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 - 모모링, 그게 그로니까 미나링이 자꾸.. 아, 아니.. 미나 걔가 자꾸 나한테 달라붙어서 죵말!


모모 - ..웅


사나 - 부담스러워서 죽게쏘




대뜸 나를 찾아온 사나가 할 얘기가 있다며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요새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찾아와줘서 기뻤다.


솔직히 그동안 내게 뜸해진 사나가 조금 미웠다, 가 다시 이렇게 만나니까 벌써 다 풀렸다. 역시 사나는 내 친구였어.


나는 사나와 팔짱을 끼고 걸으며 사나의 푸념을 들어주었다.




사나 - 처음엔 그냥 친해지고 싶어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정도가 지나치다니까? 어딜 가도 따라와!


모모 - 너가 조은가보지


사나 - 아니아니, 막 화장실 가는데도 따라오고 그론다니까? 너 만나러 가려고 해도 자꾸 따라온다고 하구.. 걔가 하도 붙어있으니까 다른 애들하고 놀기도 힘드러


모모 - 으응..




나는 사나랑 붙어 다니는 미나를 떠올렸다.


하긴 우리 사나가 성격도 싹싹하니 좋아서 애들하고도 잘 지내고 애교도 많지, 선생님하고도 잘 지내지, 공부도 보통 이상은 하지. 어디 모자라는 게 없는 아이이긴 했다.




사나 - 너한테 카톡하려고 하묜 누구한테 하는 거야? 이러면서 막 보려고 한다니까!




씩씩거리는 사나의 얼굴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나는 사나랑 있을 때면 표정이 더 많아진다. 좀 더 솔직해질 수 있다고 할까. 내가 고등학교 들어와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친구인 사나는, 귀엽고 편하고 착하다.




사나 - 비올 때 모모링이랑 집에 가고 싶었단 말야


모모 - 징짜?


사나 - 그럼~! 모모링은 우산 안 가지고 다니자나. 아니, 그나저나 우산 좀 가지고 다녀! 놔뒀다가 모할꺼야




다정함이 깃들어있는 핀잔에 다시 한 번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했다. 우리 사나.




사나 - 반 애들하곤 많이 친해져써?


모모 - 에? 그냥.. 조금?


사나 - 또 애들이 너 쪼물락거리고 그러는 고 아냐?


모모 - 아니거드은! 애들 나 무서워 한다고..


사나 - 으이그..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모모링




사나는 나랑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물론 동은 달랐다. 그래서 보통 같이 가는 날이면 놀이터 앞에서 헤어지곤 했다. 나는 왼쪽으로, 사나는 오른쪽으로.


벌써 놀이터 앞까지 다 와서 팔짱을 풀고 인사를 하려는데 사나가 모모링, 하고 내게 귓속말을 했다.




사나 - 저 사람 임나연인가? 그 언니 아냐?




사나가 그네에 앉아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다른 구조물들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얼핏 보이는 게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나연 언니가 여기 올 리가 없으니까. 나는 심드렁하게 시선을 돌렸다.




사나 - 맞는고 가튼데? 아닌가..? 아무튼. 나 갈게. 조심해서 가, 모모링~




나는 사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잘 가. 총총 걸어가는 뒷모습이 귀엽다.


그런데 저만큼 가던 사나가 다시 돌아오더니 내 볼에 뽀뽀를 쪽 했다.




사나 - 난 모모링이 제일 좋아. 알지?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허밍을 하며 돌아섰다.


놀이터를 빙 돌아서 가려다가 아까 사나가 말했던 사람이 궁금해져서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세 번째 그네에 앉아 있는 사람. 여자.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나를 보고 있는. 




모모 - ..나욘 온니?




나는 놀라서 걸음을 빨리했다. 잘못 봤나.


그런데 그네에 앉아있던 사람은 정말로 나연 언니가 맞았다.


나는 일단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연 언니 옆의 그네에 앉았다.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나를 보는 나연 언니의 시선이 느껴져서 어쩐지 행동이 어색해졌다. 얼굴 표정도 그렇고, 말을 꺼내는 것도, 어느 하나 자연스럽게 되지 않았다.




나연 - 모모가 나 못 보고 그냥 가는 줄 알았어




목소리도 그렇고, 진짜 진짜 나연 언니다. 얼마나 못 봤더라.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생각했다.




나연 - 나 월말 평가에서 1등 한 거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었어




축하해, 언니.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나연 언니가 웃었다.


이런 걸 찍어서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발장난을 쳤다.


그네가 앞뒤로 조금씩 흔들렸다. 나연 언니하고 있으면 주변의 공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


갑갑하고 어색하고 부끄럽고. 나는 이런 거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하다. 하지만 싫진 않았다.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조금씩 더 발을 많이 굴렀다. 그네가 그리는 곡선이 커진다. 올라갔다 내려가는 세상.




나연 - ..많이 친해?




나는 바닥에 발을 디뎌 그네를 멈췄다.




모모 - 에?


나연 - 방금 같이 있던 애


모모 - 사나? 작뇬부터 지금까지 제일 친해




나연 언니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연 - 나랑은 어때, 모모야?




무슨 말인가 싶어 나연 언니를 봤다. 나랑은 어떠냐는 게 무슨 말이지? 나는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나연 - ..푸흣! 아냐, 아무것도. 모모는 정연이하곤 친하지?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다. 왜 다들 내가 정연이랑 친하다고 생각하지.


정연한테는 첫 날부터 휘둘리면서 같이 다닌 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유정연, 가끔은 다정하니까 싫지는 않았다. 귀찮은 것도 사실이지만.


요즘 들어 부쩍 뭔가를 꾹꾹 안으로 삼키는 눈을 볼 때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연 - 지금까지 정연이랑 알고 지내면서 정연이를 부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2학년 되고부터 부럽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




나연 언니가 그 말을 마치고 일어났다. 나는 가려는 줄 알고 안녕, 하고 인사했다. 그리고 발끝을 보며 앉아있는데 뒤에서 끌어안는 팔이 느껴졌다. 뭐야? 갑작스런 일에 나는 또 몸이 굳었다.




나연 - 정연이라면 이런 것도 그냥 막 하겠다. 그치?




나를 감싸 안은 나연 언니의 하얀 팔.




나연 - 가만 보면 유정연은 널 아무렇지도 않게 안고 그러는 것 같아. 원래.. 친구들끼리는 다 그러는 거야?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 여자애들끼리의 그런 거. 그런데 정연이는 너무 당연하게 모모한테 스킨십을 하잖아. 보다 보면.. 나도 그래야만 될 거 같아




나연 언니가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그 다정하고 밝은 목소리에 나도 모르는 사이 동화되어 버리는 것 같다.




나연 - 정연이는, 음.. 털털한 성격이지? 친구도 많구. 늘 반장 같은 건 도맡아 하잖아




나연 언니도 밝고 좋은 성격이다. 친구도 많은 것 같고. 아, 이건 아닌가? 저번에 자기 입으로 친구 별로 없다고 했으니까. 조금 의외다. 그보다 정연과는 어떻게 친구가 됐을까. 왠지 둘이 죽이 잘 맞았을 것 같긴 하다.


나는 꼬꼬마였을 둘의 어린 시절을 잠깐 상상하고 웃었다.




나연 - 그런 정연이도 떨렸을까..




생각이 멈췄다. 나는 나연 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떨리다니. 무슨 뜻이지?




나연 - ..이상한 소리를 했네. 미안, 모모야! 나 갈게. 내일 봐~!




나연 언니는 토끼 앞니를 보이며 환하게 웃더니 몸을 돌려 걸었다.


나는 나연 언니가 간 후에도 오랫동안 혼자 앉아있었다. 무슨.. 뜻이지?











쯔위 - 언니들, 이거 먹어. 나연 언니 1등 했다고 들었어요. 많이 가져왔어




쯔위가 가방에서 커다란 비닐봉지를 꺼냈다. 바나나에 이어 오늘은 빵이구나.


쯔위는 맛있는 걸 자주 싸온다. 비록 동생이지만 왠지 사나 다음으로 좋은 친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똑똑하기도 하고.


맞아, 그나마 정연이랑 지효, 쯔위 중에서는 쯔위가 제일 낫지.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비닐봉지에 있는 빵 중 하나를 집어왔다. 땅콩 크림이 가득 들어있는 빵을 덥석 물고 우물거리고 있는데 쯔위 책상에 반쯤 걸터앉아있던 나연 언니가 내게 팔을 뻗었다. 예쁜 손가락이 입술 근처를 스쳤다.




나연 - 입에 다 묻잖아, 모모야~




아.. 나는 멍하게 나연 언니를 올려다봤다.


빙긋 웃은 나연 언니가 손가락에 묻은 크림을 혀로 핥았다. 아, 패닉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뺨에 손등을 댔다. 벌써부터 뜨끈뜨끈하다, 볼이.




나연 - 맛있어 보여서, 히히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보며 나연 언니가 또 웃었다.


나는 어쩐지 당황스럽고 창피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하고 묻는 나연 언니에게 화장실이라고 대답하고 얼른 교실을 나왔다. 내 얼굴은 왜 시도 때도 없이 빨개져서 나를 곤란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얼굴에 차가운 물을 묻히고 있는데 구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정연? 누구랑 통화하나.


별 생각 없이 다시 교실로 돌아와 앉았다. 이제야 좀 더운 게 가셨다. 누가 얼굴에 철판 좀 깔아줬으면 좋겠네.




나연 - 정연이는 어디 갔어?


지효 - 글쎄? 아까 배 아파서 화장실 간다고 그랬는데. 아직 안 왔나?




나연 언니와 지효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하품을 했다. 뭘 먹었더니 졸린다. 찬물로 세수한 것도 아무 소용없는 걸 보면 나는 잠이 많은가보다.


어깨를 콩콩 두드리며 아이들과 얘기하고 있는 나연 언니를 봤다. 어제 나연 언니가 했던 말, 무슨 뜻이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밤새 그 생각 때문에 잠을 설쳤다. 도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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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렇게 길어질줄 몰랐는데.... 벌써 10편이네요
꾸준히 댓글 달아주시는 분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