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으로는 5.18에 대해 뱅모의 입장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핵심단락

나는 5.18 당시 [고첩-남파특수요원] 들의 준동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5.18에는 [고첩- 남파 특수요원 흐름]과 전혀 다른 흐름이 존재했다.


들불야학-전남대연극반-전남대탈반 커넥션이다. 

이 커넥션이 도청사수 노선을 관철시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주도자는 윤상원. 

시민군 대변인이다. 마지막까지 신원을 감추고 활동했다. 

도청 진압작전 때, 카빈 총을 쏘며 복도를 걸어나가 사실상 자살을 택했다.


윤상원 인맥은 

반북한 성향이 강한 PD계열(초기 PD)이어서 DJ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광주 운동권에 의해 철저히 밟히고 은폐되었다. 


_____________normal-1.jpg

뱅모 · @bangmo

11th Oct 2015 from TwitLonger


1) 나는 5.18때 상당수의 고첩이 준동했다고 본다.


2) 나는 고첩과 연계된 

'남파 특수요원들'이 상당수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들은 서남해안-도서 지역을 통해 충분히 들어 올 수 있었다.


6.25 이후 최초의 지하당 사건은 

"임자도 통혁당" (대구 김종태가 했던 통혁당과 다름) 사건이었으며 

무지막지한 돈과 무기가 서남해안을 통해 드나들었다. 


대구통혁당이 

가지고 있었던 무기(기관총, 박격포) 역시

서남해안 지역을 통해 반입되었을 것이다. 


임자도 통혁당은 어민들의 간첩단이 아니다. 


당시 내노라하는 지식인들이 관계되었다. 

두목 정태묵은 

남노당 전남 도당위원장을 지냈던 인텔리다. 

최소한 80년 경까지 

서남 도서지역은 이른바 '적성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었으며 

적 침투에 대한 감시/봉쇄가 사실상 매우 취약한 지역이었다.


이같은 취약지역을 통해 

수십명이 미리 침투해서 기다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3월 경에, 

'서울의 봄'(1980년 봄의 혼미한 상황)은 조만간 파국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명확하게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3) 구체적으로 몇 명의 고첩, 몇 명의 남파 특수요원들이 활동했는지는 추정할 능력이 전혀 없다. 


단지 "만약 내가 당시 이 작전을 지휘한 북한 측 책임자"라면, 

나는 고첩 100~200 명 , 남파 특수요원 50~100 명 정도를 투입했을 것이다. 


남파 특수요원을 그 이상 사용하는 것은, '군사도발'이 되므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4) 5.18 사진을 가지고 '광수찾기' 하는 것은, 내 눈에는 코믹하게 보인다. 


이 문제는 평양이 붕괴하고 기밀 문서가 나와야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난다.


5) 이와 별도로, 

5.18 때 맹활약했던 소위 '독일 아마튜어 저널리스트' 위르겐 힌츠페터란 사람에 대해서는 항상 궁금했다. 


광주 현장에서 동영상을 찍어 적절하게(?) 편집한 다음에 퍼뜨린 사람이다.... 


그토록 저널리스트적 소양과 소명의식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그 이후 저널리스트로서의 행적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5.18 때 

광주에서 취재했던 '볼티모어 선'의 브래들리 마틴은, 


이미 그 이전에 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등의 분쟁지역 취재 경력이 있는 사람이고, 


5.18이후에도 계속 동아시아에 체재한 저널리스트로 살았다. 


반면 힌츠페터는 5.18때 혜성같이 등장해서, 

그 이후엔, 저널리스트로서의 흔적이 없다.


오늘 일베에 

힌츠페터와 정말 닮은 사람이, 이번 북한 열병식 관람자로 참여한 것이 조명되었다. 정말 닮았다.


만약 이게 힌츠페터라면... 

그는 처음부터 평양 측에서 잠입시킨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 된다...


만약 그렇다면.... 

5.18의 저변에는 평양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또 하나의 증거라는 뜻이 된다. ...


'광수게임'으로 웃고 넘길 수 없는, 광수 아닌 광수...


http://www.ilbe.com/6735477431


(뱀발: 나는 5.18 당시 [고첩-남파특수요원] 들의 준동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5.18에는 [고첩- 남파 특수요원 흐름]과 전혀 다른 흐름이 존재했다.


들불야학-전남대연극반-전남대탈반 커넥션이다. 


이 커넥션이 도청사수 노선을 관철시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주도자는 윤상원. 

시민군 대변인이다. 마지막까지 신원을 감추고 활동했다. 

도청 진압작전 때, 카빈 총을 쏘며 복도를 걸어나가 사실상 자살을 택했다.


M16에 맞아 숨이 깔닥거리는 상태에 있는 사람을, 

그의 보디가드 3명 (전남대 77학번 출신 C, L, K)가 커텐을 뜯어 둘둘 말아 책상에 올려 놓고, 

자신들은 (진압군의 명령에 따라) 총을 복도로 밀어 던지고 투항해서 살아났다. 


나중에 방마다 수류탄을 터뜨렸는지, 

어쩐지, 시신의 반쪽이 새카맣게 탄 채로 나왔다.


윤상원 인맥은 

반북한 성향이 강한 PD계열(초기 PD)이어서 DJ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광주 운동권에 의해 철저히 밟히고 은폐되었다. 


마치 NL 운동권에 족보가 없던 

[마이크 선동 여전사 전여옥]이 철저하게 밟혔던 것 처럼...


윤상원 인맥 중 제일 걸물은, [극단 민들레]를 운영한 고 박효선이다. 고 박효선의 대표작은 [모란꽃].... 귀기어린 작품이다. 전여옥 스토리를 형상화한 걸작이다.)


(끝)


나를 포함 많은 이들이 지박사의 북한특수군(뱅모표현 '남파 특수요원') 투입 주장에 공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박원순게이트처럼 넷심을 얻어가며 차근차근 밟아 가주길 앙망하는데,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주장과 다르면 

물귀신 작전처럼 공격을 해대니 지금은 이에  대한 비판도 많다


우호세력들의 다른 의견에도 귀를 여는게 필요해 보인다


최근 조갑제의 또라이짓과 비교되며 새삼스러이 지박사의 진정성이 증명된 만큼 이점 헤아려주면 좋을 듯하다


지금 뱅모의 트윗도 나의 생각과 대동소이하다.

나 또한 공수부대 장교출신이다  


지박사의 건투를 빌면서도 비판에는 넓은 가슴도 필요해 보인다는 점도다시한번 참작해 주시길 바란다


싸움의 대상은 골품독재 도모하는, 종북세력보다 더 광의의 세력이란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