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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러시아 대기근 동안 굶주림 때문에 목숨을 잃은 가족의 고기를 좌판에 벌여놓고 이를 판매하는 소작농 부부. >

 

볼가 강과 사마라(Samara) 강이 합류하는 러시아 남동부.그곳에 인접한 지역에서 발생한 기근은 1921년 초반에 시작되어 1922년까지 계속되었다.이것은 제 1 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내전,  가뭄,  그리고 레닌의 식량 몰수정책이 낳은 결과였다.   이 재앙속에서 약 3천만 명이 영향을 받았으며,  5백만 명의 사람들이 영양실조로목숨을 잃었다.

 

굶주린 농민들이 매장된 시체를 파헤쳐 먹는 등 인간이      인육을 식품으로 먹는 사례는 당시 러시아에선 합법적인 생존 방법으로 여겼으므로      경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살해당한 가족.   혹독한 겨울이 찿아왔을 때 처음에 배고픈 농민들은      자신의 애완동물을 잡아먹기 시작했는데,  결국 먹을 음식이 떨어지자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면서 아들이나 딸,  또는 친척 중 한 명을 식량으로 선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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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경,  소련 사회주의의 대기근 동안 굶주린 아이들과 함께 한 소작농 부부>

 

 

러시아 공산당 혁명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즉 1917년 이래  "레닌"으로 잘

알려진 인물은 동족들의 고통에 대해 무시무시한 경멸속에서 오히려 그는 가난한 소작농

들로부터 음식을 모두 압수하도록 지시했다.

 

레닌의 볼셰비키당은 농민들이 볼셰비키 혁명 노력을 훼손하려고 했으며,  혁명군에게

식량을 제때 내주지 않아 힘을 약화시켰다고 믿었다.  그러나 대기근은 제 1차 세계대전과

5년간의 러시아 내전 및 가뭄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가 원인이 되어 3천만 명의 러시아인이

굶어죽었는데,  레닌은 "농민들이 그냥 굶어죽게 내버려두라"고 선언했다.

노르웨이의 극지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이 1921년 러시아 사마라 시를

방문하여 자신이 보았던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거의 모든 도시가 배고픔으로 죽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보다못한 프리드쇼프 난센의 구호노력 덕분에 유럽에서 모금한 400억 스위스 프랑과

함께 음식을 얻을 수 있는 900여 곳의 구호소도 마련했지만,  레닌은 외부로부터의 식량

원조 또한 거절했다.   왜냐하면 이 원조를 빌미로 경제.정치적 간섭을 받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소작농들의 암거래 시장에서 인간의 육체를 거래하도록 만들었다.

인간의 시체로 만든 소시지가 시장에서 버젓이 판매되었고, 레닌은 기근 직후인 1924년에

사망했는데,  이어 소련의 지도자가 된 스탈린 역시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발생한 대기근 때 레닌과 비슷한 선례를 남겼다.

 

 

 

이하는 당시 레닌이 일으킨 인공기근으로 인해 고통을 당했던 러시아인들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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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러시아 볼가 강 인근에서 기근에 시달리는 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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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0월,  러시아 기근 중 사마라 강 유역에 사는 굶주린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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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러시아 사마라 시의 한 병원에서 울부짖는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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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사마라 시의 한 병원에서 담요에 싸여있는,  굶주린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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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러시아 사마라 시 거리에서 진행된,  굶어죽은 아이들의 합동 장례식.

 

 

*한줄요약:공산주의는 세계의 질병이자 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