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블로그의 게시글에 내가 댓글을 한 것을 약간 수정하여 올린다.
존대말을 쓴것을 고치지 않고 올리니 이해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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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의 정치권력욕 추구 배경을 생각해보자면.. 저는 홍석현은 정치권력욕외에 개인적으로 왜곡된 복수심과 특별한 언론권력욕이 있다고 봅니다.
그는 아무런 시련없이 이건희의 도움으로 삼성을 통해 준재벌이 되었고 중앙일보라는 언론권력을 쥐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 오래전부터 정치권력을 꿈꾼 흔적들이 넷상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그의 정치권력욕의 배경원인이 그의 애비 홍진기의 2가지 행적으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보고 싶습니다.
첫번째. 아시다시피 홍진기는 4.19당시 내무부장관(1개월전 법무부장관)으로 3.15부정선거와 경무대(청와대)앞 경찰들이 데모군중의 돌진으로 발포를 하여 10명정도 사망한 사고에 대해 발포명령자로 기소되어 1960.7.30일 검찰에서 사형을 구형당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10.8일 징역 7개월 받았습니다.
그러자 4.19유족들이 들고 일어나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 관련 자들에 대한 중형을 요구하면서 국회에 난입하여 국회의원들 멱살을 잡고 흔드는 국헌문란행위를 하는 바람에 민주당 국회는 7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하는 소급적 특별법을 통과시켰고 이에 따라 61년4월 부터 특별검사,특별재판소가 다시 공판을 진행시켰습니다. 사실 이때부터 한국의 법치주의는 맛이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1개월후에 박정희의 5.16쿠테타가 일어납니다. 5.16혁명세력은 이승만정권과 장면정권 그리고 좌익혁신계를 싸잡아서 철퇴를 가했지요.
4.19가 만든 특별검사,특별재판소는 물건너 가고 1961.8월 군사정부가 만든 혁명검찰,혁명재판소(계엄하의 군사재판 2심체제)가 들어서 3.15부정선거를 처음부터 다시 재판하면서 혁명재판소는 홍진기에 대해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어 진행한 12월19일 상소재판소는 3.15부정선거 관련 죄에 대해 무죄, 경찰 발포는 유죄로 하여 무기징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3.15부정선거와 4.19경찰발포에 대해 당시 기소된 신현확,김일환,송인상 등 장관들은 직접적인 관련 증거가 거의 없어서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었습니다.
민주당 정권하의 재판이나 군사정권의 재판이나 둘 모두 일종의 여론재판,정치재판이었지요.
1963년 들어서 미국과 야권의 민정전환 압박속에 고뇌하던 박정희는 처음에 군정통치 포기선언을 하였다가 4월경 전격적으로 민정참여 폭탄선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군사정권하에 갇어두었던 정치인들을 대사면하면서 63년5월 군사정부 내각에서 3.15부정선거 사범들에 대해 특별사면명단을 상신하는 모양새로 그들을 석방해 버립니다. 압박과 해금.
박정희만이 할 수있는 고도의 정국전환이었지요. 민간인으로 돌아가 구시대 정치인들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겠다는 선언이었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던 억울한 자들을 풀어주겠다. 대화합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사실 그들을 억울하게 가두고 징역살게 한 근본 원인제공은 군중폭동 인민재판이었고 박정희는 이를 이용했을 뿐이었습니다.)
홍진기는 대통령 선거 직전인 63년 9월초 위계양 진단등으로 형집행정지되어 출감했고, 박정희가 대통령선거 당선된 후인 11.25일 특별사면되었습니다. 만 3년3개월.
박정희는 5.16쿠테타한지 2년5개월후 민정이양 대통령선거에서 윤보선을 15만표차로 누르고 겨우 대통령에 당선 되고, 1964년 봄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홍진기는 이병철의 권유로 중앙일보,동양방송을 맡고, 신현확,김일환은 나름대로 정부와 유관단체의 핵심멤버로 활약합니다.
특별사면은 되었지만 1심에서 7개월형을 선고받았던 홍진기는 감옥에서 장면 수상이 교도소를 방문하여 전직 각료들을 사열?하자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을 느꼈을 것이며(신현확 육성증언) 민주당정권의 소급특별법에 대해 분노했을 것이고, 또한 군사정권하에서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더 큰 분노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정치권력을 꿈꾸는 홍석현의 마음속에 왜곡되어 복수심을 가지게 되고 박근혜에 대한 특이한 증오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두번째는 막연한 추측에 불과한 것으로 근거로 삼기에는 구체성이 희박하지만, 1975년 홍진기가 워싱턴포스트지의 캐더린 그레이엄 회장과 교우했던 사실(그가 그녀와 환담하는 사진이 있음)로 볼 때,

홍진기,홍석현 부자가 그때부터 언론권력이 사적 이익을 위해 정당한 정치정권을 무너뜨린 사건을 대하고 많은 영감을 받지 않았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사실 닉슨의 탄핵은 당시 신문에서도 그 정당성에 대해 논란이 많았던 사건이었습니다. 워터게이트와 닉슨 탄핵의 본질은 폴 존슨의 <미국인의 역사>와 <모던 타임스>에 소상히 나와있고 제가 블로그와 모 사이트에 올린적이 있습니다만 한마디로 워싱턴포스트라는 제왕적 언론권력이 닉슨이라는 외교천재 대통령을 자신들의 사리사욕과 왜곡된 복수심으로 무너뜨린 사건이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편향적이고 조그만 사실을 과잉으로 부풀려 선동함으로써 정권에 타격을 가했습니다. 중앙일보 홍정도의 연설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도 기사에 올려야 한다]이 기억나시지요.
한국 정치권은 미국으로 부터 민주주의 뿐 아니라 저질 행태, 못된 것도 많이 배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