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남미 최연소 연쇄살인마 후안 페르난도 에르모사








2005년 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페루에서 17명이 살해 당하는 페루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연쇄살인범의 이름은 페드로 파블로 나카다 루데냐(Pedro Pablo Nakada Ludeña)

그는 직접 제작한 고무 소음기를 단 권총으로 똥꼬충, 창녀, 마약 중독자 17명을 죽였다.

페루에서 그를 '죽음의 사자' 라고 불렀다.



페드로는 1973년 2월 28일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시절은 매우 불우했는데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고 술에 취하면 어머니를 폭행하고 육체적인 모욕까지 줬다.

그는 학교에서 급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그의 누이들은 그를 여장시켜 거리로 내보내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만들었다.

그의 남자 형제와 여자 형제는 그를 강간하기까지 했으며 이는 그가 똥꼬충들을 혐오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일들을 겪은 그는 자신의 분노를 동물을 고문하고 죽이는 행동으로 표출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3학년 채 마치지 못했고 17살이 되자 페루 육군에 자원 봉사자로 입대했다.

정식 군인이 되길 원했으나 정신 이상의 이유로 군에서 추방당했다.

군에서 추방당한 그는 실의에 빠져 자살 충동을 심하게 느꼈고 이를 회복하는데 1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페드로의 살인 일지>



2005년 1월 1일,
 페드로는 첫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오후 6시경 해변에 있던 26세 남성의 가슴과 복부에 총을 쏜 후 금품을 가지고 달아났다.

2006년 5월 31일, 페드로는 마약을 흡입하던 50세 여성의 머가리에 총을 쏴 살해했다.

여성을 죽인 이유는 순수한 여자만이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때부터 페드로는 본격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2006년 8월 8일, 30세 남성이 머가리에 총상을 입은채 농가 우물에서 발견됐는데 이 희생자는 페드로의 지인이었다.

2년전 두 사람은 함께 자동차를 훔치는 일을 했었는데 부정직한 일을 끝마치고 싶어서 살해했다고 밝혔다.



2006년 8월 18~19일, 페드로는 마리화나를 피우던 21세 청년을 살해하고 다음날 15세 소녀를 살해했다.

자전거를 훔치기 위해 누군가를 살해했는데 소녀였을 줄은 자기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소녀를 죽인것에 대해선 다른 살인과 같이 정당화 하지 않았다고 했다.

2006년 11월 19일, 페드로는 택시기사와 승객 2명을 살해한 후 택시를 훔쳐 달아났다.

살해한 이유는 그들이 범죄자였기 때문에 자기가 살인을 함으로써 그들의 악행을 막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똥꼬충도 자신이 청소해야할 대상으로 여겨 본격적으로 똥꼬충을 청소했다.

2006년 11월 22일, 42살의 똥꼬충이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HIV에 감염된 이 똥꼬충이 고객에게 매춘까지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을 들은 페드로는 미용실을 찾아가 그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매춘을 요구했다.

그 똥꼬충이 바지를 내리자 바로 목에다가 총을 쏴 죽이고 돈을 훔쳐 달아났다.

2006년 12월 17일, 그는 공원에서 20대 중반 똥꼬충들이 손잡고 산책하는걸 발견하고 총으로 쏴 죽이고

신고있던 신발과 현금을 훔쳐 달아났다.

2006년 12월 27일, 그는 3년전 자신의 돈과 물건을 훔쳐간 사람을 죽이면서 마지막 살인을 저질렀다.


<체포와 재판>



경찰은 마지막 살인에 대한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연쇄살인범을 검거할 수 있었다.

체포 당시 페드로는 자신이 일하던 정비소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었는데 경찰은 그가 연쇄살인범이라 확신하지 못했다.

경찰이 신원확인을 위해 이름을 묻자 그는 재빠르게 경찰을 밀치고 바로 권총을 꺼내며 달아났다.

10여명의 경찰이 그를 추적했고 곧이어 총격전이 시작됐다.

그는 경찰 한명이 부상입혔고 탄약이 떨어지자 이내 포위당하며 체포당했다.

경찰이 조사과정에서 8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할때 그는 그것을 부인하며 25명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범행동기를 묻자 그는 '세상의 쓰레기들을 청소하기 위해 25명을 죽였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며칠 후 신년을 맞이해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나이트클럽에 가서 수류탄을 던질 계획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클럽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부패한 사람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페드로는 결국 17건의 살인 혐의로 징역 3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감옥에서 끈임없이 자살시도를 해서 2009년 교도소내 정신병동으로 이감되었다.


페드로는 어떻게 일본인 성을 가지게 된것일까?

그가 31살때 페루에 사는 일본인 자손에게 제공되는 일본인 비자를 얻기 위해 돈을 주고 일본인에게 입양되는 방법을 쓸려고했다.

그렇게 성을 나카다로 바꾸고 일본으로 갈려고 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남동생은 성을 나카다로 바꾸고 일본으로 가게 되는데



2015년 10월 16일, 사이타마 현 구마가야시에서 6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3일 오후 5시 반경, 거리에서 수상한 외국인이 어눌한 일본말로 돈을 요구한다는 신고가 접수되어 경찰들에게 체포되었다.

그 외국인은 페루로 돌아고싶지만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담11배를 피고 싶다는 그의 요구에 따라 현관 앞까지 데리고

나왔으나 그대로 도주해버렸고 행방을 알 수 없게됐다.

그 다음날 14일 저녁, 자택 2층에서 50대 중년 부부가 살해당했다.

이틀뒤 16일 오후 4시 반경, 다른 인근 주택에서 80대 할머니가 살해당했다. 

할머니의 집에 방문한 며느리가 혈흔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이 주변을 수사하던 중, 주택에서 칼을 들고 있는 외국인 남성을 발견했고 그 남성의 신변을 확인했다.



남성의 이름은 바이런 조나단 나카다 루데냐(Vayron Jonathan Nakada Ludeña)

일본으로간 페드로의 친동생이었다.

경찰에게 발칵된 바이런은 자신의 팔을 칼로 자해한 후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두개골이 부서지는 부상을 당하며 체포됐다.



그가 투신했던 집 1층 장롱에서 40대 여성이 피투성이가 된 채 숨져있었고

2층 장롱에서는 7살, 10살 딸들이 칼로 난도질 당한채 발견되었다.

바이런은 1985년 페루에서 10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누나의 증언에 따르면 형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며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동생은 원래 평범했지만 형의 살인사건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 이후로 정신상태가 불안정해졌다고 한다.

10년전에 일본으로 건너온 그는 공장을 전전하며 일을 해왔는데

오랜시간 일본에 살았어도 일본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공장 직원들은 그가 평소에도 거의 말을 하지 않고 혼자 밥먹을 정도로 외톨이었다고 한다.



재판은 총 13회로 진행됐고 일본 검찰청은 5개월간의 평가 결과 정신병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8년 3월 9일 최종 재판에서 그는 6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글이 짤려서 다시 올린다 다음편은 브라질 흡혈귀 살인마에 대해서 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