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를 가더라도 소위 상류층이라는 계층이 있다.
일반적인 중산층이나 서민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분들.
가령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계 이민자가 힘껏 노력하더라도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는 있어도 상류층으로 진입하는 데에는
아직까지도 장벽이 있다. 그리고 설령 상류층으로 진입했어도
아비투스, 즉 상류층의 사회적 관습이나 소양 등을 갖추지 못하면
상류층 사람들과 교류 및 소통이 안되어서 낙오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웃나라 일본의 상류층 사회를 구성하는 아비투스는 무엇일까?
사진은 일본의 상류층이 거주하는 부촌의 전경들이다.
부촌이라고 하면 마천루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대신 고풍스러운 멋이 있다.
음식만 보더라도 이걸 아까워서 어떻게 먹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려하다.
특히 고급스럽고 전통적인 상차림으로 수준이 올라갈수록 요리의 색채는 물론이고
그릇이나 실내 인테리어, 정원 풍경, 게절 등 식사 체험 자체를 일련의 예술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무슨 음식을 눈으로 먹느냐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
그만큼 일본의 상류층 사회가 운치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높은 지위에 올라가게 되면
실무적인 일은 아랫사람들에게 일임하고 본인은 그저 대인관계가
좋고 원만하며 풍류를 알고 예술을 사랑하는 등
한 마디로 지도자는 멋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기업인, 고위 관료 등의 소위 '높으신 분'들은 이처럼 품격 면에서
아비투스를 구성하고 있으므로 만나기만 하면 문화예술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러면서 내심 '우리는 특별하다. 우리는 고급 인간.' 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는 것.
사람을 만나는 데에 술과 음식이 빠질 수 없고 또 골프모임 등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 덕에 일본은 접대문화가 유난히 발달했고 교제비라는 이름으로 나가는 돈이
한 해 3조 엔에 육박한다. 이런 거금이 인간관계의 기름칠을 위해서 투입된다는
이야기인데 한편으로는 정경유착이라는 비판을 사기도 한다.
이같은 일본 상류층 사회의 아비투스를 구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겐지 이야기" 라는 고전소설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설이라고 일본이 자랑스러워하는 작품인데
작품 속의 주인공인 히카루 겐지가 오늘날 일본의 사회지도층들에게는
본받아야 될 지도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는 이야기.
"겐지 이야기"의 저자 "무라사키 시키부"
이 소설은 헤이안 시대의 여류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가 집필한 소설이다.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그녀가 남긴 와카는 백인일수에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소설 속의 히카루 겐지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겐지는 덴노의 아들이라는 지체높은 신분은 갖춘 귀족이다.
그러나 현실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머리아픈 나랏일은
몽땅 신하들에게 떠맡긴 후에 와카를 읊고 노래하는 등 예술에 심취하고
미인과의 연애를 일삼으며 엔조이 라이프의 진수를 보여준다.
행정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정치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주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아주 부드럽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하지 않는 젠틀맨으로
빼어난 미모와 걸출한 예술적 재능, 풍부한 감성을 지닌 풍류남아라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 각지의 미인들과 즐기면서 산다.
요즘 식으로 따지면 재벌 3세가 여자 끼고다니면서 돈뿌리는 이야기.
이 한량같은 캐릭터가 일본 귀족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아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의 감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일본 문화의 바탕이 되어서 하이쿠, 우키요에, 벚꽃놀이, 분재, 도자기 등이 발전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학생들에게 서도(書道)를 장려하고 성인들의 취미로도 인지도가 있다.
축의금같은 봉투에는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예의이며 격식이 있는 장소에 내거는
글씨도 가급적 붓으로 쓰는 것이 관례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일본 사회는 멋을 중시한다.
반면 선비들의 사회에서는 예술을 "남의 이목을 끄는 쇼"로 평가절하하고 화가나 악사, 도공 등을
환쟁이, 딴따라 등으로 멸시해왔기 때문에 문화예술이 발전되지 못하고 정체된 감이 있다.
심지어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에서 장인으로 대접받았기에
나중에는 조선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더라는 일화가 있을 정도. 실제로 양반들이
즐기는 예술이라고 해봤자 문인화 정도였는데 그 소재도 사군자 등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고위대신의 신분으로 예술가로도 업적을 세운 분이 추사 김정희.
그는 갓난아기 때부터 붓을 무척 좋아했고 이미 7살 때 명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조선과 중국을 오가며 글씨를 연구한 결과물로 추사체라는 폰트를 완성하기도 했고
사군자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서 훗날 석파란으로 이름을 날리는 흥선대원군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더랜다. (흥선대원군은 특히 난을 치는 솜씨가 좋았다.)
여담으로 한국의 정치인들 중에서 일본 상류층 사회의 이상향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 JP였다.
아무래도 본인이 일제시대 태생이고 일본 문화에 조예가 깊다보니까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정계에 몸담고 있을 때에도 직설적인 화법보다는 은유와 비유를 즐겨서 사용했고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틈틈히 그림을 그리고 만돌린, 아코디언 등을 연주했다.
미식가이자 패셔니스타로 널리 알려져서 재건복을 고안하기도 했고 90년 대 초반에
한 끼 20만 원이 넘는 중식정찬을 즐겨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또 취미도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는 골프였는데 국민의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맡고 있던 시절 외환위기 상황이였음에도 꿋꿋하게 골프를 쳤는데
그럼에도 JP가 워낙 거물인지라 감히 시비를 거는 인물이 없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우스갯소리로 JP는 고급스러운 취향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한줄평
고전소설이 역사와 문화의 향방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