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노장세대의 ‘주연배우’고집이 빚는 文弱초래와 전력약화 사태
1) 이 시대 좌파와 싸우는게 아니라, 청년세대에 몇 물간 사고틀에 적응을 통한 헛손질 유도한다.
나는 좌파의 平和담론을 뚜렷한 역사적 기원을 두고 해석한다. 검색해보시라. 1987년에 정한모 장관이 월북작가 해금 선언했다. 그 이후에 남로당 관련 문인들과 일제시대 사회주의 평론선이 대거 나오게 됐다.
그 이전과 이후는 얼마나 다른가?
특히, 당시에 해방공간에 남로당 성향의 문학과 평론이 대거 공개가 됐다.
일베에서 다양한 아이디로 김영삼 때 조선일보를 통해서 대거 이런 문학들을 대중화한 것에서, 20년간 곰삭은 결과를 올렸다.
그 이전의 우익 담론은 어떻게 됐나?
사고틀은 1949년에서 1951년 사이에 형성됐다고 한다. 조연현의 [한국현대문학사]는 단순히 현대사가 아니라, 당시에 문인협회가 깊숙이 이승만 정권 수립의 지원 병력이 됐고 국민통합의 프레임 형성이 됐다.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신론]은 그 현대사틀에 고대사와 중세사를 덧 씌운 것이다.
反共에 있어서는 일본 우익담론의 직수입이 대세였다.
즉, <민족> 대 <외부의 소련 꼭두각시 충>의 대립이다. 꼭두각시. 傀儡란 말은 그런 흐름과 연결됐다.
그 당시의 학자들이 잘못을 해서 잘못된 판단을 한게 아니다. 정보의 순환이 없었다.
일본과 달리 한민족에게 민족담론은 일제시대 신간회운동에서 상징적이고, 民族이 사회주의와 반대편이 아니라 사회주의와 연결돼서 움직였다고 한다
이것은 국문학과 현대문학에서 ‘전향선언’으로 한국과 일본의 전향 문제를 추적한 사람만 아는 부분이다.
70대들에게 있어서 노멀한 사고는 최소한 94년에서 더 발전하지 않았다.
그 교육을 받았던 세대에겐 계속 좌익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학교에서 업그레이드 되는 자료를 보아야했다.
【현재로서 노장 세대의 복제품만 존재하는 우파진영은 심각한 회의감을 준다.
거두절미. 서울대 국문학과 출신인 김미영씨는 적어도 새로운 자료로 추가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80년대 후반에 서울대 국문학과 김윤식교수, 권영민교수 등이 카프 대중화논쟁으로 팔봉 김기진, 회월 박영희, 임화, 김남천 등의 논의를 허벌나게 했다. 그 이후 20여년이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정상과학이라고 간주되는 좌익에 넘겨준 틀을 기준으로 사고하여 논쟁적으로 바꾸는 게 정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조x제씨와 노장층들은 현재의 틀을 좌익에 내주고, 그 이전 버전으로 노장세대로만 굳히게 하고 있다. 이는 패배 지향적이다.]
2) 숨은 인재가 안 나온다. 감정을 끌어모아서 대중 논설 연사하는 비슷비슷한 사람만 나온다.
대학가에서 우파정체성으로 자유민주주의 연구하는 학자는 다수가 아니다. 그래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분들이 대중사회에 나오지를 못한다.
잘못 하여 나섰다가 잘릴 수 있다는 위험 때문이다.
조x제기자는 중국사를 다뤄도, 한국현대사를 다뤄도, 법학을 다뤄도 전부 자기가 애드립친다. 그 분야에서 더 잘할 수 있는 ‘임자’의 진출길을 적극적으로 틀어막는 셈이다.
그 분야를 더 잘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봉쇄로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마치, 황교안 씨 진출 봉쇄 비슷하다.
우파 여론형성 사회에서도 ‘신종교 무당신앙’(천도교 등)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겐 제도권에 발도 못 붙이게 하는 상황이다. 이런 피해는 고스란히 우파에 모두 전가된다. 이익은 할아버지 논객 상층이 누린다.
3) 장년 포퓰리즘에는 우파 노인 논객이 힘이 있는데,.... 다양한 아랫세대들의 영향력이 거의 없다.
좌파들은 딱!! ‘억울함’의 포인트를 잡고 억화감정부터 일으키며 이야기한다.
반면에, 우파 사회는 우파장년 노년층의 ‘하나마나’한 진부한 말(이미 몇 사이클 지난 옛날식 우파)로, 장황하게 훈계한다.
오히려, 그것을 다 안다.고 깔고서, 억울함을 일으키는 포인트로 프레임을 잡으면 어떨까? 세대별로 그것을 집단창작으로 하면 어떨까? 큰 메시지만 잡고 세부는 자율창작하면 큰 효과다.
드루킹 사태에서도 뭔 놈의 하나마나한 훈계가 그리 많은지.
그런 훈계조는 자한당 정치인에서도 나타난다.
솔직한 이야기로 집단창작과 협업. 큰 틀만 정해주고 나머지는 전부 빠져 버리는 것의 힘을 우파노년층은 너무 모른다.
결국, 선거 때는 感情의 정치다. 감정은 각 분야에 진출한 스페셜한 이들이 더 잘한다.
4) “신종교 우파” 틀 밖을 못 나가게 하려는 아집이 우파를 궤멸에 빠뜨린다.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법리가 있어도, 그 법리는 조x제씨 앞에서 정지가 돼 버렸다.
자유통일이란 조x제씨 창작용어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황교안씨는 자기 스스로 정치권을 고사했다고 하나, 냉정한 말로 양반들의 정치파워 게임을 닮아버린 틀에 기회가 없는 것이다.
우파는 확실히 느끼는데, 고의로 청년층을 고사시키면서 장년 포퓰리즘으로 좌파와 하기로 무슨 특약(?)이 있는 것 같은 의혹을 느낄 때가 많다.
사실, 신종교 우파는 극우 문제로 좌익에 상처를 준 당사자다.
그러나, 일반국민은 좌익에 상처입은 기억 밖에 없다.
신종교 우파는 좌익에 상처입은 기억은 단 한번도 닦아주지 않고, 계속 자신들이 좌익을 장악할 수 있다고만 하며 권력을 모으는 기세다.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 파벌들이 우파에는 권력집중을 허락안하는 방향으로 모으고 있다. 뭉가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차지해도 뭉가파벌을 궤멸적 수준의 적폐청산을 하는 것이, 국제고립을 감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언제든지 가능한게 있다.
뭉가가 백두돼지만나서 파시즘적 권력 집중하고 있다. 유불선신앙으로 우회한 볼셰비즘 복원하고 있다. 그것을 암호화시켜서 말하며 일반국민을 속이고 있다.
이런 측면의 전면화다.
민주화 이후(1987년 이후) 생긴 억울함의 전면 조사다.
이를 미루면 미룰수록 신종교 우파의 극우 때 문제로 나아간다. 그러나, 신종교 우파는 좌익에 상처입은 기억만 있는 일반인에게 전가하는 분위기다.
나는 지금 박근혜 때 이후로 형성된 청년 운동가 같은 아랫세대는 무의미하다고 본다.
조x제씨가 94년 쯤의 자료에 갇혔는데, 그 이후에 나온 자료들. 그것을 성실하게 정복한 사람들의 문제다. 그들에 기회가 없다. 기회를 안 주면 좌로 기운 운동장이 된다. 결국, 우파는 현실 대응력이 사라진 1970년대 우파의 관습으로 가게 된다.
90년대 이후 우파의 청년운동가는 노인 우파논객의 ‘시다바리’역할로 착실히 복사를 하며, 조x제씨 아랫세대로 볼 수 있는 자료를 못 봤다.
조x제씨는 관중 타령으로만 내가 본 것만 15년이다.
그러나, 지금 고등학생들은 동아시아사라는 교과목을 배운다. 한문으로 꼭 중국학을 본다고 으스댈 필요가 없는 때다. 물론, 우파는 반중이다. 그렇다고 아메바적 반중을 할 수는 없다. 김x민씨처럼 반중한다면서 중국신앙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익의 역사는 협력의 역사다.
1인이 온전히 전부 복원할 수 없다. 협력을 해야 한다.
박정희 정부의 국민교육헌장처럼,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하는 노력으로 장기간 보내온 이들이어야 한다.
이런 거 진흥이 사라졌다.
그냥, 평생동안 쭉 해먹는데 아무도 도전 못하는 비보호상태를 고의로 만든다.
그런 틀이니까 ‘글’의 퀄러티도 당연히 보장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