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4년 1월 28일 오사카-----


File:Edo P detail.jpg

100만채는 정도는 될 듯한 집의 모두는 기와 지붕이다. 굉장하다. 오사카의 부호의 집은 조선 최대의 대저택의 10배 이상의 크기로, 구리 지붕에,내부는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사치스러움은 비정상이다.도시의 크기는 40 km 이며, 그 모두가 번영하고 있다.믿을 수 없다.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낙원이란,  사실은 오사카 였다. 세상에, 이와 같이 훌륭한 도시가 있다고는생각되지 않는다. 한양의 번화가의 10000배의 발전이다. 북경을 보고 온 통신사도 있지만 북경의 번영도 오사카에는 미치지못한다고 말한다.

더럽고 어리석은 피를 가진 짐승 같은 왜놈이 중화주의 시대에, 이 토지에 왔다. 그리고 2000년 간 평화롭게 번영해, 하나의 천황가를 존속시키고 있다. 원망스럽다.



(조선 통신사들은 오사카 "평민"들의 기와집을 보고 놀랐고, 일개 여자와 아이들까지 글을 읽고 쓴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으며, 자신들이 보는 광경이 수도 도쿄나 왕의 도시 교토도 아닌 오사카라는것에 졸도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1764년 1월 28일 교토-----




거리의 번영이 오사카에는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천황이 사는 도시이며, 매우 사치스러운 도시다. 산의 모습은 용장, 강은 평야를 둘러싸 흘러 비옥한 농지가 무한하게 퍼지고 있다. 이 풍부한 낙원을 왜인이 소유하고 있다. 분하다. 왜왕은 자신을 천황이라하여 아이나 손자에게까지 불리고 있다. 분하다.

이 개와같은 왜인들을 모조리 소탕하고 이 토지를 우리 조선의 영토로 하고싶다. 우리 조선 임금의 덕으로 예절의 나라로 삼고싶다.






-----1764년 2월 3일 나고야 -----




An 18th Century Kabuki Performance



거리의 번영, 아름다움은 오사카와 같다. 굉장하다. 자연의 아름다움, 인구가 많음, 토지의 풍부함, 가옥의 사치스러움… 난징에도 없는 풍경이다.조선의 수도는 나고야와 비교하면 매우 처량하다. 사람들의 아름다움도 최고다.






-----1764년 2월 16일 도쿄-----





좌측에는 집이 늘어서고, 우측에는 바다가 퍼져 있다. 산은 전혀 보이지 않고, 비옥한 토지가 무한하게 퍼지고 있다.누각이나 저택의 사치스러움,  사람들의 활기, 남녀의 화려함, 성벽의 아름다움, 다리나 배….모두가 오사카나 쿄토처럼 우수하다. 훌륭함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은, 나의 재능으로는 불가능하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은 나고야와 같다.  


=======김인겸, [일동장유가]========





당시 일본을 방문했던 조선 통신사들은 일본인 학자 '아라이 하쿠세키'와 면담을 하였는데, 조선통신사들은 도저히 그와의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고 함.

-----아라이 하쿠세키와 조선 통신사들의 대화-----

아라이: "이것을 보시오. 아란타(네덜란드)에서 수입해 온것이오."
조선통신사: "아란타가 무엇이오?"
아라이: "구라파(유럽)에 위치한 나라이외다"
조선통신사: "구라파는 또 무엇이오?"
아라이: "..."(이 씨발 미개한 원시인 새끼들은 도대체 뭐지 ㅡㅡ)
(중략)
조선통신사: "여기에 적혀있는 의대리(이탈리아)라는것은...?"
아라이: (참다못해 언성을 높이며) "귀국에는 만국전도(세계지도)가 없는것이오???"
조선통신사: "우리 조선은 대 중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며 고로 만국전도라는것은 필요치않소"
아라이: "..."(말문이 막힘)







아래 내용은 정조실록 47권, 정조 21년 10월 4일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상이 이르기를,

"전에 동래(부산)에서 표류해 온 배에 대해 이르기를, '아란타(위에서 나왔듯이 네덜란드임) 사람이다' 하였는데, 아란타는 어느 지방 오랑캐 이름인가?"

하니, 비변사 당상 이서구가 아뢰기를,

"효종조에도 일찍이 아란타의 배가 와서 정박한 일이 있었습니다. 동평위의 문견록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아란타는 서남 지방 번이의 무리로, 중국의 판도에 소속된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명사(明史)에서는 하란이라고 하였는데,  요즘 이른바 '대만'(지금 그 대만 맞다)이 바로 그곳입니다."

하자 우의정 이병모가 아뢰기를,

"당상 이서구는 주달한 바가 두루 흡족하니 참으로 재상은 독서한 사람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아란타(네덜란드)는 하란(대만)이 되고말았다... 일본에서 그렇게 쪽을 팔리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세계에 대해 알아볼 의지가 전무했다.







candlestick-charting

17세기 말 ~ 18세기 초, 일본에서는 현대의 주식시장과 흡사한 선물옵션 시장이 발달했다. 어느 일본인 상인은 이 선물 옵션 거래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막대 모양의 그래프를 그려서 시장의 흐름을 분석했고,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이것이 현재 전세계 주식 거래소에서 쓰이고 있는 봉차트의 기원이다. (Japanese Candle St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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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의 옆나라 조선에서는 숙종이 상평통보를 발행하여 원시적인 ""물물교환"" 경제에서 벗어나 화폐경제를 드디어 시작하고 있었다.






아래의 내용은 박제가의 '북학의'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언급된 조선의 실태이다.


"조선 백성들 중 하루 2끼니를 먹는 집은 열 가구 중 한 두가구에 불과하다. 비축해놓은 곡식이라고는 옥수수 몇자루와 마늘 수십쪽이 전부다."


"조선 백성들은 1년에 무명옷 한벌도 제대로 입지 못한다. 남녀 할것없이 태어나서 제대로 된 침구가 무엇인지 구경조차 못하며, 이불 대신 멍석을 깔고 살아간다. 아이들조차 겨울에도 벌거숭이로 생활하며 짚신조차 신지 못한다. 가난한 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의 백성이 그러하다."


"나무와 흙, 짚단으로 지어진 초가집이 대부분인 조선 백성들의 집은 무너지기 쉽고 불에 타기 쉽다. 조선도 하루빨리 벽돌과 기와를 널리 활용해야 할 것이다. 온돌은 방안을 제대로, 골고루 따뜻하게 덥히지 못하는데 땔감의 낭비조차 심하다. 해로운 연기는 아궁이 밖으로 나오기 일쑤이다."


"젊은 여자도 헐벗은 옷에 맨발로 다니기 일쑤요, 그 행색이 부끄러운줄도 모른다. 새 옷이라도 걸치는 날에는 행여 기생이 되지않았나 의심부터 한다."


"경상도 백성은 새우를 모르고 평안도 백성은 감과 감자를 분간하지 못한다. 바닷가 백성들은 해산물을 거름으로 줄 정도이지만 한양 백성들은 생선의 이름조차 모른다. 이 모든 이유가 조선에 길과 수레가 없기 때문이다."



"도성에서 몇 리만 걸어나가도 수풀이 무성한 시골이다. 재화가 제대로 유통되지 못하여 굶주리는 백성들이 많다. 학문은 과거 시험만을 위해 존재하니 백성들은 견문을 넓힐 방도가 없으며 글조차 제대로 읽지 못한다. 재능을 발견하고 식견을 트이게 할 수도 없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구한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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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니콜라 앙투앙 다블뤼(Marie-Nicolas-Antoine Daveluy, 프랑스)


조선인들이 대식가이기는 하지만 늘 그렇게 많은 양을 먹지는 못한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식탐이 조선인들이 가진 악덕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임금이나 고위 관직자들도 공공연히 폭음을 한다.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뒹굴거나 술을 깨기 위해 잠을 잔다. 그래도 아무도 놀라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내버려둔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것은 큰 타락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습이다. 그래서 허용되며 아주 고상한 일이 된다.

이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


가난, 불결, 폭음, 타락성에 깊은 인상을 받은 나는 조선 사람들 사이에 머물면서 그들에게는 비누와 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credit: Denver Public Library)
이자벨라 버드(Isabella Bird, 영국)

한양에 대해 이야기하는것은 매우 우울하다.

나는 한양이야말로, 이 세상으로 제일 불결한 마을이라고 생각했고

한양의 악취야말로, 이 세상으로 제일 심한 냄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시이며 수도이지만, 그 허술한 모습은 표현이 어렵다.  이층건물 이상의 집은 지어지지 않고, 추정 25만명의 주민은 미로와 같이 좁은 길의 맨땅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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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 예술은 전혀 없다.

공원과 극장조차 없다.

일본의 도시에 있는 매력이 한양에는 모두 없다.

종교적인 사원도(Temple) 없다.

조선인은 나태하고 무기력하며 몸도 옷도 불결하고 아둔하며 매우 무식하고 선천적으로 게으른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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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베잘렐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미국)


그들의 위생 상태는 말하지 않는 게 낫다. 아주 기본적인 위생 상식조차 없다.

오물을 치우는 것은 전적으로 길거리 개들의 몫이다. 곳곳에 널린 오물을 개들이 먹어치우니, 거리의 청결 여부는 개들의 식욕에 달려있었다.

오물이나 빨래를 한 물, 잡다한 물질들이 우물에 버려지고 있다. 어느 마을에서 콜레라가 퍼지면 그 이유는 뻔했다.




1.jpg(한양의 길거리에 오물이 널려있는 모습)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미국)



3.jpg(시골이 아닌 수도 한양의 모습이다.)

한양은 내가 본 도시중 가장 더럽고 보잘 것 없다.  거리의 더러움은 차라리 말하지 않는것이 좋다.

도랑에는 초록색 점액질의 걸쭉한 오물이 고여 있어서 지독한 냄새가 났는데, 이는 집집마다 버려진 분뇨와 쓰고 버려진 하수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더럽고 썩은 시궁창에 반라의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고 노점상들은 판자 조각을 시궁창에 걸쳐 놓고 그들의 상품을 팔고 있다.
개인 우물을 가진 곳도 상황은 심각했다. 마당의 반쯤은 오물더미인데 여자들이 태연하게 그 우물에서 식수를 긷고 있었다.
조선의 좁은 하수로는 오물로 가득차서 도로로 흘러넘쳤고 때문에 녹색의 이끼 낀 물웅덩이가 거리 곳곳에 가득했다. 그런 더러운 물에서 여인네들은 야채를 씻어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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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에서는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개좃선의 현실이다.

이렇게 처참했던 진짜 역사를 모르니 저런 국뽕 치사량급의 질문이 나오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