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팬픽은 상상에 기반한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사건, 지명, 단체는 실제의 그것과 전혀 무관하고, 만약 일치하더라도 단순한 우연에 불과합니다.








































"어떡할까?"




모여앉은 세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성인 멤버들인 혜원과 예나를 술이나 한잔하자고 밖으로 이끈 것은 은비였다.


그리고 몇 잔 술이 오가고 나온 화두는 예상했듯 사쿠라와 원영의 이야기였다.


예상은 했지만... 


혜원과 예나도, 


이야기를 시작한 은비도, 


그 누구도 선뜻 다음 말을 찾지 못한 채로 굳게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은비는 모아놓은 두 손만 내려 보고 있었고, 


그 옆의 예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소파 깊숙이 기대앉아있었다. 


혜원이 긴 정적을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언니 생각은 어떤데?"




긴 침묵 끝에 은비는 입을 열었다. 




"난..."




놓아두었던 시선을 일제히 저에게로 옮기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은비는 말을 이었다.




"우선 매니저님께 말씀드릴까 싶어. 

계속 우리가 모른척한다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안돼, 두 사람이 상처 받을거야..."





걱정스런 목소리로 혜원이 은비의 말을 받아냈다. 


은비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툭, 테이블로 내려지는 두 손과 함께 둔탁한 소리가 흘렀다.




"너희도 알잖아. 그동안 두 사람,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사쿠라는 방에서 울기만 하고, 

원영이는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그 앞에서 서성이고...

이대로 모르는 척하는 게 두 사람을 위한 걸까?"




그랬었다. 날마다 절절한 청춘 드라마를 찍고 있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미성년인 멤버들은 설마... 하며 애써 외면했지만,


성인들인 세 사람은 애써 모른 척 하기조차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중, 


어젯밤 겨울비가 철철 내리기 시작한 날에 원영이 비를 맞고 쓰러지고야 말았다.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둘 다 무너지리라.


그 생각이 은비의 머릿속에 차올랐다. 두 사람을 위한 결정을 해야 할 때다.




"말하지 마, 언니."




결심한 듯 예나는 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이제 모두의 시선은 예나에게 옮겨졌다.




"서로 좋아하는데, 강제로 감정 정리하게 둘 수는 없어. 

충격받아야 하면 받고, 울어야 하면 울면 돼. 

그런 것들은 어차피 순간일 뿐이야. 

회사가 개입하면 어떤 형태로든 상처만 받고 끝이 날 거야.

그렇게 끝나는 것보단 이렇게 아픈 게 훨씬 나아."

 



혜원이 말을 이었다.




"예나 말이 맞아. 언니, 두 사람을 믿자. 

쿠라 언니가 잘 처신할 거야. 우린 믿으면서 기다리면 돼.

산전수전 다 겪은 쿠라언니니까. 

원영이가 최대한 충격받지 않게, 상처받지 않게, 잘 해결하리라 믿어..."

 



암묵적인 동의가 오갔다. 


여전히 걱정스런 얼굴의 은비가 눈가를 꾹꾹 눌러보는 동안, 


그런 은비를 바라보며 예나와 혜원은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결정이, 정말 두 사람을 위하는 것인지 그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다. 


모르는 척한다고 해서, 두 사람이 나아지리란 보장도 없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과, 


두 사람은 멤버들 모두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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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건만 하자. 왜 마시자고 했어?"






자리를 파하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한잔 더 먹자고 예나를 붙잡은 것은 혜원이었다.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차갑고도 더딘 침묵이 이어졌다. 


새벽의 한적한 술집 안에는 두 사람의 테이블 뿐, 


지금의 침묵을 무마해줄 다른 테이블의 대화조차 없이 고요했다. 


혜원은 마주한 예나를 쳐다볼 생각도 없이 자신의 술잔만 꾸준히 따르고 마시기를 반복한다.


어색한 분위기에 슬쩍 눈치를 보던 종업원이 안주를 내려놓고 갈 때까지도 계속. 


불편한 듯 예나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혜원은 그제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 한때는 친했는데, 너무 차갑게 말하는 거 아냐?"


"너 아직도 잘 모르나 봐? 내가 너랑 같이 데뷔하고 얼마나 절망했는지?"




차가운 말이 나올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가시 돋친 말에 혜원의 얼굴로 설핏 쓴웃음이 번지다 사라졌다. 




"그냥... 우연히 재회하고 같이 데뷔도 했는데, 

예전처럼... 잘 지내면 안 될까?"




예나는 피식 웃었다. 결코 다른 멤버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은 냉소.


그리고 말했다.




"우연은 없어. 전부 선택이지."


"무슨 뜻이야?"


"너랑 술까지 마시면서 잡담하고 싶은 생각 없어. 할 말만 빨리해."




냉정함의 무게를 따지고 싶은 생각이 예나는 없어 보였다. 


그저 빨리 얘기를 듣고, 그에 따른 응당한 대답을 해줄 준비만을 하고 있었다. 


망설이는 기색이 다분히 느껴지도록 혜원은 한참 말이 없다가




"너... 여자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 거짓이었니?"





겨우 말을 마쳤다. 


그런 혜원을 지켜보는 예나의 눈동자에 얼핏 슬픔이 들어차 일렁였다. 


예나도 제 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술잔을 꼭 쥐어보는 예나의 손을, 혜원은 어쩔 수 없이 내려다보았다. 


데뷔하기 전보다 야위고 거칠어진 손을 바라보며,


얼마 전 예나가 쓰러졌던 때를 생각했다. 


라비앙로즈의 안무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즈음일 것이다. 


아침부터 고통을 호소하더니, 


저녁쯤 됐을까 기어이 예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 갔었다.


걱정하는 멤버들에게 의사는 단순한 위경련이라 말했지만, 원인은 평범치가 못했다. 


의사는 진심으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물었다. 




"스물이라고? 무슨 애가 저래?" 




영문을 모르는 멤버들은 멀거니 의사만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이어지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혜원은 머릿속에 묵직한 것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좀 참지 말고 살라고 해. 

몸 안에서 화기가 빠져나오지를 않으니까 이상이 생기지. 

나 참... 요즘 세상에 저런 아이도 다 있네..."




화병? 스무살의 여자가... 


더군다나 막 데뷔해서 세상이 온통 무지갯빛으로 보일 시기에,


의사가 나가자 혜원을 제외한 멤버들은 모두 벙찌게 웃었다. 





"바보같이 헤, 웃기만 하는 사람이 뭔 화병이야?"


"다른 환자랑 착각한 거 아니야?"





뭐가 웃겨? 혜원은 소리치고 싶었다. 


너희들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무너지고 있는 예나가 너희들 눈엔 보이지 않냐는 소리도...


혜원은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오는 소리를 간신히 억누르며 손톱만 깨물 뿐이었다.




"언니 뭐 화나는 일 있었어?"




채원의 말에 예나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오진하셨나 봐. 난 괜찮은데... 화나는 거 없는데."




그 미소에 혜원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예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 이유를 모르는 혜원은 스스로에게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혜원은 숙소로 돌아오는 차량에서 예나가 안쓰러워 엉엉 울어버렸다. 




"왜 울어 혜원아?"


"언니 괜찮아?"




뭐가 그렇게 널 괴롭혀서 항상 슬픈 미소를 짓냐고 묻고 싶었다.


사랑하는 유리도 있고, 데뷔의 꿈도 이룬 네가... 


화병으로 쓰러질 일이 무엇이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너 이렇게 아파하면 나도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제발 속으로 참아내지 말라고도...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데뷔 이후에도 예나는... 


다른 멤버들과 있을 때는 적당히 어울리는 척 가면을 쓰지만


그 외는 철저하리만치 자신을 피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멤버들은 예나가 무너지고 있는 것을 모른다.


혜원은 예나가 부서져버릴까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예나가 죽을 것만 같아서 혜원은 자꾸 눈물이 났다.


더 이상 바라만 보아선 안되었다. 


예나를 괴롭히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바라보는 위치에서 벗어나 다가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굳이... 지난날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야?"




과거의 기억에 빠져있던 혜원의 귓가에 한숨 같은 예나의 목소리가 흘렀다.




"난 알고 있어, 유리랑 네 관계... 유리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더라, 

앞으로는 조심하는 게 좋을걸? 다른 멤버들도 눈치챌지 모르니까."


"내 눈빛이... 어떤데?"


"글쎄,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네가 왜 그렇게 항상 슬픈 눈빛을 짓는지...

다만 한 가지... 내가 너를 바라볼 때의 눈빛과 비슷하다는 것 밖에는."





뻔하고 뻔해 예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모를 리가 없겠지. 


그렇게 빤히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데 혜원이 모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그러니 확인하고 싶었을 테고, 


유리에게 직접 묻지는 못하니 이런 식으로 다른 수단을 선택했을 것이고... 



너는,


왜 그렇게 미련하게 상처 준 사람만 바라보니...



속말을 삼키며 예나는 혜원을 쳐다보았다.





"뭘 알고 싶어? 어떻게 사귀게 된 건지, 그런 얘기라도 듣고 싶어?"


"아니, 네 진심이 듣고 싶어."





예나는 혜원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표정.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구나 싶어 예나는 크게 한숨 쉬었다.





"그래, 네 고백을 거절했을 때도 말했지만 난 정말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

그때의 말에... 거짓은 없어."


"그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유리 감정 받아주고 있다는 거야?" 


"유리가 원하니까, 유리가 내 사랑을 원한다면, 

유리를 사랑하면서, 나는 그렇게 있어야 돼."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지금 예나의 마음이 굉장히 무모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람의 옆에서 나날이 무너져가면서 맴도는 것은,


예나의 입장이 아니어서인지는 몰라도 납득하기 힘든 문제다. 


혜원은 다시 잔을 비웠다. 뻐근한 가슴이 좀처럼 나아지지를 않았다.




"왜?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다들 솔직하게 살아가는데, 

왜 너는 거짓되게 살아?"




예나는 다시 잔을 들어 비워낸다. 그리고 천천히 혜원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나를 용서할 수가 없으니까."




맞닿은 눈빛이 참, 건조하다. 눈가가 저토록 발갛게 물들었는데도...




"그리고 난... 세상 누구보다도 유리를 사랑해."




무슨 소리야 대체! 라고 묻지 못했다. 


묻기엔, 금방이라도 예나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앞으로 나와 유리에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만 일어날게."




돌아서 사라지는 예나를 보며 혜원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북받친 눈물이, 두 무릎을 적셨다.


모르겠다. 


예나의 속앓이가 무엇인지 용기 내 붙잡은 자리인데,


얘기가 끝나자 더욱 미궁에 빠져버리는 혜원이다. 


그런데 또 선뜻 붙잡고 예나의 속내를 물어볼 수가 없다. 


대답을 해줄 것 같지 않기도 하지만, 


방금 예나의 눈이 금방이라도 울 듯 아파 보여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눈을 떠올리니 머릿속에 불현듯 고등학교 1학년 때 예나를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하교하던 어느 날.


중학교 3학년 이후 말 한마디 해보지 않았던 예나와 혜원은 마주쳤었다.




"엄마랑... 헤어진 거니?"




그날, 왜 예나의 곁에 자신이 다가섰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혜원 역시 허약한 숨을 내뱉는 아기 고양이가 불쌍해서 다가갔던 거였을 거다.


슬쩍 다가가 얕은 날 숨을 허덕이는 고양이를 어루만지는 예나를 혜원은 말없이 쳐다보았다.


예나는 두 손을 턱 밑에 괴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내 아기 고양이를 제 품에 안아들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혜원은 물었다.

  




"뭐 하는 거야? 키우려고? 

어차피 데려가봐야 금방 죽을 것 같은데..."




혜원의 말에 품에 안은 고양이로 향해있던 시선을 옮기며 예나는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곤 대답 없이 뒤를 돌았다. 


무시당한 것 같은 마음에 울컥한 혜원은 야 최예나, 하고 예나를 불렀다.


여전히 대답 없는 예나는 혜원을 돌아보았다.

  




"차라리 부모님한테 한 마리 사달라고 하지, 

왜 그런 다 죽어가는 고양이를 데려가냐고."




예나가 조금 인상을 쓰며 혜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품에 안은 고양이를 잠시 바라보더니, 


굉장히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나 같아서 데려간다. 왜?"


"뭐?"


"아파서 데려간다고."

 

"너도 참 이상하다. 왜 아픈 애를 일부러 데려가?”

 

"아프다고 고양이가 아닌 건 아니니까."


"후회할 거야. 금방 죽을 테니까."


"안 죽어. 내가 소중하게 돌봐 줄 테니까..."




멀어지는 예나를 바라보며, 


그 당시 혜원은 예나의 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예나의 눈빛은, 


그리고 말투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또한 고양이를 바라보는 예나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설사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라 해도, 


가장 친한 친구였던 혜원의 입장에서는 그 참는 모습마저도 다 눈에 보였다. 


멀어지는 예나의 뒷모습을 보니 혜원은 왠지 속이 상했다. 


눈물도 차올라 가만 하늘도 바라보았다.


왜... 


예나는 지독하게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경 끄고 살기로 했는데... 내가 지금 뭔 짓이람..."




혜원은 한참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선 피식 웃었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금에서야 친구도 뭣도 아닌데...


쓸데없이 예나의 생각을 이렇게 오랫동안 하고 있다니... 


예나가 무슨 이유로 고양이를 데려갔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말했는지 대체 자신이 알게 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난 후쯤에, 


혜원은 복도를 걷다가 문득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시선을 돌린 곳은 예나의 반이었다.


아기 고양이가 죽었다며 예나는 교실에서 한참을 울고 있었다. 


참 서럽게... 


몇 명의 아이들이 말릴 수도 없이... 


무엇이었을까, 예나에게 그 아기 고양이는...








홀로 있는 술집, 


혜원은 다시 빈 잔을 채우며, 어쩌면...


예나에게도 그런 상처가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추측을 해보았다. 


그래서 그 아기 고양이를 돌보아주면서 자신의 마음 역시 돌보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아프다고 고양이가 아닌 것은 아니듯이, 


상처받았다고 해서 그 마음이, 


마음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깊게 들어가는 생각인 것 같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이유로 그때의 예나는 슬퍼하고 있던 것일까...


그리고 스무살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꿈만 같은 데뷔도 이룬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한참 그 마음을 헤아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빈 술 병만 늘어났다.





"내가 진짜... 미치겠어. 너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