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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해상 무역을 장악하여 


무역과 금융업을 통해 유럽을 넘어서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로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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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네덜란드는 향료 무역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기 위해 


1602년, 정부의 주도를 통해 인도네시아에 있던 10개의 회사들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 통합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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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네덜란드 왕, 빌럼 4세 : 무역도 잘하고, 경제도 잘하고 못하는 게 없노 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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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네덜란드는 싱가포르, 일본, 스리랑카, 중국 광저우까지 손을 뻗어 


아시아의 향신료를 유럽에 되파는 식의 무역을 통해 어마어마한 무역 이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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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황금기라 불릴 만큼 당시 네덜란드는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렸고 


네덜란드의 미술과 국민 생활 역시 황금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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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우리의 조선은 병자호란을 겪으며, 청나라에 볼모로 잡혔었던 


효종이 즉위를 하게 되는데, 효종은 북벌론을 내세우며 ㅎㅌㅊ 였던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고 내부적으로는 군사 개편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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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5세기 까지 금지되었던 모내기법을 정착하여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으며 


사상적으로 유교는 더욱 보수적으로 변했고, 농민들에 대한 수탈은 가속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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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 속에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직원들은 대만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도중, 


제주도 부근에서 태풍을 만나 5일 동안의 표류 후인 1653년 8월 16일, 하멜 일행 68명 중 36명만이 살아남아 제주도의 대정현에 구사일생으로 다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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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위 그림은 난파된 배에 있는 물건을 훔친 제주도 백성들이 관리에게 붙잡혀 응딩이를 맞고 있는 장면이다.


삼풍 백화점 때, 고가의 물건을 훔친년이 있었듯 당시에도 난리인 와중에 도둑질을 한 사람이 존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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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남은 하멜 일행 36명은 당시 제주 목사였던 이원진으로부터 잠자리와 먹거리를 제공되어지는 한 편, 


이원진은 조정에 보고하여 이들을 어떻게 처분할 것 인지에 대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정에서는 이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 26년 전, 이미 조선에 최초로 귀화하여 정착하고 있었던 네덜란드 출신 박연을 제주도로 파견하였다.



26년 전, 당시 32세였던 박연은 일행 2명과 일본으로 가던 중 표류하여 마찬가지로 제주도에 표류 하였다가 조선에 귀화하여 정착한 인물로 


병자호란 당시 일행 2명은 전쟁 도중 전사하였으며, 박연은 훈련도감에서 화포 제작을 맡았던 조선의 공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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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 : 야 조선 9급 공무원 응딩이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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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 ㄷㄷㄷㄷㄷㄷㄷ 네덜란드 사람이노 이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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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 : ㄷㄷ, 이왕 이렇게 된 거 걍 조선에 귀화해서 정착하는 거 어떰? 그래도 외국인한텐 집도 제공해주고 먹을 것도 제공해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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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 싫다, 이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 일본으로 보내달라 이기!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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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 : 조선 국법엔 외국인이 한 번 조선 땅에 들어온 이상 절대 몬나감 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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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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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하멜 일행과 박연은 서로를 보자마자 감격에 겨워 계속해서 손만 잡은 채 울었었다고 하멜 표류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박연 역시 조선에 귀화해서 정착할 맘은 좆도 없었지만 조선의 국법에 의하면 "조선에 표착한 외국인은 결코 본국으로 보내지 않음이 원칙" 이었기에 


걍 포기하고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참고로 박연과 하멜이 대화할 때, 하멜은 박연이 조선에 표착한 후 26년이 지나서 모국어를 잊어버린 것 같다고 쓸 만큼 의사소통이 어려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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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 후에도, 하멜 일행은 리얼 헤르조선을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썼고 


실제로 정박해있던 조선 어선 하나를 훔쳐 달아나려다가 걸려서 곤장도 맞았는데, 이후에도 계속 탈출을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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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 네덜란드 응딩이 보고싶다 이기 ㅠㅠ





이후, 박연이 다시 내륙으로 들어오고 조선 조정에서는 하멜 일행에 대한 처우에 관해 


신하와 당시 왕 이었던 효종은 열띄게 논의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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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 저 남만인(=네덜란드인) 들 어떻게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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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 : 전하, 그냥 저들을 일본으로 돌려 보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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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 : 아니되옵니다, 전하. 저들을 통해 화포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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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 : 하지만, 그랬다가 청나라가 알기라도 한다면 가만 있진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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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 아...어떡해 해야 하노....




많은 이야기 끝에, 효종은 하멜 일행을 화포 제작을 위한 


훈련도감에서 써먹기로 마음 먹고 하멜 일행을 한양으로 이송시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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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장정 8개월 만에 제주도를 나온 하멜 일행은 한양을 가기 위해 배를 타는데, 


먼저 제주도에서 전라도로 향하던 도중 영암에서 한 명이 운지 해서 35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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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 도착한 후, 창덕궁에 끌려가 하멜 일행은 조선 왕 효종에게 알현하고 있는 것인데 존나 흥미로운 건 


효종도 유럽의 복식을 하고 있다는 것. 어쨌든 이들을 다시 고국(내지는 일본)으로 돌려 보내는 것은 금지 하였다.


도대체 왜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았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가 있다.



1. 정치적인 이유 - 효종의 북벌 정책의 보완과 성장을 위해


2. 인도적인 이유 - 이들을 일본으로 송환시키면, 당시 일본의 천황은 예수를 믿는 새끼들을 모두 죽였기에


3. 기술적인 이유 - 박연처럼 이들을 통해 화포 제조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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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 패션 좌파 ㅍㅌㅊ.



하지만, 조정에 들린 이들에게 효종은 남만인이기 때문에 "남" 이라는 성을 하사하였고, 약 10개월 동안 한양에 머물도록 하였다. 


또한 어떻게 보면 약간은 자유로운 한양 생활을 하던 중, 하멜 일행은 조선말을 대부분 익혀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습득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하멜은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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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 조선인들은 내 외모가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흰 피부를 부러워했다.



아마 저 때에도 병신 같은 기생 년들이 그냥 오픈 했을 법도 할 것이다. 갓양남 ㅆㅅㅌㅊ노?




그런데, 이들의 한양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하멜 일행 중 두 명이 청나라 사신에게 접근해 자신들의 상황을 고했으며, 


이것이 조정의 귀에 들어가자 청나라 사신에게 먼저 뇌물을 줌으로써 청나라에 알려지는 것을 막았고, 청나라 사신에게 접근했던 


두 명을 옥에 구금하여 죽였고, 이로 인해 조정은 앞으로의 후환이 무서워 그들을 전라도 강진의 군영으로 이동시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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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이송된 인원은 총 33명이었는데 이곳에서 그들은 땔감 체취, 풀 뽑기, 허드렛일 등의 노동을 하긴 했지만 정말 느슨하게 진행되었다. 


관리들도 이들에게 일을 고되게 시키지 않았으며, 이들 역시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백성, 관리, 특히 승려들과 매우 친해졌다고 한다. 


참고로 이 일행 중 한 명은 조선인 여자와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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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663년 대기근과 더불어 자연 재해와 흉년이 더불어 일어나 조선 상황이 ㅆㅎ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ㅊ가 되자 


조선 정부는 남은 이들 중 12명을 여수로, 5명을 순천으로, 5명을 남원으로 분산 배치를 하는데 나머지 11명은 중간에 그냥 뒤졌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나오지는 않는 걸로 보아 아마 그냥 뒤졌을 걸로 추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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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시 전라도에서 통수 정신을 배웠는지는 몰라도 여수로 갔던 일행 12명 중 8명은 그동안 근검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조선인에게 배를 하나 구입한 후 1666년 9월 4일, 배를 타고 일본으로 탈출하는 것으로 위가 바로 그 그림이다. 


즉, 하멜은 13년 동안 조선에서 표류되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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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 제가 언제 탈출 안 하겠다고 말이나 했습니까, 안 했는데 당연히 해야지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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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해서 1666년 9월 14일,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한 하멜 일행은 그 곳에서도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1년동안 억류되었다가 


1667년 11월 28일, 동인도 회사가 있는 인도네시아 바타비아로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하멜은 밀린 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인도 회사에 남았고, 나머지 일행은 고국으로 가는 배를 타고 1668년 7월 19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멜은 그 후, 1970년 네덜란드로 다시 갈 수 있었고 조선에 표류하고 있던 나머지 사람들은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나가사키로 풀려나 


하멜과 함께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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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하멜이 작성했던 하멜일지와 조선 국왕기. 


하멜의 당시 직책은 서기로, 하멜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행은 문맹 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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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하멜은 조선에 대해서 부정적이게 이 책에 썼는데 대표적으로 서너 살 먹은 아이들도 담배를 피고, 거짓말을 잘한다고 하는 등 


그들의 백성 의식에 대해서 줄기차게 비판하는 글을 작성했는데 하멜이 있었던 곳이 전라도인것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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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이 처음 타고 왔던 상선인 스페르베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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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거점으로 주변 군도와 대만을 지배하는 동시에, 중국 본토와 


일본의 교역 루트를 독점하는 등 무역 시장을 넓혀 갔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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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헤르 조선은 인구빨로도 이득을 못 얻고 병신 마냥 쇠퇴기를 친히 걷고 계셨다..









3줄 요약


1. 17세기 네덜란드 경제 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ㅅㅌㅊ


2. 조선 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ㅎㅌㅊ


3. 전라도는 저때나 요즘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