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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국가였던 조선시대의 다양한 형벌 중에서 특이한 형벌이었던 '조선식팽형'을 알고있게이?


1. 고대로 부터 세계 곳곳에 문화적으로 존재했던 삶아죽이고 튀겨죽이는 형벌인 팽형

2.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서는 부패한 관료나 양반귀족을 징벌하는 명예형으로 이용(실제로는 안죽임)

3. 갑오경장 이후에도 목격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끓는 물에 삶아 죽이는게 팽형?


팽형(烹刑)이라고 들어들 봤니 게이들아?

사자성어 '토사구팽'(兎死狗烹)에 나오는 한자 '팽'(烹 : 삶을 팽)이다.

한마디로 삶아죽인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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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의 재현 사진 처럼 팽형은 말그대로 가마솥 끓는 물에 죄인을 풍덩시키고 끓여서 죽이는 잔인한 형벌이지...

이 팽형은 고대에는 중국 한반도 일본열도를 넘어 대륙전체에서 광범위하게 실행되었다고 하더라

죽을때까지의 끔직한 고통때문에 가장 잔인한 형벌 중에 하나였다고 하고 또 준비하는데 인력과 장비가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끌게되어서 점차적으로 기피되었던 형벌이라고 한다 이기

그럼에도 꼭 이 방법으로 죄인을 벌하는 경우는 죄인의 죄가 끔직하게 극악무도하고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반역행위나

국기를 문란시키고 왕조의 권위에 도전하는 무도배들에게 왕이나 황제가 완전 빡쳐서 죽을때까지도 고통을 주려는 형벌이다보니

이거 자주 시행한 군주는 폭군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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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형벌중에 하나인 장형 (곤장쳐맞는 그림) 


중공에서는 고대에 팽형에 사용한 거대한 가마솥이 발견되기도 하였고 일본의 풍속화나 역사서에서도 기름에 튀겨죽이는 사실들이 고증된것으로 봐서

인간역사의 어느 순간에 이런 끔직한 형벌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갑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뉴욕 갱단간의 전쟁에서 이탈리아 마피아를 중국갱들이 납치해서 가마솥에 삶아죽였던 적이 있다고 하고...

2002년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무자파르 아바조프'라는 사람이 끓는 물에 삶아지는 고문 끝에 죽었다고 하데....(구글하면 끔직사진 튕기나오노 ㅎㄷㄷ)



 

곤장쳐맞는 장형은 맞으면 죽는게 다반사였다고 하고 노무노무 아프고 비인간적이라해서 갑오경장 이후에 폐지되는 바람에 증거사진이 거의 없다...



유교국가, 조선의 팽형......삶는 시늉만하고 죽이지는 않는다......가마솥은 거들뿐


유교이념때문에 징벌보다는 교화에 중점을 두었던 조선에서는 같은 시기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때 비교적 인도적이고 합리적인 형벌제도를 운영했다고해

팽형은 주로 양반귀족이나 관리들에게 내리는 형벌이었는데 주로 부패하거나 무능하거나 통치계급으로서의 일탈자들에게 내리는 명예형이라고 한다.

일단 사형에 처할 만큼 엄중한 죄를 지인 죄인에게 양자택일의 기회를 주는 거지...


'스사' 할래? 아님 '가마솥'탈래?


대부분은 자결을 택하고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일부는 가마솥을 택하기도 했다고 하더라

숨막히는 신분제도 속에서 죽을때 까지도 양반으로서의 규범을 강요당하고 스스로의 욕구(살고싶은..)보다도 가문의 명예와 후손들의 장래때문에 어쩔수없이 

자결을 택하는게 보편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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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를 트는 사진인데 어케 언제 촬영된건지는 몰겠다...

무릎위에 졸라 무릎위에 졸라 무건돌을 올려놓는 압슬형과 더불어서 주로 고문하고 취조할때 쓰던 형벌이라고 한다.




가마솥을 이용한 팽형의 진행과정

팽형은 공개형으로 진행이 되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 가마솥을 설치하고 죄인에게 유죄 취지의 판결문을 고지하고 형을 바로 집행

일단 장작에 불을 붙이고 가마솥에 물을 조금 채워넣고

죄인을 가마솥안에 덤핑한다.

그리고 바로 다시 꺼내서 바디를 가족에게 인도한다

(이때부터, 그니까 가마솥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죄인은 죽은사람인척 연기를 해야함)

가족은 장례를 치르고 관에서는 죄인의 호적을 삭제한다.

공식적으로 장부에서 델리트 되니까 죽은사람인셈

실제로 죽을때까지 평생 없는 사람처럼 살다가 인생종료하게된다 (집밖외출도 안되고 외부인사 만나는것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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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태형을 촬영한 사진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가장 가벼운 체벌형이라서 1920년대까지 존속했다고 하더라



대한제국 시절인 20세기 초에 입국해 병합 후 경성형무소장을 지냈던 '중교정길'(中橋政吉)은 그의 저서에서 팽형을 목격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임시로 종로의 사람 많은 다리위에 커다란 아궁이를 크게 구축하고 그 곳에 큰 가마솥을 건다. 

그리고 아궁이에 불을 지필 수 있게끔, 나무를 지피어 놓는다.

이 아궁이 앞에 병풍을 치고 군막을 둘러 재판석을 만든다. 이 재판석에는 입회하는 포도대장의 좌석이 마련된다

이와 같이 준비가 갖추어지면 포도대장이 엄숙히 나와 앉고 죄인이 대명한다.

죄인은 가마솥의 나무뚜겅 위에 묶인 채 앉힌다.

이 죄인에게 포도대장은 엄숙하게 죄명을 선고하고 처형을 하명한다.

대개 이 형의 집행은 포도대장의 판결선고가 끝나면 그것으로 형이 끝난 것으로 간주되나 

때로는 그 가마솥에 미지근한 물을 담가 그 속에다 죄인을 처박기도 한다.

또는 그 빈 솥에 죄인을 몰아넣고 솥뚜껑을 닫은 다음 아궁이에 불을 때는 시늉만 하고 그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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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은 일반적으로 10~50대까지 때렸는데 보통은 엉디를 까고 맞았다



이 형벌의 집행으로 미루어 보아 형을 집행한다기보다 공중이 널리 보는 가운데서 베풀어지는 면박의 한 요식같은 인상이다.

하지만 이 팽형을 받은 사람은 비록 생명은 유지되었을 망정 마치 사형당한 사람처럼 여생을 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일단, 이 팽형의 집행이 끝나면 물에 젖은 죄인은 가마솥에서 끌어내서 죄인의 가족에게 인도된다.

인도될 때 이 죄인은 산사람처럼 행동하면 안된다 마치 뜨거운 물에 삶아진 시체처럼 행세해야 한다.

가족들은 호곡을 하며 마치 죽은 가장을 대하듯이 슬퍼해야하고 또 상례에 준하여 인도받아야 한다.

이 살아있는 시체를 집으로 운반할 때 가족들은 대성통곡을 하면서 뒤따라가야한다.

일단 집에 옮겨오면 그 살아있는 시체의 신분이나 지체에 알맞은 응분의 상례를 마치 죽은 사람과 똑같은 절차대로 치러야 한다.

이 상례가 끝나면 이 독직 죄인은 공민권을 박탈 당하고, 공식적으로는 그의 친지나 친척과도 만나서는 안되게끔 되어있다.

오로지 집안에 갇혀 가족하고만 살아야 했던 것이다."

                                              -중교정길(中橋政吉), 1937년 治刑協會 지에 기고한 글 '朝鮮舊時 의 刑政'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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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을 맞을 죄인이 여자인 경우에는 옷을 입고 맞았는데 예외로 간음한 불륜년들은 엉디까고 맞음



암튼, 이 팽형을 당한 죄인은 걸어다니는 시체로 봐야되는데

외출불가

외부인 접촉불가

사회적 고자, 불능자, 불구자, 시체를 만들어버리는거다

팽형당한 죄인이 부인하고 떡을 쳐서 애가 생기면 그 아이는 정실부인 소생이라도 '사생아'가 되어버리고

심지어 나중에 무죄가 입증되어도 신원이 회복되는 사자들과는 달리 팽형죄인은 신원회복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서는 정말 양반들에게 끔직하게 잔인한 형벌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이기


전자발찌하고 유사한점이 좀 있지않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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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고령이거나 임신부일 경우에는 매를 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법에 명시되어있다네...)



조선이 유교국가였기때문에 과도한 형벌을 금하고 교화를 통한 통치를 근본적인 이념배경을 삼았기때문에 팽형같은 케이스도 생겨난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보는데 다시한번 말하지만 비슷한 시기의 주변국가들 (명, 청, 왜)과 비교해봐도 잔인하고 무서운 형벌이 별로 없었다고 하데

사람들 말로는 같은 시기 서양의 형벌은 노무노무 끔직한게 많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인도주의적인 형벌제도는 다행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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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견딜만한 건강한 사람들이 주로 맞았다는 건데....조선말에는 대신 매맞는 알바도 생김



조선시대에도 묵형, 자자형, 태형, 장형,도형, 사형 등등의 형벌이 존재했고 묵형이나 자자형같은 형벌은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졸라 잔인한 형벌이지만 중범죄자들에게나 썼던 방법이고 절도나 사기같은 잡범들은 대게 곤장 처맞고 감방 몇달 살고 그런 선에서

형벌이 이뤄졌다고 보면 된다고 하더라

죄인을 심문하고 취조할때도 하루에 한번 이상하면 안되고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해서도 안되고, 하루 심문하면 3일 휴식을 주는등

상당히 까다롭게 절차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