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팬픽은 상상에 기반한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사건, 지명, 단체는 실제의 그것과 전혀 무관하고, 만약 일치하더라도 단순한 우연에 불과합니다.
여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혜원은 옥상에 올라와 그때까지도 그 자리 그대로 돌처럼 굳어져,
가만 하늘을 바라보는 예나의 등 뒤에 섰다.
얼마나 무너져 내렸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한마디를 예나는 건넨다.
"왜... 다시 왔니..."
혜원에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냐고 말하던 그 목소리처럼,
예나의 목소리 끝에 눈물이 걸쳐져 있었다.
가만 하늘을 바라보던 예나는 대답 없는 혜원을 느리게 돌아본다.
무너질 대로 무너져내린 공허한 예나의 눈동자가, 혜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 눈을 바라보면서 혜원은 다시 한 번 그녀들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있었다.
예나, 아니...
자신의 친구였던 지금의 유리가,
착각이라 할지라도 사랑이라 정의 내린 여자가 바로 눈앞의 예나였다.
과정이 어찌 됐든 지금의 예나와 유리를 만나게 해준 장본인도 바로 그녀들의 어미였다.
깨어날지도 미지수였던 혼수상태였던 예나에게 새로운 삶과,
서로를 알고, 만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에는,
분명 그녀들의 어미의 역할이 있었다.
혜원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 뱉어 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해... 할게."
뜻밖의 말이었다.
혜원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말엔, 조금의 거짓조차 없는 듯해 예나는 몇번 씩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해...
혜원은 자신의 첫사랑을 잔인한 운명 속에 가두고,
혜원을 수년간 고통 속에 허덕이게 만든 사람에게 이해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 같았어도, 딸 그렇게 지옥에 뒹굴게 하느니...
좋은 부모 밑에서 살길 바랐을 것 같아.
나 같았어도... 내 딸이 그랬다면... 네 어머니처럼 그랬을 거 같아."
혜원은 울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도 덤덤하게 말을 잇고 있었다.
"그렇다고 너와 그분을 용서하는 것은 아니야.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 때문에 유리가 제 부모도 몰라보고 이렇게 사는 것이니까.
단지... 이해하는 것뿐이야. 정말로 단지 이해하는 것뿐, 그것뿐이야..."
덤덤하던 혜원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예나는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눈을 감았다.
"그러니 앞으로 절대 죽을 생각하지 마. 그러면 너 사람 아니야.
지금처럼 유리 곁에서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인 척해.
앞으로도 거짓 표정 지으면서, 그렇게 광대로 살아.
그리고 다음 생이 있다면... 절대 너희 만나지 마.
영원히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 다시는 이렇게 만나지 마..."
이제 혜원은 울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조차 나지 않았지만,
분명 혜원이 울고 있음을 예나는 감은 눈 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감겨있던 눈을 뜨며 예나는 혜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혜원의 눈물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마지막 순간,
사랑해... 라고 말하던 어머니의 그 마지막 눈물을...
예나의 눈에서도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 유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니까 다 이해할게...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죽어서도 너랑 그분을 저주했을 테니 유리한테 고마워하고,
절대로... 절대로 상처 주지 마..."
어느새 예나의 몸은 혜원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혜원은 손을 뻗어 예나의 눈물을 거두어 내었다.
예나는 서럽게 울던 고개를 들어 혜원을 바라본다.
혜원의 눈과 허공에서 부딪치자, 예나는 다시 한 번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보아왔던 혜원의 눈물과는 무언가 다르게 느껴지는 그런 눈물을 혜원이 흘리고 있었다.
그 눈물에는 뭐랄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포용하고 있는 그런 묵직한 것이 담겨있었다.
혜원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넌... 나한테도 결코 씻을 수 없는 죄를 빚졌어.
그러니... 내가 지금부터 너에게 벌을 내릴 거야.
어쩌면 평생을 짊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벌이야.
전부... 선택이라고 했지? 이 벌을 짊어질지... 네가 선택해."
예나는 눈물 젖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년간의 지옥 같은 고통 모두,
지금 눈앞에 무릎을 꿇은 이 아이 탓인데...
예나의 눈물을 바라보자 혜원의 머릿속에 조그맣게 남아있던 원망조차 쉽게 소멸되어버린다.
정말 어쩔 수 없다는 것.
자신에게 저 아이의 존재감이란 것은,
사랑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
"광대로 사는 것이 괴롭다면..."
그렇다면 예나가,
자신의 사랑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예나는 혜원의 사랑을 바뀌기 전 예나로 오해하고 있었다.
혜원은 떨려오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을 이었다.
"꿈을... 꾸는 거라 생각해...
그 꿈속에서는 신병으로 지독한 운명을 겪은 유리도 없고,
죽어가는 아기 고양이에 자신을 투영하던 불쌍한 예나도 없어.
함께하는 2년 6개월을 오롯이 행복 속에서 지낼 예나와 유리만 있을 뿐이야.
그리고 그 꿈속에서 나는... 난..."
혜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으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예나야.
유리와 네가 운명이 만들어 낸 자매라면,
너와 난 유리 한 사람을 위한 운명의 동반자가 되는 거야.
유치한 연극일지라도 좋아.
꿈일지언정 좋아.
그렇게 해서라도 네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그때 비로소 나는 무언가를 맞이할 수 있어.
미쳤다고 해도 좋아.
그렇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고 싶은 거야.
그렇게 되어버렸어.
할 수만 있다면 지난날의 모든 선택을 씻어내고,
깨끗한 모습의 유리였던 너의 앞에 내가 있었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그렇다면...
너는 나에게 미소를 지어주었을까,
나는...
조금 더 환하게 웃을 수 있었을까,
그런 안타까운 바람만 늘어가는 바보 같은 여자가 되어버렸어.
너의 일상에 한 면,
너의 일부라도 되고 싶어진 거야.
내가...
예나 널,
이토록 사랑하고 있어...
"네 꿈을 지탱해줄... 친구로... 있어줄 거야.
유리의 행복을 위해 절대 깨서는 안되는 꿈.
그 꿈이... 날 상처 준 너에게 내리는 내 벌이야..."
예나는 혜원의 말에 마음으로부터 하늘의 태양을 느끼고 있었다.
하늘 위로 펼쳐지는 끝없이 맑은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어둠에 숨어 살아가는 자신의 가면을 벗겨내는 듯한 태양의 빛...
예나는 숙여진 고개를 들었다.
뿌연 시선에 혜원의 등 뒤로 여명의 빛이 번져 보인다.
"그때... 고양이를 안고 가는 널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때 나는 많이 어렸으니까...
꿈을 꾸는 동안... 결코 네 슬픔을 외면하지 않을게..."
대답을 해줄 수 없을 만큼,
예나의 눈물이 거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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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아. 난 어머닐 만나면 안 돼..."
며칠 후,
다시 옥상에 불러내 늘어놓는 혜원의 제안에 예나는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막 잠자리에 들려 하는 순간에 얘기나 하자며 불러내더니,
혜원은 예나를 씁쓸하게 만드는 제안을 꺼내놓고 있다.
"유리, 어머니 뵈러 부산에 내려간다며, 무조건 같이 가."
"그러니까 난 못 간다고, 어머니와 내가 만난다면...
잡귀가 날 알아보고 달라붙을 지도 모르고,
혹시라도 유리가 묘한 기류를 느끼고 기억을 되찾을지 몰라.
그렇게 된다면 신벌로 눈이 먼 어머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거야...
절대 만나선 안돼."
됐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음에도 혜원은 단호하게 함께 가자 말하고 있었다.
혜원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같은 말만을 반복한다.
유리와 함께 어머니를 뵙고 오자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예나가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절대 안 된다는 말조차 들리지 않는 듯했다.
무조건 적으로 가야 한다는 혜원의 말에 예나는 이제 그 실랑이가 지쳐오기까지 하고 있었다.
"가. 무조건 가야 해."
"안된다고 했잖아."
"나한테 속죄해야지? 그럼 내 말은 무조건 들어야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아 정말! 같이 가자고, 유리 지금껏 살아있는 거 너도 의아했다며!
잡귀고 저주고 지금은 사라져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유리가 어머니 지금 정신 못 차리신다고 했다며?"
"신벌일지도 몰라... 눈이 먼 정도면 가벼운 벌이라고 하셨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유리 옆에서 얼굴만 살짝 보고 오자, 응?
안 그러면 너... 평생 후회해."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혜원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다.
예나는 잠시 동안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흠, 하는 소리와 함께 좋아, 라고 대답했다.
진짜지? 혜원이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알았다구... 예나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레 혜원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다음 날.
언니들이 왜 따라와? 하는 유리의 질문에 혜원은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러니까,
"예나한테 들었어. 예나랑 너 사귀는 사이라며?
사귀는 사이에 부모님 좀 뵐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직설적인 말에 유리는 붉게 굳어진 얼굴로 예나의 팔만 원망스레 꼬집더니,
부산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시골길을 걸어 집에 도착해서야 유리는 작게 말했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잠깐 집 정리 좀 할 테니까, 나중에 들어와..."
유리가 들어서고 예나는 집을 둘러보며 얼핏 웃었다.
마당에서 풍기는 그리운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예나는 그 냄새를 더욱 깊이 느끼려 킁킁, 거렸다.
오후의 단잠 같은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거짓말같이 다시 찾아온 안식처의 푸근함이...
예나는 밀물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아 옆에 선 혜원의 손을 꼭 쥐었다.
혜원은 그런 예나의 손등을 다른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정겨운 시골 냄새가 바람을 타고 계속 넘어왔다.
"들어와 언니들."
들어서자마자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청소하고 있는 유리의 뒷모습이 보였다.
"뭐 도와줄 거 없어?"
"자원봉사자분들이 매일마다 오시니까 사실 할 것도 없어."
어깨너머로 묻는 말에 잠시 돌아보고 웃어준 유리가,
우리 엄마한테 인사할래? 하더니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머니의 방... 예나와 혜원이 방으로 따라 들어섰다.
"엄마, 외롭지 않게 잘 있었어?"
유리는 어머니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나직이 말했다.
정신을 놓았다는 유리의 말처럼 멍한 표정의 어머니...
슬픔이 예나의 얼굴에 엷게 퍼지는 게 보이자 혜원은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렸다.
"엄마. 자주 못 와서 미안해... 오늘은 이 말을 하려고 왔어.
엄마가 예쁘게 낳아줘서, 노래도 잘 부르게 낳아줘서... 나 이렇게 데뷔했어.
이제, 우리 꼭 행복하게 잘 살자... 응...?"
어머니로 향해있던 유리의 시선이 예나에게 옮겨졌다.
"그리고... 우리 새 식구도 잘 지켜봐줘."
예나는 눈을 돌렸다. 그리고 혜원은 두 손을 모은 채로 눈을 감았다.
"미안, 엄마... 오래 있고 싶은데 스케줄 때문에 다시 올라가 봐야 해...
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서울에 집 얻으면,
꼭 엄마 데리러 올게.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줘..."
여전히 어머니는 대답 없이 멍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을 지켜보던 유리는 제 눈가를 쓱 닦더니 이제 갈까? 일어섰다.
그런 유리에게 혜원은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유리야... 이유는 묻지 말고 10분만..."
혜원의 떨리는 눈동자에 어쩐지 거절하기 어려워진 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섰다.
유리가 밖으로 나서고, 예나의 걸음이 서서히 옮겨진다.
그리고 혜원은 기도한다.
하느님.
당신이 정한 운명을 속인 이 모녀를...
당신은 못마땅해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여 못마땅하게 여긴다 해도, 감히 당신에게 간절히 부탁합니다.
저 가여운 모녀를...
부디 가엽게 여기시고 제발 용서해주세요.
눈을 뜬 혜원이 예나를 돌아봤다.
마주한 예나의 걸음이 어머니의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한참을 주저하더니 쉬이 열리지 않는 입을 열었다.
"...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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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업하고 일주일 간 마치 영화관 전체를 혼자 대여해서 공포영화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음.
소름이...ㅋ;; 무리수였어... ㅋ; 아쉬운 점이 있네요. 내용은 충분히 개꿀잼이라 생각했는데,
제가 좀 많이 딸려서... 좀 길게 잡고 했음 더 매끄러웠을지 모르지만 8화 넘어가면 죽는 병이 걸려서...
휴, 쨌든 완결 남았으니 빨리 끝내고 셔야져
몰랐는데 슈로대가 곧 발매하네요. 개꿀잼일 듯...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