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팬픽은 상상에 기반한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사건, 지명, 단체는 실제의 그것과 전혀 무관하고, 만약 일치하더라도 단순한 우연에 불과합니다.




































신병(神病)


신병이란 잡귀들이 신기를 타고난 사람을 알아보고, 


그 몸을 차지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겪는,


귀신이 보이거나, 알 수 없는 고통이나, 집안에 불운이 끼치는 현상들을 말한다.


대개 신내림굿을 통해 무녀가 되면 그런 저주들이 사라지게 되지만,


이미 소녀를 잉태한 어머니는 끝내 내림굿을 거부하고 소녀를 선택했다.


무녀가 되면 자식을 가져선 안되니까,  


무녀의 자식들은 어김없이 신병이 찾아오는 체질을 타고나니까...


소녀를 위해 신내림을 받지 않은 어머니는, 


결국 소녀가 열 살 즈음 잡귀의 고약한 악취가 집안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린 소녀의 행복했던 시절도 끝이 났다.


어머니는 즉시 아버지와 소녀의 곁을 떠났다.


혹시라도 신병이 들어선 자신 때문에 아버지와 소녀가 해를 입을까 걱정한... 


어머니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하지만...


저주는 이미 아버지와 어린 소녀에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순식간에 집안이 기울었다.


기가 막혔다. 


어찌나 사람을 괴롭혀대는지...


검은 정장이 가죽대기 같아 보이고, 


박박 밀어낸 머리통들이 표독스러운 하이에나 대가리 같았다. 


아버지가 밤새 김밥을 말아 팔아 개처럼 돈을 벌어도, 


그 돈은 밀린 빚의 원금에 채 닿아보지도 못하고 이자 돈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떠난 지 2년이 지났을 때 아버지는 그 눈덩이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차가운 겨울, 김밥을 팔러 나갔다가 그대로 쓰러져서...


얼마나 억울했을지, 


눈조차 감지 못한 아버지의 시체 앞에서 어린 소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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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를 두고, 


아버지는 자책감에 눈조차 감지 못하고... 


어머니, 당신만 떠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돌아가지시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왜 가셨는지,


왜 그리 떠나셔야만 했는지... 


항상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셨으면서 왜...


어머니의 품 안에서 맘껏 재롱 피우던 나를 두고 대체 왜... 


그 어린 나이에, 


죽음에 대한 관념이 제대로 박히지 않았으면서도, 


아버지의 떠남의 슬픔을 감지하고 숨넘어갈 듯 울고 있는 내 곁을 왜...






예나는 어느새 차오른 눈물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이름을 불렀다. 




"엄마..." 




그 애달픈 이름으로... 


혜원은 떨리는 손길로 예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혜원아... 세상은 말이야. 네가 모르는 어둠으로 온통 뒤덮여 있어. 

네 두 눈으로, 네 두 손으로 보고 느끼며 살아온 세상은...

빙산의 일각만큼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야.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는 모를 거야..."





예나의 번진 눈물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을 보며 혜원의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예나는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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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아마 마을 전체가 눈에 뒤덮이던 겨울날이었을 것이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버스가 끊기고,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있던 그런 날. 


각각의 집 앞 길마다 눈 쓸어내는 비질 소리가 이어지던 날이었다. 


그날 어머니가 왔다. 


꼬박 4년 만에, 소녀가 열네 살이 되었던 해에... 


이른 새벽에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마당으로 나왔을 때, 


대문 앞에 어머니가 서있었다. 


소녀의 눈에서 뚝 뚝 떨어지는 눈물처럼,


가벼운 눈이 벚꽃처럼 허공에서 날아다니다 어머니의 얼굴에 앉아서 녹아내렸다. 






아버지가 죽고 소녀는 2년을 혼자 살았다. 


학교는 가지 못했고, 이웃들의 밥을 구걸하며 어린 시절을 견뎠다. 


보호시설로 데려가려는 공무원들을 할퀴고 깨물며 저항해 이 집에 혼자 남겨졌다. 


혹여 집을 떠나면 어머니가 소녀를 찾지 못할까,


혹시라도 대문 잠겨 어머니 돌아오지 못할까 언제나 문은 활짝 열어놓은 채로.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독하리만치 괴롭히던 하이에나들마저 소녀의 처지를 동정하며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 정도.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떠나기 전날, 


고기며 쌈 채소며 쉬이 먹기 힘든 굴비까지 구워 거한 상을 차려주던 어머니는, 


그렇게 사라져 돌아올 기색이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 밭일도 시작했다. 


오랫동안 메말라있던 땅에 거름을 뿌리는 것도 이제는 어린 소녀의 몫이었다. 


손은 제 나이와 맞지 않게 점점 거칠고 차가워졌다.




언제까지 버티나 내기할까?


그냥 잡아먹어버리자.


아냐, 그러면 재미없어.





잡귀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는 길기만 한 외로운 밤도 악으로 견뎠다. 


함께 뛰놀던 아이들이 중학교 교복을 입는 것을 쓸쓸히 지켜보며, 


소녀는 마당 가운데에서 작물을 말렸다. 


나는 나일 뿐이야. 


세상엔 나밖에 없어. 


그렇게 이를 악물고서... 


가족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원망하고 또 원망하면서...


그런데 불쑥 어머니가 왔다. 


그 매서운 겨울 칼바람 앞에서 조금만 눈이 떨어져도 잔뜩 젖어버릴 무녀의 하얀 도포를 걸치고...


멍하니 어머니를 바라보던 소녀는, 


오랜 시간 동안 쌓이고 쌓였던 외로움이 폭발하듯 어머니를 향해 당장 꺼지라고 소리쳤다. 


그때도 어머니는 가만히 서, 내 딸... 떨리는 목소리로 소녀를 불렀다. 


소녀는 듣기 싫다며 돌아섰다. 


하지만... 이내 다시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내 딸... 엄마가... 엄마가 미안해..."


 


어머니의 그 눈물 젖은 목소리 때문에... 


소녀는 뒤를 돌아 달려가 어머니를 와락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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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깨달았지. 나... 엄마를 원망해본 적이 없구나. 

줄곧 사랑하고 있었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그리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지는 않았을 테니...."





예나는 다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그때에도 혜원은 대답을 하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쉬지 않고 흐르는 예나의 눈물만 닦아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처연해서, 예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황당한 이야기에 단 하나의 질문조차 없는 혜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혜원이 무서워서 예나는 몸까지 떨려 왔다. 


울컥대는 속이 쓰려온다. 


예나 자신조차도 자신을 알 수가 없어서 차라리 미쳐버리고만 싶다.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일까. 


전생에 자신은 얼마나 잔인한 사람이었기에,


대체, 누구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했기에... 


시련만이 빼곡하게 메워진 운명을 부여받게 됐을까. 


자신을 태어나게 한 하느님은 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저,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을 뿐이다...





"우연은... 없다고 했지? 전부 선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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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 숨 쉬는 육체일까, 아니면 그 육체를 지탱하는 영혼일까.


또한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운명의 각인은 육체에 새겨지는 것일까, 영혼에 새겨지는 것일까...


어머니는 선택했다.


소녀를 위해 떠나기를 선택했을 때처럼,


이미 손쓸 틈도 없이 저주의 사슬에 휘감긴 소녀의 육체를 위해...


며칠 밤낮을 전국을 돌면서 그릇이 될 육체를 찾았고,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아이의 몸을 선택했다.


그리고...


영혼을 뒤바꾸는 금지된 굿판을 여는 선택 또한 우연이 아니었다.


굿은 성공했고 소녀는 눈을 감았다.


소녀가 감은 눈을 다시 떴을 때, 


소녀는 더 이상... 조유리란 이름이 아니었다.





"누가 다치래, 최예나 이 멍청아..."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깨어난 유리가 가장 경계해야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후유증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는 의심이 생기면, 가면이 벗겨질 위험이 있었으니까.


그런 그 아이가 대뜸 자신에게 고백을 해왔다.


두려웠다. 그 애를 속이며 곁에 설 자신도 없었다. 


그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를 빼앗은 사실을 그 애가 알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서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버렸어. 강혜원 너를..."





흘러내리는 예나의 눈물을 닦아내던 혜원의 숨이 일순 멈추었다. 


뭐라고? 다시 물을 수조차 없게 얼어버린 혜원의 눈이 흔들렸다. 


예나는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얼룩진 얼굴이 바로 세워졌다.





"다시는 만나지 않길 바랐는데, 

네가 영원히 날 잊고 행복하게 살길 바랐는데... 

혜원아... 너는 왜... 나를 버리지 못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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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의 몸에 들어선 유리는 이제야 깨닫는다. 


그 이름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그 이름을 매우 잘 알고 있다. 


나처럼, 


너처럼, 


우리처럼,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홀연히 떠나가는 간절한 무언가를 잃었을 때, 


사람들은 그 이름을 대며 허무해진 마음을 위로하려 하고 나약한 스스로를 포장하려 했다. 


공기만큼 그 이름은 흔하지만, 


또한 공기만큼 중요했다. 


우연은 없다는 것을 유리는 이제 안다. 


우리 모두를 선택의 순간에 데려다 놓은 것. 


그 이름이, 운명 이라는 것을.


그 사실은 유리가 예나의 몸에서 야금야금 거짓을 연기할 때부터, 


눈과 입과, 머리와 몸통과 다리, 그리고 가슴에까지 예견된 채로 땀땀이 새겨졌다. 


유리는 예나로 살아가기를 선택했고, 예나가 준비하던 아이돌을 꿈으로 삼았다. 


그때 예나의 몸에 들어선 유리의 실수가 있다면, 


그 확고한 과정 속에 변수를 섞어냈다는 것, 


프로듀스에 지원하는 '선택' 을 해버린 것이다. 


유리의 몸에 들어선 예나 또한... 예견된 운명처럼 프로듀스를 선택했다.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지?


저주는 어떻게 된 것이지?





많은 의문을 뒤로한 채


유리는 등급평가를 위해 무대 가운데에서 노래를 불렀다.


자신이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나...


믿기 힘들만치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유리의 노래가 끝난 그 순간 예나는 깨달았다.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썩은 시체를 헤집으며 살아가는 비루한 운명이 있다면,


고고한 늑대처럼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이도 있을 터였다.


오랜 시간 잡귀에 시달리며 이능의 힘을 경험했던 예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유리의 영혼에, 그 울림에... 신묘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그 미지의 힘이 저주를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있음을,


그 후 돌이킬 수 없기 전까지, 


예나는 지금의 비극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었을 선택의 기회가 제법 있었던 것도 맞다. 


그날, 그 자리, 그 연습실. 


눈을 감고 앉아있는 유리를 외면했어도 됐다.


유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자신에게 끌리는 유리에게 무심할 수도 있었던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유리의 몸에서 깨어난 예나의 기억은 어떻게 된 것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본래 사고를 당했던 후유증 탓인지 유리는 예나였던 15년의 기억을 잊었다.


또한,


그런 모든 것들을 다 제치고서라도...





"어서 데뷔해서... 어머니한테... 잘해드려야겠다, 유리야..."





어머니의 안부가 미치도록 궁금했다.


다가서지 말라고 그렇게 운명이 꾸준히 귀띔으로 경고하고 있었건만, 


멀어버린 듯 귀를 닫아두고 예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모든 경고를 가볍게 넘겼다. 


때문에 응당한 대가가 따라왔다. 






"힘들 거 아는데,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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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향수, 

내게 느껴지는 본래 자신의 몸에 대한 회귀본능을... 

사랑, 그렇게 정의 내린 가여운 영혼이었어.

그런 유리의 고백을 나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어. 

유리의 행복만이 내 죄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했으니까..."





한참 후에야 입을 여는 예나에게 혜원의 시선이 꾸준히 머물렀다. 





"유리와 나는, 세상의 어둠과 광기...

그리고 하나뿐인 딸이 행복하게 살길 바랐던 무녀가 만들어 낸,

육체를, 영혼을... 같은 부모님이 낳아주신 저주 받은 운명의 자매야..."





몰랐던 것과 모르고 싶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쏟아져 내렸다.


의식을 차린 예나가 왜 그렇게 이유 모를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


어머니가 숙소에 찾아왔을 때 왜 예나가 무너져내렸는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예나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난... 유리를 사랑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너무도 이해가 된다.


당연했다.


세상 그 누구에게 물어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유리를 사랑하는 일이, 나한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야.'





본래 자신의 육체였던 몸으로 유리가 사랑을 갈구했을 때, 


예나의 심정은 어땠을지... 


그러니까 결국, 장난이... 아닌 것이다.


예나의 말에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아아, 


혜원의 입에서 사무치는 탄식이 터진다. 


이 애통함을, 이 억울함을, 이 분노를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다.


긴 탄식을 토해내면서, 혜원은 슬픔에 몸서리쳤다. 


또 한 명의 피해자가, 희생양이... 


예나의 앞에서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이런 날... 네가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예나의 눈에서 아픈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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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가 유리, 혜원에게 첫 만남에 손을 내밀 때 운명, 우연이라고 하죠.

허점이 많고 황당하지만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그중 유리가 어떻게 저주를 피했는지, 신묘한 힘이 무엇인지...

작년에 리턴 6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못 보신 분들에겐... 나중에 풀게요. ㅈㅅ;

하... 변명이지만 이게 본편을 먼저 쓰고 전작? 을 쓰려니 이것도 힘든 부분이네요. 

댓글로 원하시는 분 계시면 리턴에서 유리에 대한 부분만 이 아래 올려볼게요.

오히려 더 복잡해지려나...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