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80년대 후반에 민중주의자들을 내면에서 바라본 기억들.
나는 역사학의 기본 분석에서 역사가의 문제를 제외할 수 없다고 본다. 한동안 대학가에서 이념 서적 자리를 차지한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도 한 챕터로 당당히 되어 있고, 콜링우드의 [역사학의 이념]은 한권 자체가 이러한 주제로 되어 있다.
일반인들은 누구나 인터넷 시대에 ‘작은 지식인’이다. 그러나, 모두가 유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좌파 머시기 양반의 말을 재사용했지만, 광의의 차원에서 이념을 넘어선 부정하기 어려운 상식선이 보여진다.
역사는 사건들의 변화를 바라보며 기록하는 역사가의 시간기록의 스타일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열린 사고의 적들이란 책을 쓴 포퍼의 세계관을 옹호하는 이들이 즐겨 인식하는 방식이다. 꼭, 포퍼만의 일이 아니라 역사란 말자체에서 느껴지는 형이상학적 음험한 압박감을 싫어하면서, 경험주의적인 차원의 분석력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흔한 일일 것이다.
나는 젊은 세대 우파가 출몰했다고 과시했다면, 의당 자신의 대학시절의 좌파와의 대립각의 체험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그 속에서의 유기적 지식의 생산이 적지 않게 나왔어야 했다고 본다. 젊은 세대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태어나기 이전의 우파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제시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차원의 젊은 세대의 발언이 아니라, <사전적 의미의> 기성세대 우파 대리의 차원이라고 봐야 적절하다.
1980년대 민중주의자들을 내면에서 바라본 기억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그들의 주장을 믿지 못하는 것을 방송과 언론의 힘이라고 믿으며, 그들만이 진리를 주장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졌다. 그들은 일상인들은 깊이 있는 유기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계몽적 계도적 차원을 대단히 중시했다. 40대로 넘어선 386세대들을 통제했던 기성세대 좌파들의 일반적 수준의 생각이었다고 본다.
1980년대 민중주의자들의 지식 체계는, 결과적으로 그들이 사수하려 하는 어떠한 둔덕을 갖고 있다. 그 둔덕을 감추도록 하는 논리 체계(철학 논리가 아닌 인터넷 게시판에서 사고 방향을 돼지몰이 하듯 하는 좌파 네티즌의 언어형식)를 깨는 것은, 그 둔덕을 일정하게 바라보도록 하는 고정논리를 붕괴시키는 것에 있다.
모든 역사해석은 시간에 따라 흥망한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재해석 되지 않는 것은 정치권력 딱깔이 가짜 학문 뿐이다. 물론, 본질적인 영역은 지켜지면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진상규명’담론은 지겹게 들었다.
2. ‘진상규명’ 이데올로기 효과 ==> 좌파 민중주의자만 진실을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다 거짓을 말하나?
나는 진상규명 이데올로기에 담긴 극좌 포퓰리즘적 요소를 토론에서 효과적으로 제어한 원희룡의원을 새롭게 본다. 그런데, 그 양반의 발언이 오래전에 광주항쟁에 대한 승인이 있었다. 한나라당자체의 집단적 승인도 있었다. 나는 결정적인 증거 자료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러한 행동에 대한, 결정적인 반대의 실익은 없다고 생각한다.
진상규명 담론은 처음에 ‘광주’에서 시작되었다. 청문회 담론의 시작은 진상규명 이데올로기 속에서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명패를 던져서 크게 주목을 받은 어떤 분은, 진상규명 이데올로기의 후광을 깊이 입은 것이다.
물론, ‘광주항쟁’의 진정성을 의심케할만한 자료는 개인적으로도 분명히 약간은 찾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2% 이상이 부족한 자료의 실증적 문제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반드시 진정성 의심을 터뜨려야 할 실익이 있을 때는 분명히 아니라고 본다.
진상규명 이데올로기는 군부정치의 권위주의 측면에서 극단적 정보 빈곤을 겪는 대중들에게, 민중주의자만 진실을 말한다고 하고 제도권 사람들은 전부 다 속였다는 공식을 주입했다. 그 진상 규명 담론은 이러한 조건을 갖고서 작동하는 트릭이다. 우파는 군사 권위주의 속에서 세세한 일에 신경끄거나, 문약 타령에 가깝게 인문적 요소를 신경꺼버릴 것이다.
진상규명 담론은 애초에는 보복은 원하지 않는다. 진짜 진정한 진실 차원만 규정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나섰다. 매스미디어의 포위를 뚫는 차원에서, 소수로서 좌파가 선택한 전략이었고 본심이 아니었음은 너무 늦게 알았다. 진상 규명 담론이 가는 곳에서 어김없이 한바탕 속풀이성 쑈가 벌어졌다.
질문은 마구 몰아치고 답변은 ‘네’하는 기죽은 소리. 반대 답변 하면 답변을 끊는 야단치기. 진상규명 담론의 진실은 그렇고 그러한 한국식 청문회 초창기에서 다 드러났다고 본다. 진상규명 담론이 미래에도 좌파의 밥그릇 확장과 우파 궤멸에 정략적 도움이 되면 오케바리고, 아니면 아니란 식이다. 이러한 진상규명 담론의 미래의 안전한 작동은 우파 내부에서 ‘문약’담론이 미래에도 정상적으로 가동된다는 전제일 것이다.
3. 1987년과 이후의 억압적 학생운동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지 않는 젊은 우파는 전부 할아버지 대리인이며, 본질적인 근대적 개인의식은 아니다.
내가 적었다 하면 적는 글의 주제는 한결같다. 1987년 이후 등장한 좌파지식인들의 실상에 대한 진상규명과, 대학가 학생운동의 실체에 대한 진상규명해보자는 것이며, 그 진상규명을 체계적이며 기술적으로 회피하는 현재 사회는 문제가 있다는 울분 토로일 것이다.
운동권 출신 이미경씨가 한줌의 주사파가 얼빵한 386 조종한 사건으로 87항쟁을 규정한 글은 분명히 부정하기 어려운 진실을 갖고 있다. 나는 여러 차례 국립 서울대학교를 장악한 좌파 지식인이 보수 언론에 독점 출연할 때의 국민 세뇌효과를 지적했다. 1980년대 후반에 있어서 공산주의자들에 거부감이 들도록 가르켰던 그 방법대로, 보수파들은 학원가에 말을 걸 때 늘 이미 심겨진 선입관을 확인하게 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자기 방어적 차원의 국가보안법을 희롱하는 민주화운동은, 김대중 전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80년대 중반 무렵의 연대 서명문에서 쓰여진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에 단어만 살짝 바꾼 의미에 가깝다. 그러나, 이 논증을 성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바로, 이러한 전제에 맞춰서 서울대학교 외 좋은 대학교의 학위가 수없이 많이 공인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성세대 우파들이 정략적으로 좌파를 이용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현실의 파탄 국면도 안 보고 싶지는 않다.
좌파들은 우파들이 장악한 대학가 교수자리들을 다 빼앗아, 좌파 연구를 하는 젊은 세대에 갖다준다고 공언했고 지켰고, 세계적 수준의 좌파 연구하라고 대학원 중심대학이란 프로젝트를 서울대에 만들고서 좌파 연구자들의 뒤는 화끈하게 밀어줬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기성세대 우파들이 했던 논리와 일은 어떤 것인가를 자주 나는 문제삼지 않으면 안될만큼의 울분을 자주 느꼈다.
소위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은 가능해야 한다. 민법에서도 당사자의 현저한 궁박과 경험 미숙을 대학가 선배란 신분을 악용해서 선배 신분 특유의 강박을 사용해서, 본의와 거리가 먼 선택을 집요하게 강요한 것에서 법조문상으로 ‘무효’라고 되어 있다. 게다가, 민주화운동에서 그나마 궁박을 이유로 본의아닌 지지보낸 한 세대가 허락한 바는, 국가보안법을 파괴하라는 차원의 대리행위를 허락한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 ‘무권대리’이다. 소위 민주화운동은 지식사기극에 정치권력만능주의에 빠진 정치물이라는 인식이 가능하다.
소위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가로 막는 요소에서 좌파의 억압보다도 서러운 것은, 좌파의 억압이 원래 불가능하다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에도 우파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할 힘이 없다는 점에 있다.
4. 사랑에 빠지고 세상이 달라보이고, 여자에 차이고 세상이 달라보이고, 가까운 사람과 이별에서 세상이 달라보인적 있나요?
나는 거론자체만으로 각성 효과가 충분한 사람만 지적해왔다. 좌파들이 끊임없이 ‘친일’딱지를 애용해왔던 것은, 흠없는 지도자에 흠을 얹어줌으로써 다르게 보이는 효과를 인식한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대중들에게 차곡차곡 왜곡의 선입견을 쌓은 막을 하나 하나 거둬 내는 기본적인 방법을 인식한다.
서울대 외 잘난 대학교 교수 자리 퍼주기의 빽을 섰던 좌파 정치권과, 그것의 충성 구조로 맺어지고, 우파 보수 언론의 적극적 지원사격의 삼위 일체였던 시스템에서 억압받고 눈물흘렸던 일상인들의 문제를 문제제기해야 한다. 지난번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분 당선자를 자주 예로 들어서 죄송스럽다. 그 분도 피해자다. 본의는 반공보수주의인데 표현한 바는 극좌 용공주의로 적게 되도록 하는 시스템에서의 희생자인 것이다.
나는 좌파가 썼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처럼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일거에 허물어뜨리는 것의 맞대응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무너뜨리는 것을 사실상 기도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윤식교수가 신제학위 1호 박사를 땄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제 카르텔이란 이름 하에 본의 아니게, 친북좌파적 문화정치 효과로서 공부 열심히 제도권에서 하는 이유로 봉사하게 된 많은 이들의 문제를 문제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김윤식교수가 국어국문학을 휘어잡고, 그 이후에 강만길 교수가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진입하고, 그리고 대한민국 애국심보다 학연 연줄망을 사수했던 보수 신문의 무뇌아 기자들의 지원사격은, 오늘의 이 모양 이꼴을 만든 논리적 구조일 것이다.
진상규명 이데올로기 담론은 늘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반인간적이고 허위적이며 거짓이란 예고된 결론만을 주장한다. 따라서, 진상규명 이데올로기 자체를 심판해야 한다. 진상규명 이데올로기 심판은 세계적 수준의 좌파 공부 시킨다고 성취된 대학원 중심 대학론이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중심의 북한 유물사관 대중화 운동과 거기에 기생적으로 붙은 임헌영씨의 영향력 등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우파는 문약이라고 하여 우파 젊은 세대의 새로운 시각을 차단하고, 좌파가 국립대 장악했다고 믿어만 주라고 강요하니, 대중들이 좌파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다.
5. 1987년 이후를 좌파 일방 논리로 대학가를 석권하게 하고 하는 우파의 좌파 역사학의 허위성 지적은 늘 허무한 결론을 나을 것이다.
1980년대 좌파들의 주장대로 대중들은 스스로 사고하지 못할 수 있다. 방송과 언론의 유도와 인터넷 검색엔진 기사의 유도가 여론을 만드는 것을 느낀다. 진상규명 담론의 이데올로기 측면을 충분히 가시적으로 드러낼 시점이다.
진상규명이란 말자체가 1980년대 민중주의자들의 결속력과 대중화 전략을 안고 있다. 우파의 반론은 진상규명 자체가 이데올로기며 허위의식일 뿐이란 것이 된다. 그렇다면, 1987년 이후의 대학가의 좌파 지식인 주도의 담론과,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거부하는 가짜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 요청이 필요할 것이라 본다. 여기에 이기고 나서, 아버지 세대에 가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한 시대 비운동권들의 억눌린 욕망은 몸에 박힌 기억이고, 반공교육은 주입된 교육이다. 우익정치를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비운동권이었던 이들에게도 ‘진상규명’을 말할 권리가 있다. 또, 매우 시의 적절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