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서 전형적인 홍어형으로 변하는 문근영 면상
남평문씨는 문근영의 본관이며, 문재인의 본관이기도 하다.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홍어가 경상도에 살았다고 신분세탁하듯, 문재앙도 경상도라고 주장하지만 문재앙은 뼈속까지 좆라도인 이유임.
문근영 대학입시 당시 뒤통수도.ARABoZA
문근영의 인기탓에 광주시교육청은 문근영을 독방에 혼자서 수능을 보게 하였고, 수험생과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남.
수험생 부모들의 요청이 있어 그랬다는 광주시 교육청의 해명에 따라 논란은 잠시 접어두고 문근영은 수능을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수능을 봐서 정시로 당당히 가겠다던 홍어년 문근영.
성균관대에 수시를 지원한 사실이 나중에 밝혀진다.
수능 점수로 정정당담하게 가겠다고 해놓고 자기 추천전형으로 수시를 지원했던것이다.
결국 특례로 성균관대에 합격을 하였고 연극영화가 아닌 인문학계열로 가게 된다. (그리고 국어국문학과로 배정된다) 홍어년의 뒤통수.
그렇다면 문근영의 수능점수는 몇점일까?
원점수는 300점대 후반에 등급은 언어 3등급 수리 3등급 외국어 4등급 탐구 1144라고 한다.
웬만한 인서울 대학은 갈 수 없는 성적이었음.
문근영의 집안도.ARABoZA
문근영은 빨치산 빨갱이 통일혁명당 류낙진의 외손녀임.
류낙진은 20살에 남조선로동당에 입당해서 한국전쟁 당시는 전라도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체포, 출옥, 테러, 반국가 활동으로 다시 체포, 출옥을 반복하다 2005년 사망함.
당시 유가족(문근영가족)은 장례때 들어온 부조금 5천만원을 반국가단체 범민련 남측본부에 기부한적도 있음.
문근영 아역스타 당시 인터뷰.
그리고 언론은 류선영을 1980년 5월27일 도청을 사수하였던 시민군으로 미화하지만 사실을 그러하지 않다.
여기 그러면 문근영의 작은 외조부는 누구였느냐의 의문점이 있다.
"오늘 우리 지리산의 동지들이 50년이 훨신 넘는 세월을 건너뛰어 여기, 대성골의 칠성봉 아래에 모였습니다. 수많은 해방전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때의 가열찬 해방전쟁의 투쟁을 되새기며 이곳에 서 있습니다. 여기 모인 동지들 중에는 구빨치산 때부터 해방전쟁에 복무했던 동지도 있고 조국해방전쟁 이후 미제와 그 주구들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전략적 후퇴시기에 빨치산 대오에 들어와 활동했던 동지들도 많이 있습니다."
전라도를 대표해 추도사를 낭독한 류락진(76세) 선생은 "박헌영, 이승엽의 종파반당분자들이 심어놓은 차일평과 그 졸당들의 반역행위로 많은 아지트가 파괴되고 미제의 세균전에 의하여 많은 동지들이 재귀열이라는 병으로 죽고 시달린" 조직적 우여곡절과 함께 빨치산 전몰 당시를 회고했다.
"남은 빨치산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체포되어 1954년 가을, 지리산은 총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체포된 많은 동지들이 고문과 학대로 죽어나갔고, 그대로 질긴 목숨을 이어온 동지들은 인류 역사에 없는 비전향장기수라는 이름을 달고, 30년 40년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전향공작이라는 갖은 살인적인 고문과 학대를 이겨낸 동지들은 조국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실제로는 류선영이 도청사수 시민군은커녕 시민군도 아니었음에도 좌파 언론이 그를 도청사수 시민군으로 미화할 때 그 의미는 통일운동가 류락진의 정신을 이어받은 시민군이 된다.
북한과 싱크율 100%를 보이는 주장을 하고 다니는 이적단체.
김정일 뒤졌을 때 범민련 남측본부 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