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길게 쓰면 안 읽고 딴소리 하는 놈들 나올까봐 짧게 쓴다.
먼저 아옌데가 누군가 하면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1970년에 칠레 30대 대통령에 취임한 양반이다.
특기할 점은 아옌데 정권은 세계에서 최초로 민주 선거를 통해 탄생한 사회주의 정권이라는 점이다.
그때까지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정권 세운다 그러면 다 유혈 혁명으로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칠레는 남미에서도 ㅅㅌㅊ로 잘 살던 나라였는데 이런 나라에서 좌파 대통령이 탄생한 이유는 우파 분열 때문이었어.
우파 정당이 다른 우파 정당 후보를 암살하려고 했고 결국 우파 세력의 절반이 아옌데 지지를 선언해버려서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
아옌데는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20년에 걸친 정치생활 동안 과격한 주장을 삼가고 노동자들 편에 선 소위 '민중투사'로서의 이미지를 굳혔기 때문에 칠레 중산층도 아옌데에 대해서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거든.
생긴 것도 박원순과 비슷한데 권력을 잡는 과정도 비슷하고, 하는 짓도 비슷했지.

아옌데는 자본주의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소련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소련에 대해 동경을 품고 있는, 낭만적 마르크스주의자였어.
그 점에서는 중국에 대해 좃도 모르면서 중국을 동경했던 리영희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지.
(브레주네프와 만난 아옌데 ㄷㄷㄷ)
칠레의 장하성
아옌데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극좌성향 경제학자 페드로 부스코비치(Pedro Vuskovic)를 경제부장관으로 앉힌 일이야.
문재인 치하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부스코비치는 정말 씹소름 돋는 게
그의 주장은 장하성과 김상조가 하는 주장과 판박이이기 때문이야.
부스코비치는 저소득층의 소득이 성장하면 소비가 촉진되고 경기 부양이 된다는 이론을 주장하던 인물이고 아옌데 정권에서는 '부스코비치 모델'로 알려진 경제정책을 펼쳤어.
훗날 경제학에서 거시적 포퓰리즘(macroeconomic populism)이라는 용어로 알려지게 되는 경제 정책인데 지금 문재인이 하겠다는 게 딱 이거거든.
그렇다면 부스코비치 모델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 거 같어?
아주 싹 말아먹었지.
그것도 불과 2년만에.
아옌데 정권은 기업의 반발을 억누르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렸어. 그리고 '정부가 제일 큰 자본가인데 정부가 출자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문재인이가 하는 소리와 똑같은 소리를 실행에 옮겼지. 그랬더니 임금 인상에 따른 폭발적인 인플레이션, 막대한 정부 지출에 따른 외화 고갈, 그리고 정부의 정책에 반발한 민간자본 유출 등 좆망 삼박자가 동시에 터지면서 칠레 경제는 운지했어.
칠레의 토지는 대지주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는데 아옌데는 이것도 소련식으로 뜯어고치기 위해 권력을 앞세워서 강제로 토지개혁을 실시했어. 부동산 때려잡겠다는 문재인과 비슷하지? 토지를 받은 농민들은 기존의 대지주들에 비해 생산력이 약했고, 인플레이션으로 땅값이 폭등했기 때문에 토지가 농업에 쓰이지도 않았어. 게다가 지주들은 아옌데 정권에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지.
반미노선
경제는 위축되는데 정부 지출이 갑자기 늘어나니 외화가 부족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아옌데 정권은 칠레의 주요 수출품인 구리를 믿었어. 그리고 기어이 미국 자본이 운영하던 칠레 광산을 국유화 했지. 아옌데는 외세로부터의 경제주권 독립이라 자화자찬했지만 글쎄 과연 그럴까?
이건 사실상 미국과의 관계를 끊겠다는 소리와도 같은 거야.
그리고 아옌데는 본격적으로 반미노선을 걷게 돼. 특히 남미의 공산국가 쿠바와 수교하겠다고 선언했고 심지어 직접 카스트로를 만나기까지 했어. 문재인이 미국의 반대를 씹고 김정은과 만난 꼴이라고 해야 할까? 이게 CIA의 분노를 자극했어. 그때까지 칠레를 예의주시하던 미국은 아옌데가 공산주의자라는 결론을 내렸고, 당시 CIA 국장인 리처드 헴즈(Richard Helms)는 "칠레는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떨어졌다. 자금은 아무리 써도 상관없다.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칠레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였어.
미국의 반격
미국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구리 가격을 떨어뜨리는 일이었어. 그 다음에 각 은행에 압력을 넣어 칠레에 대한 대출을 막았지. 아옌데가 1970년 11월에 권력을 잡았는데 1971년 연말에는 외환보유고가 미화 3000불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 아옌데는 국제사회에 원조를 요청했으나 이것도 미국이 막았지.
결국 아옌데는 1972년 6월에 부스코비치 경제장관을 경질했어. 불만에 쌓인 중산층을 달래려는 시도였지. 하지만 이건 오래 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발생했지. 바로 트럭운송노조의 전국적인 파업이었어.
트럭노조는 월급이 올랐을 때에는 아옌데를 지지했지만 인플레이션이 월급 상승율을 추월하자 경제난을 겪게 되었고 아옌데 정권에 불만을 품었지. 이때 CIA가 트럭노조에 접근해서 뒷돈을 건네고 파업을 의뢰했어. 아옌데 정권을 뒤흔들기 위한 정치공작이었지. 처음 CIA의 계획은 1972년 9월 한달만 파업시켜서 소매상의 생필품 부족을 부각시키고 아옌데의 지지층인 도심지 주민들의 불만을 높이는 거였는데 파업의 효과가 너무 좋으니까 10월부터는 칠레에서 전국적인 노조 파업이 번지기 시작했어. 노조의 도움으로 권력을 잡은 아옌데 정권이었지만 이제 노조가 아옌데를 버린 것이었지.
당황한 아옌데는 칼로스 프라츠(Carlos Prats) 장군에게 명령을 내려 군부대를 동원해서 강제로 노조를 해산시키고 파업을 가까스로 멈추는데 성공했어.
이 사태는 민주주의를 내세우던 아옌데의 이미지에 큰 흠집을 냈어.
이제 칠레는 아옌데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우파와 끝까지 아옌데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서 사실상 내전에 가까운 무력 항쟁이 벌어졌지.
재미있는 사실은 끝까지 아옌데에 충성을 바친 세력은 다름아닌 대학생들이었다는 점이야.
극도의 실업률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아옌데에 충성을 하다니 ㅋ 역시 어느나라나 미친놈들 보면 대부분 대학생들이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등장
1973년 6월29일, 군부가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아옌데에게 충성하는 칼로스 프라츠 장군에게 적발되어 실패하는 사건이 벌어졌어.
이 사람이 프라츠 장군.
군부에 의존하여 끝까지 세력을 보존할 결심을 한 아옌데는 반정부 성향이 강한 노조가 지배하는 공장 500개를 무력으로 점거하도록 했지.
하지만 야당은 물론이고 군부 내부에서도 이 일에 대한 반대 의견이 높아지자 군부를 달래기 위해 아옌데는 프라츠를 경질하고 대신 새 육군 참모총장으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을 임명했어.
빨갱이 잡는 데에는 타협이 없었던 피노체트
피노체트는 CIA에서 훈련받은 적이 있었고 미군으로부터 뛰어난 리더쉽이 있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었다.
또한 보수성향이 강한 인물로 야당과 지주들에게도 인망이 있는 장군이었다.
빨갱이들을 극도로 혐오했지만 동시에 아옌데 밑에서는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치밀함도 갖춘 인물이었다.
아옌데는 피노체트를 앞세워 반대파의 반발을 잠재워보려 했지만 이 인사는 결과적으로 아옌데의 숨통을 끊게 만들었지.
CIA와 잘 통하던 피노체트는 치밀하게 쿠데타 준비를 했고
기업가들과 지주들의 지지도 확보했다.
노조도 피노체트에게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옌데는 대도시의 대학생들, 그리고 언론인, 문인들을 제외하면 완전히 고립된 셈이었다.
그리고 피노체트는 1972년 9월11일(공교롭게도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테러 날짜와 같음), 쿠데타를 일으키고 수도 산티아고의 대통령궁을 향해 쳐들어갔다.
아옌데는 카스트로에게 선물받은 금색 도금이 된 AK소총을 들고 싸우다가 사망했다. 자살했다는 설도 있고 총에 맞아 죽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그날 피노체트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이던 대학생들은 계엄군에게 체포되어 산티아고의 축구장 '내셔널 스타디움'에 끌려가 감금되었다.
약 20000명 정도가 끌려갔고 그 중에서 41명이 처형당했으며 나머지는 칠레판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세줄요약
1. 칠레의 좌파정권 아옌데 정권 하는 짓은 경제도 외교도 문재인과 판박이.
2. 칠레에서 미국자본 국유화하고 카스트로와 만난 일을 계기로 미국은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그렇게 됨.
3. 문재인 이 씹쌔끼야, 이거 남의 이야기 아니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