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는 외국기업들: 침략자를 몰아낸 집주인의 승리인가?
야후!코리아가 서비스 종료를 발표함에 따라 또 하나의 외국기업이 한국시장을 떠나게 되었다. 한국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세계에서도 가장 빠른 국내 IT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 패인으로 분석된다’라며 한국 시장의 승리인양 보도가 이루어졌다. (참고: http://www.ytn.co.kr/_ln/0102_201212150002540326)
최근 몇년 사이, 한국시장을 떠나기로 결정한 외국기업이 유독 많아지고 있다. Finance의 HSBC, Goldman Sachs, Aviva 생명 등이 철수 또는 감축을 발표하였고, IT쪽에서는 Motorala, Yahoo!, HTC, RIM 등이 2012년 한해 동안에만 철수를 결정하였으며, 최근 Automobile 업계의 GM Korea에서도 7000명 상당의 인력감축 계획을 발표하였다. 소비재의 Nestle, Unilever, P&G 등 명성이 자자한 기업들도 역시 최근 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발표한 철수 성명에는 한결같이 다음과 같은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to focus on markets where it stands better chance of success’ -HTC
‘…focus on markets that we can compete most efficiently’ – Motorola
‘…focus our resources on building a stronger global business that’s set up for long-term growth and success’ -Yahoo!
위 코멘트들의 공통점을 요약해 보자면, ‘좀더 효율적으로 성공을 도모할 수 있는 시장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하여 한국 시장을 버린다’ 라는 문구가 도출되며,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한국은 외국기업이 효율적으로 성공을 도모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라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1. 지나치게 까다로운 소비자 입맛: 소비자 입맛이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에, 빠른 소비자 동향 파악 및 의사결정을 통해 소비자의 취향을 맞추어 주는 움직임이 필요한데, HQ가 외국에 있는 외국 기업으로서는 한국 기업에 비해 의사결정이 느릴 수 밖에 없고, 결국 Customer care 싸움에서 박살이 난다. 비슷한 환경과 조건이라면, 기업은 소비자에게 덜 시달리는 시장을 당연히 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이미 경쟁자들로 꽉찬 시장: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겠지만, 한국은 당연히 더이상 개발 도상국이 아니며, 거의 모든 산업군이 막강한 경쟁자들로 꽉꽉 차있다. 게다가 서서히 (그리고 최근 들어 더욱 급속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1번의 영향으로 인해, 이 경쟁자들은 대부분 한국 기업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선두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레이스에 굳이 참가할 필요는 없다.
3. 그저 그런 국제적 중요도: 아시아권을 살펴보자면, 중화권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장은 엄청난 가치가 있으며, 중국/대만/홍콩 등은 대부분의 외국기업이 중요시하는 시장이다. 아직 발전이 진행중인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동남아 국가들은 덜 여물었으나 미래를 위해 투자할 가치가 있는 시장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 시장은 로컬 기업들로 포화되어 있고 소비자 성질은 더럽다. 굳이 많은 피를 흘리면서까지 정복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와 같은 상황은 한국사람에게는 장/단기적으로 당연히 안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이 직장 숫자의 감소일 것이다. 언뜻 숫자만 더해 봐도 이 심각성은 금새 파악된다. 철수하는 기업당 적게는 2~300명에서 많게는 수천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직장을 잃게 되는 것인데, 이 기업들이 7~8개만 되어도 그 숫자는 꽤나 커진다. 2012년 8월 기준 노동청 발표자료에 의하면 한국 정규직 근로자가 1천 2백만명 수준이라고 하나, 서울 근무중인 정규직 근로자 숫자가 2백50만명인 것을 감안하고, 나아가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는 인력들이 비교적 고급인력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 외국기업의 철수로 인해 직장인들이 느끼는 타격은 꽤 클 것으로 생각된다. 당장 이직할 수 있는 자리가 몇개씩 줄어들고, 동시에 내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는 몇명 더 생겨나는 것이다. (게다가 근무환경을 생각해 보면, 근무환경이 좋은 외국기업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비교적 수직적이고 회식/야근이 더 잦은 한국기업 일자리만 남는 것이니..)
또한, 외국기업의 global HQ에서 점점 한국인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우리가 공략하지 않을 시장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는 필요없다’라는 논리에 따라, 한국시장을 가장 잘 아는 한국 인재들 역시 자리를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Linkedin을 통해 ‘Korean speaking’을 검색어로 하여 job search를 해보면, 대부분의 결과가 삼성/LG 등의 한국 기업이며, 외국 기업이 한국 인재를 채용해야 하는 경우는 현재 매우 적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인력시장이 그만큼 더 포화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의 선택 폭 감소가 있을 것이다. 외국기업이 쫓겨나면 쫓겨날 수록, 한국 시장에는 한국 기업이 파는 한국 상품만이 남게 된다. 소비자는 시간이 갈수록 울며 겨자먹기로 제한된 개수의 상품만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며, 현재도 그토록 소셜 미디어에서 ‘틈만 나면 씹는’ 대기업의 독과점 구조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전자제품은 삼성, 자동차는 현대, 유통은 롯데, 통신사는 SK를 사용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바로 소비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편하게 해주기만 하는 기업의 맞춤형 상품만을 소비하는 수동적 소비자가 되기보다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다양한 상품들을 사용해 보면서 보다 국제적인 시야를 갖추려는 능동적 소비자가 될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능동적인 변화가 없다면, 한국시장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내리막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Email: cky0410@hotmail.com
참고자료:
http://mengnews.joinsmsn.com/view.aspx?gCat=050&aId=2964592
http://english.hankyung.com/news/apps/news.view?c1=04&nkey=201211210203121
http://www.koreatimes.co.kr/www/news/tech/2012/12/419_126648.html