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이 컸구나, 예전에 볼 때는 요만했었는데.”
 “시끄러워, 이 할망구.”
 “아버지는 무사히 잘 계시니?”
 “파파는 상관없어.”
 공주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음에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파파는 할망구에겐 너무 물려서 말이야. 이 내가 직접 심판해주러 왔어.”
 “아, 그럼 이건 너만의 독단이네?”
 “상관없어. 네가 뺏은 몸의 원래 주인의 언니로서, 그리고 네가 죽인 사랑스러운 내 남동생의 누나로서, 파파 대신 벌을 내릴 거야.”
 공주는 웃으며 말했다.
 “아주 고통스러운 벌을.” 
 “...”
 “그럼 간다, 할망구.”
 공주의 오라인 황금빛이 강해지더니 그녀의 몸에 갑옷이 나타나 착용되어졌다. 
 곧 그녀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갑옷으로 채워졌다. 
 그녀의 손에서 기다란 손잡이가 달린 거대한 철퇴가 나타났다. 그녀는 철퇴를 꽉 쥐었다.
 완전무장이었다.  
 “정말 고약한 악취미네. 무장도 하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완전무장이라니.”
 공주의 갑옷에서 바람이 솟아나왔다. 그 바람은 점점 강해지더니 이윽고 풍압이 되어 공주의 갑옷을 감쌌다. 
 지금 공주가 입은 갑옷과 그 주위로 강한 기류가 돌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은 다가가기만 해도 바람에 몸이 찢어진다.
 공주의 몸이 공중으로 떴다. 
 갑옷을 감싼 상상초월의 기류를 이용해서 공중으로 떠오른 것이다. 
 물론 그 기류를 조정하는 것으로 비행도 가능했다.
 ‘온다.’
 에시는 품속에서 두 개의 단도를 꺼내들었다.
 ‘미치겠네. 이 검으론 갑옷도 못 뚫을 텐데.’
 에시는 웃었다. 물론 눈은 웃고 있지 않았지만.
 
 공주는 이쪽으로 빠르게 닥쳐왔다. 
 그리고 두 손으로 힘껏 철퇴를 휘둘렸다. 
 겉모습은 소녀지만, 진조다. 
 가장 강한 인간 남자가 그녀와 팔씨름을 할 시에 그의 팔은 간단히 꺾일 것이다. 꺾이는 수준을 넘어 팔이 돌아가 관절이 끊어지겠지.
 철퇴가 날아왔다. 
 에시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간신히 피했다.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다.
 풍압에 의해 굉장한 힘의 격류가 이계를 휩쓸었다. 
 에시의 빨간 망토가 휘날렸다.
 ‘한방만 맞아도 골로 가겠는데? 그나저나 철퇴라니...’
 공주는 저 멀리까지 간 다음 바람을 역방향으로 제트 분사하여 몸을 돌렸다. 
 에시는 마치 기마병을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이 있었는데... 뭐였더라?’
 공주가 투구의 얼굴가리개를 열자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다.
 “잘도 피했네. 하긴, 한방에 끝나면 재미없지만.”
 그녀는 투구를 닫고 다시 철퇴를 잡았다. 그리고 자세를 잡더니 다시 날아들 자세를 취했다.   그걸 보고서 에시는 떠올렸다.
 ‘그래, 투우. 투우를 하는 기분이야.’
 당연히 소는 공주고 자신은 투우사였다. 
 제한시간 따윈 없다. 
 그녀가 죽을 때까지 시합은 계속 될 것이다.
 ‘젠장, 어떻게 하지.’
 순간 에시는 떠올렸다. 
 자신을 이 망할 곳으로 이동시킨 물건을.
 1인용 텔레포트 아티팩트. 1인용인 대신에 쿨타임이 짧았다. 그녀의 기억 상으론 한 시간에 한번 쓸 수 있었다.
 ‘그래, 분명 내 기억이 맞을 거야.’
 하지만 한 시간이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제길, 온다.’
 공주가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빨랐다. 
 에시는 반응할 새도 없이 바로 위로 뛰었다. 
 공주는 섬광처럼 단숨에 이계를 가로질렸다.
 에시가 다시 아래로 착지하자 공주는 그새 저 편으로 가있었다. 
 에시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야, 이거 스릴 넘치는 걸? 이런 기분 오랜만이야.”
 공주는 얼굴가리개를 열었다.
“...이번에도 피했네.”
 ‘좋아.’
 에시는 순간적으로 작전을 세웠다. 
 그렇다. 점프하면 그만이다. 
 아무리 공주라도 방금처럼 비행하는 도중 갑자기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
 ‘좋아, 이렇게 가자.’
 그때 공주가 말했다.
 “하는 수 없네. 이번에는 작전을 바꿀 수밖에.” 
 그녀는 얼굴가리개를 닫고 철퇴를 쥐었다. 
 그리고 위로 날아올랐다. 
 ‘이번에는 천천히 쫓아올 셈인가.’
 공주는 위에서 에시에게로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에시를 유도탄처럼 따라다니면서 공격할 셈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걸?’
 에시는 뛰어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달리는 등 공주를 따돌렸다.
 ‘좋아, 이렇게 시간만 버티면...!’
 이건 순전히 기동성의 문제다. 
 전신갑옷의 기동성을 보완하려고 비행기능을 만들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기동성은 에시가 위다.
 공주는 번번이 에시를 놓쳤다. 
 꼭 쥐새끼 같았다. 
 약이 오른 공주는 그녀를 향해 연신 철퇴를 휘두르며 외쳤다.
 “할망구, 주제에, 얌전히, 잡히라고!”
 에시는 공주를 피해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으아아아아아!”
 공주는 에시를 향해 철퇴를 강하게 휘둘렸다.
 에시는 그것을 간단히 피하며 공주를 향해 팔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목에 있는 장치에서 붉은 빛을 쏘아졌다. 
 광선은 갑옷에 맞고 튕겨져 나갔지만, 그녀의 자세를 흩트려지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이때다!’
 에시는 공주에게 달려가 두 단검을 공주의 투구를 향해 힘껏 내질렸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진조의 몸이다. 힘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에시의 회심의 일격은 실패했다.
 “어라?”
 단검 두 자루는 투구에 닿자 박살나버렸다.  
 “너무 강하게 내질렸나...” 
 단검은 곧 그녀의 손에서 부서져 내렸다. 
 공주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가리개가 부서져 내렸다. 
 그녀의 이마에서 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공주의 붉은 눈이 무섭게 빛났다.
 “하하... 오히려 더 화나게 만든 건가?”
 공주는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혀로 핥았다. 
 그녀의 입술이 피로 얼룩졌다.
 “에시...”
 “...”
 “지금까지 단순히 쥐 잡는 놀이였다면, 지금부터는 좀 달라질 거야.”
 분위기가 변했다. 
 진조 특유의 귀족 프라이드가 벗겨지고, 흡혈귀의 본성이 드러났다. 
 닥치는 대로 살육을 저지르는 학살귀로서의 본성이.
 그녀의 눈은 그야말로 야수의 눈이었다.
 풍압이 그녀의 갑옷을 감쌌다.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기류가 강해지더니, 곧 주위를 완전히 바람으로 날려 보낼 기세였다.
 에시는 얼굴을 두 팔로 가리면서 그녀를 살폈다. 
 공주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잠시 후 풍압이 사라졌다. 그녀를 감싸던 기류가 사라졌다. 갑옷과 함께.
 “이 날을 위해 기껏 준비했건만, 역시 나와는 맞지 않았던 것 같아.”
 공주는 갑옷을 해제한 것이었다. 철퇴도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나는 말이야. 너를 직접 느끼고 싶어. 에시. 이 손으로, 똑똑히.”
 그녀의 한 손에는 어느새 검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녀가 검손잡이의 무언가를 만지자 칼날 마디 마디가 풀리며 채찍처럼 늘어났다. 
 그것은 ‘맨 이터’라고 불리는 무기로, 사복검 또는 가리안 소드로도 불리는 무기였다.
 간단히 말해 평소에는 장검의 형태이지만, 잠금을 풀면 와이어에 칼날이 달려있는 채찍으로 변한다. 
 한번 맞기라도 한다면 먼저 충격으로 몸이 멍들고 터져나갈 것이며, 그 뒤에 마디마디 달려있는 요철식 날들이 살을 찢어놓을 것이다. 
 고통의 측면에서 아까의 철퇴보다 더 한 무기였다. 
 ‘정말로 악취미적이군. 공주답지만.’
 “자아, 에시. 다정하게 해줄 테니까 이리 와. 어서...”
 “미친 년.”
 아까보다 더 위험하다. 방금 전의 기동적인 우세함은 사라졌다. 거기다 진조에게 특효인 단검마저 부서졌다. 독을 병째로 공주의 몸에 주입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 맞다. 블로우에게 주었지, 아마?’
 텔레포트로 도망가고 싶어도, 여기에 들어온 지 한 20분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생체시계는 정확했다.
 “어쩔 수 없네.”
 “뭐가 어쩔 수 없을까, 에시?”
 공주는 맨 이터를 장검의 형태로 되돌렸다. 공주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그의 마지막 핏줄이라, 단순히 마비만 시키고 싶었는데.”
 놀랍게도 에시는 웃고 있었다.
 “뭐?”
 “이래서야 심한 짓을 할 수 밖에 없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에시는 공주에게 속삭였다.
 “이렇게 돼서 정말 유감이야, 공주.”
 에시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공주의 얼굴로 들이대었다.

 찰칵  

 에시가 붉은 마녀에게 간 이유는 아티팩트 때문이었다.
 붉은 마녀는 신비한 것을 수집하는 그런 성향이 있었다.
 영원의 숲은 초월종도 들어가지 못하는 금단의 숲이었으니, 
 그곳에 떨어진 아티팩트는 전부 그녀의 차지였다.
 마녀는 자신이 모은 아티팩트를 차원의 틈새에 보관하고 있었다. 
 에시는 그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쌓아놓을 정도로 많았으니 말 다했다. 
 물론 붉은 마녀는 이성이 없었기에 그것을 쓸 줄 몰랐다. 그것들이 뭔지도 몰랐을 것이다. 
 아무튼 에시는 그녀가 모은 아티팩트를 전부 쓸어 담았고, 그녀의 품속에는 아티팩트로 넘쳐났다.
 공주로서는 최악의 타이밍에 에시를 건드린 것이다.

 찰칵

 정체불명의 소리와 함께 공주의 피가 솟구쳐 올랐다. 
 공주는 끊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피 피 피 
 
 피가 잔뜩 이곳저곳으로 미친 듯이 철철철 흘렸다.
 공주의 몸은 대각선으로 잘려나가 있었다. 
 잘려나간 단면에서 재생한 세포가 꿈틀거리며 서로 붙으려고 하였다. 
 정말로 경이롭고도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곧 공주의 몸이 다시 붙었다. 그녀의 옷이 찢어져 나풀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한없이 일그러져 갔다.
 “공주, 타이밍이 나빴어. 지금 너하고 다툴 시간이 아니거든.”
 에시가 다시 물건을 공주에게 내밀자, 공주의 얼굴이 공포로 뒤덮였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그거...”
 찰칵, 소리와 함께 공주는 재빨리 몸을 틀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녀의 오른팔만 잘려나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끝없이 재생되지만, 고통은 그대로다. 
 그녀의 오른팔은 뒤로 떨어져나갔다. 
 잘려나간 팔은 지렁이마냥 꿈틀거렸다.
 “좋네. 영원의 숲에서는 시험할 수 없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실컷 시험해봐야지.”
 “네 이년...”
 공주는 어깨를 부여잡은 채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죽, 죽여버리겠어...”
 
 참고로 에시가 방금 쓴 아티팩트는 모든 것을 절단하는 아티팩트였다.
 그러니까 권총처럼 생긴 물건인데 총구에는 구멍 대신 세로로 죽 그어진 선이 있었다.
 사용자가 방아쇠를 당길 시에,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은 그 선의 직선대로 잘려나간다.
 만약 그 총을 옆으로 눕힌 채 쓴다면, 땅에 서있는 모든 것은 반으로 두 동강 날 것이다.
 
 공주는 맨 이터를 채찍 형태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것을 에시를 향해 휘둘렸다.
 에시는 눈도 안 깜박이며 공주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이번에는 옆으로 눕혀서.
 방아쇠가 당겨졌다.
 맨 이터는 공주의 몸과 함께 잘려나갔다.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공주는 상반신 하반신이 분리된 채 바닥에 쓰려졌다.
 잘려나간 단면에서 재생된 세포가 꿈틀거리며 다시 붙기 위해 움직였다.
 에시는 공주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총을 그녀에게 겨누었다.
 
 찰칵 찰칵 찰칵

 방아쇠를 당길 때 마다 피가 잔뜩 터지며 공주의 몸이 잘려나갔다. 
 공주의 비명이 울러 퍼졌다. 
 더 이상 세련되지도 않는,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공주의 몸은 조각조각 나있었다. 
 “요즘 진조들은 왜 이렇게 험한 꼴을 많이 보는지 모르겠네.”
 에시는 자신의 발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고깃덩이들을 보며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것은 그녀의 영혼의 비틀림을 보여주는 얼굴이었다.
 에시는 그녀의 몸 부위를 집어서 여기저기로 던졌다. 
 에시 주위 풍경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여기는 고유결계, 공주의 마력으로 만든 공간이다. 
 그녀의 마력이 불안정해지자 자연히 공간도 불안정해진 것이다.
 “빨리 끝내야겠는 걸, 공주.”
 여기저기 그녀의 몸 부위를 던져놓고 공주가 증식하는 걸 살펴보기로 했다.
 역시 그녀의 재생능력은 경이로웠다. 말 그대로 공주는 불사신이었으니까.
 곳곳에서 움직이는 몸 부위는 꿈틀거리며, 상처 부위에서 세포가 증식하며 고깃덩이 같은 것들이 자라났다.
 에시는 재미삼아 붉은 광선을 쏘아 되었다. 고깃덩이들이 터져나가며 피를 뿜었으나 금세 재생하였다.
 에시는 총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른 아티팩트를 꺼냈다.
 이번 아티팩트는 망치였다. 
 그 망치는 크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망치를 최대로 설정했다.
 “이런, 이건 너무 큰 가.”
 망치는 드는 사람에게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으나, 그래도 너무 컸다. 
 ‘이건 산만한 크기잖아.’
 그녀는 크기를 줄였다. 
 “이 정도가 딱 맞겠군.”
 망치의 크기는 스티어스 백작 정도였다. 약 20~30m 정도?
 “좋아, 빨리 끝내줄게.”
 에시는 망치를 휘둘렸다. 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 망치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비유가 아니다. 정말로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리고 실제로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
 에시는 그 30m 크기의 망치를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고깃덩이를 향해 닥치는 대로 내리쳤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1초에 일곱 번은 내리쳤다. 
 내리칠 때 마다 고깃덩이들은 바닥에 퍼지며, 고통스러운 듯 꿈틀거렸다.
 어차피 이 정도로 진조는 죽지 않는다. 
 에시는 계속, 수십 번 수백 번 망치를 내리쳤다.
 이계는 어느새 고막을 찢을 듯한 망치소리로 가득 찼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얼마나 내리쳤을까. 그녀는 망치를 들었다. 망치에 질척거리는 살점과 근육, 뼈와 피가 섞인 오물들이 떨어졌다.
 에시는 망치를 작게 만든 후 다시 품속에 집어넣은 다음, 앞에 있는 광경을 보았다. 
 “이야...”
 그녀는 진조의 생명력에 감탄했다.
 “역시 불사신이라 불릴 만하네...”
 이계의 바닥은, 온통 꿈틀거리는 고깃덩이로 되어있었다. 그 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호수를 연상시켰다.
 ‘생명의 호수라고 부르면 되려나...’
 하지만 그 이름과 달리 눈앞의 모습은 너무나도 징그러웠다. 그로테스크했다. 고어스러웠다.   에시는 그런 걸 좋아했지만.
 공주는 망치에 맞아서 퍼지고 퍼지고 또 퍼지고, 그 와중에 재생하고 재생하고 또 재생하고, 재생하면서 또 증식하고 증식하고 증식하는 것을 반복해, 살과 근육과 피와 창자 같은 각종 내장으로 이루어진 고깃덩어리 호수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미안해, 공주. 이런 꼴로 만들어놓아서. 하하하. 그런데 이 모습도 나름 매력적인데?”
 그것을 이미 공주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에시는 알고 있다.
 진조는 고통에 의식을 잃지 않는다.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하더라도 의식을 잃지 않는다.
 지금 공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아마 고통에 미치고 미치고 또 미쳐버릴 것 같겠지만 절대로 미쳐버리는 일은 없다. 
 진조는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물론 지금은 자신의 그런 점을 아주 원망스러워 하겠지.’
 고깃덩어리 호수로 변한 지금, 그녀의 프라이드는 어떻게 되었을까. 진조의 자존심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 진조의 딸이자 가장 아름다운 존재 중 하나로 불리는 공주는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까.
 에시는 재밌고 재밌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최근 본 것 중에 가장 웃기고 유쾌한 장면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그녀는 배꼽을 잡아가며 웃었다. 웃으며 또 웃었다.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그녀의 귓가에 공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같다.
 아마 흐느끼며 이렇게 말하는 거겠지.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라고.
 ‘공주가 우는 모습이라니, 상상이 안 가는걸. 그렇게 오만하고, 그렇게 도도할 수가 없는 년이었는데.’
 비명이 터지는 듯하다. 
 에시의 비명에 가까운 웃음소리와 고깃덩이 호수에서 나오는 고통과 살의의 비명 말이다.
 “어라?”
 주위의 풍경이 사라지고 있었다. 고유결계가 풀리고 있었다. 
 “하긴, 결계를 유지할 상태가 아니겠지.”
 주위는 다시 현세계로 돌아왔다.
 의외로 아까 있었던 장소와 멀리 떨어진 장소가 아니었다. 
 걸어서라도 금방 일행에게 갈 수 있는 장소였다. 
 “뭐야, 영원의 숲 근처잖아? 그건 그렇고... 이걸 어떡한담...”
 에시는 공주를 보았다.
 “이걸 이곳에 내버려두면 안 되겠지.”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내리쳤다.
 “아하, 그렇군.”
 에시는 공주였던 것에 말했다.
 “그래, 예전에도 후회했어. 모름지기 부모라면 말이야. 자식의 모습 정도는 궁금한 법이라고. 전에 마왕의 아들을 다시 마왕에게 보내고 싶었지만 그때는 텔레포트 아티팩트도 없었고, 그래서 그냥 길바닥에 버렸거든. 하지만 이제는 달라.”
 에시는 1인용 텔레포트 아티팩트를 주웠다. 어느새 시간은 지나있었다.
 “자아, 파파에게 보내줄게.”
 에시는 아티팩트를 작동시키고, 호수의 중심에 던졌다. 아티팩트는 피에 잠기더니, 빛을 뿜으며 그것과 사라졌다. 
 “딸의 달라진 예쁜 모습을 좋아하셨으면 좋겠네.”
 그것이 있던 자리에는 핏자국만이 남아있었다. 에시는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젠장, 돌아오자마자 또...”
 계속 목소리가 울러 퍼졌다.
 ‘에시, 어디있는 거야.’
 ‘에시, 에시...’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기다려. 훼방꾼 때문에 늦었지만, 곧 그곳으로 갈 테니까.”
 에시의 동료가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해는 어느새 중천에 떠있었다.

 락시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오고 있다는 것을.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남들에게는 긴 시간이 아닐 수 있어도, 그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이제 그 기다림이 끝날 시간이 되었다.
 그의 앞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위로 여러 가지 존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당황스러워했다.
 하긴, 상당히 볼만한 꼴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왕국을 보고 있었다. 
 푸른 나비의 왕국은 멸망했으나, 새로 새워진 자신의 왕국은 굳건했다. 그리고 훨씬 멋졌다.
 ‘어때, 나의 새로운 왕국이.’
 그들은 흥분한 듯이 마구 지껄였다.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그 사람은 오로지 자신만을 보고 있었다. 
 락시는 가슴이 두근거려 죽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처럼 멸망한 왕국을 둘러보지 않았다. 
 변이한 인간 세계를 둘러보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도 계속 그녀를 보았다. 
 두 사람의 눈동자는 그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부터 계속 마주하고 있었다.
 말은 필요 없었다. 시선만으로 충분했다. 
 락시는 자신을 보는 그녀의 눈빛이 왠지 차갑다고 느꼈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녀는 그녀니까.

 그녀는 들었을까. 자신의 목소리를. 그녀는 들었을까. 자신의 목소리를. 그녀는 들었을까.
 자신의 목소리를. 그녀는 들었을까. 자신의 목소리를. 그녀는 들었을까. 자신의 목소리를.

 그래, 틀림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에 온 것이다. 틀림없다. 
 그래, 틀림없어.
 락시는 너무나 떨리면서도, 반갑고 벅찬 마음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
 “안녕, 에르세르스. 오랜만이야.”
 “너였구나, 아프락사스.”

 세계는 요동치면서 결말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