엌ㅋㅋㅋㅋㅋㅋㅋ 이거 팬팩 읽다가 덧글애 어떤게이가 퍼오는거라고 썼길래 찾아봤더니 ㄹㅇ이었놐ㅋㅋㅋ
지금까지 팬픽 연재하던 새끼들 다 이렇게했놐ㅋㅋㅋ?
나도 이제부터 작가 가능하노이기
걸게식팬픽 간다 이기야
M에게.
여기서의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너와 편지를 교환하는 것뿐이야. 그 외에는 그저 내가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어.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이란 것은 정말 다양한 상이 있지. 단순히 외형의 개성뿐만 아니라 천성과 기질, 사고의 양상에 이르기까지. 같은 인간을 세상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아주 명백하게, 그 질문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어.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서로 다른 인간이 집단을 이뤄 함께 있으면 공통적인 특징들이 발견된다는 것이야.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려 하고, 힘을 과시하고, 타인을 가학하고 병탄하는 일 말이지. 내지와 조선, 지주와 작인(作人), 사내와 계집.. 그뿐이겠나? 광인들이 모인 이곳이라고 다를 것은 없어. 난 가끔 그런 것을 여기서 관찰할 때마다 빼앗고, 지배하고, 착취하고, 학대하려 드는 것이 인간의 본성적인 특질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인간에 대한 환멸감은 지독하지. 뭐 물론 처음부터 어떤 기대도 하고 있진 않긴 하다만은.
참, 이전의 편지에서 그 여자가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하다 했었지. 그녀와는 항상 오후 시간에 만나. 꼭 매일은 아니더라도 며칠에 한 번씩은 꼭 보지. 그 여자는, 내 담당이거든. 하지만 아직까지 딱히 관심을 끌 만한 특별한 말은 하지 않아. 아마도 내면의 경계심이 그렇게 두지 않겠지. 그것을 깨는 것도 내 과제이긴 하겠지만.
피에스. 이번에 동경서 보내준 약, 고마워. 항상 도움만 받는 것 같아서 미안한 기분이야. 너의 친절함은 언제나 잊지 않고 있어.
1936. 6. 24
진료실을 나서곤, 이층 병원 벽을 따라 걸었다. 창으로 나린 볕은 마치 온몸을 감싸오듯 피부에 스며 온다. 아침에 먹은 두통약은 꽤 잘 드는 모양인지 머리에 통증은 전혀 느껴지진 않았지만, 온 몸이 몽롱함에 취해 있었다. 약 기운에 식곤(食困)의 여파가 더해진 것일까. 약간은 비틀거리는 몸을 느끼면서 나는 약제실로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창살이 굳게 박힌 창으로 먼 치에서의 말소리들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여자들의 떠들썩한 소리인 것을 보니 오늘은 조금 일찍 환자들에게 휴식시간이 주어진 모양이었다. 잠깐 허락되는 산책은 정해진 시간이 없다. 수간호사가 모든 일과시간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기분에 따라 일정치 않게 변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일정한 규칙은 있었다. 해가 지고 저녁식사가 시작되기 전. 환자들에게 볕과 바깥 공기를 쏘이는 것이 목적이니 그 시간이 한두시간이 달라진들 또 어떻겠는가. 장마 때는 그나마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니. 나는 오후의 권태도 이겨낼 겸 해선 환자들이 뭘 하고 있는지 구경이나 할 셈 싶었다.
"동경에도 본정(혼마치,지금의 명동) 같은 곳이 있겠지요?"
"긴자 거리는 그보다도 더 크고 화려하지요. 미쓰코시의 본점도 있고."
내 옆에 서 있는 박지효 간호사는 궁금한 목소리로 동경의 이곳저곳에 대해 물었다. 막연한 호기심과 내지에 대한 동경이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여 그녀의 사무적인 태도는 꽤나 사라지고, 말하는 대화의 주제들도 꽤 다양해졌다. 그녀는 종로 몇 곳의 끽다점 이야기와, 카페 여급과 명망가 자제의 정사(情死)사건, 조간 신문 마지막 장에 실려 있었던 최신 유행품 광고에 대한 시덥잖은 얘기를 늘어놓는다. 아무래도 외진 병원의 권태로운 생활이 퍽이나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수다스런 잡담에 이따금씩 장단을 맞춰 주면서, 병원 마당에 풀어놓은 환자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마치 뒷마당에 풀어놓은 병든 닭들처럼 보였다.
"선생님은 외출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네요."
나의 미적지근한 태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여기 온 이후로 거의 경성시내로 나간 적이 없는 것을 이미 알아채서인지. 그녀의 말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대답을 말았다. 경성에 아는 사람도 없거니와 자유 연애에 목마른 모던 보이나 걸들의 유흥이든,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신문물이든 나는 관심이 없다. 간호사는 크게 하품을 하고선 내 시선을 따라 환자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근래에 병원을 퇴원한 환자도 있었습니까."
"글쎄요. 최근엔 그리 호전된 환자가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데려가는 가족이 없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환자들의 생기없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광증이 들린 여자들이라지만 그들 안에도 일정한 무리라는 것이 있었다. 짧은 시간 보아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는.. 물론 거기에 여전히 속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항상 혼자인 그 아이. 오늘은 사람을 으레 관찰하는 것 대신에, 한쪽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는 쓰레기 더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이리 와 봐."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장 성질머리가 고약한 옥자라는 년이다. 심술궂게 째진 눈과, 불만이 가득한 입꼬리. 양 볼에 가득한 주근깨. 후덕한 덩치 때문에 깡마른 환자들 사이에서 유독 그 여자는 눈에 띄었다. 모든 환자들이 슬금슬금 눈을 피하는 것이, 두려움의 대상인가 싶었다.
옥자는 용주란 아이를 고개를 까딱이며 불러세우더니, 머리채를 잡아 당기며 희롱한다. 머리채를 잡아 당기면 수를 세는 것을 멈추고, 불안한듯 몸을 떨고, 또 다시 수를 세고.. 그 애의 반응을 보는 것이 썩 재미가 있는 듯 한참을 그렇게 고약한 장난을 치던 옥자는 그나마도 유희가 시들었는지 입을 쩝쩝거리며 희롱하던 손을 멈춘다. 재미있는 놀잇거리가 없는지 굶주린 사냥개마냥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옥자의 눈이 한 쪽 구석에 쪼그려 앉은 다현을 향해 멈췄다.
"얘, 뭐하니."
옥자는 다현에게 제법 큰 목소리로 말했지만, 다현은 뭔가에 집중한듯이 쓰레기 더미들만 쳐다보고 있었다.
"잠깐 이리 와 봐."
다현은 묵묵부답으로 시선하나 주지 않은채 계속 쭈그려 앉아 있었다. 무시를 당한 것이 퍽이나 빈정이 상했던 듯 옥자가 눈을 부라리며 다현이 앉아있는 구석으로 걸어간다.
"너, 몇 살이니."
옥자는 쭈그려 앉아있던 다현에게 또다시 말을 걸었지만 다현은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옥자는 발끝으로 쭈그려 앉은 다현의 작은 몸을 툭툭 하고 건드려 본다. 그제서야 다현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입은 여전히 굳게 다문 채로, 생각을 알 수 없는 눈동자는 옥자의 낯으로 향한다. 빨려들어갈 듯 선명한 농묵의 색채에는 흔들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벙어리야?"
목소리가 조금 컸기 때문에 뒷마당 바닥에 정체모를 그림을 그리고 있던 여자, 그리고 중얼대며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던 다른 여자, 무리를 지어 의미없는 대화를 주고받던 환자들의 눈이 동시에 그 쪽으로 향했다. 다현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파도 하나 없는 검은 눈동자로 옥자의 희번덕거리는 눈알을 바라본다. 그 시선들의 교차가 만들어내는 긴장 속에서, 나는 그 아이의 눈에 서린 묘한 고요함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은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온함이었다.
"말 하는 법을 잊어버린게야?"
옥자는 그 성질머리로는 이런 일방적인 대화를 참아낼 수 없다는 듯이 투박한 손으로 다현의 머리를 몇 번 건드린다. 처음에는 툭툭 치는 정도였던 것이, 손아귀에 들어가는 힘이 점점 세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혹여나 무슨 일인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하여 간호사들을 둘러보았다. 간호사들은 늘상 있는 일이 익숙한듯 신경조차 쓰지 않은채로 잡담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그 둘 쪽으로 향했다. 여전히 옥자는 씩씩거리며 다현의 앞에 서서는 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살집있는 옥자의 손바닥이 맹렬히도 그 아이의 검은 머리를 가격했다.
그리고, 맹렬한 가학의 순간 속에서, 나는 보았다. 거친 손찌검 사이의 찰나에, 그 아이의 입가를 스쳐가는 희미한 조소를. 그 조소에는 그 전까지 보지 못했던 섬뜩함과 함께 요기(妖氣)가 어려 있었다. 나는 내가 방금 찰나에 본 것이 맞는 것이었는가 해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찰나의 조소 뒤로 다현의 표정은 전과 같이 무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옥자의 손찌검이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더욱 더 날뛰려 했기 때문에 나는 옆에 무료한 표정으로 서 있는 간호사를 붙잡고 급히 말했다.
"이제 휴식시간은 충분한 것 같은데 들여보내는게 어떨까요."
박지효 간호사는 내 말을 듣고는 지루한 표정을 거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들을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리고, 옥자는 여전히 빈정이 상한 표정으로 뒷마당에 침을 찍 뱉고선 걸어왔다. 창백한 얼굴의 다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옥자의 뒷모습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평온함에 더하여, 방금전 자신이 겪은 상황과는 지극히도 어울리지 않는 연민마저 섞여있었기 때문에 내 기분을 더욱 이상하게 만들었다.
"약은 어때. 좀 잘 드는것 같아?"
"네."
침대에 걸터앉은 다현은 약간은 성의없는 목소리로 내게 대답을 했다. 이전 진료 때 처방해준 약 때문에 아마도 신체 감각의 예민함이 덜해지고 신경적 반응이 줄었을 것이다. 약은 하루에 세 번. 정제(錠劑)의 형태로. 환각과 환청을 보는 것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면 그때 약을 조금은 줄일 수 있을까.
"약을 먹고 달리 몸이 불편한 곳은 없었니."
"네."
다현은 같은 목소리로, 마치 대답을 복제한 것처럼 말을 뱉었다. 역시나 짧은 대답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다현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아까 옥자에게 머리를 몇 대 맞은 것은 겉보기에 티는 나지 않았다. 다현은 내 시선을 느끼고는 나의 눈으로 또렷한 눈동자를 집중한다. 나는 또다시 그 눈빛에서 익숙하지 않은 불안을 경험하게 되는가 싶어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누가 누구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관찰을 하는 것은 '분명히' 내 쪽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관계'는 그녀의 눈빛으로 너무 쉽게 역전되어 버린다.
나는 또다시 쫓기는 듯한 이상한 긴장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나는 이 불안에서 나를 끌어낼 탈출구를 찾았다. 그리고 찾아낸 답은 연민이란 감정이었다. 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다현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여기에 친구는 없어?"
"네."
짧은 단답이 또다시 나의 질문 끝에 꽂히고, 곧장 그녀의 입은 굳게 다물어진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는 것이니."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다들 미친 여자들 뿐인데."
나는 이 공간에 수용되어 있는 환자의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답을 들었다. 다현은 당연한듯 대답을 하고는, 시선을 창 쪽으로 향한다. 나는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 속에서, 다음 질문을 뭘 해야할지 한참은 고민했다. 분명 귀신을 본다는 망상증은 약물만으론 치료가 불가능할 것이다. 무엇이 이 아이의 정신에 오래전부터 깊이 병을 새겨놓았는지부터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이 곳엔 어떻게 오게 된거지."
"숙부가 저를 이 곳에 보냈어요."
"귀신을 본다는 이유로?"
다현은 대답 없이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숙부가 이 곳에 보냈다면 가족도 없는 것일까. 궁금증이 밀려들었다.
"부모나 형제는 없는 것이니."
"...."
다현은 내 물음을 듣고선 잠시 말을 멈춘다. 다른 질문때와는 달리 그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것을 나는 순간적으로 잡아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인가, 귀신을 본다는 증상에 영향을 준 일은 아닌가. 머릿속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뒤섞였다.
"네."
다현은 다시 단답의 형태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이전의 단답들을 할 때와는 미묘하게 표정이 달랐다.
"일찍 돌아가셨어요."
마치 내가 할 질문을 이미 일찌감치 알고 있다는 듯 바로 이어진 다현의 말이 내 귀에 꽂혔다.
"벗도, 가족도 없으면 많이 외롭겠구나."
안타까운 마음에 뱉은 나의 말에, 다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띠곤 나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내 눈동자에 닿은 다현의 시선에 나는 살짝 움츠러들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일텐데요."
나는 순간 그 말을 잘못 들었는가 싶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다현은 여전히 나를 샅샅이 발가벗기는 듯한 눈빛을 하고는, 그 눈빛과는 어울리지 않게 지극히도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하지만 온 몸의 신경이 그녀가 무심히 말한 한마디에 하나하나 집중되는 듯 피부 표면에서 몸서리친다. 이 아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 직감은 머리에 그 한 문장을 강렬히도 새겨 넣고 있었다.
"무슨 소리지?"
"선생님도, 가족이 없잖아요."
나는 그 말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쥐고 있던 펜을 테이블 위로 떨어뜨렸다. 다현은 그 펜으로 시선을 가져갔다가, 다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는 거지."
나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현의 새카만 눈동자가 눈 앞에서 형형하게 빛났다. 나는 순간 그 눈빛이 무엇을 닮은 것인지 기억해냈다.
"당신 어머니는, 여기 있으니까."
그 말에 나는 등줄기에 서늘함을 느꼈다. 그럴리가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녀는 이미 그 날 이후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이라는 것은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사고와 육감이 어지럽게 내 안에서 이지러지며 혼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불협화음이 숨을 턱 막히게 했다. 마치 온 신경을 긁어내리듯 날카로운 감각과 사고의 엇들어진 선율들. 나는 이성의 끈을 잡고 간신히 그 아이에게 말을 뱉었다.
"여기엔 지금 너랑, 나밖에 없어."
"당신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들었어요."
이성이 행하는 강한 부정이, 온 머릿속에서 필사적인 비명을 내지르는 것을 느꼈다. 진료 기록부 위에 닿은 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다현의 눈빛이 날선 비수같이 내 머릿속에 꽂힌다. 애써 묻어두었던 기억이 다시 눈을 서서히 뜨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정리하지 못한채로 진료 기록부를 집어들었다.
"내 생각엔, 약을 늘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조금은 큰 소리와 함께 삼층 맨 끝 병실의 문이 닫혔다. 진료 기록부를 든 채로 나는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삼층 복도를 걸어 계단을 내려왔다. 발걸음과 찌그덕거리는 목재 바닥 소리가 부조화를 이루듯 내 머릿속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한 번 뱉어본, 미친 여자의 의미없는 말에 불과해. 머리는 계속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료 기록부 종이를 든 손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가시지 않은 떨림은 멈추지 않는다.
귀신 이야기 같은 허무맹랑한 거짓말 따위에 두려워하다니. 그것도 의사라는 인간이 미친 환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말이야. 나는 스스로 나를 비웃고 질책했다. 이층 계단을 내려오면서 물잔이 담긴 쟁반을 든 간호사와 마주쳤다.
"임 선생님,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어디 아프세요?"
"아니.... 요즘 부쩍 더워져서 그런가봐요."
나는 등줄기의 땀을 느끼면서 대답했다.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다시 쟁반을 들고 이층 진료실 쪽으로 사라져 간다. 나는 계단을 내려와 일층 맨 끝 나의 방에 돌아와서, 작은 의자에 주저앉듯 앉았다. 서늘한 정적이 온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ㅡ 우물 물. ㅡ
첫 상담 때, 그 아이가 했던 말이 섬광처럼 머릿속을 파뜩이며 지나갔다. 나는 온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로 두 눈을 감았다. 십년도 더 된 기억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연하게 머릿속에 되살아 왔다.
지진이 일어난 것은 눈 깜짝할 새였다. 귀가 터져 나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집안의 가구들은 흔들리고 물건들은 쏟아져 내렸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폭주하는 진동 속에서 죽음의 공포라는 것을 처음으로 맞닥뜨렸다. 그 후로도 이어진 몇번의 여진은 잦아들지 못한 공포를 몇번이고 악몽처럼 불러세웠다. 그날 밤 전기가 모두 끊겨 암흑 속에 잠긴 방안에서, 나는 엄마의 품에 안겨 두려움에 질린 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내가 살던 곳은 진재(震災)의 중심축에서는 떨어져 있었지만 간토(관동) 전체를 뒤덮은 대재앙은 어딜가든 정도만 다를뿐이지 참혹한 폐허를 만들어 냈다. 목이 고꾸라진 전주(電柱)와 흉물스럽게 늘어진 전선. 탈선해 뒤집어진 전철과, 뱃가죽을 드러낸 채로 온 몸을 비튼 도로. 뼈조차도 남지 않고 으스러진 건물과 거기 깔려 조각난 시체들. 가는 곳마다 끔찍한 곡성 소리와 황폐화된 정경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지옥은 이후에 겪을 또다른 지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혼돈의 공황 상태에서 사람들의 상실감과 절망감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증오라는 감정이었다. 조선인이 방화하고, 건물을 파괴하고, 심지어 우물에 독을 타 넣었다는 낭설들이 흉흉하게 세간을 떠돌았다. 유언비어는 집단적 광기로, 광기는 무차별적인 조선인 '사냥'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날 죽어간 사람들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하였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 일이 있고서 한참은 지나서야, 서적과 신문에서 뒤늦게 본 글들이 나에게는 전부였고, 그 누구도 죽음의 이유를 제대로 가르쳐 준 바가 없다.
엄마가 나를 천정 다락에 두고 간 날, 나는 입을 막은 채 한참을 숨죽여 울다 정신을 잃었다. 사토 씨의 말로는 나를 발견한 건 하루 하고도 한나절은 지나서라고 했다. 내가 다락에서 웅크린 채 정신을 잃고 가늘게 숨만 쉬고 있어, 죽은 것은 아니다 싶어 억지로 물을 먹이고 꼬박 이틀을 자리에 뉘여 간호했다고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직후 정신이 나간 아이처럼 엄마를 찾았다. 대체 어디서 그런 기력이 났는지, 삼일을 제대로 먹지 않았던 아이가 눈을 뜨고는 바로 집을 뛰쳐나갔는지. 하지만 이미 한차례 광기가 휩쓸고 간 마을에 남은 것은 검은 잔해와 연기, 시체 썩는 냄새뿐이었다.
그 사이의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것인지, 아니면 시간이 기억의 완전함을 부식시켜버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우물 안을 보고 있었다. 죽은지 꽤 된 시체의 썩어가는 악취가 우물 벽을 타고 내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우물 깊은 곳에 빠진 채로 수면위로 아스라이 떠오른 사람은 익숙한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칠흑같이 어두운 밤, 물 위로 떠오른 하얀 배꽃잎처럼.
물에 젖은 하얀 색의 옷이, 어두운 우물 안으로 간신히 비집어 들어간 빛에 비추어 점점 그 형체가 확연해져 왔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그날 밤, 밤새도록 내가 얼굴을 묻고 있었던 그 옷이었다.
눈물 한 방울이, 우물 위로 떨어졌다. 내 것인지 모를 눈물 방울은, 수면에 닿아서는 원형을 그리며 점점 퍼져간다.
"선생님."
나는 눈을 떴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간호사가 서 있었다.
"전화가 왔어요."
"....누구, 입니까."
잠긴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작게 새어 나왔다.
"손채영 님이시라고.."
M에게.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었어. 영을 본다는 것은 진실로 어떤 느낌일까. 정말로 죽은 사람이 말을 거는 것일까. 죽은 사람이 보인다면 그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오해 말아. 혹시나 내가 그 여자와의 대화에 과도하게 이입해서, 귀신을 본다느니 하는 허무맹랑한 것을 사실이라고 착각하는건 아닐까, 하고 걱정은 말게. 단지 순수하게 일 때문에 궁금해진 것뿐이니.
병원에 허언증을 가진 여자가 하나 있어. 이름은 혜숙이라고 해. 사람들 말로는, 그 여자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고 하더라고. 망상에 빠진 여자들과는 달리 그 여자는 거짓임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것일까. 언제 한 번은 자기가 병원 밖만 나가면 상속받을 재산이 오십만 원은 있다고 하질 않나. 사실 그 여자의 재산이 오십만 원이든 백만 원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지. 어차피 구원해줄 사람이 없다면 이 곳에서 영원히 나갈 수가 없을테니 말이야.
하지만 어쩌면 혜숙이란 년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인간인지도 모르겠군. 인간들이란 다들 입만 열면 서로 속이고 거짓말을 하지 않나.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든, 너든 나든 범인(凡人)들이든 다 마찬가지지. 기만과 속임수란! 이 편지도 그럴 수도 있어. 앗, 그렇다고 의심은 말아. 단순한 농이니까. 어쨌든 다시 볼 때까지 건강 조심하길.
1936. 7. 19
장곡천정(長谷川町)* 초입에 위치해 있는 끽다점*의 구석진 자리에서, 나는 채영과 마주 앉아 있었다. 끽다점 내부는 뿌연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이, 점심 직후의 나른함과 썩 잘 어울린다. 실내 장식은 침정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편안함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우리 앞에는 원형의 나무 테이블에, 이십 전 짜리 커피 한 잔과 홍차 한 잔. 다리를 꼬아 앉은 채영이 다료(茶寮)*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경성에 온지 한참은 지났는데, 어째서 연락을 하지 않았어?"
"그동안 경황이 없었어. 그래도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좋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채영은 말꼬리를 흐리면서 하얀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동경제대 시절, 조선인 여자라고는 우리 둘뿐이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내가 가까이 한 벗이다. 그녀는 문학부를 졸업하고서는, 경성에 돌아와 매일신보에 글을 쓰고 있다 했다.
"동경의 대형 병원이란 것은 조선인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겠지."
나는 중얼거리는 채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보브 스타일의 머리에 경성에서는 아직 찾아보기 드문 퍼머넌트. 우리 옆을 지나가고 있던, 중절모 쓴 신사의 눈이 그녀에게로 향한다. 단지 끽다점 안의 여자로서는 유일하게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는, 그 낯설은 대담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종아리를 과감히 드러낸 짧은 스커트, 신식의 최신 유행 양장과 멋들어진 하절기용 클로쉐 모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세련된, 인텔리겐차의 신여성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일까. 채영은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성냥곽을 집어들어선, 담배에 불을 붙인다. '티-룸 플라타느' 라는 영문의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등쌀이 얼마나 심했을지 안 봐도 알 수 있어."
"꼭 모든 내지인이 그런 것은 아니야."
담배에 불을 붙이고선, 한 모금을 후우- 하고 내뱉은 채영이 지긋히 나를 바라본다. 사실 거짓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대지진이 일어난 후, 부모 모두를 잃은 나를 숨겨 자식처럼 길러준 것도 사토 씨와 같은 내지인이었다. 조선인 의사라며 멸시와 냉대가 넘쳐났던 동경의 병원에서도, 내지인 간호사 하나는 나에게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들이 모두 악인들은 아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고, 나를 내보일 수 있고.. 증오의 화살을 애꿎은 선한 사람들에게 다 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마치 그날 본 광기어린 폭도들처럼.
"난 가끔 네가 신기해. 그 일을 겪고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
내가 잠시 말이 끊어지자 채영은 괜한 말을 꺼냈는가 싶어 살짝 당황하는 눈치가 보였다. 잠시 대화가 끊긴 와중에 축음기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이 바뀌었다. 채영은 화제를 돌리려는 듯 입을 열었다.
"이 노래, '사의 찬미'야. 윤심덕의 노래."
"들어본 적 있어."
"그녀가 죽은지 십년이 되었는데도 곡은 남아 있으니, 그래서 예술을 하려는건가 싶기도 해."
채영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끽다점 내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꽤나 많아보이는 손님들 대부분은 문사나 화가, 예술인들 아니면 밀회를 즐기는 연인들로 보였다. 한 켠에서는 커피 한 잔과 원고지를 놓고 글을 쓰는 안경 쓴 남자가, 한 켠에서는 포마드 기름으로 머리를 넘기고선, 삼천리 잡지를 뒤적이는 남자가 있었다. 시선을 옆 쪽으로 향하니 화잇 호스-를 마시는 남자가 붉어진 얼굴로 꽤 취흥이 올랐는지 내 쪽을 향해 끈적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다시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윤심덕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는 있나? 극작가 김우진과 사랑의 도피를 하다 결국 둘이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졌지. 시체를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김우진의 집에서 사백 원이나 되는 돈을 걸었다고 해."
"그래서 찾았는지."
"그럴리가. 둘의 시체는 결국 찾지 못했어."
말을 잠시 멈추며 채영이 유리 재떨이에 담뱃재를 두드려 턴다. 나는 담배 끝에서 잘게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도 정사(情死) 사건은 유행처럼 경성에 끊이지를 않고 있어. 다들 미친 시대야."
채영의 어깨 너머로 소다 스이* 한 잔을 놓고 어깨를 밀착한 채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연인 한 쌍이 보였다. 둘의 얼굴에는 고뇌라든가 초민(焦悶)함 따위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연락선과 철교 위에서의 동반 추락사. 쥐약을 먹고 음독자살을 기도했다든가 하는 그로테스크함과는 거리가 있는 광경이었다. 어떤 것이 사랑이란 얼굴의 진실인가.
채영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치익- 하며 불씨가 꺼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던 악곡은 이제 바뀌어선, 카루소의 세레나데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여주인이 새로운 레코드 판으로 바꾼 모양이다.
"그래, 요즘은 어떤 기사를 쓰고 있지?"
나는 화제를 돌릴까 싶어 새로운 질문을 꺼냈다.
"총독부에서 최근에 새롭게 한 국세조사*에 대한 글이야."
"흥미로운걸."
"총독부에서 조사한 바로는, 조선인 중에 문맹이 팔할은 된다고 해.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거진 열에 여덟이라는거지."
팔할. 딱히 놀라운 말도 아니다. 나는 병원의 환자들을 떠올렸다.
"불쌍한 사람들. 그런건 사는 것이 아니야."
채영은 연민을 드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불쌍한 사람들, 그런 건 사는 것이 아니야, 그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문득 이름을 읽지 못하던 다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으니 채영은 가방 안에서 신문과 잡지들을 꺼낸다.
"문학은 요즘 읽고 있는지."
"경성에 온 이후로는, 그다지."
"일이 많은가보네. 하지만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요즘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조선(朝鮮)에 연재되는 춘원(春園)의 글도 꽤 볼만하지. 제목이 '애욕의 피안'이었던가.."
채영은 말을 끝맺고는, 나에게 몇 종류의 신문과 잡지책을 건네준다.
"나는 춘원(春園)*의 글보다는, 금동(琴童)*의 글이 좋아."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채영은 다시 성냥을 들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나를 천천히 바라본다. 담배 끝의 불씨가 발갛게 타들어간다. 꺼질듯 말듯 무력하게, 하지만 그 안에 생의 광염(光焰)을 담은 불씨는 새하얀 빛의 재로, 그리고 곧이어선 새카만 색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신비로운 색채의 변화에서 내가 본 어떤 것을 연상해 냈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연기 사이로, 그 여자의 발간 입술이, 눈썹이, 그리고 새카만 눈동자가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말 내내, 간만에 경성으로의 외출을 끝내고, 병원에서의 일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 되었다. 병원 복도에 서서 이층 창밖을 무심코 바라보니 항상 익숙한 정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여자들은 항상 같은 차림새로, 그리고 같은 얼굴로, 같은 행동을 하며 무의미하게 짧은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일상적인 느낌으로 바라보면서, 여자들의 얼굴을 더듬어 가며 무의식적으로 한 얼굴을 찾았다. 어째서 그녀에게 유독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다른 환자들과는 다른 분위기이기 때문일까. 나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 아이가 항상 앉아있던 의자와, 쓰레기 더미 주변으로 눈길을 향했다.
그 아이는 없었다. 물론 항상 있는듯 없는듯 하며 구석 자리에 쳐박혀 있어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겠지만. 오늘은 무슨 이유로 휴식시간에 외출하지 않은 것일까. 얼마 주어지지 않는 산책시간이라도 그나마 이 곳 환자들에게 가뭄에 단비같은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 그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병원 뒷마당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병원 뒷마당으로 내려오니, 휴식 시간은 그새 끝난 모양인지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환자들이 간호사들의 통제 하에서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마주치는 얼굴들에서도 역시 다현의 얼굴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병원 뒷마당에 혼자 서 있었다. 아까의 떠들썩함과는 확연히 다른 고요함을 느끼면서.
문득 병원 벽 가까이의 쓰레기 더미에 시선이 닿았다. 다현은 얼마 전 그곳에서 쓰레기 더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여기 있는 미친 여자들이야 다들 이해될 수 없는 기이한 행동들을 하긴 하지만 왠지 그 아이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쓰레기 더미들로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병원에서 나온 갖가지의 쓰레기는 그 종류가 다양했다. 주방에서 나온듯 형체를 알 수 없이 찌그러진 고철들. 간호사들이 읽다 버린 듯한 조석간과 대중 잡지. 약간의 악취를 풍기는 생활 폐기물. 그것들 중에는 다 쓴 화장품이라든가 찢어진 의복들이라든가 하는 것들도 있었다. 환자들이 쓰레기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막으려 흉기가 될 만한 물건들은 따로 분류해 버리는 듯하여 안심은 되었지만, 다현이 관찰하고 있던 쓰레기들에 뭔가 특별한 점이나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걸까."
순간적으로 쓰레기를 보고 있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게 느껴져 실소가 나왔다. 어떤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보같은 생각이다. 치료에 도움이 되는 어떤 특별한 증세가 보이는 것이라면 모를까. 나는 굽혔던 몸을 펴고 다시 병원 건물 쪽으로 향했다.
"오늘은 왜 식사를 하지 않은 것이니."
나는 바닥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보리죽 그릇을 바라보며 물었다. 항상 같은 자세로 침대에 걸터 앉아 있는 다현은 하나도 비우지 않은 죽그릇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며칠 새에 얼굴이 더 수척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입맛이 없어서."
짧게 대답을 뱉는 다현의 입술이 바싹 마른 것이, 멀리 희미하게 보였다. 어쩐지 안쓰러운 기분이 들어 나는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끼니는 잘 챙겨 먹어야지."
다현은 나의 잔소리를 묵묵부답으로 듣고 있었다. 나는 의자를 끌어 다현이 걸터앉은 침대 쪽으로 가까이 했다.
"오늘 휴식시간에 산책을 하지 않았지. 어디 몸이 안 좋은 것이니."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냥 누워 있었어요. 다른 이유는 없고."
다현은 약간은 내 질문이 성가시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간호사 말로는 네가 오늘 하루종일 병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던데. 왜 진료를 받지 않았어. 약이라도 먹으면 훨씬 나을 것 아니야."
역시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다현 쪽으로 한발짝씩 걸어갔다. 다현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고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 발짝씩 걸어갈 때마다 그 아이의 얼굴이 더 선명하게 시선 안으로 들어온다. 핏기없는 창백한 안색. 나는 다현의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서서히 몸을 기울였다. 안색을 가까이서 살피려 몸을 숙이니, 먼 발치에서만 보았던 이목구비가 하나하나씩 큼지막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다현은 내가 가까이 다가오니 조금은 긴장한 것인지 내가 들어온 이후로 시종일관 하고 있던 발장난을 멈췄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 아이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열은.. 없는데."
나는 손바닥으로 다현의 체온을 느끼며 작게 말을 뱉었다. 손끝에서 까만 그 아이의 머리카락이, 손바닥으로는 이마의 부드러운 피부의 느낌이 느껴졌다. 핏기없이 창백한 뺨의 혈색과는 달리, 손 끝에 만져지는 그 아이의 하얀 피부는 생각과는 달리 부드러웠다. 나는 잠시 손으로 그 아이의 이마를 감싸고는, 멈춘 듯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 아이가 세상 바깥에 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육신이 있는, 체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 촉각으로 확인하고 놀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는 내가 보는 환영이 아니라, 정말로 존재하고 있구나. 바닥에 떨구고 있었던 다현의 시선이 서서히 내 눈을 향했다.
호흡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나의 눈이, 그 아이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나는 그 기묘한 색채의 마물(魔物)에 혼을 빼앗겨 버린듯 멍하니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까만색 눈동자에 비친 나는 스러지고, 또 스러지고. 어느 순간에는 보이지 않았다. 고혹의 심연이 눈 앞에서 어지럽게 펼쳐지고 있었다. 비밀이 가득한 깊은 샘은 물기 어린 수면을 반짝이며 목마른 순례자를 매혹한다. 순간을, 시간을 사로잡힌 것 마냥 그렇게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을 그 눈동자에 서린 애수와 영묘함에 취해 있었다.
다현의 뜨거운 숨이, 살포시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와 내 목에 닿았다. 피부로 서서히 스며드는 그 숨에서, 나는 이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관능이 신경을 타고 온 몸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작게 너울져 오는 감각이, 감정의 격랑으로 바뀌려 할 때 나는 가까스로 내 이성을 끌어 잡았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렸다.
"기침이라든가, 객담 증세는."
"...."
다현은 내 질문에 말없이 멈춰 있다가,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고개를 저으며 긴 머리에 감춰져 있던 오른쪽 볼이 살짝 드러났다. 순간 나는 그 하얀 볼에 이질적인 붉은 색의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 아이의 머리를 넘겼다.
"이건 뭐지."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하나하나 관찰하듯이 훑어보았다. 마른 아랫입술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딱지. 그리고 오른쪽 볼의 상처. 분명히 어딘가에 맞았거나 긁혔을 것이었다.
"마당에서 넘어져서."
"간호사는 니가 오늘뿐만 아니라 주말 내내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했어."
다현은 나의 말에 거짓을 고한 것을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상처가 누구에 의한 것인지 눈치를 챘다.
"옥자가 너를 때린 것이냐."
"...."
"왜 간호사들에게 말하지 않았지."
"간호사들에게 말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별 일 아니니까."
다현은 살짝 조소를 지었다. 그 웃음에는 비관과, 무력감과, 환멸이 합쳐져 있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이런 짓을 또 하면 벌을 주겠다고 말을 할테니, 걱정은 말아라."
"그럴 필요 없어요."
다현은 정말 나의 호의가 필요없다는 듯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왜?"
"그 아이는 불쌍한 아이니까."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다현의 표정을 보았다. 다현의 눈동자에는 자신이 당한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민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병원 뒷마당에서, 옥자의 뒷모습을 보던 그 눈빛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 아이는 곧 죽을 테니까요."
나는 다현이 내뱉은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자신이 뱉은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도 모르는 것일까. 그녀는 아무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린다. 나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죽는다고?"
다현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어떻게 알지."
다현이 내 물음에 살짝 피식- 하며 웃는다.
"죽을 때가 다 된 사람들의 뒤에는, 항상 마중을 나오는 영이 보이기 마련이죠."
나는 다현의 말을 듣고서는, 또다시 사고로는 이해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같은 긴장감이, 나와 그 아이 사이를 가득 채웠다. 나는 손 끝에 느껴지는 한기를 느끼면서, 그 아이의 초점없는 눈동자를 보았다.
"검게."
짧게 내뱉는 말에 나는 긴장으로 참고 있던 숨을 살며시 내뱉었다. 다현은 내 얼굴을 보고서는 살짝 미소를 띠어보인다. 그 연민의 눈빛은 그런 의미였던 것일까. 그래서 불쌍히 여겼던 것일까. 나는 옥자의 심술궂은 얼굴을 떠올렸다. 아니야. 그런 건 거짓말이다. 망상증에 걸린 환자의 말을 어째서 나는 점점 믿어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다시 온 몸을 지배해오는 비이성적인 믿음에 강하게 저항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아이의 눈빛에, 표정에, 말에 과하게 이입하고 있었다. 그런 것은 의사라는 내 위치와는 맞지 않아. 테이블에 놓여진 진료 기록부가 눈에 들어왔다. 나 자신의 역할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자각하게 해주는 것. 나는 진료 기록부가 놓여진 테이블 앞에 다시 앉았다.
"요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최근에 보이는 것을 얘기해보자."
"이미 말했어요.. 옥자에 관한 얘기요."
"그것 이외엔."
나는 진료 기록부에 아까 다현이 했던 말을 적어 내려가면서, 차분하게 물었다. 다현은 살짝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문득 무엇이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곤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병원에 온 직후부터,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누구지."
"누군지는 모르고, 어른 남자 하나에 어른 여자 하나. 꼬마 여자애 하나. 아이는 대여섯 살은 됐을까."
"최근에도 보이는지."
"네."
환각을 보는 것도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군- 이라는 생각을 애써 하며 나는 진료 기록부에 다현이 말한 내용을 받아 적었다. 상상력이 풍부한 걸까. 나는 살짝 한숨을 쉬며 약의 정량을 어느정도로 잡아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증세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어쩐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아니면 그냥 처음부터 그대로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약을 얼마나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니 아까보다는 한결 평정을 찾는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말없이 진료 기록부에 이것저것 쓰고만 있으니, 다현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시계줄은 새로 산 것이네요."
나는 다현의 말에 손목을 쳐다보았다. 채영을 만나러 간 날 오후에, 미쓰코시에 들려 산 새 시계줄이었다.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어보이는 얼굴을 하곤 있어도 눈썰미는 꽤나 있는 모양이다.
"그래. 주말에 외출을 했던 김에 샀던 거야."
"백화점에 가셨군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현을 쳐다보았다. 긴장에 휩싸여 있었던 아까보다는 꽤 둘 사이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것이, 훨씬 낫다 싶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것인지?"
다현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하긴 이 곳에 몇년을 갇혀 살았을 것인데 그런 곳에 가봤을 리가 없지. 이전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글도 모르고, 가족도 없는 것을 보면 윤택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친하게 지내는 벗도 없고.. 그 생각에 미치자마자 안쓰러움이 밀려들어왔다. 다현은 말없이 내 손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깥 세상에 대한 얘기가 듣고 싶으면, 나에게 물어보면 이야기해 주마."
나의 말에 다현은 살짝 미소를 지어보인다. 나는 그 미소에 조금은 안심을 했다. 나를 들여다보는 눈빛을 하고 있어도, 또 내가 알 수 없는 서늘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해도 아이는 아이. 한창 궁금할 것도 신기할 것도 많을 나이에 여기 갇혀 있는 삶은 사는 것이 사는게 아니겠지. 나는 어쩐지 나를 계속해서 괴롭히던 불안과 긴장에서 나 자신이 해방될 실마리를 확연히 찾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연민. 그렇다. 연민. 불쌍한 아이.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끽다점에서 나에게 건넸던 채영의 말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그녀가 지어보였던 연민의 표정도. 나는 그런 얼굴로 이 아이를 대하면 된다. 배우지도 자유롭지도 못한 소녀. 내 스스로가 수긍할만한 해법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나는 그저 그렇게 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나는 다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몇번이고 내 자신에게 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