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이 풍년인 한국 좌익과 한국 마르크스주의
김대중은 거의 모든 저작에서 천도교인을 밝혔다. 꽤 긴 글로 신문에 기고한 글 조차 그것을 밝히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대중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는 늘 천주교였다.(나는 뭉가와 임종x이 천주교라고 바람잡는 모든 것을 부정한다. 더 이런 스타일이지) 김대중이 천주교로 공식적으로 기억돼야 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세계교회협의회를 좌파 위주로 이용해 먹는데, 김대중이 천도교임이 발각되면 “국제 예수 사기단”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갖가지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논리로, 천도교가 기독교인 이유 비슷한 논문도, 천도교가 천도교고 기독교가 기독교지 하고 반박을 국제적으로 하면 좌익은 와르르 무너진다.
김대중은 “3단계 통일론”과 “대중참여경제론”의 중심에 천도교 신앙을 꽂았다. 물론, 누군가 내 글을 분석하면 내 글의 중심에는 기독교적 가치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그 주장하는 사람의 신앙이 담기기 마련이다.
천도교에는 인본주의가 있다. 나는 히브리적 사고에서 초월적 요소가 제거된헬라인본주의가 아닌, 별도의 중국문명 인본주의를 부르는 용어로서 ‘무당주의’라고 표현해왔다. 어떻게 부르든간에, 〖별개의 의미를 별개의 의미로 부르는 표현만 부르면〗 다른 학자가 다르게 규정해도 내 주장에 동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서구 인본주의는 자아와 공공가치를 분리한다. 동시에, 공공을 통제하는 귀족에 의해 도구적 통제의 위험을 수반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 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 참조) 반면에, 한국 인본주의(중국문명 인본주의=무당주의)는 자아와 공공가치의 통합을 전제한다. 동시에, 公共性은 지역마을 마다 각각 나뉜다. (님이 좌익 연구에 조금이라도 노력했던 사람이라면, 함석헌이 서구는 자아와 세계가 분리돼서 인간소외요, 아시아는 자아와 세계가 일체가 됐다고 극찬하는 수 많은 구절들을 기억할 것이다. )
김대중의 통일론은 좌익 마을 연합의 恨의 토로다. 동시에, 이는 좌익 마을 연합 밖의 지점은 <마루타 되기>와 같다. 철저하게 公共性을 마을 연합의 소유로 간주하는 것이다.
김대중의 경제론은 좌익 정서를 기억하는 민중계층의 恨의 토로다. 동시에, 이들 연합 밖의 지점은 <마루타 되기>와 같다. 철저하게 公共性을 좌익 씨족 민중연합의 소유로 간주하는 것이다.
나는 천도교의 無爲而化교리를 악마 교리로 본다. 바로 無爲而化는 자신들이 이익을 쟁취하고, 나머지 영역을 사회에 전가할 때 사용된다. 자유경제원의 脫규제경제는 김영삼 때는 좌익들의 反반공정치와 연결돼서 움직였었다. 그 뿌리가 그러한데, 한국경제에서 실렸던 김쟁호, 민갱국, 정구되등의 칼럼에서 ‘자생적 질서’는 천도교의 無爲而化 그것이었다. 우파 천도교는 기업 편향인 경우가 많은데, 기업가들의 욕망을 채워주고 나머지는 <알아서>였다. 천도교의 無爲而化는 이만하면, 左로나 右로나 악마 교리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김쟁호 교수는 참 대단하다. 나는 거의 5년 전부터 좌익 경제학은 케인즈? 라고 말하는 거 자체가 민망하고, 그냥 샤머니즘 농민신앙 욕망의 정치위에 지은 것이라고 꾸준히 이야기해왔다. 그런데도, 추xx 가 헨리 조지를 중국 맹자 사회주의에 비교해도, 세상이 뭘 이야기해도 꿋꿋이 90년 이전의 한국사회의 논리에 우겨 넣고 있다. 그 논리의 이면에는 미국 남부 기독교가 ‘아시아 독재’를 덮어주는 가운데, 한국 우익이 미국 남부기독교 성향의 서방기독교 논리에 동화된 것과 연결된다. 그런데, 트럼프가 미국 남부 기독교 군중을 대변하는데, 잘못 나가고 있다.
한국 현대사 서술에서 가장 고쳐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인민재판>이다. 소련의 지령으로 누구 죽여!! 이게 아니다. 인민재판하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팔봉 김기진’의 인민재판과정은 이젠 그 심리가 이해가 된다.
소련 돈 먹는 사람들끼리 ‘소련’을 不事二君의 자세로 섬기는 가운데, 카프 대중화논쟁으로 좌익진영 원로란 자가 이승만 진영에 서 있다?? 인민재판 관련 김기진의 증언을 봐도, 한번도 듣도 보지 못한자가 자기 머리를 뭘로 쳐서 피가 용솟음치게 됐다고 지적한다.
일제시대 사회주의자들에 ‘해소파-비해소파’란 표현이 있다. 비슷한 심리다. 不事二君의 심리를 극단화한게, 일본압제 속에서도 카프를 유지한 비해소파요 프로예맹으로 이어졌고, 해소파가 남로당 박헌영 산하의 문학건설본부의 주축으로 이어졌다.
한국 우익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경제원처럼 좌익의 오류와 일정 부분 공유한 부분이 좌익 비판을 엉성하게 하듯이, 이는 조x제씨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노골적이고 노골적이고 더 노골적으로, 특정한 씨족들만의 사회를 사실상 지향하고 있는게 좌파정치다. 칼 마르크스 도입 이전에 四色黨爭이 늘 이런 식이다. 어느 귀족이 독점하면 그 귀족의 색깔로 천하가 물들어야 했다. 이런 시스템 입장은 딱 한가지 때문으로 가능했다. 조x제씨가 이승만 박정희를 샤머니즘 우상 신으로 만들면서, 대중심리가 바뀌어서 가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