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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가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고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인터넷이 범람한 이후로 수많은 커뮤니티가 생기게 되었다. 절대 다수가 권리를 내세울 수 있기에 커뮤니티는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분노로 인하여 이성적으로 사건을 바라보지 못하거나 소통의 공간을 싸움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의 커뮤니티들은 일본의 쓰레드(Thread), 미국의 포럼과는 다른 게시판 형태를 가지고 있다. Zero(고영수)라는 사람이 개발한 제로보드(Zeroboard)의 게시판 형태가 표준으로 되었다. 제로보드로 인하여 한국에서만 점유율이 50%를 넘는 기이한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이 게시판 형태는 주제가 되는 게시물 하나가 절대적 우위를 가지게 된다. 한국의 게시판은 주제가 되는 게시글과 짤막하게 덧붙이는 댓글의 구조를 가지게 된다. 게시글은 제일 상단에 위치하여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주제이므로 게시글의 성향에 맞는 댓글이 달리게 된다. 다음 순으로 가장 위에 달린 댓글이 게시글의 성향을 정하게 된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추천이 가장 많이 달린 게시글을 가장 위로 옮기게 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다만 이 추천댓글의 형태는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는 댓글이 선점한다는 이유로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다수가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다수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다수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반론을 하지 못하도록 성역화 하였다는 근거가 된다. 아무런 목적이 없는 원색적인 비난은 아무 영향력을 가지지 않지만 상식적으로 충분히 가질만한 반론은 필요악이다. 성역화를 한 결과는 어떠한가? 자기가 속한 정당과 관련된 자작극은 충분히 가질만한 주장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속하지 않은 정당의 자작극은 인간으로써 하지 말아야 할 속된 행동이라고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는 형태로 발전하지 않았는가? 어떠한 것은 반론을 해도 되는 주제로 정하고 어떠한 것은 반론을 하지 말아야 하는 주제로 정하는 것은 결국은 이중적인 형태를 가지게 된다. 유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는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중적인 잣대를 키우는 행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결국은 자기가 원하는 자극적인 의견을 표출하기 위한 면죄부를 제시하는 것 밖에 안 된다. 유머는 인간으로써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행동을 아무도 피해 받지 않는 행동으로 인식하게 된다. 유머로 인지된다는 것은 다수가 공감하고 있고 다수가 불쾌한 감정을 가지지 않는 공감대라는 근거가 된다. 재미가 있다고 인지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동일하거나 동등한 유머를 재미있다고 취급한다. 다수가 공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게시글을 올리는 것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반론을 제시하면 타인이 먼저 공격을 하였으니 자신의 행동은 올바른 행동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다수가 공감하지 못하는 의견에는 타인이 먼저 공격을 하였다고 공격을 하는 행동을 찌질하다고 깔보는 행동을 한다. 유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소한 것이라도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면 집단의 암묵적 규율에 묶여 스스로 생각할 방법조차 까먹은 정육점 앞의 개돼지정도 수준으로 몰락했다는 근거가 된다. 유머니까 그냥 넘어가면 된다는 생각 하나가 유머를 집단 의견의 중재자의 역할을 맡게 한다. "유머"라는 합리화 도구는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 버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가장 쉽게 타당성을 충족시키고 타인을 합리화 시킬 수 있는 사회적 선동시스템인 유머는 죄의식과 같은 감정을 배제시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고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쳐버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한번 웃고 넘기면 된다는 자기 합리화를 통하여 상대방에게 피해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비웃고 조롱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뒷담 하는 행위조차도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자기합리화를 통하여 그룹의 인식을 이끌어낸다. 피해의 가능성을 인지한다면 집단사고라는 가장 간편한 도구를 사용하여 타인의 피해예측을 폄하하고 정당화 하는 방법이 주를 이룬다. 정당화가 성공하였다면 집단의 힘으로 타인의 의견을 강압적으로 탄압하고 탄압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집단적 맥락'의 사고를 통하여 위에서 말한 유머와 결합된 '암묵적 규율'을 통하여 상대방만이 잘못되었고 자신이 행하는 행위들은 정당하다는 합리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유머는 가장 원초적이고 효과적인 부정적인 감정과 비유를 통하여 다른 의견보다 더욱 더 효과적으로 상대방에게 의견을 주입시킨다. 그저 설명하는 것 보다 비꼬면서 설명하는 것이 더 뇌리에 더 잘 들어오는 것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유머는 최면과 비슷하다 상대방을 가장 쉽게 신뢰할 수 있게 루즈한 상태로 풀어놓고 의견을 주입시키는 방법과 같다. 타인에 의해 심어진 유머와 결합된 선동은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 웃기고 재미있는 행위로 간주하게 한다. 이미 타인에게 피해가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맥락에 빠져들어서 비판적 사고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가 된 것이다. 전두환을 옹호하고 전두환이 저지른 모든 과오를 잘한 행동이라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베 저장소의 초기에는 전두환이 저지른 과오를 모두 덮어두고 엔젤 두환이라는 유머요소를 넣었다. 유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머일 뿐이지 누가 진짜 전두환을 빨 것 같아?"라는 의견 하나만으로 비판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결과는 어떠한가? 유저 반절 이상이 전두환을 옹호하는 지경까지 왔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웹은 다수가 평등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민주적인 공간이다. 다수가 평등하게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지위. 소득, 성별과 무분별하게 서로서로 평등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무엇일까?타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도록 탄압하는 행위를 말한다. 자신의 입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추천 수가 일정수치를 넘는다면 블라인드로 의견을 내세울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의견을 내놓는다는 것은 상대방이 의견을 보는 상황까지 고려해야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본다고 내가 발언할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혐오와 같은 감정을 내제한 의견을 제시한다고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발언에 대한 자유침해이다. 혐오감정을 절대적으로 지울 수 있다면 세상은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혐오감정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혐오하는 행동을 제한한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혐오감정이 더 커질 것이다. 특정 의견을 보고 가치관을 정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닌 게시글을 바라보고 있는 자기 자신이다. 인터넷, 웹이란 그 누구나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민주적인 공간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한쪽으로 치우친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청소년도 문제없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문제가 생긴다. 별 가치도 없는 원색적인 비난을 사회에 기여하는 일침으로 여기고 자신의 발언의 자유를 위해서 청소년의 자유를 침해하는 셧다운제 같은 제도가 나오고 있다. 이 얼마나 한국다운 아름다운 생각인가? 청소년의 가치관을 강제적으로 성립시키기 위해서 청소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정당하게 생각하고 있다. 수 많은 연구결과에서는 청소년 문화가 오히려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득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된적이 없다는 수 많은 논문을 무시하고 편향적으로 연구한 수 많은 연구결과를 근거로 수 많은 침해를 이뤄오고 있다. 자유는 타인의 발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지 타인의 발언권까지 침해하는 자유를 자유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또한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타인의 가치관을 정립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은 타인의 가치관을 침해하는 것보다 못하다. 익숙함을 선례로 문화를 성숙한 문화로 바꿔나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를게 무엇이 있겠는가? 예를 들어서 부모가 아무리 착하게 지내라고 몇십번을 말해도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자식은 변하지 않는다. 그저 자식의 행동이 바뀌는 것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노력을 동반한 최대한의 결과물을 바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내제된 것이다. 가치관을 바꿔나가려면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자신 또한 가치관을 바꿔야한다는 의식을 가져야할 것이다. 한국은 잘못된 유교문화로 일방적인 종속을 당연시하고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정당한 것은 정당하다고 외칠 수 있어야 하지만 정당한 것을 요구하면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는 일탈자로 여긴다. 어느 정도의 규칙은 필요하겠지만 지금 한국은 필요하지 않는 규칙을 규범화시키고 강요하고 있다. 개념적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 남의 글을 각색하여 쓰는 레포트와 같은 것이다. 물론 극소수는 자신이 가진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다른 사람의 글을 각색하는 일이 대다수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적는다면 예외상황을 마주쳤을 때 능동적으로 상황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 똑같은 생각과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