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패망,그 후를 공산당 주석 호지명의 행태.
월남정부는 1975년 4월30일 북쪽 월맹에게 무조건 항복하는 공산화의
적화통일이 되었습니다.
과연 월남 패망, 그 후의 모습이 어떨까요?
오늘날 만일 자유대한민국이 북한과 우리 민족끼리 평화협정
맺고 미군 철수하면 월남 패망 같이 될 수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공산군, 월맹이 월남 수도를 점령하였습니다.
자유 월남은 완전히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월남 패망 이 후 월남 국민들은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당하여야만
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을 하였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유를 찾아 공산화된 조국을 탈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베트남 국호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으로 바뀌었습니다.
국기와 수도도 북쪽 베트남의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공산화 된 월남을 향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무자비한 숙청이었습니다.
인민재판을 통한 정치적 숙청을 단행하였습니다.
월남의 고위공무원, 정치인, 군인, 경찰 등을 수용소에 강제로
수감시킨 후 사상 개조 명목으로 고문과 처형을 하였습니다.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상 개조 명목으로 숙청당하였습니다.
월남체제하에서 반정부, 반체제에 앞장섰거나 월맹에 적극 협조했던
교수, 학생, 민주인사들조차 예외 없이 처형되거나 투옥되었습니다.
반정부 운동에 앞장 섰던 틱 찌 꾸앙은 1975년 월남 패망 후 곧장
체포되어 1993년까지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호랑이 우리라는 곳에 갇혀 오래동안 걷지 못하여 다리가 굳어져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반정부 운동에 앞장 섰던 찬틴신부 또한 감옥살이를 면치 못했습니다.
베트남 수용소 수감자는 위험한 노동,독방감금, 밀폐공간 감금, 각종
구타와 고문은 물론 처형까지 스스럼 없이 당하였습니다.
정신개조 수용소에는 백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공식절차나 재판없이
강제 투옥되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출판된 학술 연구지에 따르면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정신개조 수용소에서 16만 5천명이 죽었습니다.
수천명이 학대당하거나 고문으로 손과 다리에 족쇄를 채운
고통스러운 자세로 한달여 있게 하고 피부를 날카로운
대나무 죽창을 찌르고 독성화학 물질을
강제로 혈관에 주입해 정신을 파괴하고 관계된 모든 것을 죽였습니다.
미국 국무부에 의하면, 대부분의 수감자는 3~10년 투옥되었지만
17년을 감금당한 수감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26년 전 사이공 함락 후 적어도 150개의 정신개조 수용소가 만들어졌습니다.
월남 3가구 중 1가구의 친인척이 정신개조수용소에 수감되었다고 보고합니다.
공산주의는 역시 공산주의입니다.
일단 통일된 다음에는 쓸모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다고 모두 다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니까...
승려, 신부, 운동권 학생들이 공산화하는데 도움 준 사람들이지만 ..
이 사람들에 대해서 1차적으로 강력한 통제를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공산화 후 대우를 줄 것이라 믿었는데 그게 아니니
까 반발을 했고 그런 사람들은 숙청하고 사상이 긴가민가한 사람들은
수용소에 보내 사상교육을 하였습니다.
만일에 자유대한민국이 북한정권과 친북,종북 좌파와 우리민족끼리하여
공산화 되면 먼저 반정부 운동한 친북, 종북 좌파들이 먼저 숙청당할 것입니다.
적화한 공산정권은 먼저 언론 자유를 박탈하였습니다.
종교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북부 베트남 출신의 당간부들은 남쪽 사람들을 감시하는 공산당의 눈과
귀였습니다.
통제관리자는 적어도 북쪽 출신으로 사상교육을 이수한 충성스러운
사람들만 모집하였습니다.
일반적인 베트남 사람들은 이동할 자유가 없었습니다.
하루 동안 떠나더라도 당국에 보고를 해야만 하였습니다.
신경제지역(밀림과 늪지대)으로 230만 명을 강제 이주하게 하였습니다.
밀림 늪지대로부터 굶주림과 착취로부터 고통을 당하여만 했습니다.
월남의 수도 사이공시를 호치민시로 변경하였습니다.
공산사회주의식으로 강제전환하게 하였습니다.
화페개혁으로 개인이 쌓아 올린 재산을 몰수 하였습니다.
1500개의 기업을 국유화의 이름으로 모두 빼앗었습니다.
농민의 토지는 물론 농기계까지 몰수하여 공동생산 배급제로
강제전환하게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쌀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세계 쌀생산량 2~3위였던 베트남은 급기야 백만톤의 쌀수입국으로
전환하였습니다.
그 결과 1970년대 말에 가서 식량문제가 되었습니다.
공산화 된 베트남경제는 10년도 못가서 경제파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백만명 실업사태, 굶주림, 강제노동으로 탈출만이 살 길이라고
보트피플계열에 끼게 되었습니다.
공산화되는 적화통일은 결코 지상낙원이 아닙니다.
자유대한민국의 수호를 위하여 북한정권이 무너지기를 기도합니다.
자유대한민국의 간첩을 잡고 보안을 유지와 정보를 위하여
국정원은 존재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으로 간첩을 잡아야 합니다.
반정부 운동을 하고 선동하고 시위하는 좌파세력들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거짓 언론, 거짓종교, 거짓 교사, 거짓 시민단체, 거짓 정치인,
거짓 법조인, 거짓 문화인, 거짓방송인에게
속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침묵이 답이 아닙니다.
외면하고 모르는척한다고 결코 자유가 그냥 있을 수 없습니다.
월남 패망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생각해보고
정치라고 방관하거나 남의 이야기로 들어서는 안됩니다.
공산화 된 적화통일 체제는 자유가 아닌 숙청과 통제와 고통입니다.
주여 자유대한민국을 공산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