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게이들이 딸을 치다가 한 번쯤은 보고 '???이런 일게이가 야동에도 나오盧' 하고 놀란적이 있게 만들었을 '니시쿤' 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을게.



 「장애인의 섹스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 AV 감독 '니시쿤'이 데뷔하기까지


   

그의 이름은 니시 코헤이(西晃平).
사람들은 그를 "니시쿤(にしくん)"이라고 불렀다.


1993년 4월 13일, 도쿄 스기나미 구에서 태어났다.

니시쿤의 아버지는 회사 면접관으로 일하다가 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첫눈에 사심을 품은 아버지는 어머니를 합격시키고 고백해 결혼까지 하는 데 성공했다.
니시쿤이 태어날 당시 아버지 연세가 33세, 어머니가 23세.




무럭무럭 잘 클 줄 알았던 니시쿤이 만 3살이 된 어느 날, 
갑자기 몸 전체에 마비가 오는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놀란 부모님은 니시쿤을 응급실로 데려갔는데, 소아암 판정을 받았다.
뇌에 종양(횡문근육종)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수술에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지만 무사히 뇌를 절개하고 종양을 꺼낼 수 있었다.
면역력이 떨어져 숨쉴 때마다 고통이 밀려왔고 카레 냄새만으로 고온의 열이 올라 쓰러지곤 했다.
이후 국립 암 연구 센터로 이동해 항암제 투약, 방사선 치료, 자가 골수 이식 등의 항암치료 과정을 밟았다.



만약 암이 재발하면 그땐 모든 걸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길 들었다.
다행히도 재발은 없었지만 곧바로 또 다른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항암치료가 끝난 1999년, 이제 겨우 한숨 돌린다 싶었을 즈음에,
부모는 니시쿤의 키가 전혀 자라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셨다.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 '리소좀 축적질환'이라는 희귀병이 발견됐다. 
이 병에 걸린 아이들은 대부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미 큰 병을 한 번 극복했잖니. 코헤이 짱, 괜찮아."
어머니의 위로를 마음에 새기며 니시쿤은 두 번째 투병생활을 견디어냈다.

운 좋게도 20대 여성의 골수를 기증받을 수 있었고, 골수이식 이후에 병의 진행이 멈추었다.
이식을 받는다고 병이 낫는다는 보장은 전혀 없었는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완치는 아니더라도 더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키 109cm로 성장이 멈추어버렸다.
신체 조건상 5분 이상 서 있을 수 없게 되었고
스스로 음료수 병을 딸 수도 없었다. 왼쪽 귀는 청각을 잃었다.

(백수 시절, '기인 괴짜회'라는 모임에 참석한 니시쿤.
세라복 할아버지 고바야시 히데키 옹의 귀여운 V자 미소도 보인다.)


학교는 묘조가쿠엔(明星学園) 소학교와 코세이가쿠엔(佼成学園)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때 이지메를 당한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친구들과 잘 어울려 다니는 편이었다. 

그런데 놀아도 너무 놀았다. 
원래 동경대 물리학과를 지망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지만 중3을 기점으로 성적이 급하강했다.
국공립 명문대는 들어가기 어려웠고 어중간한 대학은 굳이 들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입시를 포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2012년 초부터 2년 가량을 집에서 백수로 지냈다.
알바를 하며 용돈벌이는 하고 있었지만 딱히 직장이라고 할만 한 곳은 잡지 못했다.

그 사이에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났다. 
특히 '기인 괴짜회'라는 동호회에서 만난 인맥은 특별했다.
여기서 만난 '옥수수를 산책시키는 아저씨'를 통해 록폰기 클럽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AV 남자배우 '타부치 마사히로'를 비롯해 뒷세계의 온갖 변태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하지만 언제까지 계속 이렇게 백수 생활을 즐길 순 없었다.





2014년 3월,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집을 뛰쳐 나왔다.
처음에는 길거리 노숙 생활을 하였고 넷 카페나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신주쿠 가부키초에 아주 저렴한 쪽방을 구할 수 있었다.

살 길을 고민하던 니시쿤은 IT계열 주식회사 세라쿠에 계약직으로 입사해,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직업 훈련을 받아 2014년 10월, 정규직으로 승진했다.




그렇지만 정규직 출근 첫날부터 "나는 이 일이 안 맞는다"는 걸 절감했다.
괜찮은 직장이었고 이대로 몇 년 계속 일하면 안정적인 중산층 생활을 누릴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남들과 똑같은 하루, 똑같은 삶을 사는 게 덧없이 느껴졌다.

죽음의 문턱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며 언제 세상을 등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던 그였다.
언제 어디선가 갑자기 죽게 되더라도 후회 없을 정도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자기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낮에는 평범한 샐러리맨, 밤에는 성인기구 홍보 대사로 활동한 니시쿤)
※ 상대 모델은 AV 배우 미오리 마이.



그러던 2015년 4월, 백수 시절 알게 된 록폰기 변태 친구들을 통해 
「전 일본 애1무 선수권 대회」라는 비밀 이벤트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호기심에 신청했을 뿐 애1무 경험이 전혀 없는 니시쿤이었지만, 의외로 준결승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때 성인업체 와일드 원의 눈에 딱 띄었다.
곧바로 니시쿤은 '덴마(전기마사지기)' 홍보 대사로 발탁되었다.
니코동과 유튜브에 계정을 열어 성인 기구 홍보 영상을 올렸다.
물론 다니던 회사에는 비밀이었다. 회사 몰래 부업을 뛰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AV 세계의 사람들과 직접 인연이 닿게 됐다.
수많은 AV 배우들과 함께 토크쇼를 진행하고,
요시무라 타쿠, 시미1켄(시미1켄이 금지어노 이기이기;;;), 토니 오키 같은 남자 AV 배우들과 행사를 같이 다녔으며,
나이트 클럽이나 해프닝 바에 게스트로 초대받아 여러 번 무대에 올랐다.






니시쿤은 생각했다.

「성(性) 세계에 대해선 편견이 많다.
하지만 섹스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이 훨씬 풍요로워지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장애인과 성을 엮는 걸 금기시한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도 인간이다.

나는 사람들의 편견을 바꾸고 싶다.
장애인의 섹스에 대한 편견을 바꿔야 한다.
이 일은 오직 나 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할 수 밖에 없다!! 


니시쿤 게이 ㅆㅅㅌㅊ ....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마침내 니시쿤은 AV 감독으로 데뷔해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었다.









(미나토 리쿠와 니시쿤)

(츠지모토 안과 니시쿤)



2016년 3월 31일, 니시쿤은 퇴사했다. 
다시 백수가 됐다.

모아 놓은 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장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려면 일단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긴 해야 했다.
변태 친구들로부터 일을 소개받으며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돈벌이를 할 수 있었다.

토크 쇼에서 친해진 유명인사 '빅 대디'를 통해서는 가부키초의 호스트 클럽 'ACT'를 소개받았다.
틈틈히 호스트 일을 했는데, 어려 보이는 외모 덕분에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직장인 시절 월 소득 30만 엔이던 게 퇴사 이후에는 월 35만 엔까지 벌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심리 상담사 2급 자격증을 땄고,
디자인 학교를 다녀 전 과정을 이수했다.




(니시쿤의 AV 데뷔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모리카와 케이 감독)


"AV 감독이 되고 싶다"는 니시쿤이 진짜로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건,
니시쿤의 술친구이자 유명 AV 감독인 모리카와 케이였다.

2016년 9월에 모리카와 감독은 SOD 이사들이 잔뜩 모인 자리에서 
신작 AV 기획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해야 했는데,
그 자리에 사전 얘기 없이 다짜고짜 니시쿤을 데려왔다.

SOD의 창업자 다카하시 카나리 회장은 니시쿤을 처음 봤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리카와 씨가 아들이 있었나?"





다카하시 회장뿐만 아니라,
중견 감독 니무라 히토시, 타메이케 고로, 야리가 사키하지메 등
SOD의 이사진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모리카와 감독의 새로운 기획은 "니시쿤을 AV 감독 겸 AV 배우로 전격 데뷔시키는 것"이었다.
조감독은 커녕 현장 경험조차 전혀 없는 일반인이 감독 데뷔라니 전례 없는 일이다.
촬영의 '촬' 자도 모르는 사람이 카메라를 잡을 줄이나 알까.

하지만 PPT 발표를 마쳤을 때 다카하시 회장의 반응은 호의적인 편이었다.
"참 재밌는 아이디어야! 확실히 신선해! 하지만 단점도 없진 않은데... 니무라 씨는 어떻게 생각해?"
"이번 기획은 모리카와 씨를 믿고 맡기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한참 얘기가 오고가더니, 마침내 다카하시 회장이 말했다.
"니시쿤 자넨 재미있는 사람이야. 어떤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한번 보여줘!".








(니시쿤의 감독 데뷔작 SDDE-465. 하마사키 마오 주연)

이전까진 이 일게이가 박는건 못봤는데, 이 작품에선 이 게이가 하마사키 마오한테 삽입해서 놀랐盧;;ㅋㅋㅋ

(니시쿤의 패션 스타일은 개그맨 아키야마 류지의 우에스기 미치 캐릭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한달 뒤, 니시쿤에게 작품 한 편을 찍을 기회가 주어졌다(품번 SDDE-465).
주연 배우는 하마사키 마오였고, 남자 배우로 모리바야시 겐진 등이 출연했다.
니시쿤은 이 작품의 메가폰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출연했는데,
무척이나 큰 물건(?)을 지니고 있어 뭇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결과물을 본 SOD의 중견 감독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건 니시쿤 밖에 찍을 수 없을 거야!"





노련한 AV 배우일수록 자칫 진부하고 인위적인 섹스가 나오기 쉽상이기 때문에,
언제나 배우에게는 새로운 기획을 필요로 한다.

니시쿤이 찍은 작품은 그런 신선함이 넘쳐 흘렀다.
키 차이에서 나오는 비주얼적 재미는 물론이고, 
니시쿤이 자아내는 생소한 상황에서 마오의 치녀 본능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왔다.
이전에 하마사키 마오로부터 볼 수 없던 새로운 표정과 리액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카하시 회장은 말했다.

「이번 작품은 남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일이지.
앞으로도 자네 같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단 말이야.
니시쿤! 너를 키워보고 싶다. 그래, 잘 해봐!」


SOD는 니시쿤과 1년 12편 전속 계약을 맺었다. 연봉 1천만 엔.
웬만한 인기 배우도 하기 드물다고 하는 1년짜리 전속 계약이었다.
덕분에 이듬해 니시쿤은 가부키초 쪽방에서 벗어나 드디어 번듯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16년 12월 8일, AV 감독 겸 남자배우로 데뷔했다.
이때가 나이 24살이었다(일본 나이로는 23살).



(미야자키 아야, 시이나 소라 주연의 SDDE-480)


(시라이시 마리나와 함께 STAR-782를 촬영할 적 찍은 사진)


오늘은 니시쿤게이 작품이盧
즐딸해라 이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