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짱 따라가려고 오늘 내일하는 틀딱이다.

오늘은....사실 일베가입하고 게시글 첨이지만...험험...

자칫 묻혀버릴 수 있는 우리나라 인터넷산업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일게이들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노인증주화를 방지하고자 감사패,경력증명서,명함등등을 찾아봤지만 틀딱답게 이사를 자주다니다보니 없어졌노.

노인증주화 달게 받으마. 사람들의 이름은 최대한 가려서 쓸거고 중간중간에 은유가 들어갈거니까 대충 알아먹어라.

급식들이야 뭘 알겠노. 나중에 뼈빠지게 일하고 나서 세금 내봐야 빨갱이가 뭐고 나라꼬라지가 어떻고 은유가 뭔지 알겠지.

난 머가리가 나빠서 암기는 못하지만 상황기억력이 신내림받은듯 좋은 편이라서 아래 내용은 99% 정확한 나래이션이라고 확신한다.

언제, 무슨사건 하면 관련된 영상과 말이 떠오르면서 과대망상환자가 가지치기 하는듯한 기억력이 되살아난다고나 할까.

뭐, 민주화 폭탄 쳐맞고 운지할 가능성도 있지만 누군가는 얘기를 해줘야 할거 같은 쓸데없는 역사의식이 발동했다 이기야.

쓰레기 같은 글들도 넘쳐나지만, 수많은 좆문가 게이들의 깊이있는 성찰을 거친 글들로 인해

내 자신이 스스로 많이 깨우치게 되면서, 일종의 보답하고자 하는 심리가 영향을 미친게 아닐까 한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보면 시제가 혼돈스러울 수 있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통신업종에 있는 게이중에서 몇명은 대충 나를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뭐 어떠노..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의도치 않게 일밍아웃이노.


때는 바야흐로 딱 2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거국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취업했다. 다른과 애들이 140학점 수강할때 졸업학점이 우리과만 160학점이라 헉헉댔는데

결정적으로 권력욕에 눈이멀어 다른공부한다고 학점3.0을 못받아 어쩔수 없이 재수강하느라 거기서24학점 더 들었다.

등록금 본전찾기 ㅅㅌㅊ??

IMF (97년11월이었을껄) 터지기 직전에 운좋게 좆소를 들어갔는데 거기가 두루넷이라는 회사였다.


왜 거길 들어가게 됐나 하면....

여의도MBC 최종면접에서 질문하나 못받고 광탈하고 나니(6명 들어갔는데 3명이 질문못받음. 흙수저 ㅍㅌㅊ?)

대기업입사시즌은 끝나고, 할 수없이 먹고살고자 하는 일념하에

구로공단 안에 있는 무선전화기 관련회사에서 5개월간 월급64만원 받고 일하다가 때려치게 된다.

같이 일하던 김대리가 같은부서의 공고졸업한 사원의 신용카드를 훔쳐서 회사지하 ATM기에서 돈을 빼다 발각되는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아마, 그곳출신? 난 큰 충격을 받았고 세상은 요지경이란 말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몇달 백수로 지내다 MBC입사에는 실패했지만 여의도 입성은 하고 싶어서

3M 기술영업직으로 지원해서 약10여분간의 3:1(면접관이3명) 압박면접을 통과하고..좀 빡셌던걸로 기억한다..3M 한국본사로 입사한다.

여의도 대투빌딩33층 강당에서 약1시간 가량 미국사장의 환영사를 통역없이 들어가면서 촌놈은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토익리스닝의 짧은 듣기만 접해봤던터라, 듣던 내내, 1분 있다가 통역해줄랑가? 3분 있다가 통역해 줄랑가?

계속 사장옆에 서있던 새끈한 비서한테로 시선을 돌리던 멍청한 나자신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3M은 미네소타주(Minnesota)에서 광산업(Mining)을 하다가 찌끄레기 남은 가루로 샌드페이퍼를 매뉴팩쳐링(Manufacturing)하면서 생겼다.

미네소타마이닝 & 매뉴팩쳐링의 앞글자 3개를 따서 3M이다. 궁금한 게이 있을까봐 알려준다.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3M이 테이프가 3미터라는 뜻이라고 알고 계십니다."라고 자기소개하던 간호사출신 경력직 여자 동기가 떠오르노.

잘 살고 있나? 아니면....


다음날, 신입사원 교육이 시작되고 "We are 3M er!"라는 이상한 구호를 처음 접하고 나서 선배사원들의 호구조사가 시작됐다.

샌프란시스코, 줄리어드, 등 첨 들어보는 미국대학교 이름을 대면서 후배를 찾는 것이었다.

어, 회사 잘못 들어온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강하게 뇌리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다음날 시작되는 합숙훈련시간을 통보받고 여의도 사거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가던 때였다.

"두루넷인데 서류 합격하셨습니다. 내일 면접보러 오실수 있나요?"

PCS인지 씨티폰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연락을 받았고, 그당시 잘나가던 국제전화 회사인

온세통신(온세상을 연결한다라고 해서 지었졌던 이름으로 기억한다)에서 연봉2900받던 아는형이 생각나서 얼른 "네."라고 대답하게 된다.

"네."라고 대답하는 순간 이제는 촌에서 사귀던 여자친구랑은 헤어질거 같다는 강한 직감이 싸하게 몰려왔다.

이제는 여길가던 저길가던 서울에 정착할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내가 백수로 지낼때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 Anna는 친한 치과의사 언니랑 동남아 여행간다고 나랑 사이가 틀어졌었는데

왜냐하면 나는 돈이 없었거든...그 이후로 내가 반대하던 쌍꺼풀 수술도 하는 바람에...난 더 삐져버린것도 있고...

ANNA는 원래 예뻤거든, 얼굴에 그렇게 칼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거늘...


여의도 현대건설 빌딩 몇개층을 빌려 한창 사업을 시작해 나가던 두루넷은 갑자기 사옥을 서초동에 사서 그쪽으로 이전하게 된다.

뱅뱅사거리 건너편 우성아파트 마주보는 사옥이였다. 지금도 거기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신길동에서 살던 나는 강남역까지 빡센 통근길을 매일 힘들게 치러내야 했다.

당시 강남역에는 나라시택시가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강남역출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4명이 타면 출발하고

각자가 원하는 위치에 내리면서 천원을 내면 뱅뱅사거리에서 유턴하고 돌아오는 코스였다.

그때도 김치녀가 손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뭐하는 회산지도 모르고, 통신회사니까 돈 많이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입사한 병신 일게이는

회사의 사업내용이 뭔지, 그리고 연봉이 2400이라는 것을 한달 지나서 신입사원 교육이 끝날때 쯤 알게 된다.

밥값은 매월 20만원 수표로 한 장 더 받았다.


두루넷은 한국전력, 삼보컴퓨터가 주축이 되어서 한국전력의 2.5G 통신망을 빌려 기업들에게 전용회선을 제공해주는 회사였다.

전용회선은 회사지점간, 혹은 본사와 지점간에 데이터 전송을 위해서 구축하는 말그대로 그회사만 쓰는 통신망을 말한다.

그당시 한전은 각 사업소, 변전실, 센터끼리의 통신을 위해서 자체통신망을 2.5G의 대역폭으로 구축해 놨는데

이게, 산에 보면 송전탑 있잖아 초고압154,000볼트 송전선로, 그 전기선하고 광통신 케이블을 같이 깔아놓은 거야.

지금이야 2.5G 정도면 우습지만 그당시 대기업의 전용회선은 보통 56kbps~512kbps가 대부분이였어.

그렇기 때문에 용량은 큰 문제가 없었고, 송전탑이 무너지거나 할 가능성도 거의 없을 뿐더러

설사 통신망이 끊기더라도 Ring 형태로 동그랗게 우회선로를 구축해 놨기 때문에 매우 안정적이었다.

나중에 나스닥 상장전에는 빌게이츠도 회사를 방문해서 한전 2.5G망의 안정성을 칭찬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나스닥인베스트 관련사이트에 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대주주로 나온다.

사진파일 붙일려니 안되노? 역시 틀딱의 한계인가....

빌게이츠도 실패의 역사가 있다는 것에 일게이들은 위안을 받기 바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알쥐?


한전은 소매통신업을 못하게 법의 제약을 받으니까 할 수 없이 통신망은 한전에서 두루넷에 제공하고

이걸 임차해서 두루넷은 기업, 관공서등을 상대로 전용회선 영업을 했던거야.

요즘으로 치자면 알뜰폰사업자가 메이저통신업체에서 전화망을 빌리는거랑 같은거야.

그당시 망구조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아.

기업A지점 ----두루넷이 광케이블 포설 ----한전A지점--2.5G 자체 통신망--한전B지점-----두루넷이 광케이블 포설-----기업B지점

광케이블을 포설하는 공사를 건설팀이 맡았고, 기업통신실에 장비를 설치하고 장애처리등의 업무를 운용팀이 맡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윗분들이 통신실을 지하에 설치해서 여름 폭우내릴때 지하주차장 입구에 삽질해서 모래가마니 쌓는 지랄하기도 했다.

지금도 남산터널 옆에 있는 남서울T/C에서 작업하고, 대치동 한전본사 지하5층에서 한전직원들한테 잔소리 듣던게 생생하다.

초라한 행색으로 E1급, T1급 먹스 광통신장비를 박스째로 들고, 노트북가방에는 각종 스트리퍼나 MDF작업도구, 케이블등을 챙겨 다녔다.

차도 없어서 버스, 지하철을 옮겨타면서 자괴감이 들었던 기억이 나는군. 무슨용어들인지는 설명 생략할께. 문맥으로 알지?

고객중에는 OO은행 남대문센터가 가장 빡셌는데, 통신이 1초라도 깜빡하면 난리가 났다. 아마 해킹우려 때문인것 같았다.

나중에 후임으로 들어온 녀석이 전산담당자들이랑 포커판을 벌이면서 친분이 생겨 가끔 무마시키곤 했다.

OO정보는 증권프로그램 관련업체였는데 새벽에도 망이 이상하면 전화질을 해서 교대근무할때 매우 피곤했던 기억이 있다.


난 촌놈 출신답게 멍청하고 착하던 편이어서 욕도 한마디 할 줄 몰랐는데,.... 그래서 X미, X순 등에게 대쉬를 받았다.

극히 일부 공고 및 전문대 출신 윗대가리중에는 4년제 나온 병신을 싫어하는 놈도 있어서 지방찌끄레기 대학나온 나를 괴롭히곤 했었다.

난생 처음 본 창문 블라인드를 제대로 열지 못한다고 "니네집에는 이런거 없나?촌놈"이라고 남들 앞에서 망신시키고 낄낄거리던 새끼

책상 서랍 잠그라고 그랬는데 안잠그고 다닌다고 내서랍 몰래 잠그고 열쇠 숨기는 새끼

나중에 열쇠쟁이 불러서 3만원주고 열었더니 그제야 열쇠내놓더라. 십새끼. 호수에 빠져 뒤져버렸으면 좋겠다.

교대근무자가 예비군 훈련갔다고 24시간 근무서라고 한 새끼, 어떻게24시간을 서냐니까,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하던 새끼

무릎이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해서 뼈주사 맞으러 댕기면서 이대로 장애인 되는거 아닌가 우울한 와중에 꾀병부린다고 덮어씌우던 새끼

홍XX,X호X, XX석... 뭐, 이런 이름들이 떠오르네. 완전 정글같았다. 갑자기 화가 나네.


그래도, 그당시 유행어 뜨아~ 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 자신의 샤프한 두뇌를 속이고 멍청해 보일려고 노력하시던

삼보출신 김과장님의 다정한 배려로 회사에 정을 붙일 수 있었고,

서울대 출신으로 쌍용자동차 리무진 개발일화를 들려주던 점잖은 O호 형,

파란 마티즈 타고 다니던 착하던 딸바보 아빠 O철이 형, 영어도 좀 했다.

만도다니다 온...출근하다말고 교사직업을 가진 형수랑 읍....이름이 기억 안나네..전주출신 형.

트레일러 운전하다 들어온...얘도 이름 까먹었다...등등..정많고 웃기고 착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후로 나는 학력에 대해 편견이 생겼고, 사람을 처음 만나서는 그 사람의 매너를 빨리 파악하려고 하는...변화가 생겼다.


여차저차 회사생활 하던중에,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 생긴다. 98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당시 스타크래프트 독점판매로 잘나가던 한빛소프트에서 백OO씨가 두루넷 전무로 오게된다.

성씨 말고는 이름은 기억 안난다. 그당시 코미디언이었던 백재현과 비슷했던걸로만 기억난다.

그리고는 백전무를 중심으로 브로드밴드 사업, 즉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론칭하게 된다.

그당시 전봇대에 동축케이블 (주택가 전봇대에 있는 케이블텔레비전 선로 생각하면 된다)을 매달아서

각 가정에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면 HFC 케이블 되시겠다. 궁금하면 찾아보도록.


그런데 이 초고속 상품의 가격은 월3만3천원에 부가세가 붙어서 3만7천원 정도였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전화+IPTV합한게 이정도 할텐데, 그당시 IMF터지고, 4~50대 가장들 맨날 한강에 몸던지고,

마누라년들은 남편실직했다고 애들 내팽겨치고 집나가고, 자식들은 먹고 살려고 군대지원해서 박터지는 상황이었고

부동산 폭락해서 집주인들 전세세입자한테 쩔쩔매던 경제상황이라 월4만원 가까운 가격은 일반서민들한테는 매우 부담스러웠다.

이러다 보니 장사가 잘 될턱이 있나. 급기야는 임원진들간에 불화가 생기고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접자는 기류가 형성되었다.

임원들끼리 격한 회의를 거쳐 사업을 접자고 결론이 났는데 백전무가 "난 이거 할려고 두루넷 왔으니 이거 안할거면 회사 그만두겠다"

이러면서 배수진을 쳤고, 그바람에 좀 더 사업을 지켜보자고 판이 뒤집혀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가입자가 폭증하게 된다.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건설팀에서는 전봇대에 케이블 거느라 바빠서 한전소유의 전봇대임에도 불구하고 허락도 맡지 않고 무단으로 공사를 해댄다.

한전에서는 케이블 끊어버리겠다고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회사는 난데없는 돗대기 시장판처럼 서울시내 여기저기서 공사판이 엄청나게 벌어지게 된다.

KDN이라고 불리던 한전네트웍스 직원들은 날마다 분홍색 보자기에 뭘 갖다 나르고.... 뭔지는 안알랴줌.

그다음주도, 그 다음달도...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왜 안팔리던 초고속인터넷이 이렇게 갑자기 신청이 몰려들까....


문제의 연예인 동영상이 이슈가 된다. 요즘 핫한 동영상이 있는데 이걸 다운받으려면 전화선 통신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사람들은 "오!"라고 탄식을 뱉는 영상이 있다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잖아?

그래서 몇몇 동료들과 함께 그당시 우리팀에서 얼리어답터였던 O호형의 반지하 자취방을 방문하게 된다.

형은 남동생과 같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그당시 자동차는 뉴엘란트라를 소유하고 있었다.

형은 이미 초고속인터넷을 신청해서 사용중이었고 그 사용감, 파일다운 속도의 희열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서 우리 일동은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약700MB의 동영상이 단 1분20초만에 완벽히 다운이 완료되고..읍읍...


탄력을 받아서, 다음 연예인 동영상이 터지고, 침대도 잘 팔리고, 씨가렛(ㄷㅂ가 왜 금지어지?)도 많이 팔리고

ㅆㅂ 갑자기 서민경제에 활력이 붙기 시작하노.

TRY 빤쓰를 만드는 백양이라는 회사는 주가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하고,,,,으잉?


그당시 KT는 56Kbps 모뎀으로 각가정에 인터넷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시작하려고 폼잡기 시작하던 때였고

막 사업을 시작한 하나로통신은 시내전화 가입자가 의외로 돈이 안되어 고민하던 때였다.

이 두회사는 초고속인터넷으로 방향을 급선회 하였고 한국은 초고속인터넷 전성시대를 맞이한다.


이후 두루넷은 나스닥에 상장하고 9만원대를 넘나들면서 회사주식을 가지고 있던 직원들한테 한껏 과소비를 조장하고

사장은 우리도 30만원,,,,100만원 가즈아를 외치며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나도 약4억5천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그당시 신림동 주공아파트 신규분양가가 1억2천이었고 회사옆 한우마을이라는 식당의 불고기백반은 6천원이었다.

나스닥상장된 주식을 거래하는 법을 몰랐던 직원들은 곧이어 코스닥상장도 하면 벼락부자가 될 생각에 한껏 신났다.

그와중에 전세값때문에 사내직원에게 지분을 정리한 운영팀 서무 여직원 얘기에는 참 안됐다,,앞날을 몰랐네...하면서 측은해 했다.

그러나 인간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뒤늦게 초고속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던 KT는 DSL방식,, 기존 전화선에 모뎀만 꽂아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했고

하나로통신은 IMF때 사업을 안하고 받았던 이자로 자산을 불려 아예 "집앞까지 따라와봐"를 외치며 광케이블로 전국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두루넷은 신규가입자가 생길때마다 집안까지 케이블을 깔아서 들어가야 했고

KT에서 3달무료, 5달무료 이벤트로 경쟁하자 원가싸움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관련법도 개정되어 한전은 자체 통신자회사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한전의 통신망을 독점 임차했던 두루넷은 낙동강 오리알처럼 서서히 사운이 저물게 된다.

사운이 급격히 기울면서 나스닥에 상장되었던 주식은 퇴출되면서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고

수많은 낮과밤을 지새우며 젊음을 바쳐 회사일에 매진하던 직원들은 공허한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고 하나둘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결국 두루넷은 하나로통신과 합병하고, 자금압박으로 뉴브릿지 점령군이 들어와서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하나로통신은

SK로부터 1200억(2005년?액수는 정확함)의 출자를 받는것으로 시작해 ,,,,, 다시 SK에 인수되기에 이른다.

쓰다보니 글 꼬라지가 용두사미가 되어 버렸네. 틀딱들 하는짓이 그렇지 뭐...

반응좋으면 다른글 한 번 더쓰고..사진붙이는법 좀 알려도고...일게이들 좋아하는 요약 들어간다.

3줄요약

1. 서울 서초동 일대에서 두루넷이 초고속사업을 시작함

2. 백전무의 고집으로 초고속인터넷 시장이 열림

3. 연예계 그분의 도움으로 시장이 완전히 자리잡음...파일 배포의 배후는 알쥐?...그거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