 마련하여야 한다.

2) 외세의 지배와 경제예속, 정치적 탄압 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제삼세계의 민중들과 함께 연대하여 그 공통적인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이들의 역사와 사회구조 정치적 이념들을 깊이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

3)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자들의 노력에 있어서 우리는 기독교신학과 교회의 역사가 갖고 있는 보수성과 반동성을 스스로 비판해야 하며, 철저한 자기비판과 끊임없는 갱신을 통해 기독교가 민족의 자주성을 확립하는 역사의 창건과 민중이 주인 되는 민주사회의 건설에 기여토록 노력한다.

 

1981년 5월 1일

기독자민주동지회 Bad Boll 모임

 

밧볼회의는 그밖에도 이제까지 캐나다에 두었던 중심을 동경으로 옮기고, 동경에 Documentation Centre를 설립하여 민주운동에 관한 정보 및 문서를 수집, 해석, 배포하고, 국내교회의 발언을 대변하는 역할도 수행하기로 하였다. 민주동지회는 미주•일본•독일•국내 등을 거점으로 하여 민주화운동을 지원하였지만, 활동의 중심이 일본이 되면서 동경의 오재식•지명관•김용복이 다른 나라 및 국내의 정보와 자금을 배급하는 일도 담당하게 되었다. 민주동지회는 Documentation Centre의 설립 이전부터 자료와 정보를 중시하였다.(김흥수, 213-215쪽, 김흥수, 「한국민주화기독자동지회의 결성과 활동」, 『한국기독교와 역사』 Vol.27 No.- [2007]  )

 

민주화기독자동지회는 ‘몰트만 신학’의 이미테이션을 보였는데, 이런 구절이 지향하는 것에서의 ‘神인식’이 아예 성경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적일 것이다. 결론부터 밝히면, ‘천도교인(그 외 신종교인 포함)’이 세계교회기구를 한국기독교 대표로 점령한 것이었다. 기독교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다. 중국의 ‘上帝 神’(천도교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만났던 신적 체험의 대상)을 대상으로 유교의 보국안민을 구현하며 그 토대 위에서 여러 종교를 족장 상징에 종합하는 것은 기독교 자체가 아니다. 세계 교회협의회가 이 사실을 모를 수는 없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추인한 것은 세계교회협의회가 예수 그리스도 보다는 反美에 미쳐서 정상적인 신학적 판단을 고의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세계교회협의회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反美를 중심으로 세력 확장으로 기독교를 활용하는 것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었다. 천도교의 ‘상제 신’을 그리스도라고 간주하는 것을 전제로 한국의 기독교기구를 장악한 천도교인의 농간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 문서를 추인한 세계교회협의회에 책임을 묻고 그 문서들을 효력 무효화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 한반도판 일국양제(고려연방제) 구현 이데올로기로서의 토착화신학

 

천도교의 “상제 신”을 대상으로 종교통합을 하는 것이 확대돼서, 남북한의 체제 이념과 이데올로기의 통합으로 이어진다. 체제와 이데올로기는 族長에 대동신앙적으로 통합된다. 좌파의 ‘조상 신’이 결합된 것은 그들의 ‘하늘(天)’인 왕권(고려연방제 주권)으로 이어진다. 천도교의 ‘인내천’ 교리는 좌파의 혈연 연고가 있는 이들만 인권이 보호된다는 아시아적 공산주의 사회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여질 것이 예측된다.

 

한반도판 일국양제는 소련에 줄 섰던 사회주의 씨족 혈연이라는 혈통에 집착돼 있다. 최근 문석탄 정권이 집요하게 띄우는 월북하여 북한정권의 권력자가 된 ‘김원봉’도 그 부분을 상징한다. 그들의 ‘시조 神’인 왕권으로서 ‘천신’과 결합한다. 중국 은나라 민족은 자신들의 선조들을 주신으로 추대하는 동시에 역대 군주 이름 앞에 帝를 붙였다. 은나라 사람들은 상제를 자신들의 선조로 여겼다. 은나라 사람들은 천신(시조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여겼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었다. 은나라 사람들이 믿었던 것은 천신상제였다. 천도교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만났던 ‘상제 신’은 중국 신화사에서 뚜렷한 뿌리가 있다. 일제 시대의 한국교회사에서 ‘상제 신’과 ‘예수 그리스도’를 헷갈린 인물이 발견되다고 하여, 그러한 판단이 공교회 신앙신조를 앞지를 수는 없다고 본다.

 

고려연방제 사회구성체로 맺어지는 이데올로기의 대중화를 못하게 해야 한다. 이는 곧 ‘소득주도성장’이자 ‘국가안보해체’ 및 각종 좌파정권 부작용을 수반하는 이데올로기와 연결돼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막지 않고, 자유한국당 당대표의 개인기로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이데올로기는 사회구성체에 필수적이다. 모든 사회전체의 유기적 부분은 체험된 경험 속에 내재한다. 이데올로기는 사회구성체 속에 선포된다. 천도교세력의 기독교기구의 불법점거를 통해 나타나는 고려연방제 이데올로기 구현의 역할을 하는 이데올로기로서 토착화신학은 허위적 표상으로서 ‘고려연방제’의 종북좌익 부족연맹체라는 지배계급의 지배구조에 일반대중을 묶어둔다. 자아의 상상적 오인 속에서만 이데올로기적 형성물 속에서만 중심을 갖는 그런 구조로 인간의 주체성이 구성된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의 물질적 토대라 보았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은 라캉의 상징계 개념에 근거한다. 기표들의 물질적 구조를 사회재생산의 보편적 요소이자 조건으로 파악된다. 주체의 생산은 기표들의 체계에 의해 과잉 결정된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주체로 호명하고, 이 호명에 답하는 과정에서 주체가 생산되고 구조화된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은 언어·발화를 매개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규정하는 사회경제적 매트릭스를 근대주체의 인간학과 연결한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은 계급투쟁과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며 재생산과 계급투쟁의 접합 가능성이 있다. 이데올로기는 실재 존재조건에 대하여 개인이 맺는 상상적 관계의 재현이다. 상상적 관계는 주체와 이데올로기 사이의 상상적 동일시를 말한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주체로 호명한다. 통일을 위해서 영웅이 요구된다면서 대중을 불러모으는 과정에서, 통일 이후의 세상이 무릉도원으로서 믿겨짐을 전제한다. 그러한 ‘믿겨짐’은 그렇게 장기간 대중들의 의식을 조작하는 속에서 이루어진다.

 

지배사상은 지배계급사상이며, 계급적·물질적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월북자가족들의 북한추종+한미동맹파 보복의식+조선조 양반계급 수탈 시스템의 향수) 남북 문제를 강조하면서 국가안보를 허물어뜨리면서, 북한에 이익을 주고 동시에 북한에 연계가 된 좌파 귀족들에게만 이익이 집중되는 현상은 이데올로기 속에서 은폐된다. ‘계급주의 표현’이 가시적으로 나타났다면 국민이 이를 경계했을 것이다. 그러나 계급주의 용어는 1도 나타나지 않은 상태로 계급주의 혁명선동이 나타난 것이다. 좌파 기독교의 민주통일운동은 북한천도교청우당-조선그리스도연맹-세계교회협의회-KNCC 문제로 나타나며, 이는 민주기독자동지회 문제다. 이는 세계교회협의회와 독일 교회협의회 문제로 나타난다.

 

한국의 귀족신앙은 한문이 주축이 된 유불선 신앙이다. 한국인들은 세속영역의 상당부분의 판단권을 가지지 못했다. 한국의 신학대학의 박사학위자들도 유학자 가문이 아닌 한 ‘토착화신학’을 하는 분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물며, 기독교 분야의 국제석학이라는 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위르겐 몰트만 같은 경우는 한국에 무려 40여년 교류를 했다. 독일 사회학의 중국학 연구는, 하버드 중국학 연구 못지 않게 상당한 수준을 보였다. 그가 한국 사회를 해석할 참고문헌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토착화신학이라 불리는 하나님의 바꿔치기 허락과 연결된다. “하나님이 신학의 대상인 이유는 하나님이 또한 자신을 계시하시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불가해한 위엄 속에 숨겨져 계시지만 (1) 우리에 능력에 맞도록 조절된 방식으로, (2) 하나님의 은혜 언약의 맥락 내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데 필요하다고 여기시는 것에 국한된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마이클 호튼, 119쪽, 이용중 역, 『언약적 관점에서 본 개혁주의 조직신학』, 부흥과 개혁사, 2014)”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모든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인식되는 것, 저 주체가 말하고 듣는 자들에게 대상적으로 현존한다는 것, 인간이 교회에서 실재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에 근거하고 이것과 전적으로 관계한다.”(칼 바르트, 11쪽, 황정욱 역, 『교회교의학 Ⅱ-1』, 대한기독교서회, 2010. “참 하나님 인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묶임에서 이루어질 따름이다.”(칼 바르트, 앞의 책, 15쪽) “우선은 믿음을 하나님 인식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인식을 믿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다. 믿음은 하나님의 대상성에 근거하고 그런 한에서 하나님 인식이다. 이것이 전제되어야 한다.”(칼 바르트, 앞의 책, 22-23쪽) 그러나, 과연 한국 교회에서의 ‘참 하나님’ 인식은 중국문명권에서 느끼는 세상성으로서 샤머니즘적 주관적 감정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한국 교회 공동체 내부의 ‘통정허위표시 문제’의혹과 연결된다. 성경의 기독교를 추구하는 것 같은 허위의 외관을 신뢰한 선의의 피해자 일반 국민과, 허위의 외관을 알았던 좌파의 이익으로 연결된다. 국민 판단의 대부분은 충분히 논의가 생략된 가운데 귀족에 의타주의를 진흥한 속의 ‘비진의 의사표시’다. 이는 ‘믿음의 순종(롬 1:5, 16:26)’과 ‘그리스도에 순종(고후 10:5)’한 사람들을 惡 에 패배하게 하고, 정반대로 산 사람들을 승리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탄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했다!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을 계시한다. 하나님의 사랑,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우호와 무제한적인 가까움은 이런 문장들로 신앙 안에서 해명되고 보장된다. (미하일 벨커, 343쪽, 오성현, 역, 『하나님의 계시-그리스도론』, 대한기독교서회,  2015)

 

한국의 우파 기독교 연합을 상징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출범은 1988년 KNCC 의 反반공선언에 반대하면서 시작됐다. ‘한기총’이 1989년 결성 때의 일차적 쟁점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反共을 내리는 것이 부당한 문제에 집중됐다 이제는 한국 교회가 ‘공교회 신조’의 거의 전체를 부숴 뜨리고,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이제는 중국문명의 “조상 神”을 성경의 하나님이라 불러서 한반도판 일국양제를 초래케 하는 것에 대한 반대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上帝神이 하나님을 대신할 때, 교회는 혈연 연고지향적 폐쇄성으로 갇혀지며 교회의 모든 공교회 신조는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에 있어서 성경 말씀은 ‘가식’이 되고, 조상신과의 연대(혈연 연고 찾기)가 절대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만이 창조자이시고 인류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그 분이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 최고의 권리와 권세를 갖고 계시다. “나는 이 일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그에 따라야 할 그 어떤 의무도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질 수 없는 감정이다.(제임스 패커 추천, 부르스 밀른 지음, 15쪽, 김정훈 역, 『복음주의 신학 개론』,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9.)

 

1. 우리는 한 하나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을 믿는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님의 조명과 능력으로 신구약성경에 의해서 자기자신을 계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지탱하시며, 구속하여 성화시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사 영화롭게 하시며, 영원한 사랑의 교제(코이노니아) 를 누리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인류사회의 공동체성,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사랑과 생명의 교제의 근거이시다.(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    http://kcm.kr/dic_view.php?nid=38355)

 

마땅히 믿고 순종해야 할 성경의 권위는 어느 사람이나 교회의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오직 진리 자체이시며, 저자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거한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제1장 4항)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은 오직 한 뿐이사다. 그는 존재와 완전함에서 무한하시며 지극히 순수한 영이시며 보이지 아니하시며 신체도 부분들도 성정도 없으시며 불변하시며 무한하시며 영원하시며 완전히 이해될 수도 없으시며 전능하시며 지극히 지혜로우시며 지극히 거룩하시며 지극히 자유하시며 지극히 절대적이시며 또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불변하며, 지극히 의로우신 뜻의 계획대로 만사를 행하신다. 또 지극히 사랑하시며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오래 참으시며 선하심과 진리가 풍성하시며 불의와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며, 부지런히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자이시며 또한 그의 심판은 지극히 공의로우시고 두려우시며 모든 죄를 미워하시며 또 죄 잇는 자를 결단코 면죄하여 주지 않으신다.(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제2장 1항)

 

성경의 하나님은 중국 신앙에서 말하는 조상숭배와 헷갈려서는 안된다. 설사, 참고문헌이 없어서 헷갈리는 게 가능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참고문헌이 있기 때문에 이를 알고 그렇게 판단한다면 그리스도 앞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조상숭배와의 최초의 정신적 관계는 결국 왕권 때문이 아니라 혈족관계 때문이다. 조상숭배란 단순히 사자 자체에 대한 숭배가 아니다. 그의 논문 『에도종교에 있어서, 父․祖․鬼』에서 사자와 조상숭배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에도 지역의 종교에 있어서 “공동적 사자”는 단순한 혈족의 조상이 아니라 혈족의 계보를 초월하는 공통적 숭배의 대상인 어른들, 추장들, 그리고 성왕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조상들의 단순히 사자의 영명한 세계에 머무는 혼령들이 아니다. 이들은 살아 있는 후손들과 유기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혼령들이다. (중략)갑골문에서 논의되는 조상에 대한 제사는 사실상 조상들이 갖는 혈통이나 인적 관계상의 특정한 혈연적 위상에 따라 명확히 구별되어 있다. (벤자민 슈월츠, 50-51쪽, 나성 역, 『중국 고대사상의 세계』, 살림, 1996.

 

중국사상에서 만나는 神은 ‘조상 神’이며, 그 神 인식은 일원론적 형태를 나타낸다. 성경의 하나님과는 완전히 다른 신앙적 뿌리인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신 인식’이라는 중요한 착오에 논쟁이 없다는 뜻은,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정략적 목적으로 교회신자들을 중국사상적 우민화(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 『논어』(태백편) 使有什佰之器而不用(『노자』 도덕경 80))를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신앙적 범죄행위에도 불구하고 교회 공동체 내부의 혈연적 폐쇄성이 이를 침묵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판 일국양제(고려연방제), 소득주도성장, 국가안보해체, 아시아적 민란과 정치보복으로서의 ‘탄핵정국등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는 ’성경의 하나님‘과 중국문명 조상신의 바꿔치기 때문으로, 한국 국민과 세계 교회를 동시에 속여치는 일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한국 우파 국민이 反 민주적 독재(중국적 상황)로 인식하는 것이, 모조리 서구 민주주의로 서구에 왜곡 소개되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 조상 神이 서구사회에 성경의 하나님과 같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교회 신자들을 대상으로 거짓소개 됐기 때문이다.

 

5. 종교 간의 대화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나 타종교안에 그리스도의 복음과 같은 구원에 이르는 복음이 있음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타종교인을 적대시 할 것이 아니라, 복음선교의 자세에서 그들과의 대화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행 17:22-31)(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신앙 고백)

 

가톨릭의 ’토착화‘ 문건도 성경의 하나님을 바꿔치기해도 좋다는 인정은 없다. 중국 조상신과 성경의 하나님이 혼동이 되면, <교회를 이용하는 귀족들의 혈연 연고집단>만 잘되고 나머지는 어떻게 되도 상관이 없다는 인식을 초래한다. 이것이 ’한국 교회 지도자라 불리는 이들(천도교인의 기독교기구 불법점령으로 비춰지는)‘이 북한판 일국양제인 고려연방제에 대하는 자세의 원인을 의미한다.

 

다. 최제우가 신앙체험을 했던 천도교의 ‘상제 신’을 해석하는 맥락

 

기독교인에게 복음 선교는 사명이다. 한국 기독교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든 복음선교는 선교지의 사회문화의 이해를 요구한다. 복음전도를 위해서는 한국의 사회문화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한국의 神話는 神聖性이 인지되는 범위에 따라 국가시조 신화, 촌락 시조신화, 씨족 시조신화 등 조상신 신화와 농경 생산신 신화, 가정 수호신 신화, 수명 복록신 신화 등 무속 신 신화로 나뉜다. 한국인 모두가 신화로 인지하는 자료는 국가의 건국 경위를 이야기하는 국가시조신화(건국신화)로 나타난다. 이는 고대 국중대회에서 하늘에 제사로 나타난다. 상고시대는 村落이 기본단위이고, 사람들이 촌락에서 생활하며, 통일된 천하에서는 하나의 우두머리가 있고, 연맹의 수령을 추대를 통해서 존재했다. 그 모습은 <단군신화>와 <주몽신화>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神話의 이야기는 주술․종교적인 힘으로 비의적 지식을 구성한다. 神話는 기원을 설명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이야기를 말한다. 神話는 신앙을 기저로 형성된다. 神話는 제의에 상관돼 있다. ‘신화를 살다’는 진정한 종교적 경험을 이야기한다. 始元으로의 복귀는 재생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신화의 재연 때 공동체 전체는 개인되고, 그 원천이 재발견되며, 그 기원이 다시 살아나게 된다. 종교적 인간에게 본질(혈연의 선택)이 존재에 앞서서 있다. 한국 신화의 대부분은 씨족국가의 祖上神이다. 그러한 이유로 제의적인 문제와 한국신화를 연결해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후국은 제천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제천의 전통과 제후국의 명분이 충돌된다. 유교의례로서 조상제사는 권력의 표상이다. 유교 祀典은 왕권중심 정치권력을 반영한다. 국가의 독점화,. 관권의 독점화는 淫祀로 나타났다. 음사는 조선시대 사전의 정비 이후 관의 허가를 받지 않았거나 사전이 규정한 형식에 어긋난 제사 의례를 말한다. 조선은 건국 이후 이전 왕조인 고려에서처럼 신은 하나인데 몇 곳에 나누어 제사를 지내고, 혹은 하루 동안에도 몇 곳에 제사를 지내는 등 제도적으로 정비되지 않은 모든 의례를 음사로 규정하였다(『태조실록』 1년 11월 17일). 제도적 정비란 천자·제후·사(士)·서인이 각각 제사하는 神이 있어, 천자만이 천지에 제사하고 제후라야 산천에 제사할 수 있다는 등의 의례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 백성들이 오랫동안 행해 온 산천 제사는 당연히 음사가 되며, 주로 별에 제사하는 소격전(昭格殿) 제사도 천자가 아닌 당대 왕의 격으로는 맞지 않은 것이었다. 성리학적 이념에 입각하여 조선의 제의를 제도화하려는 유신(儒臣)들의 입장에서는 이 모두가 음사로서 폐지 또는 수정되어야 할 사항이었다. 조선시대 음사 비판은 갈수록 내면화됐다.  국가전례는 국가의례 가운데 법전과 같이 구속력을 가지는 의례를 말한다. 이러한 제사는 임금의 주술사로서 통치권의 강화를 말한다.  영웅신화는 씨족 신화이고 왕권신화이며 부족신화다.

 

중국문명의 조상제사로 귀족과 궁궐에서 나타나는 쪽에서 만나는 조상신 인식이 신화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부족 간의 투쟁 연합. 부족의 융합을 포함한다. 중국민족과 영향권에서 끝없는 부족 간의 전쟁을 통한 흡수통합이 있은 일과 연결된다. 승자 부족은 자신들의 영원한 지배를 위해서, 그리고 패배자 부족은 권력 역전을 기대했다. 유교 제사에 있어서 政은 樂을 본뜨고, 和를 좇으며, 和는 平을 좇는다. 음악의 조화는 우주의 조화의 표현일 뿐, 상고시대에는 음악, 시, 춤의 통일체였다. 美는 상하 등급과 귀천이 잘 어울려야지, 현실을 뛰어넘을 수 없다. 禮로써 美를 규정한다. 중국 고대사회는 협소한 친척·혈연의 윤리·도덕관계를 연계의 축으로 한다.

 

공자는 씨족 귀족정치를 옹호하던 周禮를 지지한다. 禮는 친자간의 사랑의 기초를 성립한다. 德에 의한 정치로 인심을 강화하고, 禮로써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한다. 成於樂 遊於藝란 말은 修身하기에 앞서 시를 학습해야 한다는 듯이다. 樂을 통해 소인을 부리기 쉽게 한다. 治國의 도는 예악교화에 있다. 仁은 樂의 미적 내용이고 樂의 美는 仁의 표현 형식이다. 中은 서로 의존이며 조화와 통일의 실현이다. 선진시대의 樂은 예치를 하기 위한 통치수단과 향락의 의미를 나타낸다. 중국 고대 문화는 禮와 樂의 병칭이며 음악활동은 모두 제사와 밀접하다. 제사의식은 禮와 연결된다. 악의 규범성은 인격의 형성과 도야를 표현한다. 仁과 樂의 통일에 있어서 음악의 정상적 본질은 和이다. 유가의 정치는 교화의 정치다. 한 사람 수양이 천하국가에 이르는 것이 유가의 전통이다.

 

반면에, 老子는 禮敎를 재난의 근원으로 본다. 원시씨족 사회가 붕괴된 이후에 모든 죄악이 생겨 났다고 본다. 無爲而無不爲는 천지보다 앞서 존재한다. 무지무욕을 통해 천하의 태평을 구하고자 했다. 道家는 道와 일체가 되는 삶을 추구한다. 수양의 과정을 통해서 도를 체득한 성인·지인·진인 내지 신인의 경계를 추구한다. 도교는 전국시대에서 자유로운 해방을 추구한다. 遊의 기본조건은 無用과 和이다. 장자의 초월은 천지정신과 왕래한다. 老壯의 無爲는 정치의 부정이며. 忘의 의미 속에서 통일되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仁學에 토대. 노자는 道에 관한 이론 토대하는데,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것을 말한다.

 

상제, 혹은 天의 숭배는 上帝, 帝, 上天, 皇天, 天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상제가 인격을 가졌다고 생각은 상제 상천이 만물의 근본이고 도덕이 천에 근거하며, 상제․상천은 황제 권력의 원천이며, 上帝는 뭇 신의 우두머리의 의미로 나타난다. 天은 자연현상이고. 크고 변함없음을 뜻하며. 보편적, 사회적 윤리적이다. 帝는 유목문화소산이다. 하제는 지상의 중심이고, 上帝는 인간세를 초월한 천상의 중심이고, 폐쇄적, 직계적, 신비적이다. 天命은 은의 탕이 하의 걸을 칠 때 명분적 관념이며, 역성혁명사상의 명분이다.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절대권력은 정권탈취와 수호의 명분이다. 民은 그저 통치의 대상이다. 은족은 자기들의 祖上神이 上帝라 믿었다. 祖上神에 대한 숭배가 지고신을 숭배한다. 帝, 上帝는 기후변화 장악, 기근 관장, 생사여탈권을 가졌다.

 

 

‘大宗’에서 ‘小宗’으로 흐르면, 혈연이 멀어지는 공간에서 사회가 와해가 된다. 가까운 사이에서만 윤리가 지켜지고, 거리가 멀어지면 부족윤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사회를 안정시키는 결론은 親親과 가족주의와 족장 숭배로 나타난다.

 

중국사상은 가족중심이 나라 단위로 확대된 것이다. 족장 신앙이 주술경제와 씨족연합 집단을 나타난다. 족장신앙은 族人에 절대권력과 안녕 행복도모로 나타난다. 유교의 禮訟은 군주의 종법상의 지위 때문에 나타나며, 윤리적 왕권통제와 성인군주론으로 나타난다. 한국은 권력과 관직이 사회적 계급결정한다. 한국 귀족의 야심은 오직 官의 차지 (서구는 무역으로 부를 벌기) 였다.

 

 

족보는 혈연관계로 나타난다. 남이 아닌 우리 문제로 집단적 가계를 기록한다. 족보는 종족 결합이나 문중활동을 연구하기 위한 소재다. 족보는 양반 문화의 상징으로 상층 사족 사회 위주로 제작된다. 혈통주의에 따른 사회적 권리를 지키려는 수단이다. 유교적 친족 이론은 종법 이념이며 사족층의 족적 결속과 족보의 편찬으로 나타난다. 족보는 유교적 친족 윤리의 실현이며. 동성단위의 동족의식의 강화이고, 姓族 단위의 집단적 결속이다. 족보는 가문의 역사이며 공통 조상인 시조와 조상을 모아 행정 기록한다. 조선의 족보는 양반을 위한 족보다. 士族 사회가 혈연중심의 폐쇄적 사회이며,  족보는 유교적 친족 의리를 의미했다. 족보는 혈통 과시와 사회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특권 신분층을 보여준다. 문중은 공통의 조상의 자손들로 구성된다. 가문을 단위로 정치적 입장이 결정된다. 사족은 문중 네트워크에 결정된다. 黨同伐異로 당내 당, 파중의 파를 공격한다. 文弱의 폐해로 문무겸비가 양반, 실제로는 드물다. 중국문명권의 개인의 자기인식은 ‘씨족 문화’로서 가족문화의 일부로서 인식이다. 따라서, 그 안에서 개인의 自我는 생기기 어려워진다.

 

귀족과 군주의 제사는 神話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제사는 귀족만 했을까? 민중도 동일하게 가족주의 문화를 이루었고, 자기 인식은 가족문화의 일부로서 였다. 민중의 죽음은 기억 속에 어떻게 신화로 남았을까?

 

전설은 이야기 중에 전승자가 그 내용을 사실이라고 여기는 자료들을 마한다. 전설의 작중 배경은 대체로 특정한 역사적 시간과 구체적․지리적 공간이 제시되는데, 이는 전설의 세계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일로서 언제 어디서나 인간이 사는 곳이면 일어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민담의 세계와는 다른 것이다. 인물 전설은 주인공의 출생과정과 활동양상이 보통사람과는 다르다. 전설의 주인공은 도가적 인물이 많으며, 조정보다 백성들 편에 산 사람이 많다.

 

<아기장수 전설>은 천하의 명장으로 태어난 아기 장수가 역적이 될까봐 두려워 하는 부모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이야기다. 태어나자마자 공중을 날아다니는 아들의 모습을 본 부모는 콩섬과 팥섬으로 아이를 눌러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아이가 죽자 용마가 땅에서 솟아오라 펄펄 뛰다가 죽었는데, 용마가 솟아난 곳이 연못이 되어 메아지 못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이 전설 역시 전국각지에 두루 전하고 있는데 외국의 침략에 시달리면서 명장을 갈망하는 한국 민족의 기대와 명장과 같은 훌륭한 인물이 전제군주 사회에 등용될 수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투영되어 이루어진 전설이다. 전설과 민담, 그리고 고소설에 나타난 英雄이야기가 이러한 모습을 나타낸다. 민중들의 영웅 이야기도 결국은 ‘가족’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서의 死者의 기억과 관련된다.

 

민담과 설화에서 비극적 영웅이야기(마을 사람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 중국식 씨족 중심적 신분제 사회에서 짓밟힌 민중세력은, 그 신분사회에 복종하면서도 민중생활상에서는 그것을 완전한 부정을 했던 것이다.

 

 

라. 일제 강점기의 항일 무장 투쟁 정서에 빠진 마을의 내면세계

 

유교에서 大同은 현실이 아니라 잃어버린 이상이자, 유토피아이며. 친족지배를 말한다. 한국 사회주의자들은 ‘老子’적인 유토피아와 그에 연결된 민란 전통에 익숙하다.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 역사비평사, 2004. 22-25쪽) <예기> 예운편에 기록된 大同의 기억이나, <시경>에 기록된 樂土언급등은 신화적으로 왜곡된 현실이며, 현실 자체가 아니다. 중국문명권 씨족 마을 체제는 친족을 통해 강화하지만 안으로 붕괴됐다. 조선왕조의 ‘대동법’시대는 귀족독재의 기초가 됐고, 동시에 민중핍박의 기원이 됐다. 귀족 내부만의 大同인데 전체 민중까지 포함한 것으로 설정됐다. ‘대동’은 서구식 공론장의 결과가 아니라, 지배씨족의 마을 정서가 다른 마을까지 확대된 것이다. 귀족 내부에서도 직계혈연만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욕구는 수 많은 생명들이 궁중 파벌 싸움으로 희생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 사회주의의 발생은 구한말의 ‘위정척사파’ 농민군의 패배로부터 시작된다. 일본군에 패배한 농민군은 계속된 항전을 위해서 만주로 위치를 옮기게 된다. 그들은 그 곳에서 생존을 위해서 농촌 사회의 부락민 전통을 이어갔다. 소련 사회주의 세력은 이들의 일본 침략을 막아주는 정치적 필요가 보이게 됐다. 그리고, 일제시대 사회주의 세력의 정치 평론에서도  ‘통일’이란 말은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언어의 사용 방식으로 그 뜻을 추정해보면, 공산 혁명가를 ‘씨족국가’의 민란 영웅으로 떠받치는 고대중국의 전통에 연결될 것으로 보여진다. 일제시대 사회주의 세력은 끝없는 파벌 분쟁이 있었지만, 동시에 사회주의 혁명귀족 사이에 우월한 귀족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위해 합병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지속됐다. 그것이 ‘통일’이라 표현됐다. 코민테른 7차 대회에서 反파시즘 연합전선이 논해지기 훨씬 이전인 1920년대부터, 중국 유불선 신앙이 종합된 新종교를 중심으로 하는 좌우합작 프레임이 나타났다.

 

 

大同사상은 無爲․無慾․無私를 주장하는 道家 사상 계열과, 仁政과 井田制를 중심으로 한 왕도정치를 강조하는 儒家 사상 계열로 나뉜다. 道家사상은 생존에 몰두하는 원자화된 일탈지향적인 자아와 연결되고, 儒家사상은 귀족중심으로 수직적으로 마을 공동체 속에 서 있는 공동체적 자아를 말한다. 이 문제는 커다란 차이가 아니다. 무난히 하나로 겹쳐질 수 있다. 중국 사상사에서 孔子와 老子는 거의 대등한 지위를 차지한다. (중국사상사 책을 읽지 않고 함석헌 저작집만 읽은 분들은, 공자와 맹자를 아주 부정적으로 보고, 노자와 장자를 너무 낭만적으로 본다. 이러한 시각은 시급하게 치료돼야 하는 病이라고 본다.) 한국신화는 무속신앙의 샤머니즘과 연결된다. 부족장 임금의 死後神異는 死者의 像과 연결되고 시베리아 문화와 이어진다.

 

한국지식인들의 민낯은 조상숭배의 제사장인 양반 귀족이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는 3개의 양반 파벌이 있었다. 東道東器를 추구하는 爲政斥邪派가 있었다. 그리고 일정한 인원은 개화사상에 동의하고, 일정 인원은 위정척사파에 동의하는 東道西器파가 있었다. 그리고 서구파로서 기독교사상이 주축이 된 西道(기독교)西器(서양체제)파가 있었다. 군사정권 反共담론은 서도서기파 시점에서 바라본 ‘동도동기’(위정척사파)의 비판이 주류를 이루었다. 지금의 한국문화계는 反반공 입장은 중국문명 지향적이며 조선 후기 지배체제로 돌아가길 바라는 입장에서 서구파를 비판하고 있다.

 


 

 

한국형 공산주의자는 소련 마을의 동성촌 유토피아 의식과 족장 신앙으로서 혁명가 숭배(님 신앙)로 이어진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참 아이러니 하다. ‘님’은 혁명가 신앙으로 공산당의 당성/당파성과 동일시될 수 있는 샤머니즘 부족장을 의미하는데, 김일성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시진핑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홍콩 시위대가 자기를 잡아먹으라는 노래를 부른다? 한국의 정치현실은 서구 사회에 철저하게 왜곡 소개됐다는 면의 한 부분일 수 있다.) 민간의 부족전쟁 마인드로 쪼개진다. 공산주의자는 신종교 세력이며, 위정척사파세력의 동성촌 유토피아에 소련 사회주의 개념 덧 씌운 것이었다. 폭력의 기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중국문명 시스템 자체에 있다. 『논어』와 『맹자』를 읽어봐도 귀족 사이의 전쟁을 통한 殺生이 흔하게 벌어지는 것이 중국 시스템이다. 공산주의 세력은 내부적으로 ‘소련파’, ‘중국파’, ‘일본파’가 나뉜다. 그러나 그 세부 분류는 좌익이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 분류하자면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고틀에서 ‘華夷論’을 장착한 중국 지향성이냐, 그렇지 않으냐는 분류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다시 말해서, 중국 孔孟사상에서 ‘사회주의’의 원형 이념을 발견하느냐, 서양 사회주의 이념에서 ‘사회주의 이념’의 원형을 발견하느냐의 차이란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 反共세력은 일본 우익 이론을 수입하여 한국 사회에 적용하여, 공산세력의 폭력성의 원인을 공산주의라는 것의 폭력성으로 설명해왔다. 그 해석은 바꾸는 것이 타당한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좌파 내용은 좌파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글에서 ‘사실성’을 파악하는 것이 정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제 시대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들에게 통일은 ‘자기 파벌 우선권’을 의미한다. 상대를 절멸한다는 의미를 말한다. 남한의 우파 천도교세력의 북진통일을 하지 못하게 한 이후에, 남한 국민을 최대한 바보를 만들어놓고 남한의 자유민주체체제의 보호막을 깨뜨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 구한말 <위정척사>의병이 일본제국주의에 패배한 이후에, 만주의 소련국경지대로 이사하게 됐고 소련공산당의 정치적 의도로 한국사회에 사회주의가 퍼지게 된다. 이것이 <한인사회주의>역사의 시작이다. 그리고 러시아혁명 이후에 소련은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공산주의 운동의 거점을 만든다. 친중 성향의 항일 의병투쟁 중심의 양반들은, 자신의 잣대를 소련지향으로 바꾸어 선다. 이것이 <민족해방통일전선>의 시작이었다. 일제 시대 공산주의 운동사는 조선시대 유교 붕당 정치의 연장선이다. 유교붕당정치는 관직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관직은 사회의 기본재화 중 양반귀족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했단 것이다. 관직의 서열에 따라 토지와 봉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조갑제씨처럼 유교붕당이 관념론이라고 보는 것은, 정작 역사적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만 갖는 착각일 것이다. 유교붕당은 너무 덜 관념적이라 문제였고, 관직이라는 물질 탐욕이 극한대에 달했다고 본다.) 『춘추좌전』은 儒者들에 대해서 전쟁은 우주에 대한 의무라 주장한다. 儒者에 있어서 군사적 종법은 곧 윤리적 종법이었다. 그들에게 법의 근원은 예다. 공자는 모든 이익 추구는 義에 맞아야 한다고 보았다. 일제시대 항일의병 유교 인사들에 일본제국주의를 무력으로 타격을 입히는 것보다 義에 부합하는 것은 없었다.

 

북한에서 조만식 선생의 핍박과 살해당함은 김일성과 공산주의의 직접적 음모라기보다는, 일제 시대에 지속된 공산주의 진영의 시스템 문제가 제일 컸다고 본다. 소련을 周나라이자 中華로 보는 이들(이승만 진영의 시각은 북한의 소련 꼭두각시론이었다. 좌파들이 자신들을 기록하는 시각을 기존의 반공우파의 시각과 겹쳐서 평가해보자)에게, 소련파에 공공의 敵인 김구 선생(남북연석회의 이후에 소련파에 귀염둥이가 됐지만, 남북연석회의로 김구 선생이 방북했을 때 미쳐 지우지 못한 김구 선생에 대한 비방 플랭카드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과 합작하는 조만식 선생은 제거해야 될 대상으로 비춰진 것이다.

 

 

이북 실향민 중에 ‘막연하게’ 항일 운동 차원에서 김구 선생을 선호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반탁 운동 당시에 조만식 선생의 협력을 그런 차원으로 지지했던 분들도 많다. 오늘에서는 모든 정보가 오픈됐지만, 과거는 그렇지 않았다. 『논어』와 『맹자』에서 그러하듯, 부족전쟁을 중국문명은 당연시했고 흡수병합되는 씨족을 보호하지 않았다. 소련 군정 사회에서 소련 군정을 충성하는 문화 속에서, 소련 군정을 부정하는 양반 귀족은 중국 문명 속에서는 제거될 대상이었다. 문제는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기억의 차이다. 중국문명을 자기화하는 주체성으로 그런 살육전쟁을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살육전쟁을 사회에서 두 번 다시 반복돼서는 안될 재앙으로 보는 시각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한국 좌파들 상호간에는 ‘전향’을 둘러싸고 유교의리론으로보는 명분론 투쟁의 흐름이 강하다. 계급투쟁 자체가 ‘춘추’신앙의 복수감정에서 추출했으니, 변절에 대해서도 ‘유교의리론’에서 파악하는 게 자연스럽다. 이승만 대통령의 평생의 政敵인 공산주의 세력들은 <공산주의 이념>에 전문가가 아니었다. 유교 춘추 신앙으로 복수신앙에 길들어서 긴 호홉이 사고를 하지 못했던 항일 양반세력이었다. (동시에 지금은 좌파 조상숭배를 강요하며, 현재적 정치권력의 확장을 주도하는 이들이 그들의 직계세력일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소련 공산당을 망한 중국을 대체할 세력으로 생각하고, 여전히 조선왕조에서 있었던 권력 쟁취를 위한 폭력투쟁을 계속했다. 그러한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전향문학은 카프 文士들의 대부분이 구속된 ‘전주사건’ 이후로 나타났다. 이들 중 전향파에서는 유교의리론보다 생활인으로서 고립에 두려움과 생존을 지향하려는 가치가 강했다. 유교의리론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고집했던 이들은 ‘비타협세력’으로 남아서, 북한정권 수립에 있어서 핵심인사가 되기도 했다.

 

 

 

실상 전주사건 연루자 23명 중 표면상 전향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고 전원이 기소유예로 출감, 사상보호관찰법에 묶엿던 것이다. 이 사실은 전주사건 이후에 전개되는 이들의 내면풍격을 섬세히 다룬 전향소설에서 빈틈없이 읽어낼 수 있다. 다만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해소파․비해소파의 구별은 성립되기 어렵다. 문제의 중요성은 따라서 해소․비해소라는, 이항대립적 흑백논리의 해명에 있지 않고, 각각 속에 내재한 근소한 차이를 알아봄에 있다. 때로 그것은 개인의 기질적인 것에서, 지역적 편차, 교육정도의 편차 등등에 관련된 것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근소한 차이야말로 어떤 거창한 세계관보다 중요한 것이라 할 것이다. (김윤식, 35쪽, 『해방공간의 문학사론』, 서울대학교출판부, 1989)

 

호남 천도교세력은 일제 말기에 親日派였고, 해방공간에는 남로당에 줄 섰다. 일본 천황사상과 공산당 사상이 연결된다. 더불어, 신종교의 교주신앙과도 공통점이 형성된 것이다. 천도교 신앙에서는 일본이 취한 서구적 국가가 부재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중국적 국가관인 君主안에 상상의 나라가 있다는 ‘씨족국가관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3개의 국가관을 알고 있다. 이 시점에서 3가지 국가관의 차이를 명백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 번째, 1인 지도자가 그 자체로 國家가 되는 전통적인 유교 왕권제 국가관이다. 한국사에서는 ‘연산군’에서 ‘숙종’을 거쳐, ‘일본제국주의 권력’과 ‘군사정부’권력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국가기구가 폭력의 도구가 된다. 1인 지도자 체제에서는 ‘공권력’이 비대화된다. 국가를 이용하는 파벌에 저항세력은 공권력이 제거한다.

 

두 번째, ‘1파벌’이 國家가 되는 조선후기 국가관과 그 연장선상에서 놓여 있는 공산당 1당 독재 사회를 말한다.

 

권력을 고수함으로서 엘리트와 민간에 주어지는 방대한 잇권 문제가 폭력의 도구가 된다. ‘1파벌 국가’체제에서는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서원문화’가 비대화된다. 북한공산당으로 보면 ‘지역 공산당 문화’가되고, 한국 사회에서는 각종 기념관 문화와 연결된다. 지배 세력의 독재 문화에 경쟁세력을 배제하는 흐름은, 꼭 북한 공산사회까지 안 가더라도 19세기 조선왕조 사회의 역사가 보여준다.

 

세 번째, 유럽적 국가관인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가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개신교와 가톨릭이 겹쳐진 사회의 세속적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관이다. 이는 1인이거나 1파벌 등의 권력독점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林에 의하면, “전향의 근본 동기는 비할바 없는 코쿠타이에의 자각”이며, 전형의 길을 열어준 것은 일본의 코쿠타이 뿐이다. (중략) 공산주의 사상이 놓여던 자리에 천황사상 즉 코쿠타이를 대치시킨 것이다. 林의 이러한 전향론 사상은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 프롤레타리아 작가에겐 매우 문제적이었다. 林은 전향작가를 논하는 머리말에서 “조선의 작가는 전향해도 돌아갈 조국이 없다”고 공언한 바 있었으며, 이 때문에 친일문학으로 나아가던 최재서, 김용제등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김윤식, 278-279쪽, 『한국근대문학사상사』, 한길사, 1984)

 

성리학은 송대의 지주․지식인 관료들이 대 통일 국가를 이상국가로 만들겠다는 강박관념과 연결됐다. 일제시대 민족해방통일전선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연결된다. 일제시대 공산주의 운동(민족해방운동)에서 통일운동의 대부분은 지도자 운동이었고, 지도자에 연계된 부락민 운동이었고, ‘권력 지향적’ 운동이었다. 광주민중항쟁이 ‘민주화’와 ‘통일’이 하나로 연결됐다고 한다면, 광주민중항쟁을 통해서 세우고자 했던 지도자와 그에 연결된 부락민이 추구했던 ‘권력’운동이었다. 그렇다면, 국민이 생각하고 있던 ‘통일’이라 할 때 느끼는 大同신화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중국 문명권에서는 공유하고 있는 유교문화에서, 혼란한 시대를 겪었다고 생각할 때 과거에 지금과 다른 상황이 있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중국민족이 요순시대를 보는 관점 못지 않게, 현세를 부정하고 과거에 治世가 있었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 治世의 관점이 미래에 온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코 신비한 것이 아니다. 그 지도자가 미래에 治世를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고 믿게 될 때까지 반복해서 떠드는 것에서 수반된 효과니까 그렇다.

 

이 글의 주장인 기독자민주화동지회 통일담론은 성경의 기독교신앙과는 전혀 무관하되 일제시대의 민족해방 운동전통에 깔린 배경 신앙과는 긴밀하게 연결됐다는 주장이다. 교횟말은 기독교 조직을 그 방향에서 이용하는 데, 포장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민중신학은 교회로 옷을 바꾸어 입은 유교 붕당 정쟁이면서, 그 전통을 이어받은 민란신앙의 계승이고, 기독교 신앙과는 그 뿌리에서 달랐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위르겐 몰트만의 ‘민중신학’이 한국 최초의 정치신학이라는 주장은, 완전한 허위사실이다. ‘神學’에서 ‘神’이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서 까지 평가하게 된다면, 귀족독재시대를 200년간 유지한 송시열의 주자학 담론에 돌아가야 할 주장이지 싶다.

 

 

 

마.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중국문명으로 우회한 마르크스주의로 해석해도, 6.25 전쟁 때 공산당 폭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제시대에 공산당원은 좌익용어로는 소 부르주아 지식인이 주류였고, 한국 일반인 표현으로 ‘양반 후손’이 지배했다. 소련(코민테른)은 소부르주아 지식인 사회인 공산당에 노동자 관계 강조하라 주장을 했다. 그러나, 양반 후손들에게는 노동자들이 자기 앞에 줄 서서 물개박수 친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6.25 전쟁 때 공산주의자의 우익 학살 및 기독교인 학살은 중국문명 시스템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제시대의 공산주의 운동사는 중국 문명이 생활을 지배하되, 소련 사회주의가 포장하는 개념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소련 마을에 기독교 선교는 왜 저항을 받았나? 핑계는 소련 사회주의였지만, 이면의 생활세계는 여전히 구한말의 위정척사파 세계관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의 공산혁명 이후의 세계관은 중국문명에서 뽑아냈다. 정의는 몫의 정당화로서 재화의 분배와 응보의 문제를 담고 있다. 복수의 정의는 공인에 대한 복수로서 역성혁명과 私人에 대한 복수로서 전국시대에 혈속의 원수에 대한 복수가 선행된다. 그러나, 한나라 이후 私人간의 복수는 범죄가 된다. 『예기』는 혈속의 원수에 대한 보복은 자식된 자가 하지 않으면 안될 도의였다. 백대가 지나도 이동 안하는 게 大宗이고, 5대가 지나면 이동하는 게 小宗이다. 민족의 유대관계는 혈통으로 나타난다. 종법은 혈연관계에서 오는 친하고 소원함의 차등 바탕이다. 親親의 해이는 골육상잔으로, 賢現의 파탄은 小人의 등용과 군자의 배척으로 나타난다. 尊尊의 파괴는 周왕실의 파탄으로 나타났다. 孔孟시대는 군주살해, 부친살해, 근친상간과 빈번한 전쟁이 나타났다. 일제 시대에 있어서 나라를 빼앗기고 고종황제의 억울한 죽음이 놓여있는 상황에서, 유교 엘리트에겐 혁명 투쟁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일본제국주의는 이러한 정서를 읽지 못하고, 소련 마르크스주의의 유입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일반 평민들에게 있어서는 일본 제국주의 체제에서 생존하는 것이 중요했고, 양반 계급의 儒家지식인들만 느끼는 보복신앙은 느낄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없이 중국신앙으로 대체가 가능했다. 중국문명 기반의 사회주의 혁명론에 있어서 소련 사회주의 이론은 포장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 현대사에서 ‘마르크스주의’국가를 위해서 孔子사상을 폐기하려 했지만, 시진핑 체제의 중국공산당은 ‘공자’와 ‘마르크스주의’의 화해를 주도했다. 중국사람들이 자신들이 이해하는 마르크스주의가 공자 사상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국좌파들에게는 공산 사회가 되면 영원히 ‘잘 먹고 잘 사는’ 사회가 온다고 이야기하는 게 대세였다. 조선 시대 사람들에겐 도교적 이상향이 유토피아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았다. 식민지 시대에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군중은 양반계급이 토로하는 그러한 상징이 끌어내는 이미지로 사고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시민계급의 이성적 판단으로는 믿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사회가 중국 문명 시스템이 된다면 대중공간에 우파적 판단을 하는 지식층을 만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들은 이성적 판단을 하는 게 힘들어진다. 좌파의 통일담론은 권력 담론이면서 지도자 담론이고, <1949년 인민공화국이 건설됐다면> 하는 상상세계의 현실화를 깔고 있다. 그 지도자와 연고관계가 없는 일반국민의 피해를 외면하겠다는 이야기다. 좌파의 권력 중심에 조금이라도 다른 소리를 낸 경력이 있다면, 그들은 피해당할 수 있고 그들의 피해를 눈감겠다는 의미다.

 

한국 공산주의 서적을 읽을 때 반복적으로 확인가능한 것은 ‘성리학’의 정통론에 광적으로 빠져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 통일의식은 지도자 의식이고 동성촌의식이다. 공산주의자들에게 공산 혁명은 <혈연 연고세력>과 관직을 싹쓸이 하는 야망을 갖고 있다. 동시에 상대측의 재산을 점령하는 고대중국의 겸병전쟁의 현실화의 야망도 가지고 있다. ‘역성혁명론’이거나 ‘후천개벽론’의 외형을 디지만, 사실상 귀족이 권력을 장악하고 지역 연고주민들이 후원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원성은 연고세력에게만 허락된다. 중국 용어로는 ‘꽌시’, 일본 용어로는 ‘나까마’, 한국 용어로는 ‘연고’가 연계된 공산혁명은 이러한 모양새를 띤다. 그들은 오래된 자기들의 충성파를 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한국 사회의 ‘평가 변화’가 이것을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에 6.3항쟁을 지도했던 운동권이란 생각은 이명박 대통령의 기억이 뿐이며, 종북좌익에겐 자신들의 직계 혈연에 오랫동안 등을 돌린 거리가 먼 사람일 뿐이다. 종북좌익에 연고가 아예 없다고 여기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탄핵 과정 중에만 달랐을 뿐 탄핵이 완료된 이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평가는 똑같아졌다.

 

 

이러한 점에서 좌익들이 민족공동의 이익이라며 <연방제>를 주장하는 것은, 1949년에 대한민국의 성립을 반대했던 씨족 혈연의 남북한 모두가 소련 군정(사회주의)이 시행돼야 한다고 보았던 믿음과 연결돼 있다. 

 

공산주의 파벌은 민중에 기반된 유교 분파를 근간하되 소련 사회주의 개념을 덧 씌웠다. 皇極은 皇은 大, 極은 中이며, 대중을 세움으로 천심을 계승한다. 中은 중국민족정신의 명맥을 잇는 것을 뜻한다. 붕괴해버린 조선왕조의 왕권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들에겐 오직 民을 끌어안고 사회를 전복하는 일만 남았다. 지속적으로 民을 안는 일은 그들에게 대단히 중요했다. 1920년대 좌우합작 운동은 고종황제의 빈자리를 채우는 유교의 합종연횡 문화에 덧 씌워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외곽에 있던 좌파 민족문학은 노동계급의 인민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민족문학이었다. 文學은 조선시대 시스템에서 小學의 역할이었고, 인민성은 조선왕조의 민본이고, 공산당은 군주가 된다. 한국 공산주의의 헤게모니쟁탈전이 있었고, 파벌 들 사이에 이데올로기 차이 없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王과 民 사이의 유교관계나 도교의 大對관계로 이해하며 매료가 됐다.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부터, 박헌영의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8월테제)」까지, 모두 『소학』에 불려다니는 민중들에겐 같은 사고패턴으로 읽혀졌을 것이다.  계급주의는 결국은 서구파 양반 간의 종족전쟁과 겹쳐진다. (부르주아 계급형성 이전에 공산주의가 먼저 유입됐다.) ‘김일성 우상’은 가족국가로서, 사회주의적 조합주의로 수령제도 사회주의 체제를 나타냈다. 위대한 지도자로서 사회주의 혁명전통의 당적 통제를 나타낸다.

 

<빨갱이로 규정돼 배제되는 분단체제> (30년)란 것은 좌익들이 반공 지배체제에서 소외된 것이다. 반면에,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좌파 지배체제에서 반공세력이 소외됐다. <부르주아 반동. 적폐, 수구세력, 토착왜국론 인종주의> (30년)이 나타났다. 과거의 반공체제의 권력의 원인은 레드 콤플렉스 문제가 나타난다. 6.25 전쟁 상처에 기반된 레드콤플렉스는 예수를 믿지만 뭘 믿는지 모르는 공허한 상태와 한국교회 등치만 믿고 한국 교회 신앙을 과대평가한 서구를 이용한 “국제예수사기”(신자 등쳐 먹기 게임)다. 세계교회협의회와 한국의 민주화세력은 모든 反민주적인 불합리는 군사정권에만 있었다고 주장하며, 90년대 이후의 문제를 의제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중국문명식 권력적 판단이고 기독교 신앙적인 이성적 판단은 아닐 것이다.

 

 

 

조선후기 이래에 일반 민중들에겐 궁궐 중심의 禮樂사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조선후기 지배체제를 깨뜨리는 민란만이 중요했다. 민란신앙은 민란을 일으키는 농민군 의병 속에서 사회질서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민란신앙을 추구하는 의병지도자가 여럿이 있을 때, 각 지도자별로 자기를 신성화하며 자기중심으로 상대가 통합돼야 한다는 것이 統一운동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성인 남자에겐 가족을 거느리는 가부장이겠지 하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있다. 그 연장선에서 정치지도자에게도 배경의 연고계층을 생각한다. 그런 권력 욕망을 유불선 중국신앙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일이 한국정치사에서는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런 시각에서 한국인에겐 영속적인 국가기구가 없을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세운 지도자가 무너지면, 그 지도자와 더불어 혈족으로 榮辱을 곱씹는 단계에 처하게 된다. 진짜, 문제는 이것인데, 한국 국민은 좌파 운동권이 원하는 이 시스템을 단 한순간도 원한 적 없었다는 것이다. 국민이 눈치 못채는 상황으로 슬금슬금 외곽에서 변하더니, 어느 순간 한꺼번에 국민이 원한 적 없는 시스템으로 돌변한 것이다. 좌파 운동권은 사회를 조선왕조 후기이거나 중국문명 시스템으로 돌리고, 민생을 살핀다면서 ‘관료’들의 이익 부양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좌파체제는 시도 때도 없는 현금 살포의 반복으로 나타난다.

 

 

바. 천도교는 중국문명의 산출물일 뿐, 동서 문명을 초월하는 종교가 아니다.

 

교회공동체는 ‘성경중심’의 사회다. 시장경제 사회는 법․보편이성 중심이다. 그리스도 신앙 사회는 시민연합으로 이성종교, 법, 원칙으로 나타난다. 한국과 유럽의 세속신학이 같다는 것은 큰 착각이다. 착각을 서구에 판다. 로마 문명권의 민중은 서양철학을 기본적인 사고로 이해한다. 반면에, 중국 문명권의 민중은 폐쇄적 혈연 연고주의를 무의식에 가진 경우가 많다.

 

서구의 세속화는 계몽주의로. <이성, 자연법, 인간성, 자유, 보편적 권리>를 중심으로 한다. 서구 근대 세속화 공간에서는 理性과 자연법이 모든 인간들에 대한 도덕적 표준을 제시된다. 비인격성과 보편성의 규칙은 개인적 충성과 귀속의 규칙을 밀어냈던 합리적 법적 사용한다. 세속화의 발흥은 자본주의의 발흥과 겹쳐진다. 자본주의는 시장확장을 통해 나타나고, 초월적 윤리는 추방된다. 산업자본주의는 자기 강화적이다.

 

반면에, 한국의 세속화는 부족주의로 복귀를 말한다. 주술과 샤머니즘 감정이 압도하는 사회를 말한다. 한국에서의 혈연 연고 지향적 사회는 농업중심의 공동체를 지향하는데 이는 反 시장적이다. 종북좌파의 남북로당 부족장 신앙의 전국민 길들이기와 경제 연결된다.

 

지배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생산수단 없는 이들은 지배사상에 종속된다. 남북 문제에서는 남북로당 중심의 생산력 관계에 종속된다는 이야기다. 모든 정신적, 정치적, 종교적 활동의 종속된다. 북한공산당 중심의 통일전선전술은 북한의 남한 경제 강탈을 지향한다. 군중은 항상 무의식에 의해 지배가 된다. 군중으로서의 국민은 매스미디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주입된 ‘상징’과 그에 수반되는 ‘이미지’에 포획된다. 조갑제씨는 여태까지 이러한 문제를 연구하지 않고, <이회창→이명박→박근혜의 무능>을 논해 왔고, 우파 사회는 조갑제씨의 이런 사고 스타일에 영향 받아왔다. 군중으로서 대중이 좌파가 주입한 상징에 낚이게 되더라도, 그 상징어들을 비판하여 전복하지 않고 자신들이 믿는 정치인은 사회를 바꾼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정치 이성적으로는 황당한 것이다.  군중은 언제나 문명 파괴적이다. 문화를 그렇게 이끌도록 하는 곳에서는 군중독재의 힘이 극한대에 달하게 된다. 어떤 정치인의 계몽적 어구도 겉돌 수 밖에 없다. 군중독재의 힘이 극한대에 달하게 되는 그 문화의 틀을 손대지 말고, 우파의 힘을 보이라는 주문은 황당한 것이다. 한국의 70대 노인들은 인문학보다는 조선왕조 민담 신화 속의 상징세계에 가깝다. 그런 문화에 의존하여, 대학가에서 가능한 인문학 상식을 외면하는 것은 자충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오늘날 대중들에게 그토록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것이 생생하고도 유일한 환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반박하는 모든 과학적 논증도 점점 팽창하는 사회주의를 결코 저지하지 못한다. 사회주의의 주요한 힘은, 인류에게 행복을 대담하게 약속할 정도로 사물들의 현실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서 옹호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사회적 환상은 오늘날 과거의 모든 축적된 폐허 위에 군림하며, 미래도 그 환상 속에 있다. 군중은 결코 진리를 갈구해 본 적이 없다. 군중은 잘못된 생각이 그들을 유혹한다면 그것을 신으로 받들기를 더 좋아하고,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증거로부터는 등을 돌린다. 그들에게 환상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그들의 주인이 된다. 감히 그들의 환상을 파괴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항상 그들의 희생양이 되어 았다. (귀스타브 르봉, 131쪽, 민문홍 역, 『군중심리학』, 책세상, 2014)

 

한국 사회는 천도교의 ‘시천주’ ‘인내천’ ‘동귀일체’ 상징이 반복되고 있으며, ‘후천개벽’상징에 깔린 老子적 유토피아가 반복되고 있다. ‘天’을 사회주의 씨족의 족장으로 사고하여 侍天主를 공산독재 보호로 사고할 수 있다. 물론 천도교의 종교상징 세계에서 侍天主는 ‘한울 神’을 모시며, ‘한울 神으’로부터 받은 기운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표현은 종교적 상상 세계일 뿐이며, 실제의 천도교는 일제시대 사회주의 운동에도 그러한 차원으로 개입돼 왔다. 물론, 천도교가 사회주의 세력과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천도교연합회원들은 항일정신을 견지하고 무력에 의한 급진적인 변혁으로 일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고려혁명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그리하여 동학의 종지인 인내천이라는 교주와 소사의 봉급을 동일하게 할 정도의 절대적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계급적이고 권위적이며 중앙집권적인 교회의 제도를 개혁하여 개인과 지방교회 중심의 제도를 개혁하려고 하였다.(중략) 천도교 연합회원들은 1926년 4월 정의부, 형평사와 연합하여 만주 길림에 민족유일당으로서 고려혁명당을 결성하였다. 이 고려혁명당은 일본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함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이점은 천도교 연합회원들이 갖고 있던 항일정신과 동학의 경제적 평등 추구의 정신이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까닭으로 천도교연합회원들은 고려혁명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천도교연합회원들은 무한한 개인의 자유의 실현과 자유연합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코민테른의 지령가 달리 당의 명령에 따르는 일반 공산주의자들이 갖고 있던 사상가는 달랐다.(조규태, 2018-219쪽, 『천도교의 민족운동 연구』, 선인, 2006)

 

왜 천도교 신파는 서울․상해파의 사회주의자들과 긴밀한 접촉을 가지려 하였을까? 천도교 신파가 크레스틴테른에 보낸 문건에 의하면 “1921년 6월 자유시사변을 일으킨 이르크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연계된 화요회가 아직도 그러한 정책, 즉 국제주의적인 정책을 유지하므로 1924년 남만춘․김찬․조봉암이 관계하는 이르크츠크파 고려공산당과 화요회에서 천도교 중앙위원회에 협력을 제안했으나 이것을 거절하였다”고 되어있다. 즉, 천도교 신파는 이르크츠크파 고려공산당과 화요파가 국제주의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이 두 집단을 반대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천도교 신파는 서울․상해파의 사회주의자들을 민족주의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한편, 천도교 신파의 지도자들은 화요파의 천도교 정책에 의구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1925년 10월 경 서울파의 김영만․최창익은 화요파의 종교정책이 “종교는 유물론의 적이고 제국주의의 주창자이므로 분쇄하여야 한다”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었다.이 점도 천도교 신파가 화요파를 불신하게 만든 한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천도교 신파가 서울․상해파에 접근하였던 것은 천도교 구파의 행보와 관련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천도교 구파는 朴來源․李晃(李載坤)등이 화요회 회원이었다.이들은 천도교 구파의 지도자인 李鍾麟 등과 함께 1926년 3월 천도교청년동맹을 조직하여, 천도교 신자이면서 제2차 조선공산당의 당수였던 姜達永과 연계하여 1926년 6․10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천도교 구파가 화요파 공산주의자와 연대하였던 데 반하여 천도교 신파는 서울․상해파와 제휴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천도교 신파는 문화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차에 일본이 조선에 자치를 부여할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들은 향후 그럴 경우에는 당시 우리 민족의 80% 정도를 차지하였던 농민을 장악하는 것이 권력 장악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천도교 신파는 천도교 청년당을 전면에 내세워 농민을 장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울․상해파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자 등을 견인하여 조선농민사를 설립하였던 것이다(조규태, 134-135쪽, 「天道敎 新派의 自治運動과 朝鮮農民社의 크레스틴테른 加入 活動」, 『한국민족운동사연구』 48, 2006.9)

 

 

人乃天은 사회주의 혁명가와 결속된 이들만이 ‘사람’이란 평가로 이어진다. ‘동귀일체’는 천도교 내부로는 ‘하나의 진리“(무극대도)로 한결 같이 돌아가고, 한 몸으로 함께 돌아간다는 의미인데, 좌파 부족끼리 공유하는 주관적 감정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된다. 사실상, 천도교(호남천도교로서 다수파의 경우)는 좌파 파시즘의 대중화의 바탕 신앙으로 존재할 수 있다. 물론, 영남 천도교 중 일부로 군사정권에서 관료직위를 독점하려는 야망이 존재해 왔지만, 이제는 군사정권의 지배방식은 반복할 수 없게 됐다.

 

문석탄의 소득주도성장에도 老子的 유토피아가 올 수 있는데 우파가 잘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문석탄의 여성운동을 지원하는 데에도 老子的 유토피아가 적용되는데 우파가 잘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동복씨가 이야기한 데로, 「文在寅 씨의 ‘평화’는 레닌이 말한 ‘평화’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조갑제닷컴 홈페이지』, 2019.7.3.)가 말한 의미로 한국 사회의 군중으로서 국민에 레닌 사회주의의 영향은 거의 없다고 본다. 천도교를 믿으면서 정치적 우파로 존재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일제 시대에 천도교는 소련 사회주의와 연결된 종교였다. 그 입장이 반복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개인이 ‘천도교’안에 내재된 사회주의적 상징어에 상상을 하기 시작하면, 군중으로서의 한국 국민에 한국현대사에 내재된 ‘사회주의적인 주체’가 생산된다. 물론,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 줄을 섰던 영남 중심의 천도교 우파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정치종교로서 천도교에 속한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는 영남 안에서도 적지 않은 숫자의 이념적 혼돈에 빠진 군중을 만들 것이다. 우파가 파악한 ‘천도교’와 ‘좌파’의 연계성에 대한 인식은 과거부터 일관됐다. 이승만 정권은 ‘천도교 청우당’을 해체했고, 군사정권은 ‘천도교’와 북한 공산정권과 밀월관계 의혹에 ‘긴급조치’등으로 강경 봉쇄했다. 돌이켜 보면, 천도교에 내재된 중국적 사회관계가 일반화됐을 때 좌익이 가장 강력했었던 때였다. 영남 천도교 우파 세력 중에서 행동가 일부에서는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며 좌익의 우익학살에 대한 강력한 보복을 할 때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 군사정권 안에서 강력한 반공드라이브를 구사하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체계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영남 천도교 우파 세력이 그리워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더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없는 것들이고, 호남 천도교 좌파들이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군중을 좌경화에 빠뜨리는 현실의 무기가 되고 있다.

 

좌파의 정치권력에 대중을 종속시키게 하고 그 상태로 유지하게 하는 문화 설정은 계급투쟁적이다. 대중들은 ‘상징’단어를 통한 ‘이미지’로 사고를 한다. 군중은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정치권력이 주문하는 데로 ‘물개박수’(행동)을 하는 데에는 민첩하다. 군중 속 개인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기를 멈춰버린 자동인형과 같은 존재가 된다. 어떤 것을 하지 않으면 손해가 되는 듯한 사회분위기가 형성되면, 군중은 사고를 하지 않고 그 대열에 참여한다. 한국 사회는 ‘천도교’를 매개하는 한국 사회의 좌경화가 90년대 이후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2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동시에, 한국 사회가 제 자리를 잡는 데에도 이에 못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우파는 ‘정권 탈환’에만 만족하는 입장을 선택하면 안될 것이다.

 

그리스도 신앙은 서구 시스템을 전제로 한다. 반면에 ‘논어’나 ‘맹자’등에 깔려 있는 유교적 가족 원리로서 親親 믿음은 중국식 시스템을 전제로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에 대하여 요구하는 의무 (딤후 3:16, 히 4:12)를 말하며, 마을 윤리가 비교가 된다. ‘동도서기’는 한국현대사 교과서에 나오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의 현실정치에서 ‘통정한 허위표시’로서 정치지배세력에 불법한 이익과, 일반국민이 부당한 이익 침해를 요구한다면 문제다. 한국은 민사법정이 발달돼 있지 않다. 외국마저도 잘못 알고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을 포기하고자 하는 욕망이 들 수 밖에 없다.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대립은, 한국교회의 종파주의적 성격과 한국공산주의 운동사의 파벌주의적 성격문제로 나타났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한국 땅에 형성된 서구문화로 해석된다. 여기에, 토착화신학이 놓여 있는데, <한국 땅>이라는 것에 무제한적 강조를 주는 해석 방식이다. 토착화신학은 봉건적 전제주의 하의 씨족 신분제. 정상적 기독교신학은 서구 사회의 자유주의를 말한다. 교회가 ‘하나’이고 ‘보편적’이라는 사실이, 중국신앙의 ‘上帝 神’을 통한 일원론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토착화신학은 대체로 ‘神’의 혼동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데, 이는 한국 기독교신자들의 신앙의 약점을 이용하는 ‘예수사기’행위다. 이러한 문제가 국제적 단위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국제예수사기단>이라고 지적돼야 한다. 기독교에 있어서, 백성은 주님께 돌아온 사람들로 구성된다.(행 5:17, 14:15). 제자들, 형제들, 부름 받은 자들, 성도들, 신자들(행 1:154, 6:1, 9:1, 32, 롬 1:17, 고전 1:12)로 나타난다. 정치인은 ‘양떼’로서 이런 이들을 거느리는 목자 개념으로 나타난다. 중국식 봉건 전제군주 사회에서 신분노예제를 유지하는 귀족이 아니다.

 

교회는 신자들의 모임이며, 성도들의 교제이고. 소집된 회중이다. ‘카할’과 ‘에클레시아’는 소집하다를 의미하는 동사로 어떤 목적, 종교적, 정치적으로 회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말한다. 교회 공동체가 말씀을 통해 형성된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유익을 소유한 자다. 교회론은 복음과 나란히 존재한다. 복음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언어행위(에너지)로서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낳는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에(롬 9:25, 고후 6:16, 18, 딛 2:14, 히 8:10, 13:12,) 있다. 신자들의 모임, 믿음을 통해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말씀과 성찬이 있는 곳에 교회다. 종교는 인간 본성의 근본적 속성이며,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의 회중이다. 개혁파는 교회를 선택과 연관된다. 교회의 본질은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에 있다. 교회의 권위는 위로부터,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아래로부터, 공동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믿는 근거는 우리가 교회의 지체들임을 충실히 믿는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요 17:23)는 다양성 속 일치를 나타낸다. 교회는 삼위일체적 공동체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벧전 2:10)이며, 성령의 전(고전 3:16)이며,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부다. (엡 5:29-32) 삼위일체를 떠나서는 교회가 존재 안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 안에서 그들을 택하시고 성령으로 인치신 하나님에 의해서만 존재한다.(엡 1:1-4). 첫째, 교회의 보편성과 통일성은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만 발견된다. 둘째, 교회의 보편성과 통일성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정하신 은혜의 수단을 통해서 일하시는 곳마다 분명히 나타난다. 셋째,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의 궁극적인 원천은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에서 발견해야 한다.

 

교회는 선택이 실현된 것으로,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고 의롭다하고 영화롭게 하며(롬 8:28) 하나님의 아들의 현상을 본받게 하고(롬 8:29) 거룩과 구원(엡 1:4)을 위한 것이다. 교회에 주어진 복들은 일차적으로 내적이고 영적인 속성을 지니며, 소명과 중생, 믿음과 칭의, 성화와 영화다. 신자들은 한 주님, 한 믿음, 한 세례, 모든 자들의 한 하나님과 아버지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한 영을 지닌다.(엡 4:4-6) 그들은 성령의 교제 안에 살고, 성령을 통해 거듭나며 한 몸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요 3:5, 14:17, 롬 8:9, 14:16, 고전 12:3, 13, 고후 1;22, 5:5, 엡 1:13, 4:30, 요일 2:20)이다. 교회는 의롭다 함을 받은 동시에 죄에 물들어 있다. 교회는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은혜의 수납자지만 또한 이웃을 향한 증언과 사랑과 증언에 있어서는 적극적이다. 말씀의 전파와 성례의 시행은 교회를 분간하는 표지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가 세상에서 멸한 바 되지 않도록 그 진리를 신실하게 지키는 곳이다. 교회의 지체마다 각 은혜의 분량에 따라서 공적으로 덕을 세울 책임이 있다. 우리는 교회와의 교제 속에서 평화와 정당하게 세워진 질서를 보호해야 한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행 7:4) 여호와께서는 그의 말씀을 청종하고 전적으로 지키는 곳이 아니면 어떠한 성전도 자기의 것으로 인정치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제시해주신 그 표적이 보이면, 어디든 반드시 그곳에 교회가 있는 것이고, 그 표적이 보이지 않으면, 교회의 참된 합당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7) 믿음이 사랑의 연합의 시작이요, 끝이며, 그 유일한 규범이 된다. (엡 4:5, 롬 15:5) 바울은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합하라고 가르칠 때마다 즉시 “그리스도 안에서”(빌 2:1, 5) 또는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롬 15:5) 그렇게 하라고 덧붙이고 있다. 교회는 주께서 다스리고 통치하셔야 하고, 권위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셔야 하고, 이러한 권위는 오직 그의 말씀으로만 시행되고 운용되어야 한다.

 

사. 좌파가 생각한 반공체제의 성공 비밀은 ‘레드 콤플렉스’, 우파가 생각한 좌파체제의 성공 비밀은 ‘국제 예수 사기극’.

 

1922-1945년 사이에 좌파 사이의 항일운동 세력은 단일대오였다. 오히려, 지금의 ‘천도교 좌파’가 우파로 분류될 만큼, 전 민족적 좌경화의 시대였다. 일본 제국주의 체제만 무너지는 것을 상상하던 때에, 항일 사회주의 진영의 대열이 상징적으로 어떠한 모양새인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해방공간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처럼 다양한 파벌이 정치를 경쟁했고, 그 비용은 일반 백성이 짊어지게 됐다. 그리고, 파벌간에 뭉쳐서 자신들의 권력 쟁취를 위한 儒敎 義理論이 반복됐다. 美國 군정 사회인 이승만 대한민국 진영을 취하거나, 소련 군정영역의 확대를 기대한 남로당이나 북한공산당 북로당 영역을 취하거나, 해방공간의 모든 정치의 기본 어법은 ‘유교적 구분’이 지배했다.

 

그러므로 우리 문학 혁명은 이러한 극우, 극좌의 양면적 경향을 절대로 배제하면서 광범한 통일전선 가운데서 전개되고 성취될 것이라는 것을 확언하는 바이다.(이원조, 「조선문학의 당면과제」, 『중앙신문』, 1945년 11월 6-12일, 송기한․김외곤 편, 『해방공간의 비평문학 1』, 태학사, 1991. 51쪽)

 

정치에 있어서와 같이 문화운동의 기본방향이 통일전선에 있어야 할 것은 다시 논의할 여지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하여 이 정세의 추이에 뒤떨어지지 않고 적응하느냐에 있다. 그것은 출발점에서 내어걸었던 일반방침을 구체화하고 실천해 나가는 데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는 문화운동이 현하 전개되고 있는 민족 통일전선의 일익이라는 원칙을 운동의 기본방침으로 삼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따라서 정치에 있어서와 같이 모든 종류의 분열주의와 분파 행동과 싸우는 것을 첫째의 임무로 삼으면서 부단히 뒤따라 발생하는 자연발생적인 혹은 소단체의 운동을 한 방향으로 규합 통일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임화, 「현하의 정세와 문화운동의 당면임무」, 『문화전선』 창간호, 1945년 11월, 송기한․김외곤 편, 『해방공간의 비평문학 1』, 태학사, 1991. 26-27쪽)

 

문화에 있어서 봉건주의는 민족 상층부에 있는 일부 귀족, 지주층의 이데올로기적 반영이었고 귀족, 지주층은 또한 일본제국주의가 조선민족을 지배함에 있어 필요한 협동층이었음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임화, 「문화에 있어서 봉건적 잔재와의 투쟁임무」, 『신문예』 창간호, 1945년 12월, 송기한․김외곤 편, 『해방공간의 비평문학 1』, 태학사, 1991. 68쪽)

 

첫 번째 인용문에서는 통일전선 전술이 ‘혁명가 신앙’을 샤머니즘 족장으로 세우고 내세우는 유불선 종합 신앙이 배경에 깔렸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인용문에서는 공동의 敵을 지향하는 의병의 합종연횡으로서 신앙전통이며 천도교의 ‘各知不移’교리에 연결되는 것을 보여준다. 세 번째 인용문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봉건주의 타도라고 쓰지만, 유교에서 오랑캐 화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중국문명권의 조선왕조의 씨족(민족)신앙으로 에둘러간 공산주의이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소련이 직접 관리했던 공산주의였거나 결과는 의미 있는 차이를 나타내지는 못했다. 결국, 후진국형 정치로서 권력 중앙기구를 장악하고 권력을 장악한 엘리트 그룹이 영원히 독재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기자: 조선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그 전망은?

박헌영 : 우리는 빠른 시일 내에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재 공산당에서는 각 당 지도자와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통일하려면 먼저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 금번 삼상회의 내용을 승인하는 데 있다. 따라서 반대자는 통일전선에 참가하지 못할 것이다. (김국후, 『평양의 소련군정』, 한울, 2008. 159쪽)

 

 

統一과 통일전선운동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통일전선운동은 1946년 2월 16일에 결성된 민주주의 민족전선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헌영이 바라본 ‘통일’은 통일전선이며 신종교에 깔린 샤머니즘적 족장신앙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박헌영은 소련이 신뢰하는 소련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정예 이론분자였지만, 소련 사회주의를 직수입했다기보다는 신종교에 깔린 사회주의 논리로 번안한 흔적이 있다.

 

그러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 양군이 진주하여 남북 조선간에 정치적 경제적 장벽이 생기게 되어 전 조선의 통일적 경제건설이 연기되었다. 특히 미 군정 하의 남부조선에 있어서는 국부적 건설이나마 거의 망각되다시피 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 혼란이 가일층 심해져 가는 사태에 대해서는 대단한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남조선에 있어서는 미 군정을 에워싸고 있는 친일파, 민족반역자, 친파쇼분자들이 정치면에 있어서 반민주주의 시책을 조장하고 있는 동시에, 경제면에 있어서는 수 많은 대소 모리배들을 길러내고, 생산의 정체와 물가의 폭등 및 대중적 실업을 초래하여,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적 혼란과 민생의 곤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해방조선을 다시금 제국주의 국가의 반 식민지로 전락시키려는 책동까지 하고 있다. (민주주의 민족전선 편집, 『해방조선 Ⅱ-자주적 통일민족국가 수립 투쟁사』, 과학과 사상, 1988. 317쪽)

 

민주주의 민족전선 세력이 바라본 ‘통일경제 건설’의 결과는 이미 보았다. 공산당 주도로 남한 국민의 재산을 강탈하여 북한에 충성하는 이들에 바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불법성을 감출 만큼 일반 국민들이 혐오하는 이들을 강조했어야 했다. 이는 중국의 씨족국가 간의 ‘겸병전쟁’ 문법과 일치했다. 동시에, 조선왕조의 붕당정쟁의 극한대 투쟁으로 상대를 몰락시키는 방식과도 일치했다. 이런 실체에 소련 사회주의 표현이 덧 씌워졌다. 한국 공산주의 세력이 유럽 공산주의 이론에 미숙할뿐더러, 소련 사회주의에도 정통한 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6.25 전쟁 때 공산군의 세계사에 있어서 차지하는 공산독재의 반인권적 살인 폭압 정치가 아니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6.25 전쟁 상처는 상상 이상으로 깊었다. 함석헌 저작집은 거의 대부분의 저작집에서 ‘老壯的 反戰 평화’를 논하고 있다. 박정희의 연설과 저술에서는 그러한 상처의 극복을 주장하는 진취적 정신을 주장했다. 1960년대 이래의 학생운동은 1949년의 대한민국을 완전히 부정했던 정서를 사실상 이어갔다. 함석헌은 그러한 흐름의 실질적인 중심으로 평가가 됐다.

 

민족주의는 20세기의 가장 나쁜 우상숭배였다. “거룩한 조국”을 위해 수백만명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중략) 이 우상숭배는 콘스탄티누스적 전환으로 소급된다.(위르겐 몰트만, 223쪽. 김균진․손규태 역, 『디트리히 본회퍼의 사회윤리』, 서울신학대교 출판부, 2016.)

 

비 콘스탄티누스적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속에서 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거룩한 제국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박해를 당할 수도 있다. 그들은 모두 천년왕국 이전 시대에 있다. 그들은 장차 영광 가운데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나는 옛날의 콘스탄티누스적 교회들보다 비 콘스탄티누스적 교회들이 더 현실적이고 더 큰 희망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옛날의 기독교적 나라들이 세속적이며 다 종교적 사회로 변함에 따라, 옛날의 국가교회들은 점점 더 자유교회로 변할 것이며,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의 교회들은 동일한 상황과 과제를 직면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위르겐 몰트만, 252쪽, 김균진․손규태 역, 『디트리히 본회퍼의 사회윤리』, 서울신학대교 출판부, 2016.)

 

위르겐 몰트만이 그토록 배타적으로 편들었던 ‘민중신학’세력이 좌파 혈연 집단의 연계와 연결되는 上帝神을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바꿔치기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김대중은 거의 모든 저술에서 ‘천도교 신앙’이라고 신앙고백을 했으며, 그의 저작을 안 보았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런데, 김대중의 ‘가톨릭 신앙’(앞의 책, 244쪽)을 논하고 있다. 위르겐 몰트만은 독일 민족 신화인 ‘에다’를 사용하는 국가사회주의 운동에 부역한 이들을 기독교를 ‘국수적 종교’로 왜곡했다고 비판했다.(위르겐 몰트만, 조성로 역, 『정치신학․정치윤리』, 대한기독교서회, 1992. 38-39쪽) 그리고는 동북아시아의 한국교회에는 ‘괜찮다’는 입장을 사실상 표한 셈이다. 그리고, 위르겐 몰트만은 십자가 신학은 구약성서적 형상금지의 철저한 실행이라(앞의 책, 71쪽), 우상숭배와 독재적 정치체제의 연관성을 설명한다. 위르겐 몰트만이 후원한 김대중 기념관은 이미 3곳이다. 그런데, 김대중씨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1곳 추가를 논하고 세상을 떠났다. 위르겐 몰트만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국가로부터 교회의 분리를 주장한다.(앞의 책, 117쪽) 그리고는 좌파 씨족만의 무릉도원 이미지를 비추는 국가에 복속화된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에 지원사격을 한다. (위르겐 몰트만, 215-236쪽, 김균진․손규태 역, 『디트리히 본회퍼의 사회윤리』, 서울신학대학교 출판부, 2016.) 그는 민주주의의 본질이 우상파괴(위르겐 몰트만, 조성로 역, 『정치신학․정치윤리』, 대한기독교서회, 1992. 76쪽)라고 주장하지만, 정치종교로서 천도교가 가지고 있는 ‘시천주’ ‘인내천’ ‘동귀일체’에 속하는 아시아적 우상종교를 승인했다. 위르겐 몰트만이 민중신학에 배경으로 깔려 있는 <천도교가 民亂신앙으로 중국식 전제적 봉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종교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봐도 문제(한국의 신앙 현실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한국 정치에 장시간 개입 하여 갖가지 천문학적 부작용을 양산해낸 범죄적 가치 문제)고, 알았다고 해도 문제(거짓말이 세계최강인 기독교 석학?)일 것이다.

 

또한 민중신학은 한국의 최초의 정치신학이다. 그것은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로 결합되며, 기독교인들을 교회의 백성으로부터 민중의 공동체로 만들기 때문이다. (위르겐 몰트만, 김균진 역, 『신학의 방법과 형식-나의 신학 여정』, 대한기독교서회, 2001. 273쪽)

 

중국 문명권의 귀족 신앙인 성리학이 항일운동과정에서 바뀌었지만, 그 궁극적인 뿌리는 중국 문명권의 귀족신앙의 골격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제, 위르겐 몰트만은 자신이 민중신학을 후원하는데 있어서 발생하는 非논리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미완의 종교개혁’이라 하여, 독일의 종교개혁을 비판한다. www.sgti.kr/data/person/moltmann/29.hwp

 

몰트만이 외면했던 한국의 보수 교회는 성경의 예수를 믿는다. 그리고, 몰트만이 후원하는 민중신학은 전통적 공교회 신조에 기초된 성경의 예수를 믿지 않는다. 자사가 썼다는 『中庸』에서 시작돼서『孟子』에서 시작해서『전습록』을 거쳐 최제우의『동경대전』에 이르는 중국신앙적 일원론의 神은 성경의 예수가 아니라 上帝 神이다. 앞서 인용했듯이, 한국교회와는 무관하지만 천도교 후원하에 벌어진 남로당과 북로당의 사회주의 평론에서 핵심 정치용어의 배경신앙으로 존재한 부분이다. 중국신앙의 일원론은 히브리 신앙적인 통전적 신앙이 아니다.

 

기독자 민주동지회의 신앙 고백문부터 1988년 KNCC 선언을 거쳐, 최근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판한다는 교회원로란 분들의 호소문까지, 반복되는 핵심 부분이 있으니 그것은 중국신앙적 일원론인 ‘상제 신’이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 24>

 

 

한국 중세의 귀족종교인 孔孟사상은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최제우의 『동경대전』은 그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경전’의 핵심 상징의 해독을 사실상 허락했다. 유교 경전이 분량이 엄청나게 줄어든다고, 그것이 민중에 다가서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제사권 독점’으로 斯文亂賊몰이(반공군사정부 지배층의 폐해)로 나타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고급문자 독점’으로 전문지식의 사기(민주화체제의 지배층의 폐해)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위르겐 몰트만은 국제 예수사기극의 공동정범이라고 판단된다.  한국은 韓中수교의 여파로 중국의 인문학 전문 서적이 많이 번역 됐다. 그래서, 세계교회협의회가 한국 성도들을 박해하는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국제예수사기단 본부로 드러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 한국교회가 신앙 대상을 헷갈리자 자유민주체제 전체가 붕괴하고 있다.

 

천도교는 결국 性理學의 변종이다. 특히, 亂世에서 治世를 그리워하며 요순시대를 생각하는 중국인들의 대동사회가 미래에 도래한다는 것이다. 민중신학은 그렇게 미래에 도래하는 이들을 ‘메시아’(기름 부은 자)로 불렀으나, 철저한 허구다.

 

최제우는 직접 유불선이 종합된 천도교의 神을 중국 은나라 종족신인 上帝神으로 불렀다. 그 이후에 上帝神이 ‘天(군주)’로 바뀌게 된다. 천도교의 신앙은 ‘혈연 연고’를 굉장히 따지며 보편타당한 神이 아니다. 한국 국민들도 중국학이 번역이 돼야 뭔 소리인지 아는데, 세계교회협의회의 기독교 석학이란 분들이 뭘 알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세계교회협의회의 몸통인 독일신학자들이 미국 하버드 대학의 중국학 수준과 비슷한 성과를 낸 ‘독일 사회학’ 성과를 못 봤을리 없다는 생각이 들면,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자기들 이익 중심에서의 소외되는 ‘개돼지’로 보았다는 점에서 씁쓸한 생각이 들게 된다. 천도교인들의 종말론적 유토피아는 결국은 권력을 세우는 특정 파벌 혈연연고자들만의 영원히 ‘꿀’을 빠는 지독하게 자의적인 정치체제를 말한다. 그러한 의미로 문석탄이 주도하는 ‘통일’에 대한 전망 자체도 ‘회의적’인 시각이 자유민주주의 우파세력 내부에 지배적이다.

 

천도교는 ‘군주’와 ‘부족연합체’가 종교에 깔린 사회 시스템이다. 뒤집혀진 성리학적 사회 시스템이다. 지도자에 잘 불려다니는 민중계층과, 天에 규정권을 가진 지도자들이 무제한적 힘이 커지고, 그 사이에 끼인 일반인들에 피해가 몰려지는 시스템을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그의 부활과 능력 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기독교의 근본역사로 한다. 처음에는 작은 유대인 집단이었던 것이 여러 인종교제(헬라파 유대인 등)로 확산됐다. 신자들이 각각 하나님과 계약적 관계가 기독교에는 중심에 차지한다. 기독교적인 국가관에는 서구 시민사회가 연합해서 세운 계약적 국가관이 전제 돼 있다. 이는 국민 모두에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지만, 지도자는 ‘양떼’를 이끄는 목자처럼 지배하지 않으면서도 책임과 의무가 중국 정치 시스템에 비해서 아주 높게 짜여져 있다.

 

한국 정치는 ‘귀족’과 ‘정치 광신적 대중’에 유리한 시스템을 실제로 하면서, 서구 유럽의 근사한 민주정치를 하고 있다는 포장정치를 했다는 ‘통정한 허위표시’ 정치를 해왔다.

 

세계교회협의회는 동로마 시스템이 세계 확장을 의도하며, 중국 문명 시스템의 일반인들에 한 없이 불리한 것에 기인한 자유침해를 별로 알지 않으려 했다는 문제가 있다. 히틀러 파시즘 체제에 저항했다는 이들이 고스란히 히틀러 파시즘체제에 빠진 ‘독일 그리스도교인’들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유럽은 서로마 사회인 시장경제 (교황 가톨릭/ 개신교 교회) 영역과, 동로마 사회인 사회주의 (개신교 루터주의 농촌지대. 동방정교회, 유대교) 영역으로 나뉜다. 중국문명권에서 소련 사회주의를 번안수용한 좌파는 동로마 영역의 좌파와 상당히 많이 다르다. 세계교회협의회는 그것을 알면서 “통정허위표시” 신앙과 “통정허위표시” 정치를 도와준 혐의가 상당히 짙다. (국제적 세계시민단체인 ‘세계교회협의회’에 누가 민형사소송을 걸겠느냐는 듯한 무대뽀 심리다. 이럴라고 칼 바르트와 비서트후프트가 세계교회협의회를 만들었나, 자괴감이 들 만하다.)

 

하나님에 대한 계시는 자연으로부터의 하나님의 계시, 사람자신으로부터 온 하나님에 대한 계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의 계시로 나뉜다. 이 중 마지막은 특별계시로 말해지며, 하나님의 초자연적 구속사역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를 설명한다.(신 18:21, 22, 렘 28:9, 신 13:1-4) 이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하나로 여겨져야만 하며, 각각의 예언들은 그리스도가 그 중심이신 예언체와 연관돼서 해석돼야 한다.

 

천도교가 교횟말을 끌어와서 자신의 교리를 포장해도, 천도교의 시스템은 결국 중국문명 군주제 시스템이다. ‘시천주, 인내천, 동귀일체’ 시스템은 농업중심의 부락민 연합에 기초한 중국적 전제봉건군주 시스템을 깔고 있다. 이 시스템을 깔고서 특정 씨족에는 한없이 유리한 무릉도원이며, 특정 씨족에겐 한없이 재앙인 지옥인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으로 나타난다.

 

1)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의한 평화적 통일 對 평화통일

 

신앙 대상의 혼동은 통일담론에서도 혼동을 가져온다. ‘평화’란 용어를 썼다고 무조건 교회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교회용어를 번역한 원래의 중국용어가 따로 있었다. 특정한 씨족끼리 전쟁 없이 편안한 상태를 이야기한다. 중국문명에서의 평화는 자신들의 씨족을 제외한 다른 씨족을 몰살시키며 더 이상 항거할 수 없게 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서구는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도 나타나듯이, 평화는 시민들 사이의 보편타당한 합의를 지향한다.

 

천도교의 신은 ‘씨족 神’이다. 문석탄은 월북자 가족들의 조상신을 띄우며 대한민국 체제를 해체하고 있다. 반면에,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는 ‘씨족’을 넘어선다. 예수의 계명 중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씨족을 넘어서는 의미를 그 자체에 깔고 있다.

 

2) 시장의 상호신뢰가 존중되는 시장경제 對 남들에게 폭탄을 전가하며 자기만 이익보자는 경제

 

R.H 토니의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고세훈 역, 한길사, 2015)는 서구 시장경제가 시민사회에 내면화된 칼빈주의로, 영미 자유방임경제의 기초를 이렇게 설명한다. 토니의 시각이 영국 사회주의자의 입장이라 이러한 시장경제 영역을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시장경제가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 필자는 책에 쓰여진 ‘사실’만을 접수한다.

 

英美 사회가 시장경제에 방임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시장주체 간에 내면화된 칼빈주의로서 신앙심으로서, 시장주체들을 교회의 상대방 주체로 바라보면서 상호 신뢰를 지키려는 것이 깔려 있다.

 

반면에, 천도교 시장경제는 ‘天道는 無爲而化’라는 천도교 교리를 깔고 있다. 老子에서 나온 표현이 대부분 그러하듯, 춘추전국시대에 생존 위기에 접한 사람들의 자기 생존 욕구를 깔려 있다. 김대중의 ‘대중참여경제론’에 깔린 시장사회관점은 천도교 경제학으로 이러한 관점에 있다. 천도교 경제는 방임만을 말하고는 생각이 멈춰 버린다. 인위적 수단 없이 궁극적 섭리에 따라 저절로 되게 하고,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게 하고, 힘들이지 않아도 잘 이루어지고, 한울의 이름으로 나온 자존자율의 우주 법칙으로, 내면화된 유불선이자 내면화된 가족주의로는 시장경제는 돌아갈 수 없다. 서구의 시장경제 이론서는 시민사회에 경제를 이끌고 가는 도덕성이 ‘카톨릭/개신교 문명’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보충될 경우가 깔려 있다.

 

시장은 농업 사회의 自然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같다고 보았다. 한국 사회는 씨족 문명 사회로서 각 씨족 마다 제 각각 논리가 나와서 기업이 들어설 수 없었다는 게, 1960년대 초반만 해도 그러했다. 

 

3) 시민 사회의 협력의 매개로서 法治와 귀족 보호 도구로서의 法

 

서구는 민중들에 로마 인본주의 신앙이 퍼져 있다. 서구의 민중신앙에는 이성종교가 포함돼 있다. 서구는 민중들에게도 시민사회협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쉽게 동의가 된다. 그런 속에서 法은 보편이성의 문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법’의 보편타당성과 국민주권이 연결돼 있다. 국민에게 사회의 정치는 일반 언어로 충분히 설명돼야 한다는 것이 깔려 있다.

 

반면에, 천도교 문명에서 法은 <족장 신앙>을 통한 <귀족 비대화> 위에 있다. 천도교에서 권력 쟁취는 기존 사회의 전복을 수반한다. 권력을 상실할 때, 씨족 마을 전체가 피해를 겪게 된다. 따라서, 法의 보편타당성은 자연히 안중에 없게 된다. 法은 자신들이 배출한 귀족의 권력 보호용으로 사용된다.

 

 

4) 민주주의 국가의 언론의 자유 對 권력에 위협이 안되는 선에서 떠드는 것만 용인되는 수준의 자유

 

문석탄이 G20에서 국가 지도자로서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한 유투버가 인터넷 서방 언론사의 동영상 전체본을 축약해서 보였다. 그런데, 동영상을 빨리 감기로 나타냈는 데, 정치권력은 그 유튜버를 ‘가짜 뉴스’라고 낙인찍고 들어선다.

 

천도교를 포함한 모든 중국 문명 시스템은 반대 세력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전통이 깔려 있다. 민주사회의 언론은 보편이성을 매개로 한 부르주아 사이의 경쟁을 토대로 한다. 그러나 한국의 친족 사회 전통을 진흥한 현재 정치에서는 마을 감정을 기준으로 하는 약육강식의 전쟁은 있어도, 이성적 경쟁은 거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1인 지도자 중심의 왕권제 시스템이든(군사독재), ‘1 파벌’이면서 형식적으로만 쪼개져서 무늬만의 다원주의로 서며, 1파벌을 관장하는 ‘서원’을 중심으로 하는 지금의 우리 역사에서 나타난 19세기적 귀족독재의 시스템이든, 자신들의 권력의 붕괴를 지향하며 권력을 갖춘 반대세력의 용납은 거의 없었다. 이는 중국 문명이 혈연 연고자들의 주관적 감정에 기초한 가족주의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은 외형상 여러 언론이 주어져 있으나, 대부분의 언론은 어떤 언론이 먼저 쓰면 그것을 받아쓰기를 한다. 그 틀에서 ‘튀는’ 행동을 하는 게 상당히 어려운 사회다.

 

하나님 앞에서 약점 많은 인간이란 인식은 언론의 다양성과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게 된다. 반면에, 자기 마을 귀족은 무조건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며 무조건 옳다는 신앙적 확신 속에서는 언론의 자유는 핍박 받을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들은 ‘군사정권 긴급조치’에 비교하여 지금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군사정권 긴급조치 시대에 20대 대학생이 아니었던, 그 아랫세대들에겐 지금이 바로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된 시대이다.

 

5) 합리적 시장경제 對 농민적 주술환타지에 서구 개념 덧 씌운 소득주도성장

 

시장경제는 수학적 합리성 위에 존재한다. 망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는 모든 경제행위는 조정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여기서 조정이 법으로 구조적으로 할 수 없게 막혀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도자는 ‘샤머니즘 족장’으로 기우제를 지내는 呪術師이니까.

 

서양의 시장경제는 呪術로부터 理性으로 바뀌는 것이다. 반면에, 김대중의 대중참여경제론과 3단계 통일론은 지도자 呪術師론으로 이어진다. 물론, 단군할아버지가 ‘탱그리’가 어원이며 추장이며 제사장이고, 반만년 역사에서 상당시간을 呪術師지도자로 채워져 있다고 반박할 것이다. 어쩌면, 민족 무의식에 그런 식으로 지도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터넷 검색엔진에 ‘천도교 경제’라고 쳐보면, 사태를 이해할 수 있을 결과물이 나온다) 시장경제는 시장주체의 이성적 판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같은 주술경제는 국민의 이성적 판단이 멈춰지며 족장에 판단을 양여하는 상황을 요구한다.

 

군중의 사유는 언제나 무의식적이다. 군중에 시장경제적인 사유가 장착되기 위해서 군사정권은 권력기구에 의한 교육을 시도했다. 지금의 공병호 박사 및 정규재씨 세대의 공통된 착각은 박정희가 권력 기구로 교육한 시장경제 감성이, 국민 안에 내재돼 있고 그것이 자연적이며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살아난다는 인식이 있는데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군중은 무의식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반복해서 시장경제 문화를 계몽해야 한다. 그러나, 조갑제 기자 자체가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쓰는 글은 샤머니즘 족장 신앙(농업문명 무의식을 끌어내는)으로, 이승만과 박정희를 띄우는 글이다. 자기들은 정반대로 가고서 ‘똑바로 서라’, 대중들에게 아무런 계몽도 없이 대중들은 스스로 저절로 깨우쳐라 하며, 천도교 교리에 안주하는 우파 장년논객을 바라보는 것은 미치도록 답답한 일이다. 물론, 우파 장년논객은 자기 스스로는 좌파에 기여한 적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좌파가 ‘천도교’식의 샤머니즘 족장과 부족연합체로 이끌어, <한반도판 일국양제>로 이끌려는 의도를 깔고 있다. 좌파의 ‘님을 위한 행진곡’의 ‘님’도 결국은 그러한 의미를 깔고 있다.

 

중국 문명의 모든 大同문화가 그러하듯, 소득주도성장은 民을 위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배경에서 꿀을 빠는 귀족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페미니즘 문화에서도 ‘大同문화’가 적용된다. 여성시민(귀족)단체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굻은 운동가들은, 국가세금으로 놓여진 ‘판’에서 전문 무당으로 세금을 빨수 있는 ‘당골고객’을 찾을 것이다.

 

 

6) 시장주의적인 한일관계 對 좌익 가문 조상숭배와 일반대중의 노비 현상의 정착화로서 反日

 

제도권 매스미디어와 거리를 둔 유투브 조차도, 정부 여당이 ‘구글 코리아’의 한국 내의 영업권을 위협하자 문석탄 정권 편향적으로 바뀌었다. 유튜버들은 제도권 언론이 한 곳이 하면 받아쓰기 하듯이, 그렇게 받아쓰기에 빠졌다.

 

좌파의 귀족독재 체제에서는 좌익 가문들의 조상이 우대받기 위해서, 좌익 가문의 항일 업적이 쭉 강조돼야 하고, 그렇기 위해서 일본에 적개감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조선시대의 붕당사회에서 특정 당색의 朋黨이 영구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상대정파를 매도하는 시스템과 연결된다. 동시에, 북한 공산정권이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서 反日을 정권적 차원에서 하는 것과 연결된다.

 

국민을 위한 정부는 국민을 위해 쓸 세금을 많이 내는 기업의 붕괴보다 안타까운 게 없다. 일본이 원하는 것을 진작에 들어줬을 것이다. 지금은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북한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월북자가족이 주축이 되는 귀족 과두정 국가로 일반국민경제의 피해를 나몰라 하고 있다.

 

시장경제는 종족주의와 친하지 않다. 종족적 특색이 강조가 되면 모든 재화와 물자들이 멈춰 버린다. 자유민주주의는 종족주의와 친하지 않다. 특히, 권력을 쥔 종족의 신앙이 무차별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세계인권 선언에도 반대가 된다. <소녀상>은 명백히 기독교 시각에서는 우상이다. 그것은 특정 종족의 신앙적인 종교정치관점을 담고 있다. 종족적 신앙은 언제나 ‘가치 상대주의’에 놓인다. 좌파정권은 ‘종족적 판단’을 하면서, 가치 상대주의를 용납치 않겠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광주민중항쟁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란도 그렇하다.

 

이 모든 한국 사회의 문제는 세계교회협의회와 연결된 독일교회협의회의 위르겐 몰트만이란 사람의 오래된 한국의 정치경제 현실을 둘러싼 개입 결과로 나타난 罪惡일 것이다. 세계교회조직의 대표기구란 이들이 자신과 연계된 이들만을 위하고, 성경의 교회관을 지키는 이들의 몰락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자. 우파 진영이 정권 탈환은 ‘국제예수사기단’과 싸움 없이는 불가능한 이유

 

한국 사회 정치의 상황 정리를 해보자.

 

① 지금 좌파 지배체제의 모든 것은 ‘한반도판 일국양제’인 고려연방제의 시스템으로 이어진다.

 

② 이는 ‘영웅우상신앙’과 ‘부족연합체’로 이어진 한국의 古代부터 中世에 이르는 민족신화의 이데올로기적 사용에서 시작된다.

 

③ 민족신화의 이데올로기적 사용으로 나타난 정치종교는 ‘천도교’다. 민중신학은 ‘천도교’의 종교 논리에 ‘교횟말’을 덧 씌웠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를 매개로 기독교로 추인 받았다.

 

④ 천도교 안에 있는 ‘老子’적인 논리가 담긴 개념은 단순히 信仰을 넘어서 매스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국민에 읽혀짐으로 국민성을 추락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용어로 나타난다.

 

⑤ 이러한 것의 반복적 제시와 그에 기반한 상당한 시일이 흐름은, 한국 국민성을 ‘민족복음화운동’과 그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시하던 이전 사회인 1950년대식 무질서로 돌리게 됐다.

  

⑥ 천도교에 깔린 ‘후천 개벽’ 신앙의 이데올로기적 사용은 권력을 호남지역의 종북좌파 귀족에 고정하면서, 대한민국 법치와 시장경제를 붕괴하는 지향성에 대중들을 불러 세우는 정치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⑦ 천도교는 1922-1945년 사이에 남북한 전체의 좌경화시대의 종교였고, 사회전체를 사회주의로 이끌었던 구체적 역사가 있다. (이는 좌파는 대학가에 도배를 하듯이 풀었고, 우파는 이런 결과물을 단 한 개도 구세대에 전하고 있지 않다.)

 

⑧ 이승만 정권은 ‘천도교 청우당 해체’, 박정희 정권은 ‘천도교정치’와 맞서려 하면서 ‘긴급조치’를 내세웠다. 이 ‘처방전’을 고스란히 따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좌파 진영의 권력을 제어하려면 좌파의 이데올로기 선동을 막아야 하고, 그 중심에는 천도교 종교상징이 있다는 ‘진단서’는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⑨ 김영삼 정권 이후에 우파의 핵심을 차지한 ‘천도교’로 추정되는 이념을 구사하는 엘리트 집단들은, 좌파의 천도교 정치 선동을 단 하나도 막지 말고 단순히 우파 지도자 1인의 개인기로 뚫으라고 제안을 반복하고 있다. 중국적 세계관 속에서 완전히 놓여 있다면 지도자는 군중 독재보다 우월하지만, 현대 서구적 가치관으로 지도자에게만 따라야 할 도덕이 주어지고, 군중 독재 모드로 대중이 움직인다면 정치지도자 1인은 속수무책이다. (이렇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은, 오직 古소설의 ‘홍길동전’ ‘전우치전’의 영웅을 그리는 문맹 농민의 심성세계 일 뿐인데, 여기에 기대서 현대정치가 움직일 수는 없다.)

 

진짜, 잘못된 핵심 문제를 논해보자.

 

① 천도교 역사에서 『개벽』지를 중심으로 천도교 지도자 이돈화씨가 베르그송을 중심으로 논하고, 해방 이후에는 ‘화이트헤드’를 중심으로 논한 중국신앙적 일원론의 정체는 최제우가 만난 신앙체험의 대상인 ‘上帝 神’이다. (이는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② 천도교의 ‘상제 神’'은 조상 신으로 혈연 연고주의를 전제로 한다. 천도교는 교주 정치와 연결된 귀족, 그리고 귀족과 연계된 시족혈연으로 맺어지는 권력종교다. (천도교는 서구 시민정치를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시아적 전제주의에 서구 시민정치용어를 덧 씌우는 것이다.)

 

③ ‘상제 神'이 유불선 등 다양한 신앙으로 결합되는 현상은, 연고가 닿는 마을 사람 내부의 문제이며, 그 안에서 특정 정치세력의 ’옷 바꿔 입기 문제‘일 뿐이다. (至仁, 眞人, 異人만 접근하는 신적 영험한 세계로서 통일 세상을 이해하는 전문가는, 서구근대적 가치로는 ’없다‘고 보는게 맞다.) 유불선 종교가 종합된 흔적이 있지만, 근본 골격은 유교 군주관점이다.

 

④ 천도교에 있어서의 統一은 ‘부족장’이 전 영토를 권력화한다는 의미로서의 부족장 세우기가 실제 의미다. (이 의미를 제외한 모든 논리는 명분이고 진짜가 아니다.) 즉, 특정 씨족이 다른 씨족을 절멸 시키며 붕괴시키는 중국사 속에서의 역사를 담고 있는 개념이다.

 

⑤ 천도교가 기반이 된 정치 담론은 특정 부족 이기주의 가치가 담겨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이란 단어를 제외한 ‘평화통일’은 중국식 전제로, 다른 세력들의 붕괴를 완벽하게 하여 아무도 넘나들지 못해서 특정 씨족의 귀족들만 영구히 꿀 빠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 서구 시민적 가치로 오인하는 것이 문제다.)

 

⑥ 이러한 문제를 세계교회협의회가 기독교라고 추인하여, 중국 유불선 신앙으로 에둘러 형성된 중국적 마르크스주의와 그에 연관된 사회주의 역사가, 유럽적 기독교 시민논리로 한국과 유럽사회에 오인되게 됐다.

 

⑦ 그러한 오인에는 위르겐 몰트만의 세계교회협의회를 反美영역 확장으로 보는 관점 때문인데, 이는 히틀러 사회를 초래한 히틀러 체제 부역자들을 이야기하는 ‘독일 그리스도교인’의 자유주의 신앙 전통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판 일국양제를 추구하는(결국은 反기독교적으로 흘러서, 주체사상이 甲이며 천도교가 乙로 지배하게 되는) 좌파 체제의 증명 가능한 붕괴는 어떻게 가능한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복원은 어떻게 가능한가?

 

①. 현재의 좌파 체제는 ‘기독자민주화동지회’가 통일담론에서 사용된 ‘중국신앙적 일원론’ 상징을 기독교로 추인한 세계교회협의회에 속한 독일 교회협의회 측의 행동이, 기독교 조직으로는 있을 수 없는 미국에 대항하는 동구권 사회주의 영역의 확장 때문임이, 국제사회에 인정되면 모든 논리는 정당성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② 천도교는 일제시대의 소련 마을 性理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교일치를 추구한다. 이는 개신교 신앙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겨냥한다. 세계인권선언의 종교의 자유로서 ‘성경의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공교회 신조를 지킬 자유는, 세계인권선언이 엄격히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속한다.

 

③ 민주화기독자동지회의 남북한 관련 담론 뿐만 아니라, 최근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판하는 교회원로분들의 글에서도, 중국신앙적 일원론으로서 ‘상제신’을 만나고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것이 뚜렷하게 포착된다. 종교혼합단계의 일반성도와 달리 이러한 분들은 뚜렷한 의지를 가지고, 고의로 그러한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국제사회의 축복 속에서 ‘신흥종교’로 분가를 시키고, 천도교 종교상징이 종북좌파적인 기독교정치에 적용돼온 여태까지의 행동 역사는 민법의 통정허위표시 조문에 입각해서 ‘개신교 신앙 행동’으로서는 무효라 판단돼야 한다. 물론, 그 부분을 제외한 영역으로 천도교 상징에 의거한 천도교적 믿음이 먼저 작동한 것이 아닌 경우는 유효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④ 중국신앙적 일원론을 구사했지만, 교횟말 표현으로 덧 씌운 외관을 신뢰한 세계교회협의회의 군사정권 붕괴에 참여는 유효다. 교횟말 표현의 외관을 신뢰한 모든 매스미디어 및 일반 국민의 착각도 유효 행위다. 그러나, 중국신앙적 일원론이며 교횟말 표현으로 덧 씌운 것이, 공교회 신조를 지키는 정상적 개신교 신앙이 아님을 알 수 있었던 위르겐 몰트만과 그에 연결된 독일교회협의희의 남북한 현실에 정치적 참여는 모두 무효다.

 

⑤ 이러한 부분이 한국의 민사법정으로 판가름 나기가 어렵다. 군사독재는 1인 지도자가 중심이 되는 방식이지만, 민주화체제는 1파벌이 중심이 되는 체제다. 군사정권 때는 지배하는 정당과 반대정당에 절반을 먹어줬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우파정당에 상당수 인원이 천도교와 연관된 문제로 결정적 순간에 좌파 의도로 움직인다. 한국은 귀족독재에 치명적인 붕괴를 초래하여, 귀족독재에 원수가 될 수 있는 사안을 개인이 소송을 걸 수 없는 사회다. 미국교회협의회와 일본교회협의회의 정치참여가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 및 일본 법정에서의 이 문제에 대한 최초 판단을 하게 되는 상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좌파 권력체제의 가장 ‘밑둥’을 이루는 논리가 부숴지면, 순차적으로 연결된 부분을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격 지향적’인 문제로만 나아가면 우파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담당자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국 문명 종교로서는 ‘사회’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며, 민족복음화운동을 생각했던 과거를 오늘 이 시점에서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차. 민족복음화운동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천도교 종교상징이 지배하는 좌파 기독교는 적극적으로 한반도판 일국양제를 지지하고 있고, ‘민족복음화운동’ 당시의 반공기독교에 해당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소속의 교회 중에 적지않은 숫자가 ‘반대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 근거가 최근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해체를 바라는 교회원로라는 할아버지들의 호소문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소속에도 걸리는 인사가 적혀 있는 모습과 연결된다.

 

한반도판 ‘일국양제’인 고려연방제는 ㉠ 과거 박정희 시대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남한의 안보 공백을 유도한 뒤에 남침을 하기 위한 것으로 설명했다. ㉡ 최근 2-3년 동안에 미국의 북한의 통일전략에 대한 공식 입장은, 북한은 주한미군 방어력을 훼손시키고 수도권을 장악하여 인질화시키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중국판 ‘일국양제’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홍콩의 반공 자유민주화 시위를 보면, 한반도판 ‘일국양제’의 성공 가능성을 부정하는 게 정상적인 사고일 것이다.

 

이성적 사고를 가진 모든 구성원들이 ‘한반도판 일국양제’인 고려연방제의 비관적 전망을 예상함에도 불구하고, 이북 실향민 1세대 중에서  90대 이상으로 몇 년 안에 세상을 떠날 1세대 노인들(물론, 90% 이상의 1세대 노인들은 대부분 90세를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에 충성을 바친다고, 그 아랫세대 일반기독교인들에 치명적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는 ‘한반도판 일국양제’인 고려연방제에 명시적 반대를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북 실향민 2세대와 3세대 중에서 겪는 민생고도 이런 부분에는 고려가 배제된 것이다. 최근의 한국교회에서 ‘기독교 신앙’이 작동하는 게 아니라, 과거 ‘서원’을 근거로 움직이던 귀족들의 성리학적 정치신앙에 기초된 게임의 룰이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 공동체에서 ‘말씀’이 아니라 친족공동체 기반의 혈연 윤리가 지배하고 있다. 기독교통일담론이라 불리는 영역에 있어서, 천도교 조상신 상징의 남발 때문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5년까지 연이은 사회 데모는 한국 사회의 민생 고통을 극대화시켰다. 1965년에 이화여대 총장이었던 김활란씨는 ‘붕당망국론’을 주장한다. 당시에는 식민사관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김활란씨가 의존한 참고 서적은 일제 식민지 자료였을 가능성이 높다. ‘동도도기’의 위정척사파나 ‘동도서기’의 천도교파의 경우는, <친족 문화>는 한국인들이 안정적인 국가를 이룩할 수 없게 한다는 결과물을 부정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한중 수교 이후에 나타난 중국 공산당 서적도 중국 종교 자체의 한계로 지적하고 있으며, 미국 하버드 중국학 성과 역시 거의 비슷하다. 중국 문명이면서 일본이 국가조직이 가능한 것은, 일본의 ‘천황제’ 전통의 특이함으로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친족 문화>로 국가관을 구축한 시도가, 김대중씨의 ‘대중참여경제론’과 ‘3단계 통일론’이 결합된 <부족연맹체>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1950년대 후반에서 1965년 사이의 한국정치에서 실패했듯이, 이제 거의 20여년간의 정치실험 속에서, <완전하고> <완벽하고> <철저하게 검증됐으며> <미국과 중국의 전문자료로 충분한 증명이 가능하게> 실패했다고 본다.

 

민족복음화운동은 복음을 통해서 남한 사회의 민주주의를 일으키고, 그것을 통해서 북한 땅까지 확산시킨다는 메시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김영삼 시대이후에 차츰 ‘민족복음화운동’은 그냥 신앙의 열정과 뜨거움 수준으로 왜곡되고 말았다.

 

유교적 제사도덕으로 타락한 조직신학(교의학)은 실제 믿음이 다른 데 포장된 논리로 작동된다는 이야기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신학적 범죄성은 지네들 기준으로 귀족 신앙이 ‘개신교/가톨릭’일 텐데, 한국의 전통적인 귀족 신앙이 ‘중국문명’영역이라는 사실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또, 기독교 신앙 고백은 무교적 해원풀이로 변질됐다. 민족복음화 운동은 ‘친족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기독교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길 바라는 측면이 있었으나, 차츰 한국교회는 ‘친족 이데올로기’의 포획에 장악됐다. <신학자> 혹은 <권력적인 목사>와 <교파/교단>을 빨아대는 것은, 철저한 조선왕조 유교의 전통이 교횟말로 바뀐 채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믿음과 구원이 인간의 노력에 의한 대가가 아니라는 기독교의 정통적 시각(행 15:11, 롬 3:10, 23-25, 엡 2:8-9)의 부정과 연결된다.

 

새 프로테스탄트가 나와야 한다. 종교개혁이 다시 나와야 한다. 어느 종교와 종파만 아니라 통히 종교 그것이 새로워져야 한다. 먼저 왔던 것이 다 제때에는 저 할 일을 했지만 제 때가 지나간 다음에도 그냥 서 있으면 이제는 도둑이요 강도다. 그러므로 그들을 내쫓고 새 말씀을 외쳐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새 역사 이해를 가져야 한다. 그들의 사명은 진리를 현대 속에 살려는데 있다. 시대 착오의 낡은 제도 속에서 질식되려는 진리를 구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진리의 주장을 날카로운 역사비판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깊은 역사지식을 가져야 한다. 한국에다가 진리를 살리려는 자는 먼저 한국을 알아야 할 것이요, 한국을 알려는 자는 먼저 한국의 역사를 알아야할 것이다.(33쪽,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 1993. )

 

한국의 기독교신자들이 한국적 토양에서 서구의 정통 개신교를 말하는 공교회 신조들을 지키려는 것이 ‘신앙의 토착화’인가, 東道西器 신앙의 실현으로 유불선이 종합된 천도교 신앙에 교횟말을 씌우는 것이 ‘신앙의 토착화’인가? <東道>란 말은 그 신앙 자체가 중국 문명 신앙을 의미히며, 성경의 기독교를 믿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교회의 토대는 <예수님이 主>라 고백하는 믿음이다. 그렇지 않은 것이 <음부의 권세>(히 2:14)일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친족들 간의 마음이 어떻게 통일됐다 하더라도, 기독교인은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는가를 듣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인이 아닐 것이다. ‘제자도’ 실천의 삶은 통전적이어야 한다. 이는 유교 선비의 ‘우주’인식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중국의 中庸적 마음과 히브리적 통전적 신앙의 결정적인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문제일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통합 측 교회에 출석중인 평신도(성도)가 성경에 반추해본 개인의 신앙 표현은 이렇다.

 

첫째, 민주화기독자동지회의 남북 문제의 신앙고백문 형식의 정치성명서를 포함하여, 세계교회협의회에 제출된 신앙고백문 형식의 정치성명서에, 기독교신앙에서는 나오는 것이 불가능한 천도교식 조상숭배 神인식에서만 가능한 ‘사고형태’로서 중국신앙적 일원론을 統一이라고 부르는 표현이 있다.

 

이는 개신교 신앙으로는 無效이고, 신흥종교로서 有效일 것이다. 민중신학을 사용하는 이들은 천도교 및 性理學의 신앙 변주를 정통신학에 우선해서 사용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는 사실상의 ‘개신교’를 벗어난 <새 종교>인식일 것이다.

 

4. 하나님의 섭리는 그의 창조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창조하신 만물을 보존하시며, 지배하시고, 인도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의 섭리에 따라 자연법, 동물의 본능, 인간의 이성과 양심 등을 사용하시나 그의 공의와 지혜와 능력과 사랑으로 섭리하사 그의 영원하신 창조목적을 성취하신다(롬 11:33-36). 그러나 가장 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은 죄를 만드시거나 인정하시지 않는다(약 1:13 Ⅰ요 2:16).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만물의 창조자이시므로 다른 신적 존재를 허용하지 않으신다(출 20:3). 그의 지음을 받은 모든 존재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절대자로 믿고 예배해야 하며(출 20:4-5), 따라서 우리는 다른 신을 섬기는 모든 종교의 구속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행 4:12).(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신앙고백 중에서)

 

기독교민주화운동에 있어서 개신교적 외형과 합치되는 부분에 한에서는 ‘有效’이며, 우파 기독교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명백하게 일탈해버린 부분에 한해서는 미국 교회협의회 및 일본 교회협의회에 요구하여, 독일교회협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가 자의적으로 추인한 부분의 무효화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둘째, 민족복음화운동의 전통은 이어가야 하지만, 칠천만의 복음화 테제만큼은 계속하기 어렵다고 본다. 교횟말로 포장된 사실상의 칠천만의 ‘천도교화’와 천도교를 매개로 한 ‘주체사상화’라는 위기를 닥쳐보니 느껴지는 판단이다. 닥친 현실의 문제는 모든 시장경제와 법치주의적 합리적 이성을 <니가 기독교인이니까 그래> 하고 빠져버리는 천도교 노인들의 모습이다. 그 분들을 복음에 빠뜨리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단, 그 분들이 믿고 있는 신앙 세계로는, 미국-일본-중국 등 그 관련된 영역에 있어서 전문 서적을 내고 있는 모든 곳에서 안정적인 국가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과물을 제출했다. 독일 교회협의회와 몰트만 측의 인정은 그 인정과정에서 <反美>의 확장필요라는 정략성이 파악되고, 이는 히틀러 파시즘체제를 인정한 자유주의 신앙이 초래하는 신앙 범죄인 “독일 그리스도교”라는 맥락에서 해석될 부분이라고 본다. 그런 비합리적 노인들을 ‘법치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된 서구적 이성의 기초를 가르치고, 그런 분들에게서 <개신교 신앙의 자유>를 인정 받지 못하면, 한국 개신교 신앙의 자유는 계속 위기에 빠질 것이다.

 

셋째, 반만년 한국 역사에서 ‘조상숭배’는 귀족과 民이 공유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귀족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할 때 사용했던 귀족 편향의 종교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착각하지 마라. 한국은 독일인이 느끼는 서방세계에 낯설음 자체가 없었다. 한국공산주의 운동사에서도 부르주아 반동은 소련 지배가 미치지 못한 마을을 겨냥한 인종주의였을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귀족종교는 조상숭배를 통한 권력 강화 책략을 말한다.) 조상숭배도 종교로 인정하여, 자신들의 조상을 씨족 혈연이 다른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을 세계인권선언의 ‘국교금지-정교분리-종교중립’의 위반으로 세계에 공인 받는 것이 필요하다. 조상숭배로부터 벗어나는 의미로서 개신교 신앙은 한국현대사에서 나타난 ‘민중신앙’이었다.

 

넷째, 민족복음화운동 당시에 운동을 주도하는 목사님의 신앙 체험인 ‘국가’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던 고백으로, <일제 시대 나라 없던 기억/ 6.25 때 기억/ 가난의 기억> 이 공유되면서 민족복음화 운동이 있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비춰진 ‘이웃’을 바라보는 신앙 고백을 통하여 새로운 국가조직을 건설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는 믿음으로 조직을 건설했다. 함석헌 저작집과 박정희 저작집은 논리가 비슷하다. 군사정권 때는 박정희 저작집만을 읽었고, 지금은 함석헌 저작집만 읽고 있다.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은 ‘박정희 저작집’으로 ‘함석헌 저작집’을 읽고, ‘함석헌 저작집’으로 ‘박정희 저작집’을 읽게 되는 것이 가능한 사회일 것이다. (즉, 與野의 모든 정치현실을 기독교적 신앙 잣대 안에서 평가할 수 있는 사회의 도래일 것이다.)개신교 신앙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적 계약과 찾아오심에 의한 신앙 공동체일 것이고, 타종교인 상호간에는 대한민국 건국 계약의 문제를 논해야 할 것이다. <친족 신앙>에서는 他者를 위한 신앙 가치가 정말 드물어진다. 이는 단순히 신학대학 안에만 멈춰진 신앙운동이 아닐 것이다. <신학대학>이나 <교파>나 <교단>중심의 친족 원리에 빠진 신앙은 무의미할 것이다.

 

다섯째, 한국 사회가 바로 서길 바라는 사람은 많으나, 워낙 조선왕조 붕당정쟁에 기반된 유교적 보복전통이 강하니까, 섯불리 정치 현실의 전면에 나설 수가 없다. 천도교 종교상징을 남발하는 한 무리의 귀족 마피아에 아무도 성공적인 저항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좌파정권으로부터 정권 탈환에 만족하지 않는 장기적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문화 다시 만들기가 필요하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다시 서길 바라는 외국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선언적인 명분론에 그칠 것이다.)

 

여섯째, 개신교 신앙에 사실상 완전히 배척되는 통일과 교회연합의 경우에는, 개신교인은 신앙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물론, 민족복음화로서 북한선교의 사명을 유지해야 한다. 민족복음화 전통 안에서 북한선교의 문제는, 서구의 공교회 신조에 의해서 유지되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다. 민족복음화운동을 주도한 목사님의 취지도 그렇고 원래 개신교 신앙의 본래 가치도 그러할 것인데, 복음 선교가 그 사회를 ‘성경’이 퍼진 국가에 수반되는 사회질서 만들기를 추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남북한이 예수 안에서 연합과 일치된다는 민족복음화운동에서의 종말론적 신앙에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4.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국적을 가지고 있다. 지상국가의 국적과 하나님의 나라의 국적이다(빌 3:20). 이 두 국적은 상호 배타적이거나 적대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만약 양자 택일을 강조당했을 때 모든 그리스도인은 지상국적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국적을 고수해야 한다.(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신앙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