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1. 남미 최연소 연쇄살인마 후안 에르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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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살인마 DNA, 나카다 형제


3. 브라질의 흡혈귀 마르셀로 안드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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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예타노 산토스 고디노(Cayetano Santos Godino)

아르헨티나의 최연소 연쇄살인마이다.




16살이 될 때까지 4건의 살인, 7건의 살인미수, 7건의 방화를 저질렀다.




그는 나이에 비해 키가 아주 작고 귀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큰 귀의 난쟁이(El Petiso Orejudo)"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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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예타노 산토스 고디노는 1896년 10월 3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장애에 매독 환자로, 카예타노도 선천성 매독을 가지게 됐다. 그는 태어나자 마자 장염으로 죽을 뻔 하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했지만




술에 취한 아버지는 그렇게 병약한 아이에게 구타를 가했고 이 후에 의사가 카예타노의 머리를 검사 했을때 27개의 흉터를 발견했다. 




카예타노는 다섯 살에 학교를 들어가지만 반항적인 행동 때문에 학교를 5번이나 퇴학당했다. 그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누구도 그에게 글을 읽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는 나쁜짓을 저지르고 다녔지만 사람들은 그를 글도 못읽는 바보로 인식하고 있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첫 범행은 일곱 살때부터 시작됐다.





<카예타노의 범행 일지>


 

1904년 9월 28일




일곱 살 카예타노는 두살인 미겔을 구타하고 도랑에다 던졌다. 근처에 있던 경찰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그를 체포하고 경찰서로 데려갔지만 연령을 고려하여 몇 시간 설교후 귀가시켰다.




1905년




카예타노는 18개월 된 여자 아이를 황무지로 데려가 짱돌로 머리를 내리쳤다. 여자 아이의 비명소리를 듣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또 다시 체포됐다. 하지만 이때도 경찰은 고디노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 두 아이간의 싸움일것이라 판단하고 귀가시켰다.



 1906년 3월 22일




 카예타노의 자백에 의하면 그는 아홉 살에 첫 살인을 저질렀는데 마리아라는 소녀를 목 졸라 살해하려고 했으나 실패 했고 산채로 쓰레기 더미에 묻었다고 진술했다. 나중에 그가 묻었다고 한 자리에는 이미 건물이 들어선 후라 확인 조차 할 길이 없었다.



1906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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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예타노의 아버지가 깨어났을때 가족이 키우던 카나리아가 죽은 채로 상자에 넣어져 있는걸 발견했고 그는 경찰서에 카예타노를 처벌해달라고 요청했고 카예타노는 결국 두 달간 감방에서 수감됐다.




 출소후에 카예타노는 하루 여러 번씩 다음 희생자를 죽이는 망상을 하며 딸딸이를 즐겼다.



 1908년 9월 9일



 카예타노는 두 살 세베리노를 양조장으로 데려가 익사 시키려고 했으나 주인이 소리를 듣고 찾아오자 멈추게 된다.

그는 경찰서로 끌려갔지만 검은 옷차림의 여자가 세베리노를 그곳으로 데려왔었다고 말함으로서 죄값을 피하게 된다.




1908년 9월 15일



 카예타노는 두 살 아이의 눈두덩이에 담11배빵을 했고 비명소리를 들은 엄마가 찾아오자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 사실을 안 그의 아버지는 다시금 경찰에 신고하여, 그는 결국 3년동안 소년원에 수용되게 되었다.



 출소 후 그는 갱생은 커녕 더욱 흉폭해졌다.

카예타노는 살인 뿐만 아니라 방화에도 흥미를 가졌다.



1912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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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예타노는 창고에다 불을 질러 진화하는데 4시간 걸리는 대화재를 일으켰는데 그것을 보며 흥분을 느꼈다고 한다.



 

1912년 1월 21일



 열세 살 소년의 시신이 빈집에서 발견됐다.

소년은 벌거벗겨져 있었고 온몸엔 구타의 흔적이 남아있었으며 전깃줄로 목이 묶여져 있는 상태였다.

이 사건의 범인은 나중에 카예타노가 자백하기 전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1912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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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희생자 레이나)


카예타노는 다섯 살 소녀 레이나가 상점의 신발을 구경하고 있을 때 그녀의 드레스에 불을 질렀고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녀를 구하려고 거리를 가로질렀지만 차에 치여 사망했다.소녀는 결국 16일 후 병원에서 사망했다.



 카예타노는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방화를 저질렀다.



 

1912년 11월 8일



카예타노는 여덟 살 소년의 목을 졸라 살해하려다 체포되었지만 재판도 없이 바로 석방되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살인 미수를 저질렀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1912년 12월 3일



 카예타노는 집 앞에서 아이들과 놀고있는 제수알도를 발견했다. 그는 제수알도를 다른 아이들과 떨어트리기 위해 아이들한테 사탕을 사 먹도록 2센트씩 쥐어줘 잡화점으로 보낸 뒤 제수알도에겐 사탕을 더 많이 주겠다며 빈 집으로 유인했다.



빈 집에 들어가자 마자 카예타노는 제수알도의 손발을 묶고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무기를 찾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 짱돌과 녹슨 못을 줍던 도중 누군가 제수알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제수알도의 아버지였는데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해 해매이던 도중 카예타노랑 마주쳤다.



제수알도의 아버지는 그에게 아들의 행방을 물었지만 아버지에게 돌아온 대답은 "나는 제수알도가 누군지 모른다.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하는것을 추천한다"였다



그말을 들은 제수알도의 아버지는 경찰서로 갔고 카예타노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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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범행에 사용했던 돌과 못)



그는 기절해 있는 소년을 깨워 이마에 못을 박고 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시신을 낡은 판자로 덮어 은닉하고 현장에서 도주했지만 이 사건에는 목격자가 있었다.



점원에서 일하는 한 여성이 큰 귀와 긴 팔을 가진 소년이 제수알도와 같이 있는걸 봤다고 증언했다.


몇 분 뒤 제수알도의 아버지는 아들의 시체가 있는곳을 직감하고 경찰들을 데리고 카예타노가 있었던 건물로 향했다. 그는 그곳에서 아들의 참혹한 시신을 발견했다.



마을 사람들은 제수알도의 영혼을 위로 하기 위해 모였고 카예타노는 그 사이 몰래 숨어들어 구경했다. 그는 제수알도의 머리에 박힌 못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러 더 가까이 갔다.


하지만 못은 제거 된 상태였고 그는 그것에 몹시 화나 욕을 하면서 뛰쳐 나갔고 사람들은 전부 그를 쳐다봤다.



<체포와 최후>




1912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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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경찰들은 카예타노의 집을 습격해 그를 체포했다. 그의 주머니엔 자신의 살인 사건이 실린 신문 쪼가리와 제수알도를 살해할때 썼던 끈이 발견됐다. 체포된 후 그는 네 번의 살인과 수많은 살인 미수를 자백했다.



사람들은 카예타노에게 사형이 내려지길 원했지만 판사는 그의 나이가 열여섯 살인걸 감안해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그는 병원에서 두 명의 재소자를 폭행했고 탈출의 조짐이 보여 결국 교도소로 보내졌다.


그는 감옥에서 다른 수감자들에 의해 폭행당하고 강간 당하는게 일상이었다. 또 그 누구도 그를 면회하러 오거나 편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1933년


카예타노는 수감자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가 감옥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목 졸라 죽이고 불에 태웠고 수감자들한테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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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카예타노 산토스 고디노)




1944년 11월 15일




카예타노는 옥중에서 사망했는데 사인이 십이지장 궤양으로 인한 내부 출혈로 추정했지만 다른 수감자들 말에 의하면 그가 한 수감자한테 구타당해 사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