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위가 중간고사가 코앞이라며 돌아봤다. 아직 많이 남았잖아, 하고 묻자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코앞이라는 건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이야, 언니. 나는 턱을 괴고 쯔위의 말을 경청하며 조금 인상을 썼다.
중간고사라고? 이건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운 게 뭐가 있다고 시험을 본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쯔위에게 그동안 필기한 것을 전부 빌렸다. 물론 나중에 빵 사주기로 했다.
그렇게 수업 시간에도 열심히 밀린 필기를 하다 보니 오전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나연 언니는 점심시간 즈음해서 교실에 들어왔다.
나는 정연이 사다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정연의 의자까지 다리를 쭉 뻗고 있었다. 정연은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주고 지효와 어딘가로 가버렸다.
나연 - 모모야, 안녕~
모모 - ..응
막 자리에 앉던 나연 언니가 가방을 책상에 걸어놓으며 인사를 건넸다.
자꾸 나연 언니의 입술을 보게 돼서 대화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어디를 보면 좋을까. 옆으로 튀어나온 한 가닥의 앞머리를 보는 게 좋을까. 아니면 단정하게 자리 잡은 타이를 볼까. 그것도 아니면, 타이 아래의...
나는 황급히 생각을 접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연 - 모모랑 짝꿍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연 언니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나는 또, 또, 또!
아예 내일부터는 부채를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연 - 화분은 잘 가져갔어?
모모 - 에? 아, 응..
어딘지 모르게 나른해 보이는 나연 언니가 턱을 괸 채 나를 본다.
그냥 무시하고 앞을 보면 되겠지만, 그럴 수 없는 걸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 알고 있다. 거기다 왠지 오늘따라 나연 언니는 나처럼 눈 밑이 피곤해 보였다. 같이 브로콜리 사먹을까.
나연 - 그거~ 물은 2주에 한 번만 주면 돼. 물 너무 자주 주면 뿌리가 상한대
모모 - ..응
나른해 보였던 게 기분 탓은 아니었는지 나연 언니가 작게 하품을 했다. 하품하는 거 처음 본다. 신기하네.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눈. 저런 모습도 예뻐서 좋겠다, 부러운 나연 언니.
나연 - 저기, 모모야. 나 어제..
나연 언니가 말을 꺼내는데 뜸을 들이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며 긴장이 됐다.
나연 - 한숨도 못 잤어.. 헤헤
여상스레 웃는 나연 언니의 웃음에 맞춰 열어둔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하늘하늘하게 날리는 연한 노란색의 커튼. 심장이 또 두근두근 거리면서 뜀박질하기 시작한다.
나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러다가 심장이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나, 병 있는 건가.
나연 - 혹시 모모가 답장 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나연 언니가 휴대폰을 꺼내 보이며 그랬다.
잘 자라는 인사에 뭐라고 답장하면 되는지 모르겠어서 그냥 안 했는데. 조금 미안해진다. 내 카톡 기다리면서 마음 졸였을 나연 언니를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대화가 끊어졌다. 딱히 할 말도 없어서 그냥 아이스크림을 깨물어 먹었다.
몸을 앞으로 돌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중, 나연 언니가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이 자세로 더 있어야겠다.
나연 - 모모야.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모모 - 먼데?
나연 - 다른 애들하고도.. 그런 거 해봤어?
모모 - 에?
나연 - 그, 우리가 어제 했던 거 말야..
뭐라고! 나는 누가 들을까 무서워서 얼른 주변을 살폈다.
들은 사람이 딱 하나 있다. 쯔위. 그래도 쯔위는 다른 애들한테 막 떠들고 다니는 타입은 아니니까 다행이었다.
나는 혀로 입술을 축이다, 무심코 나연 언니의 입술을 봐버리고 말았다. 어젯밤에 나를 괴롭혔던 영상이 또 필름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아, 정말 미치겠네. 나연 언니의 파르르 떨리던 속눈썹 같은 게 왜 아직도 눈에 아른 거리는 거야.
나연 - 대답해 줘, 모모야
모모 - 에.. 없눈데.. 유정욘 빼고
나연 - 아, 정연이..
나연 언니는 뒤늦게 정연이 생각났다는 듯 입술 끝을 살짝 깨물었다. 정연 때문에 되는 게 없다, 진짜. 이게 다 유정연 때문이야.
나는 실망한 듯한 나연 언니의 표정이 마음에 걸려서 열심히 머리를 회전시켰다.
음, 그러니까. 나연 언니와 정연은 명백하게..
모모 - 그래도, 달라써..
나연 - 어? 뭐가?
모모 - ..느낌
나연 - 나하고 정연이는 다른 사람이니까 당연히 느낌도 다르겠지
그런 게 아니다. 나연 언니는 내가 그런 것도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로? 그런 거라면, 상처 받을지도 모르겠다.
동상처럼 고민을 하는 사이 멍청히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기 시작했다. 막대를 잡고 있는 손을 타고 교복 치마에 똑 하고 떨어진 한 방울.
나는 이잉 하고 짜증을 내며 정연의 휴지를 슬쩍 뜯어다 치마를 닦았다. 휴지에서 나온 먼지가 풀풀 날려서 기침이 날 것 같았다. 아, 오늘 아침에 새로 다려 입은 건데.
나연 - 친구 사이에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거야? 아주 친하면 키스도 하고 그러나..?
치마를 닦던 손을 멈췄다.
나연 언니,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가. 뽀뽀는 모르겠지만 키스는...
그래, 키스는 좀 그렇지. 사귀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유정연한테 도둑놈이라고 하는 거고. 이건 누구나 알만한 사실 아닌가?
나는 비스듬하게 턱을 괴고 있는 나연 언니를 힐끔 봤다. 진지한 얼굴이다. 거짓이라고는 티끌만큼 안 섞인. 속이기 딱 좋은 유형인가.
나연 - 나는 정말 잘 모르겠거든. 저번에도 말했잖아. 여자애들끼리의 그 미묘한.. 그런 관계를 모르겠어.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아
나연 언니가 동성 친구들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많은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행동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굳이 나한테만 이런 말을 할까. 나도 잘 모르는데 말이야.
나는 결국 형편없이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처리하지 못하고 버렸다. 흐물흐물하고 형체가 없는 게 꼭 내 마음 같네.
나연 - 모모야, 넌 어떻게 생각해?
턱을 괴고 있던 팔의 각도가 기울어져 거의 옆으로 엎드리다시피 한 나연 언니가 다시금 하품을 했다. 입가를 가린 하얀 손등. 찡그려진 눈이 귀여워 보인다고 생각하다가 나를 올려보는 시선과 마주쳤다.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모모 - 아주.. 친하묜
나연 - 아주 친하면?
나연 언니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으려는 듯 자세를 바르게 했다.
모모 - ..하는 경우도.. 이써
그리곤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방금 거짓말을 했다.
나연 - 그래?
나연 언니는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