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틸리나는 로마 공화정 시대의 귀족가문 후예였다.
이 당시의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큰 중흥을 누리고 있었으나 내부적으로 부패가 심해지고 있었다. 카틸리나 또한 이 당시의 흔하디 흔하던 로마 귀족으로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기회주의자였을 뿐이다. 그래도 나름 통솔력 있는 장수로 이름을 얻고 있었다.
카틸리나는 가문빨 덕분에 카르타고 총독직을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책을 맡자 그의 무능함과 탐욕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가 로마에 돌아오자 비리에 대한 의혹들이 그를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제일 엽기적이었던 것은 평생 처녀여야 할 여사제와 간통했다는 의혹이었다.
기원전 65년, 카틸리나는 당시 로마 공화정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책인 집정관에 출마하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집정관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집정관(콘술)은 로마 공화정에서의 최고 권력을 가진 지도자인데 두명이 선출되고 권력을 똑같이 나누었으며 임기는 1년이었다. 요즘 대통령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권력이었지만 당시의 로마에서는 집정관 자리를 이용하여 정계의 실력자가 되기도 용이했고 또 집정관 자리 자체가 어마어마한 명예이기도 했다. 집정관을 한번이라도 경험하면 '프로콘술'이 되어 로마사회에서 꺼드럭거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니발이 침입했을 때처럼 로마가 전쟁을 수행해야 할 때에는 원활한 의사결정을 위해 집정관을 두명에서 한명으로 줄이고 전권을 위임했다. 이를 독재관(딕타도르)이라 부른다. 독재자(dictator)는 여기서 파생된 단어이다. 원칙적으로 독재관 임기는 6개월 이상을 넘을 수 없었다.
카틸리나는 북아프리카에서 얻은 오명들 때문에 집정관 당선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궁리 끝에 카틸리나는 당시 유권자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로마 시민(평민)들에게 그들이 진 부채를 전액 탕감해주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그래서 카틸리나는 세계 최초의 포퓰리스트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 황당한 공약에 그 공약을 믿는 사람들은 얼마 없었고 결국 카틸리나는 또다시 집정관 선거에서 낙선했다.
기원전 63년. 카틸리나는 똑같은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들의 표를 구걸하고 다녔다. 이 일로 로마 원로원의 귀족들과 카틸리나의 사이는 매우 나빠지게 되었다. 로마 귀족들은 대부분의 채권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틸리나는 집정관에 당선만 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지 하겠다는 식이었다. 게다가 카틸리나는 무장이었다. 그래서 원로원에서는 카틸리나가 집정관이 되면 무력을 동원해 스스로 독재관이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63년의 선거 결과, 집정관에는 키케로와 무레나가 당선되었고 카틸리나는 3위에 머물렀다. 카틸리나는 궁리 끝에 무레나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유죄가 선고되면 무레나는 낙선 처리 되고 3위인 자신이 집정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카틸리나의 야심을 위험하게 보던 키케로는 직접 무레나의 변호인이 되어 무죄판결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이재명식 포퓰리즘은 있었어도 이인제의 정신력은 없었던 듯, 거듭된 낙선에 카틸리나는 멘붕에 빠졌다. 게다가 포퓰리즘을 위해 막대한 빚을 졌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쪼들리는 상황이었다. 카틸리나는 앙심을 품고 자신의 야심을 막는 키케로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마침 카틸리나의 포퓰리즘이 먹히기 시작한 덕분에 그의 주변에는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의 전라디언들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카틸리나를 집정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던 자들이다.
카틸리나는 키케로 암살은 물론이고 내친 김에 아예 쿠데타를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카틸리나는 말은 번지르르했지만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데에는 재주가 없었다. 게다가 그의 지지자들은 전라디언들처럼 입단속이 안되는 무리들이어서 모반 계획은 금세 로마에 퍼지기 시작했다. 셋째로 키케로가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늘 카틸리나를 경계하고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기원전63년 11월8일, 키케로는 태연히 원로원에 등원한 카틸리나의 면전에서 그의 쿠데타 음모를 까발리고 그를 공개적으로 탄핵한다. 그리고 그의 추방을 요구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이다.
(카틸리나 탄핵 연설문은 여기서 확인해라: http://megasuperblog.tistory.com/12)
키케로의 웅변을 들으며 좌절하는 카틸리나
카틸리나는 키케로의 집안이 그저 그렇다는 점을 들며 로마 귀족 가문 출신인 자신이 어떻게 로마를 배신하겠냐고 뻗대었다.
그 구질구질함은 가히 이재명에 견줄 만 했다.
그러나 키케로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카틸리나는 끙끙 앓다가 지지자들을 데리고 로마를 탈출했다. 최악의 판단이었다. 키케로는 지체없이 토벌군을 결성하고 카틸리나를 추격했다. 결국 기원전62년, 카틸리나는 로마군과의 전투 끝에 전사했다. 이로서 로마는 잠시나마 평화를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당시 키케로의 서슬퍼런 카틸리나 극딜을 지켜보던 탈모충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카이사르이다. 그는 카틸리나의 실수로부터 배운 교훈을 결코 잊지 않았다)
세줄요약
1. 카틸리나는 이재명처럼 잔머리가 발달함
2. 카틸리나는 이재명처럼 포퓰리즘에 의존하던 기회주의자
3. 그러다가 팩폭 맞고 발뺌하다가 알아서 자폭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